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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7. 성모 마리아에 관한 주요 교도권 문헌(마리아 공경)

             X. 성모 마리아에 관한 주요 교도권 문헌

   [X-8] : 마리아 공경 Marialis cultus (1967.05.13 / 바오로 6세 회칙)

[목차]

서론 : 본 문헌의 반포 경위와 그 목적 1
제1부  : 전례에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 공경
제1장 개정된 로마 전례에서 복되신 동정녀 2-15
제2장 거룩한 예배에 있어 교회의 모델이신 복되신 동정녀 16-23
제2부 마리아 공경의 쇄신 24
제1장 마리아 공경의 삼위일체론적, 그리스도론적, 교회적 측면 25-28
제2장 복되신 동정녀 공경을 위한 네 가지 지침:성서적, 전례적, 교회일치적, 인간학적 지침 29-39
제3부 : 삼종 기도와 로사리오 기도에 관한 제안 40
삼종 기도 41
로사리오 기도 42-55
결론 : 복되신 동정녀 공경의 신학적 사목적 가치 56-27
끝 맺음말 58

[10-1-8] : 마리아 공경 (1974.02.02 / 바오로 6세 교황권고)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1항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본인은 사도좌에 오른 이후 끊임없이 노력하여왔습니다. 이는 마리아께 대한 본인의 개인적인 애정에서만이 아니라 교회의 의식을 새롭게 인식시키기 위해서이며, 주지하는 바와 같이, 마리아 공경이 거룩한 예배에서 매우 숭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과 지혜의 최상의 표현이 어우러진(1) 거룩한 예배는 하느님 백성이 수행해야 할 첫째가는 과업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본인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추진한 전례 개혁의 대사업을 계속 육성하고 장려하여왔습니다. 존경하는 교부들과 함께 성령 안에서 인준하고 서명한 이 공의회의 첫 문헌이 바로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이라는 사실은 분명 하느님의 섭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이 헌장의 목적은 전례를 부흥시키고 그 가치를 드높임으로써 거룩한 신비들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더욱 많은 결실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2) 그 이후 본인은 교황으로서 거룩한 예배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수행해왔습니다. 본인이 지난 몇 년 동안 공의회의 원칙과 규정에 따라 수많은 로마 전례의 예식서들을 공포하고 복원했다는 사실은 이를 잘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온갖 좋은 것을 다 주시는 주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또한 그 준비 과정에서 함께 수고해주신 각 주교회의와 여러 주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본인은 지금까지 이룩된 전례 쇄신의 첫 성과들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이 쇄신의 근본 목적이 잘 이해되고 올바로 적용된다면 그 성과도 더욱 커지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영과 진리 안에서(요한 4,24 참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흠숭하고, "하느님의 모친 복되신 마리아를 비범한 애정으로 공경하며,"(3) 순교자와 다른 성인들을 경건하게 기념하는 이 전례를 더욱 합당하게 부흥시키기 위하여 본인은 앞으로도 계속 열과 성을 다할 것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이 발전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이 신심이 교회의 참된 신심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마리아 신심은 마땅히 "그리스도적"이라 불리는 단일한 예배 안에 위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리아 신심은 그리스도로부터 그 기원과 효력을 취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표현되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로 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신심은 필연적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반영하기 마련인데 이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마리아가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와 부합합니다.(4) 그러므로 그리스도적 예배의 올바른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주님의 어머니께 대한 신심도 바르게 증진될 것이 분명합니다. 신심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건전한 정통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교회가 인준한 성모 신심의 여러 형태들은"(5) 그리스도께 드리는 예배에 조화있게 종속하면서 발전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마리아 신심의 여러 형태들은 그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귀착점으로서 그리스도께 드리는 예배에 의존해왔던 것입니다. 현대에도 물론 마찬가지 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와 교회의 본질을 묵상하면서 그리스도의 신비의 기저에서 또 교회 본질의 정점으로서 동일한 한 여인의 모습 즉 동정녀 마리아, 그리스도의 모친, 교회의 어머니 상을 발견해왔습니다. 또한 교회는 마리아의 사명에 관한 더욱 많은 지식을 앎으로써, 마리아께 기쁨에 찬 공경을 드리고 하느님의 지혜로우신 계획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느 집안에서처럼 당신 가정(교회)에 한 여인을 두시어, 남모르는 봉사의 정신으로 그 가정(교회)을 지켜보게 하시며, "주께서 영광스러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교회의 발걸음을 인자로이 도와주셨습니다."(6)

