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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마을

[스크랩] 시인 정지용 시 모음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유리창 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러갔구나!
 
 

 

 

유리창 2                                                 
    
내어다 보니

아주 캄캄한 밤,

어험스런 뜰앞 잣나무가 자꼬 켜올라간다.

돌아서서 자리로 갔다.

나는 목이 마르다.

또, 가까이 가

유리를 입으로 쫏다.

아아, 항 안에 든 금붕어처럼 갑갑하다.

별도 없다, 물도 없다, 쉬파람 부는 밤.

소증기선처럼 흔들리는 창.

투명한 보랏빛 누뤼알 아,

이 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릇내라.

나는 열이 오른다.

뺌은 차라리 연정스레히

유리에 부빈다. 차디찬 입맞춤을 마신다.

쓰라리, 알연히, 그싯는 음향-

머언 꽃!

도회에는 고운 화재가 오른다.

 

 

 

 

종달새                                                  


삼동 내 ---- 얼었다 나온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

 

왜 저리 놀려대누.


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

종달새 지리지리 지리리 ......

왜 저리 놀려대누.


해 바른 봄날 한종일 두고

모래톱에서 나 홀로 놀자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발열                                                      
    
처마끝에 서린 연기 따러

포도순이 기여 나가는 밤,소리 없이,

가물음 땅에 스며든 더운김이

등에 서리나니 , 훈훈히,

아아, 이 애 몸이 또 달어오르노나.

가쁜 숨결을 드내쉬노니, 박나비처럼,

가녀린 머리, 주사 찍은 자리에,입술을 붙이고

나는 중얼거리다, 나는 중얼거리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신교도와도 같이.

아아, 이 애가 애자지게 보채노나!

불도 약도 달도 없는 밤,

아득 하늘에는

별들이 참벌 날으듯 하여라.
 
 

 

 

산너머 저쪽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뻐꾸기 영우 에서

한나절 울음 운다.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철나무 치는 소리만

서로맞어 쩌르렁!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늘 오던 바늘장수도

이봄 들며 아니 뵈네.
 

 

 

 

석류                                                     
    
장미꽃처럼 곱게 피여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 때 밤은 마른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 겨울 지난 석류열매를 쪼기여

홍보석 같은 알을 한알 두알 맛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 ㅅ 달 ,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 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졸음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 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오월소식                                                
    
오동나무 꽃으로 불밝힌 이곳 첫여름이 그립지 아니한가?

어린 나그네 꿈이 시시로 파랑새가 되여 오려니.

나무 밑으로 가나 책상 턱에 이마를 고일 때나,

네가 남기고 간 기억만이 소근 소근거리는구나.

모초롬만에 날러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여

가여운 글자마다 먼 황해가 남설거리나니....


나는 갈매기 같은 종선을 한창 치달리고 있다...


쾌활한 오월넥타이가 내처 난데없는 순풍이 되여,

하늘과 딱닿은 푸른 물결우에 솟은,

외따른 섬 로만틱을 찾어갈가나.


일본말과 아라비아 글씨를 아르키러간

쬐그만 이 페스탈로치야, 꾀꼬리 같은 선생님 이야,

날마다 밤마다 섬둘레가 근심스런 풍랑에 씹히는가 하노니,

은은히 밀려 오는듯 머얼미
 


 

 

장수산 1                                                 
    
  벌목정정 이랬거니 아람도리 큰솔이 베혀 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 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좇지 않고 뫼ㅅ새도 울지 않어 깊

은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 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

름을 기달려 흰뜻은 한밤 이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판에여섯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이의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히 슬

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내-
 


 

 

카페프랑스                                               
   

옮겨다 심은 종려나무밑에

빗두루 슨 장명등,

카페 · 프랑스에 가자.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뻣적 마른 놈이 앞장을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멘트에 흐느끼는 불빛

카페 · 프랑스에 가자.


이 놈의 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 한놈의 심장은 벌레 먹은 장미

제비처럼 젖은 놈이 뛰어간다.


「 오오 패롤서방! 꿋 이브닝!」


「꿋 이브닝!](이 친구 어떠하시오!)


울금향 아기씨는 이밤에도

경사 커-틴 밑에서 조시는 구료!


나는 자작의 아들도 아모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닿는 내 뺌이 슬프구나!


오오, 이국종 강아지야

내 발을 빨어다오.

내 발을 빨어다오
 

 


 

풍랑몽 1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가.

끝없는 울음 바다를 안으올 때

포도빛 밤이 밀려오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가.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가.


물건너 외딴 섬, 은회색 거인이

바람 사나운 날, 덮쳐오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가.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가.


창밖에는 참새떼 눈초리 무거웁고

창안에는시름겨워 턱을 고일때,

은고리 같은 새벽달

부끄럼성 스런 낯가림을 벗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가.


