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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멜의 영셩

[스크랩] 가르멜 영성 31

 

 

박종인 라이문도신부님 [ 가르멜의 영성31]

 
구송기도라도 내가 이 기도를 누구에게 드리고 있는가,
드리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또 드리고 있는 이 기도의 뜻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잘 드리기만 하면 훌륭하게 묵상 기도가 되는 것이고
참다운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체험을 통해서, 기도를 드릴 때,
내가 이 기도를 누구에게 지금 드리고 있으며,
드리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면서 드리면 오랫동안
묵상에 잠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완덕의 길 22- 25절 참조)


기도를 할 때 대상을 생각하지 않고 허공에다 드리면 빈 말이나
형식적인 기도가 되기 쉬울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누구인지,
또 자기는 누구인지를 생각하지 않으면서 드리면 예의에
어긋나는 몸과 마음 자세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의 범절은 상대방의 신분에 맞도록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지존하신 하느님 앞에서 말씀을 듣고 말씀을 드리는
우리의 태도는 겅건하고도 겸허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거나 까다로운 분으로
생각해서도 안되고 엄하신 심판관으로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창조주와 엄위로운 심판주로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애로우시고 지극히 선하신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으로
생각해 드리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할 때 하느님을 가까이 모시고 자녀적인 기도(figlial prayer), 애정적인 기도(affectionate prayer)를 드려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로, 당신의 정배로,
때로는 당신의 벗으로 대하십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당신의 품안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도록
우리를 천지창조 이전부터 부르셨기 때문입니다.(에페 1장 참조)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가 구송기도를 드릴 때
그 뜻이 무엇인가를 잘 생각하기를 바라십니다.
예를 들어서 주의기도를 드릴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무엇을 뜻하는 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히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이 되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형제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을『아빠, 아버지』라고
친밀하게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참 아버지이시므로 이제 우리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이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세성사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와 결합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니 우리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실 것이고
헐 벗었을 때 입혀 주실 것이며,
우리가 곤경에 처하거나 시련을 당할 때 우리를 도와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위험에서 건져 주실 것이고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우리를 다신의 자녀로 기쁘게 맞아 들이시고
모든 죄를 사해 주실 것입니다. (루가 15장 : 완적의 길 25장 참조)
이렇게 하여 결국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느님을 매일 충실하게 애정을 가지고 기도 안에서
만날 때 어떻게 하느님을 닮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출처 : 가르멜 영성 31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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