현대의 사회 풍조, 각민족들의 기질, 학문과 예술 및 사회 통교의 표현양식 등에서 오는 변화들은 종교심의 표현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자 개개인이나 공동체의 종교심을 무난히 대변해주던 신심 행위들이 오늘날에 와서는 부적당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그런 신심 행위들이 지난날의 사회 문화적 형태와 깊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편, 창조계와 창조주, 하느님의 자녀들과 하느님 아버지와의 불변하는 관계를 새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많은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해 혹자는 일시적인 혼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신뢰하면서 이런 현상을 주의 깊게 고찰하는 이라면, 현대 신심 경향의 대부분 - 예를 들어 종교심의 내면화 - 이 전반적으로 그리스도적 신심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고 특히 마리아 신심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현시대는 전통을 존중하고 신학과 과학의 진보를 주의 깊게 고려하면서 "모든 세대가 복되다 하리라."(루가 1,48)고 스스로를 예언한 여인을 찬미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인은, 사도적 봉사의 직무에 따라,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과 함께 교회의 예배에서 복되신 동정녀께서 차지하시는 위치에 대하여 대화의 형식으로 몇 가지 주제를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이 주제들에 대해서는 이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7) 그리고 본인이 따로(8) 부분적으로나마 지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자극을 받아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실천되고 있는 마리아 신심에 대한 의혹을 씻어주고 특히 이 신심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그 주제들로 되돌아가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따라서 거룩한 전례와 마리아 신심과 관계에 대한 문제점들을 생각해보고(제1부), 이 신심의 올바른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생각과 지침을 개진하고자 합니다(제2부). 끝으로, 역대 교황들이 꾸준히 권장해왔고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 널리 보급되어있는 로사리오기도를 더욱 열심히 그리고 더욱 뜻있게 바치도록 하기 위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합니다(제3부).

제1부 전례에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 공경

1. 그리스도교 예배에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차지하고 계신 위치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거룩한 전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전례는 풍부한 교의적 내용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사목적 효과가 커서 다른 모든 예배의 탁월한 모범이 되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동방과 서방의 다양한 전례를 모두 살펴보고 싶지만, 이 문헌의 목적에 따라 로마전례의 예식서들만을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사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실천 규정에 따라(9) 일대 쇄신의 대상이 된 것은 로마 전례뿐입니다. 이는 마리아 공경에 관한 표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이 로마 전례는 신중히 이해되고 평가되어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2항

로마 전례의 개혁은 보편 전례력(General Calendar)의 조심스러운 복원을 전제로 하였습니다. 이 전례력은 구원사업을 적절한 시기에 기념하도록 되어있다는 점에서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전례력에는 강생에서부터 영광스러운 재림의 기대에 이르기까지의 그리스도의 신비 전과정이 한 해를 주기로 하여 조화있게 배치되어있습니다.(10)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모친께 대한 기념제가 당신 아드님의 신비를 기념하는 일 년의 주기 안에 더욱 유기적으로 배치되어있습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3항

예를 들어 대림시기에는 구세주를 맞이할 근본적인 준비(이사 11,1.10 참조)를 하고 한점 흠이나 주름도 없는(11) 교회의 태동과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를 기념하는 12월 8일의 대축일 외에도 마리아를 자주 언급하게 됩니다. 12월 17일부터 24일까지가 그러한데 특히 성탄 바로 전 주일에는 동정이신 어머니와 메시아에 관한 예 예언들을 회고하면서(12) 구세주와 선구자의 탄생이 임박했다는 복음 구절을 봉독하게 됩니다.(13)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4항

