박종인 라이문도신부님[ 가르멜의 영성8]
교회가 복음적 순수성을 잃어가고 세속화가 되고 있을 때인 12세기와
13세기에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청빈과 그리스도를 본받는 고행,
그리고 형제적 사랑을 몸소 실천하면서 세속주의에 맞서 싸웠고,
도미니꼬 성인은 묵주기도의 전파와 복음 설교로,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신학을 집대성하여 교리를 정립함으로써
교회를 풍요케 했으며, 가르멜산의 은수자들은
엘리야 예언자의 정신을 본받아 엄격한 고행과 극기의 정신으로
침묵과 고독중에 하느님을 찾으며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고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끊임없는 기도와 관상생활로
참된 수도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각각 그 시대에 맞는 위대한 성인들과 선각자들을
보내 주시어 그들을 스승과 모범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특히 마르틴 루터의 소위 종교개혁으로 성 교회가 온통 혼란하고
암흑의 시기를 맞았던 16세기에 트리텐티노 공의회에서는
교의 전반의 확고한 정립을 도모했고,
가를로 보로메오 성인은 공의회의 정신을 널리 폈으며,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은 예수회를 창립하여 교회의 내적 쇄신으로
가톨릭 교회의 반동 종교개혁(Counter Reformation)에 협력했습니다.
같은 16세기에, 하느님의 섭리는 예수의 데레사 성녀로 하여금,
교회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소수정예로 구성된 엄선된
소수의 봉쇄 가르멜 수녀들이 복음적 권고와 규칙의 깔축없는 준수로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고
기도와 희생으로 성교회를 돕는 개혁 가르멜을 창립하게 하였습니다.
1562년 8월 24일,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에 아빌라의 성 요셉 수도원이
개혁 가르멜로서는 첫 번째로 창립미사를 드렸습니다.
성녀는 혁신된 가르멜 수도회가 초대 가르멜산의 은수자들의
생활과 정신을 본받기를 원했습니다.
"돌이켜 우리의 거룩한 선조들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그 생활을 본뜨고자 하는 은수자들은 다만 혼자서
그 많은 고생을 어떻게 참으셨겠습니까?
주님께 아뢸 뿐 그 누구에게도 입을 떼지 않은 체로,
그 추위, 그 주림, 그 뙤약 볕, 한 더위를 어떻게 견디셨겠습니까?
여러분은 그 어른들이 무쇠로 된 인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 같이 섬섬약질이었습니다.(완덕의 길11,4)"
"보십시오, 우리가 여기서 따르려고 애쓰는 생활체제는
다만 수녀들의 그것이 아니라 은수자들의 체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온갖 피조물에서 이탈해야 되는 것입니다."(완덕의 길 13, 6)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가르멜 수도자들이 창설 당시와 같은
엄격한 청빈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침묵과 고독안에서
끊임없는 관상과 기도로 주님을 위로해 드리고
교회를 위한 봉사에 바쳐지기를 원했습니다.
개혁 가르멜의 창립은 새로 가르멜 수도회를 예수의 데레사 성녀가
창립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성녀의 주님께로부터 받은 깊은 초자연적 관상의 은혜와
기도의 체험을 바탕으로 가르멜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받고
원초회규의 철저한 복음적 극기와 침묵의 관상생활 정신으로
되돌아 가는 참다운 의미의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이며 혁신이었습니다.
"우리회의 다른 수도원들은 완화된 규칙을 지킬 뿐이었는데
우리는 엄한 원시 회칙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창립사 2, 3)라고 성녀는 말합니다.
초대교회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면서 새로운 정신을 받아들여 교회를 발전시키자는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이었다면,
성녀 예수의 데레사는 400여년 전에 이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사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가르멜 개혁의 주역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다는 점입니다.(자서전 32장∼36장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