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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멜의 영셩

[스크랩] 가르멜의 영성 20

가르멜의 영성

 
박종인 라이문도신부님 [ 가르멜의 영성20]

묵상기도는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분, 즉 예수님이나 성모님,

또는 성인 성녀들과의 단독면회(單獨面會)이며, 대화(對話)요,

우정(友情)의 나눔입니다.


성녀 예수의 데레사는 이 만남과 사랑의 대화를 위해서 최선(最善)을

다해 노력하셨습니다. 성녀는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당신의 기도 방법을 기술하셨습니다. "나는 내 안에 현존(現存)하시는

우리의 선(善)이시오 지존(至尊)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앞에 모시고 바라뵈오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였습니다.

이것이 나의 기도 방법이었습니다."


성녀는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신앙의 눈, 마음의 눈, 영혼의 눈으로

바라 뵈었습니다. 캄캄한 방안에서나 또는 장님이 누구와 이야기할 때

그 이야기 상대가 거기 있지만 보지는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비록 육안(肉眼)으로는 뵙지 못하지만,

영혼의 눈 신앙의 눈으로는 기도안에서 바라 뵈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의 한 장면(場面)을 가지고 묵상기도를 한다고

할 때, 먼저 그 수난의 장면이 우리 안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상상(想像)하고,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실제로 지금 그 장면의 예수님이 나를 바라보고 계시다고 믿으면,

예수님과 나는 눈이 서로 마주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모님이 나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신다고 믿으면

성모님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예수님이나 성모님의 고통을 생각하는 것은 묵상(默想)이라고

할 수 있고, 예수님이나 성모님을 만나고, 눈이 마주치는 것은 기도,

즉 묵상기도인 것입니다.


기도일때는 예수님이나 성모님이 제2인칭으로서와

「너」의 관계가 되며, 묵상일때는 상대방이 제3인칭,

즉 「그이」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나 성모님이 지금 간절히 바라시는 것은 당신들을 「그이」

로서가 아니라 ,제2인칭인 「너」,「당신」으로 바라 뵈오며

친밀한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기도나 성모송을 바칠 때,

「지금 내가 이 기도를 누구에게 드리고 있는 가」를 생각하면서

예수님과 성모님을 앞에 가까이 모시고 시선(視線)이 일치된

상태에서 드린다면 실제로 우리는 기도안에서 예수님과

성모님을 체험한 것이고 만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체험(體驗)이고

현존체험(現存體驗)인 것입니다.


이러한 현존 체험이나 기도의 체험은 그 효과(效果)가 매우 큽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하여 우리의 존재(存在, Essere, Being) 양식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즉, 주님과의 일치에서 이웃사랑과 사도직은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나는 주님과 일치되는 그만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시냇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가 푸르고 싱싱하며 많은 열매를 맺는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주님과 만나는 기도를 하려면 많이 생각하는 것보다

주님을 많이 사랑하도록 노력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분이 내 안에 가까이 계시다는 것과

그분은 당신을 바라 뵙는 것 외에 더 이상 바라지 않으신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출처 : 가르멜의 영성 20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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