그리하여 전례에 따라 대림의 정신을 살아가는 신자들은 아드님을 기다리시는 동정이신 어머니의 그 형언할 수 없는 사랑(14)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마리아를 본받아 곧 오실 구세주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되는데 "깨어 기도하고 기쁜 노래로 찬미"(15)할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본인은, 대림시기 전례는 메시아의 탄생과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다리면서 아울러 그 어머니를 성대히 기념하기에, 예배에 있어 멋진 균형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균형은(몇몇 특정한 대중신심 형태들에서 볼 수 있듯이) 복되신 동정녀 공경을 그 필연적 귀착점인 그리스도로부터 분리시키려는 모든 경향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으로 여겨져도 좋을 것입니다. 또한 전례학자들이 주목하였듯이, 대림시기 전례는 이 시기가 특히 주님의 어머니를 공경하는 데에 합당한 때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인은 이를 확실히 인정하면서 이것이 어디에서나 받아들여지고 실천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5항

성탄시기에는 "동정의 순결한 몸으로 구세주를 이 세상에 낳으신"(16) 마리아의 신적이고 구원적이며 순결하신 모성을 계속하여 기념하게 됩니다. 사실 교회는 예수 성탄 대축일에 구세주를 경배하면서 아울러 그분의 영광스러운 어머니를 공경하고 있습니다. 주의 공현 대축일에는 전세계가 구원으로 초대되었음을 기념하는 동시에, 동방박사들에게 만백성의 구원자를 경배하도록 하신(마태 2,11 참조) 복되신 동정녀께서 참된 지혜의 좌요, 왕의 어머니이심을 관상합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성탄 팔일 축제 내 주일)에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와 어머니 마리아와 의인 요셉(마태 1,19 참조)께서 나자렛의 가정에서 사신 거룩한 삶을 묵상하면서 깊은 존경을 드립니다.

개정된 성탄시기의 순서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을 다시 지내게 되었다는 점 같습니다. 예 로마시의 전례대로 1월 1일에 지내게 되는 이 축일은 구원의 신비 안에서 수행하신 마리아의 역할을 기념하고, "우리가 생명의 근원이신 성자를 맞아들이게 해주신"(17) 거룩한 어머니께 드리는 특별한 존엄성을 찬미하는 날입니다. 또한 이날은 갓 태어나신 평화의 왕을 경배하고, 천사가 전해준 기쁜 소식(루가 2,14 참조)을 다시 한 번 들으며, 평화의 모후를 통하여 하느님께 평화의 고귀한 선물을 청하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탄 후 8일째 되는 날이자 새해 첫 날이 되는 이날을 평화의 날로 정하였는데, 이에 대한 호응은 날로 높아져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의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6항

앞서 말씀드린 성모의 원죄없으신 잉태 대축일과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 외에도 3월 25일과 8월 15일에 지내게 되는 유서깊은 축일들이 있습니다.
말씀의 강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로마 전례력에서는 주의 탄생 예고라는 예 명칭을 조심스럽게 되살리고 있는 3월 25일의 축일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와 복되신 동정녀를 함께 기념하는 날입니다. 즉 "마리아의 아들"(마르 6,3)이 되신 말씀과 천주의 모친이 되신 동정녀를 함께 기리는 축일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대해서는, 동방과 서방은 모두 각기 그 풍부한 전례에 따라 말씀이 강생하여 세상에 오셨을 때 "하느님,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히브 10,7; 시편 39,8-9 참조)고 하신 그 구원적 피앗(Fiat)을 기념합니다. 또한 구원의 시작뿐만 아니라 '말씀'의 단일한 위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불가해소적으로 결합한 일치의 시작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마리아께 대해서는 기꺼운 마음으로 피앗(루가 1,38 참조)을 드림으로써 성령의 감도하심을 통하여 천주의 모친이 되시고 살아있는 모든 이의 참된 어머니가 되시며, "유일하신 중재자"(1디모 2,5)를 잉태하심으로써 참된 계약의 궤요 하느님의 궁전이 되신 새로운 하와, 순종하고 충실하신 동정녀를 기념합니다. 동서방 전례들은 이날을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오고가는 구원의 대화의 절정의 때로 기념하면서 구원 계획 안에서의 복되신 동정녀의 자유로운 동의와 협력을 기념하는 축일로 지내는 것입니다.

