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바다 속에서 바닷물에 휩싸여 살 듯이,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갑니다."(사도 17, 28) "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가까이 계십니다. (사도 17, 28)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가까이 계시지만,
그분을 알고 사랑할 때에만 그분을 인격적으로 친밀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과의 친밀한 일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시느이 자녀로 삼아 당신과 영원히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부터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에페 1, 3∼4 참조)
성부께서는 성자를 사랑스럽게 하라보시고, 성자께서는 성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는 이 서로의 바라봄에서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십니다. 이 넘치는 기쁨과 사랑으로부터 성령을 발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함께 기뻐하시며 사랑으로 온전히 일치를
이루십니다.
인간은 이러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사랑의 공동체에 불리운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넘치는 사랑과 기쁨으로 인간을 내셨습니다.
인간이 범죄한 후에도 아드님을 통해 구원하심으로써
재창조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습니다. "(요한 3, 16)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유한한 인간이 차지한다는 것은
천부당한 일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통해서
은총을 거저 베풀어 주심으로써 당신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의 집안 식구이고, 아버지의 것은
다 자녀의 것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이상, 남처럼 대하시지
않으십니다. 당신 아드님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아드님과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부족하고 나약하며 죄투성이인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당신의 자비와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숙한 사랑으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될 때,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인 우리를 당신 자신을
보시듯이 보시고, 당신 자신 때문에 만이 아니라 피조물인
우리 자신 때문에도 우리를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십니다.
우리와 하느님이 혼연일체가 되는 이러한 일치를
「영적 결혼」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초자연적인 상사(相似)의 일치는
하느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의지가 완전히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은 사랑"(요한 1서 4, 16) 이시므로, 우리가 사랑으로 변화되는 만큼
하느님과 같아질수 있고, 완전한 사랑으로 변화되면 이것을 변화적 일치,
또는 변용(變容, Tranformation) 이라고 합니다.
이 때에 피조물인 인간은 묵은 인간성을 다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를 덧 입듯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라2, 20)
이 때 영혼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만을 원하게 되고, 하느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은 영혼도 함께 원하지 않게 되어,
하느님과 영혼 사이의 의지는 두 의지가 아니라 완전히
하나의 의지로 일치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지의 일치를
우리는 완덕(完德)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