외로운 졸음,풍랑에 어리울때

앞 포구에는 궂은비 자욱히 들리고

행선배 북이 웁니다
 

 


 

풍랑몽 2                                                   
    
바람은 이렇게 몹시도 부옵는데

저달 영원의 등화!

꺼질 법도 아니하옵거니,

엊저녁 풍랑 우에 님 실려 보내고

아닌 밤중 무서운 꿈에 소스라쳐 


 

 

바다 1                                                   
 

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오.오.오.오.오. 연달아서 몰아 온다.


간밤에 잠 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 부풀어졌다.


철썩, 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

제비 날아들 듯 물결 사이사이로 춤을 추어. 

 

 

 

 

바다 2                                                   


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 떼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로 몰아다 부치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씻었다.

 


이 애쓴 해도(海圖)에

손을 씻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휘동그란히 받쳐 들었다!

지구(地球)는 연(蓮)잎인 양 오므라들고 …… 펴고 …….


 

 

 

춘설(春雪)                                             

 

문 열자 선뜻 !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옹숭거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워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 기던 고기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비극                                                     


'비극'의 흰 얼굴을 뵈인 적이 있느냐?


그 손님의 얼굴은 실로 아름다워라.

검은 옷에 가리어 오는 이 고귀한 심방에

사람들은 부질없이 당황한다.


실상 그가 남기고 간 자취가

얼마나 향그럽기에 오랜 후일에야

평화와 슬픔과 사랑의 선물을 두고간 줄을 알았다.


그의 발옮김이 또한

표범의 뒤를 따르듯 조심스럽기에

가리어 듣는 귀가 오직 그의 노크를 안다.


묵이 말라 시가 써지지 아니하는 이 밤에도

나는 맞이할 예비가 있다.


일찍이 나의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드린 일이 있기에


혹은 이 밤에 그가

예의를 갖추지 않고 올량이면

문 밖에서 가벼이 사양하겠다.

 


 

 

그의 반                                                  
 

내 무엇이라 이름하리 그를?

나의 령혼안의 고흔 불,

공손한 이마에 비추는 달,

나의 눈보다 갑진이,

바다에서 솟아 올라 나래 떠는 金星,

쪽빛 하늘에 힌꽃을 달은 高山植物,

나의 가지에 머물지 않고

나의 나라에서도 멀다.

홀로 어여삐 스사로 한가러워―항상 머언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 오로지 수그릴뿐.

때없이 가슴에 두손이 염으여지며

구비 구비 돌아나간 시름의 黃昏길우―

나― 바다 이편에 남긴

그의 반 임을 고히 진히고 것노라. 

 

 

 

 

난초(蘭草)                                              
 

난초닢은

차라리 수묵색(水墨色).


난초닢에

엷은 안개와 꿈이 오다.


난초닢은

한밤에 여는 담은 입술이 있다.


난초닢은

별빛에 눈떳다 돌아 눕다.


난초닢은

드러난 팔구비를 어쨔지 못한다.


난초닢에 적은 바람이 오다.


난초닢은

칩다. 
 

 

 

 

따알리라                                                


가을 볕 째앵 하게

내려 쪼이는 잔디밭.

함빡 피어난 따알리아.

한낮에 함빡 핀 따알리아.

시약시야, 네 살빛도

익을 대로 익었구나.

젓가슴과 붓그럼성이

익을 대로 익었구나.

시약시야, 순하디 순하여 다오.

암사심처럼 뛰여 다녀 보아라.

물오리 떠 돌아 다니는

힌 못물 같은 하눌 밑에,

함빡 피어 나온 따알리아.

피다 못해 터져 나오는 따알리아. 

 

 

 

 

바람                                                     
 

바람 속에 장미가 숨고

바람 속에 불이 깃들다.


바람에 별과 바다가 씻기우고

푸른 묏부리와 나래가 솟다.


바람은 음악의 호수.

바람은 좋은 알리움!


오롯한 사랑과 진리가 바람에 옥좌를 고이고

커다란 하나와 영원이 펴고 날다. 
 

 

 

 

별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

진정 멀―고나.

아스름 다치랴는 눈초리와

금실로 이은 듯 가깝기도 하고,

잠 살포시 깨인 한밤엔

창유리에 붙어서 엿보노나.

불현듯, 솟아나듯,

불리울 듯, 맞어들일 듯,

문득, 영혼 안에 외로운 불이

바람처럼 이는 회한에 피어 오른다.

흰 자리옷 채로 일어나

가슴 위에 손을 여미다. 

 

 

 

 

이른 봄 아침                                           
 

귀에 설은 새소리가 새어 들어와

참한 은시계로 자근자근 얻어맞은 듯,

마음이 이일 저일 보살필 일로 갈라져,

수은방울처럼 동글동글 나동그라져,

춥기는 하고 진정 일어나기는 싫어라.