8월 15일의 대축일에는 마리아의 영화로우신 승천을 기념합니다. 이 축일은 마리아의 완전하심과 복되심, 동정의 몸과 흠없는 영혼이 누리시는 영광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음을 기념하는 축제일입니다. 따라서 이날은 교회와 전 인류에게 그 바라던 종국적인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는 이미지와 위로의 증거를 나타내는 축일, 즉 "같은 피와 살을 지니신"(히브 2,14; 갈라 4,4 참조) 그리스도께서 형제로 삼아주신 모든 이들이 마침내 이 충만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임을 기뻐하는 축일입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의 기쁨은 7일 후 여왕이신 복되신 동정 성 마리아 기념일에서 계속됩니다. 이 기념일에는 영원하신 왕 곁에 좌정하신 엄위로운 여왕 마리아께서 어머니로서의 전구도 계속하심을 기념합니다.(18) 그러므로 이상의 네 축일은 주님의 겸손하신 여종 마리아께 대한 중요한 교의 진리를 최상의 전례 행위를 빌어 정확히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7항

이러한 대축일들 다음으로는, 복되신 동정녀와 그 아드님을 밀접히 결합시키고 있는 구원사건과 관련된 축일들을 특별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축일들에는 "온 세상의 희망이요 구원의 서광"(19)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성탄을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9월 8일), "성자를 잉태하시고"(20) 엘리사벳을 찾아가 친절히 봉사하시면서 구세주이신 하느님의 자비를 선언하신(21) 마리아를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5월 31일), 구세사의 결정적인 순간을 마음에 되새기고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당신 성자 곁에서 함께 수난하시는"(22)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한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9월 15일) 등이 있습니다.

주의 봉헌이라는 옛 이름을 되찾은 2월 2일의 축일도 그 풍부한 의미를 충분히 참작한다면, 아드님과 어머니를 함께 기념하는 축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축일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그러나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주님의 고통받는 종의 어머니요 옛 이스라엘에 속하는 사명을 수행하시는 분으로서 그리고 고통과 시련으로 신앙과 희망을 시험 당하는(루가 2,21-35 참조)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의 모델로서 이 신비에 깊이 연관되어 계신 것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8항

이상은 개정된 로마 전례력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축일들이지만, 지역적인 신심과 관련된 축일이 점차 널리 알려져서 중요성을 띠게 된 축일들도 있습니다(예: 2월 11일 -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8월 5일 - 성모 대성전 봉헌). 그리고 원래는 특정한 수도회들에서만 기념하던 축일들이 신자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이제는 참으로 교회적인 축일로 간주될 수 있는 축일들도 있습니다(예: 7월 16일 - 가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10월 7일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또한 외경적인 요소는 차치하더라도, 탁월하고 모범적인 가치를 보이고 있는 축일들이 있는데, 이 축일들은 특히 동방에서 기원하여 유서깊은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예: 11월 21일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그리고 오늘날 부각되고 있는 신심 경향을 드러내는 축일들도 있습니다(예: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 -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신심).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9항

그러나 복되신 동정녀를 기리는 모든 축일들이 로마 전례력에 모두 수록되어있지는 않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각 지역교회에 합당한 마리아 축일들은 개별 전례력에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개별 전례력은 전례 규정을 충실히 지키면서 합당한 승인을 얻어야 합니다. 끝으로, 토요일 성모 신심미사를 통해서 복되신 동정녀를 자주 기념할 수 있다는 점도 주지되어야 합니다. 토요일 성모 신심미사는 단순하지만 유서깊은 기념제로서 현 전례력의 신축성과 미사경본 양식의 다양성으로 인해 변화있고도 적절하게 봉헌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10항

본인은 이 교황권고에서 새 로마 미사경본의 전체 내용을 다 살펴볼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개정된 로마 전례의 예식서들에 대한 평가를 해왔기 때문에(23) 이 미사경본의 몇 가지 특징들과 주제들에 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우선 본인은, 미사경본의 성찬기도문들이 동방 전례와 잘 조화되어(24) 복되신 동정녀를 뜻있게 기리고 있음을 기뻐하는 바입니다. 예를 들어 로마 성찬기도문(성찬기도 제1양식)에서는 교의적인 내용과 공경의 정신으로 가득 차 주님의 어머니를 이렇게 기념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시며 영화로운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를 생각하며 공경하고 그분과 결합하오니……." 이와 유사하게, 최근에 편찬된 성찬기도 제3양식은 어머니와 함께 자녀들의 상속을 나누어 받고자하는 간절한 청을 담고 있습니다. "주 친히 우리를 영원한 제물로 완성하시어 주께서 뽑으신 성인들 특히 천주의 모친이시며 동정이신 성 마리아와 함께 상속을 받을 수 있게 하소서." 이러한 매일의 기념제가 미사성제의 중심부에 들어있음을 볼 때, 교회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축복을 받으신 여인"(루가 1,28 참조)께 드리는 공경이 각별하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11항

개정된 미사경본의 본문을 검토한다면, 로마 예식서의 마리아께 관한 대주제들이 그 교의적인 면에 있어 지난날의 그 주제들과 얼마나 완전히 일치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원죄없으신 잉태, 은총을 가득 받으심, 거룩한 모성, 티없이 온전한 동정성, 성령의 궁전, 아드님의 구속사업에 대한 협력, 모범적인 성덕, 자애로운 전구, 하늘에 올림을 받으심, 여왕과 어머니로서의 품위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주제들이 그러합니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새롭다고도 할 수 있는 다른 여러 주제들도 발전된 현대신학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교회와 마리아에 관한 주제만 하더라도 미사경본의 본문에 다양하게 삽입되어 그리스도의 모친과 교회와의 다양한 관계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모의 원죄없으신 잉태 대축일 미사경문에서는 그리스도의 흠없는 신부인 교회의 서막(25)을,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경문에서는 이미 탄생하여 완성되어야 할 교회의 첫 모상(26)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 미사경문에서는 마리아를 머리와 지체들의 어머니, 즉 하느님의 거룩하신 어머니요 교회의 사려깊은 어머니로 고백하고 있습니다.(27)

마리아의 모습은 초대교회의 전례에서나 오늘날의 전례에서 항상 발견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사도들과 함께 기도하신 마리아28)는 오늘날에도 역시 활동하고 계시는데, 교회는 마리아와 함께 그리스도의 신비를 따라 살아가고자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당신 교회로 하여금 성모와 함께 그리스도의 수난을 나눔으로써 그 부활에도 참여할 수 있게 하소서."(29) 또한 “성모와 함께 항상 당신을 찬양할 수 있게 하소서.”(30) 라는 기도에서 볼 수 있듯이 마리아는 교회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림에 있어서도 소리를 합하고자 하는 분으로 제시됩니다. 전례는 생활과 일치해야 하기에, 복되신 동정녀 공경은 교회에 대한 구체적인 인고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9월 15일 미사의 영성체 후 기도문은 이러한 바람을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수난하였음을 기념하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하여 우리 몸으로 채우게 하소서."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12항

미사독서는 그 수적인 증가로나 내적인 가치로 볼 때 공의회 이후 쇄신의 덕을 가장 많이 보았습니다. 언제나 살아있고 힘이 있는(히브 4,12 참조)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독서는 3년을 한 주기로 하여 전구세사와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욱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복되신 동정녀에 관한 신구약 독서도 훨씬 많아졌는데 단지 수적으로만 증가된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비평과 해석을 거쳐 교회의 가르침과 견고한 전통에서 인정된 마리아적인 내용만이 독서로 채택된 것입니다. 이러한 독서들은 동정녀와 관계된 축일뿐 아니라 다른 여러 경우에도 봉독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례주년의 특정 주일들에서,(31) 그리스도인의 성사생활과 그의 선택에 깊이 관련되는 예식에서,(32) 일생의 기쁠 때나 괴로울 때에도(33) 봉독하게 됩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13항

개정된 성무일도 역시 주님의 어머니께 대한 신심을 매우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면은 찬미가와 - 그 중에는 단테가 동정녀께 바친 숭고한 기도(34)와 같은 세계문학의 걸작들도 있습니다. - 매일 성무일도를 마칠 때 드리는 응송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유서깊고 풍부한 내용으로 인해 널리 애송되고 있는 성모찬송가(Sub tuum Praesidium)도 이 시적인 기도들에 첨가되어왔습니다. 아침기도와 저녁기도의 청원기도에는 자비의 어머니께 신뢰하며 호소하는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그 밖에도 성무일도에는 그리스도교의 초창기와 중세기 그리고 현대의 작가들이 성모님께 바친 주옥 같은 글들이 많이 실려있습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14항