쥐나 한 마리 움켜 잡을 듯이

미다지를 살포-시 열고 보노니

사루마다 바람으론 오호! 치워라.


마른 새삼넝쿨 새이새이로

빠알간 산새 새끼가 물레ㅅ북 드나들 듯.


새 새끼와도 언어수작을 능히 할가 싶어라.

날카롭고도 보드라운 마음씨가 파다거리여.

새 새끼와 내가 하는 에스페란토는 휘파람이라.

새 새끼야, 한종일 날어가지 말고 울어나 다오,

오늘 아침에는 나이 어린 코끼리처럼 외로워라.


산봉오리--저쪽으로 돌린 푸로우피일--

패랭이꽃 빛으로 볼그레하다,

씩 씩 뽑아 올라간, 밋밋하게

깍어 세운 대리석 기둥인 듯,

간ㅅ뎅이 같은 해가 이글거리는

아침하늘을 일심으로 떠받치고 섰다.

봄ㅅ바람이 허리띠처럼 휘이 감돌아서서

사알랑 사알랑 날러오노니,

새 새끼도 포르르 포르르 불려 왔구나. 

 

 

 

 

해바라기씨                                            
 

해바라기씨를 심자.

담모퉁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 감고 한 밤 자고 나면

이슬이 나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시약시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짹!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시사철 잎에 숨은

청개고리 고놈이다. 
 


 

 

호수 1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수 밖에
 

 

 

 

구성동(九城洞)                                        
 

골짝에는 흔히

유성이 묻힌다.

황혼에

누뤼가 소란히 쌓이기도 하고,

꽃도

귀향 사는 곳,

절터드랬는데

바람도 모이지 않고

산그림자도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별똥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소

 

 

 

 

 

인터넷 자료 모음(사진출처 : http://school.hongik.ac.kr/~ydhome/)

1. 시인 정지용

시인, 충북 옥천 출생. 1918년 휘문고보에 입학, 이 때부터 습작 활동. 이듬해 12월 [서광]창간호에 유일한 소설 <삼인>이 발표됨. 1925년 [학조] 창간호에 <카페 프란스>를 비롯하여 동시와 시조시를 발표함. 1930년 <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여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됨. 1939년 [문장]지의 추천 위원이 되어 청록파 시인과 김종한, 박남수 등을 등단시겼다. 그의 시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어와 선명한 이미지를 구사하여, 1930년대 시의 모더니즘과 이미지즘을 대표하는 것으로 새로운 언어 감각으로 시를 만들어냈다고 평가된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시풍이 바뀌어 동양적인 관조와 고독의 세계를 많이 다루었다. 1950년 납북되었다가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집으로는 [정지용시집(1935)], [백록담(1941)], [지용시선(1946)] 등이 있다.

2. 감각적인 시어로 고향을 그린 정지용
정지용(1902-1950)은 1902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휘문고보, 일본 도오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시문학' 동인으로 활약하였으며, 이화여대 교수, 경향신문 주간, 조선 문학가 동맹 중앙 집행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6.25가 일어나자 정치 보위부에 구금되었다가 평양 감옥으로 이감된 후 타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집으로 [정지용 시집](1946), [백록담](1941), [지용시선](1946), [문학독본](1948)과 [산문(散文)](1949)이 간행되었다.
정지용은 우리 현대 시사에서 언어에 대한 자각을 각별하게 드러낸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까지의 대다수 시인이 감정의 분출에 의거하여 본능적인 시를 썼다면 1920년대 초반에 작품 발표를 시작하여 1930년대 대표적인 시인으로 군림하게 된 정지용에 의하여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포착해 내는 시가 씌어진다. 감정을 감각화하는 방법은 정지용이 철저히 인식했던 언어에 대한 자각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다.
절제된 언어의 구사는 정지용의 시에서 일관되는 특성이지만 그의 시세계가 그리는 궤적은 몇 단계의 변모 과정을 보인다. 정지용 시의 전개 과정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23년경부터 1933년경까지의 서정적이며 감각적인 시, 1933년 [불사조] 이후 1935년경까지의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인 시, 그리고 [옥류동](1937), [구성동](1928) 이후 1941년에 이르는 동양적인 정신의 시 등이 그것이다. 특히 주목을 요하는 것은 정지용의 종교시가 [카톨릭 청년](1933)의 창간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 지면에 대부분 그의 종교시가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초기의 감각적인 시와 후기의 고전적인 시들의 교량적인 역할을 종교시가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지용의 신앙시는 1934년 [카톨릭 청년]에 발표된 [다른 하늘], [또 하나의 다른 태양] 이후 자취를 감추며 4년여의 침묵 뒤에 [옥류동], [비로봉], [구성동] 등이 발표된다. 이를 카톨릭 신앙의 전면적인 포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그가 1930년대 후반에 나름대로 각고의 방향 모색을 시도했으며, [옥류동], [백록담] 등에서 그 실마리를 찾으려 했고 1939년 [장수산], [백록담] 등에서는 한층 더 정신주의에의 침잠을 시도하면서 현실의 고통스러움을 견인의 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식민지의 고통 감내 위해 바다, 산 등 소재로 산수시 써