로마전례의 예식서의 중추인 미사경본, 미사독서, 성무일도 등에서 복되신 동정녀를 기념하는 내용을 자주 볼 수 있지만, 이 외에 개정된 다른 예식서들에서도 하느님의 어머니께 드리는 사랑과 존경과 탄원의 기도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비자들에게 세례를 베풀기 전에 은총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도움을 빌며,(35) 모성의 선물을 주심에 감사하고자 성전에 나아오는 어머니들을 위해서도 마리아의 전구를 청합니다.(36) 또한 수도생활로 그리스도를 따르려 하거나(37) 동정을 봉헌하려는 신자들에게(38) 교회는 마리아를 모범으로 제시하면서 이들을 위해 그분의 모성적인 도우심을 구합니다.(39) 임종을 맞이하는 자녀들과(40) 이미 세상을 떠나 영원한 빛이신 그리스도 앞에 나선 이들을 위해서도(41) 교회는 마리아의 도우심을 청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잃고 신앙 안에서 애통해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마리아의 전구를 통한 위로를 빕니다.(42)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15항

개정된 전례서들을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은 흡족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공의회 이후의 쇄신작업은 복되신 동정녀를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고찰하였는데, 이는 이미 전례운동이 바라던 대로 매우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 쇄신작업은 전통과 조화를 이루어 그리스도교 예배에서 마리아께서 차지하시는 독특한 위치를 하느님의 어머니 구세주의 훌륭한 협조자로 알아본 것입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예배의 역사를 보더라도, 동서방을 막론하고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신심은 언제나 전례로부터 지극히 찬란하게 꽃피워왔고 전례에 흡수되어왔던 것입니다. 본인은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보편교회가 복되신 마리아께 드리는 공경은 지금까지 교회가 마리아께 바쳐왔던 공경에서 유래하며 이 공경의 폭을 넓히고 끊임없이 증진시킨 것이라는 점입니다. 교회는 매시대마다 진리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고 합당하고 품위있는 표현으로 마리아를 공경해왔던 것입니다. 성령의 끊임없는 현존과 말씀에 부단히 귀를 기울임으로써 생생하게 이어온 항구한 전통으로부터, 현대교회는 복되신 동정녀 공경의 동기와 근거 그리고 힘을 받고 있습니다. 교도권의 인준을 받아 힘을 얻는 전례는 이 생생한 전통의 지극히 아름다운 표현이며 확실한 증거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16항

마리아와 교회에 대한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제 마리아와 전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특별한 측면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곧 마리아는 하느님의 신비를 거행하고 생활화하는 교회가 취해야 할 영적인 태도의 모델이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되신 동정녀는 신앙과 사랑,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로써 교회의 뛰어난 모범이시기 때문입니다.(43) 즉 주님의 사랑스런 신부로서 교회가 주님과 밀접히 일치하여 그리스도를 부르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하신 아버지를 예배하는 내적인 자세에 있어 마리아는 교회의 모델이신 것입니다.(44)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17항

마리아는 신앙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신 깨어있는 동정녀이십니다. 마리아의 신앙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전제 조건이요 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 아우구스티노가 깨달았듯이 "복되신 마리아는 믿음으로 잉태하신 분(예수)을 믿음으로 낳으셨기"(45) 때문입니다. 사실 자신의 의문에 대한 천사의 답변을 들으신(루가 1,34-37 참조) 마리아께서는 충만한 믿음으로 예수를 태중에 잉태하기에 앞서, 그 마음에 품으셨습니다. 그녀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하고 대답하셨습니다."(46) 믿음은 마리아의 복됨과 약속이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의 원천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루가 1,45).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으로 말미암아 마리아는 구세주 강생의 주역을 담당하게 되셨고, 그 유일한 증인이 되셨으며, 그리스도의 유년기 사건들을 마음에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셨습니다(루가 2,19.51 참조). 교회 역시 이와 비슷하게 행동하는데 특히 전례에 있어서 그러합니다. 교회는 전례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며 이를 선포하고 존중할 뿐 아니라, 생명의 음식으로 신자들에게 나누어줍니다.(47) 그리고 이 말씀에 비추어 시대의 표징을 찾아내며 역사상의 사건들을 해석하여 생활화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18항