서정시 작품은 20년대 초반의 젊은 문학도가 객지에서 학창 생활을 하며 갖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이국 풍물에 대한 동경을 보여 준다. 초기 시에서 정지용이 남다르게 보여준 감각적 선명함은 후기 산수시와 긴밀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바다 9]에서 드러나는 재기 발랄한 심상이 드러내는 감각적 선명성은 후기의 정신적 고뇌를 함축한 산수시로 나아가는 첩경이 되기 때문이다. 초기에 정지용은 다수의 '바다' 시편을 썼다. 바다에서 산으로 소재가 이동되면서 산수시 계열의 시들이 씌어진다. 감각에서 정신으로의 변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의 시편들과 '산'의 시편이라는 양자는 겉으로는 지향하는 바가 다를지라도 본질적으로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 지용 시의 감각과 정신을 선명하게 돌출 시켜 주는 비법이 소묘적 언어의 정교한 회화성에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구성동]을 발표한 다음해인 1939년 정지용은 [장수산](3월), [백록담](4월)을 발표한다. 감각적 심상을 반향과 흐름을 빌려 정신적 고요의 공간으로 빚어내는 시적 표현과 구성의 긴밀성을 [장수산]과 영혼을 비추는 물의 명징성을 인식하여 주체를 해체하는 시적 인식의 객관화에 도달한 [백록담]은 그의 정신주의가 도달한 최상의 수준이었다. 정지용이 산수시로 나아간 것은 식민지 말기의 고통스러움을 정신적 극기로 감내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변절과 친일을 강요당하던 1930년대 말의 식민지적 압력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일은 산수에 자신을 숨기는 일이었을 것이며 동양의 고전적인 전통 속에서 자신의 시적 방법론과 은일의 정신을 체득하려 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의 언어적 인식은 그의 시를 단순히 복고적인 취향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이러한 점에서 그의 시가 지니는 현대적 의의가 명백해진다. 정지용이 자신의 시적 천분을 조탁하여 이룩한 정묘한 산수시는 당대 최상의 수준이며 한국어가 지닌 언어적 가치를 극대화시킨 한 예가 된다. 정지용은 서구 추수주의적인 시적 유행을 넘어서서 우리의 오랜 시적 전통에 근거한 산수시의 세계를 독자적인 현대어로 개진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정지용의 대표작으로서 국민들에게 널리 애송되는 작품 한 편을 들라고 한다면, 우리는 [향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지용의 [향수]를 노래하는 사람 모두가 언제나 마음의 고향으로 되돌아감을 느낀다. 정지용은 [향수]에서 독특한 감각적 표현을 율격 언어로 응축시켜 한국인들이 마음의 고향에 도달하는 심정적 통로를 열어 보였다.
[향수]가 그려내는 고향의 정경은 누구에게나 있었음직한 추억이며 따라서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정서적 호소력에 힘을 더하는 것은 뛰어난 감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금빛 게으른 울음'이나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전설의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에서 보이는 언어적 환기 효과는 당시로서는 특별한 예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표현한 [향수]는
       뛰어난 감각적 표현으로 온 국민의 사랑 받아

첫째 연의 고향에 대한 공간적 환기와 둘째 연의 전형적인 농가의 풍경에서 제시되는 육친애의 그리움에 이어 셋째 연에서는 화자의 구체적인 성장 경험이 표현된다. 흙에서 자란 마음과 파란 하늘 사이의 화자의 행동 모습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가 생겨나기 이전의 것으로서 유년 시절의 낙원에 대한 믿음을 연상시킨다. 그 정경은 어린 시절의 단순한 반추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이상과 낙원이 괴리되어 떠도는 현재의 상황을 시사한다. 넷째 연은 다시 구체적인 삶의 정경으로 돌아가고 다섯째 연은 계절의 순환과 더불어 포착된 고향집이 그려진다. 고향집이 내포하는 평화롭고 정겨운 감각으로 인해 가난의 어려움마저 넘어서고 있다.
[향수]는 20년대 초반의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와 고향을 그리는 젊음이 용해되어 있으며, 오늘의 우리들 또한 상실한 낙원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생의 근원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그리고 이를 넘어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향수]는 생의 근원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일깨워 준다.   

 

- 최동호 / 1948년생, 시인, 고려대 국문과 교수

 

 

 

<정지용 시인 관련 싸이트>

 

http://lovehana2001.com.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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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인 정지용 시 모음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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