마리아는 또한 기도하는 동정녀이십니다.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를 방문하셨을 때, 마리아께서는 기도하는 동정녀의 모습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겸손과 믿음과 희망을 보이셨습니다. 이것이 저 유명한 마리아의 찬가로서, 예 이스라엘과 새 이스라엘의 기쁨이 어우러진 메시아 시대의 노래, 성모의 노래(루가 1,46-55)인 것입니다. 성 이레네오가 제시하였듯이, 이 마리아의 찬가에서 메시아를 미리 보고 기뻐한 아브라함의 환희(요한 8,56 참조)를 다시 한 번 듣게 되며,(48) 다음과 같은 교회의 예언적인 음성이 울려퍼진 것입니다. "마리아는 기쁨으로 설레이면서 교회를 대신하여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라고 예언하셨습니다."(49) 실제로, 마리아의 찬가는 널리 퍼져나가서 시대를 불문하고 온 교회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가나에서도 기도하는 동정녀로 나타나십니다. 현실적인 도움을 조심스럽게 아드님에게 요청하셨을 때, 마리아께서는 초자연적 은총의 효과까지도 얻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처음으로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제자들로 하여금 당신을 믿도록 하신 것입니다(요한 2,1-12 참조).

마리아의 생애에 관한 마지막 묘사 역시 마리아를 기도하는 동정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마음을 모아 기도에만 힘썼다. 그 자리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하여 여러 여자들과 예수의 형제들도 함께 있었다."(사도 1,14)고 사도행전은 전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초대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세기를 통하여 기도하는 동정녀로 계속 현존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마리아께서는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후에도 당신의 전구로써 구원을 얻어주시는 일을 계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50) 교회 역시 기도하는 동정녀입니다. 교회는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날마다 아버지께 아뢰며, "하느님께 간단없이 찬미를 드리고,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전구하기"(51) 때문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19항

마리아는 또한 '동정녀-어머니'이십니다. 마리아는 "믿음과 순명으로 바로 성부의 아들을 세상에 낳으셨는데, 이는 남자를 몰랐지만 성령의 그느르심으로 된 것입니다."(52) 이것은 하느님께서 ‘동정녀-교회’의 풍부한 결실의 예형과 모범으로 세우신, 참으로 경이로운 모성입니다. 교회는 “스스로도 어머니가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복음전파와 세례성사로써 성령으로 잉태되어 하느님께로부터 태어나는 자녀들을 낳아 그들에게 불사의 새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53) 그래서 예 교부들은 교회가 세례성사에서 마리아의 동정이신 모성을 계승하고 있다고 올바르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 가운데서, 본인은 존경하는 선임 성 대 레오 교황의 말씀을 상기하고 싶습니다. 그분은 성탄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동정녀의 태중에서 이루신 그 시작을 세례수에 부여하셨습니다. 어머니께 드렸던 것을 물에 부여하신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과 성령의 그느르심(루가 1,35 참조)이 마리아로 하여금 구세주를 낳게 하셨고 이제는 우리 믿는 이들을 다시 낳게 하십니다."(54) 전례적인 근거로는 모자라빅(Mozarabic) 전례의 아름다운 일라시오(Illatio)를 들 수 있습니다. "마리아께서 태중에 생명을 지니셨듯이, 교회는 세례수에서 생명을 지닙니다. 마리아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형성되었듯이, 교회의 세례수에서 그리스도가 입혀집니다."(55)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20항

끝으로, 마리아는 봉헌하는 동정녀이십니다. 예수를 성전에서 봉헌하신 일화(루가 ,22-35 참조)에서, 교회는 첫아들을 봉헌하라는 율법(출애 13,11-36 참조)과 산모의 정화에 관한 율법(레위 12,6-8 참조)의 이행 이상의 의미, 즉 구세주를 향한 구원의 신비를 성령의인도하심으로 알아보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신 말씀이 아버지께 드린 저 원천적인 봉헌(히브 10,5-7 참조)이 계속되고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만민에게 구원이 선포됨을 보았습니다.

시몬은 아기를 메시아요 만민의 구세주로 알아보면서, 아기에게 이스라엘의 영광이요 뭇백성을 밝히는 빛이라고 인사한 것입니다(루가 2,32 참조). 아기에게 대해서는 "반대받는 표적"(루가 2,34)으로, 그 어머니께 대해서는 마음이 칼날에 찔릴 것(루가 2,35 참조)이라고 예언한 시므온의 말이 해골산에서 실현되었기에, 교회는 이 예언의 말을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예언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측면에서 볼 때, 구원의 신비는 성전에서의 봉헌을 십자가에서의 구원사건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특히 중세 이래로, 주님께 아들을 바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루가 2,22 참조) 동정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평범한 예식 이상의 어떤 봉헌 의지를 감지해왔습니다. 성 베르나르도의 찬미가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동정녀여, 당신 아들을 바치소서. 태중의 복되신 아들을 주께 바치소서. 우리 모두를 화해시키는 거룩한 제물,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을 바치소서."(56)

구원사업에 있어 어머니와 아들의 이러한 일치57)는 해골산에서 그 절정에 이릅니다. 그곳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하느님께 흠없는 제물로 바치셨고"(히브 9,14), 마리아는 십자가 곁에 서서(요한 19,25 참조) “당신 외아드님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 함께 바치셨으며, 당신이 낳으신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셨고,”(58) 당신 자신까지도 영원하신 아버지께 봉헌하셨던 것입니다.(59) 거룩하신 구세주께서는 십자가의 제사를 세세대대로 영속시키시고자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이를 당신 신부인 교회에 맡기셨습니다.(60) 교회는 특히 매주일마다 신자들을 모아, 주님이 다시 오실 그때까지 주님의 파스카를 거행합니다.(61) 교회는 이 파스카를 하늘의 성인들과 특히 복되신 동정녀와의 통공 안에서(62) 거행하면서, 그분들의 불타는 사랑과 굳건한 신앙을 본받고 있습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21항

마리아는 하느님을 예배하는 데에 있어 온 교회의 모범이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영적 생활의 스승이시기도 합니다. 신자들은 아주 이른 시대부터 자신들의 삶을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 행위로 삼고,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를 자신들의 삶에서 구현하고자 마리아를 바라보고 본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미 4세기에, 성 암브로시오는 신자들을 가르치면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는 마리아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각자 안에 하느님을 찬송하는 마리아의 영혼이 깃들고, 또 여러분 각자 안에 하느님 안에서 마음 기뻐 뛰노는 마리아의 영이 깃들었으면 합니다."(63) 하지만 마리아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봉헌물로 바치셨다는 점에서 예배의 모범이 되십니다.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것은 오래되고도 언제나 새로운 가르침으로서, 신자 개개인은 이를 교회의 가르침에 귀 기울임으로써 다시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동정녀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동정녀께서는 하느님의 사자에게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라고 대답하심으로써,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 6,10)라는 주의 기도의 아름다운 청원에 미리 참여하신 것입니다. 아울러 마리아의 '예'는 아버지의 뜻을 따름에 있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훈과 모범이 됩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 이것이 바로 성덕으로 나아가는 길이요 수단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22항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교회는 자신과 마리아를 묶고 있는 많은 관계들을 여러 가지 효과적인 공경의 태도로 나타낸다는 점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강생하신 말씀의 어머니가 되신 동정녀의 특별한 품위를 묵상할 때, 교회는 마리아께 깊은 존경을 드립니다. 신비체의 모든 지체를 위한 마리아의 영적인 모성을 생각할 때, 교회는 뜨거운 사랑을 드립니다. 변호자이시며 협조자이신(64) 마리아의 전구를 체험할 때, 교회는 믿음에 찬 청원을 드립니다. 주님의 겸손한 여종에게서 자비의 어머니, 은총의 어머니를 뵈올 때, 교회는 사랑에 찬 봉사를 드립니다. "은총이 가득하신"(루가 1,28) 마리아의 성덕을 관상할 때, 교회는 마리아를 닮고자 열심히 노력합니다. 마리아에게서 "교회 자신이 온전히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바라는 하나의 순수한 모습"(65) 을 바라볼 때, 교회는 깊은 경탄을 자아냅니다. 이미 파스카 신비의 풍부한 결실을 가득히 받으신 구세주의 협조자에게서 미래에 완성될 자신의 모습을 예언적으로 바라볼 때에, 한 점 흠이나 주름도 없이 정화되어(에페 5,27 참조)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신부처럼(묵시 21,2 참조) 될 그날까지 교회는 부지런히 마리아를 배웁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23항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보편교회의 전례적 전통과 개정된 로마예식이 하느님의 거룩하신 어머니께 드리는 신심을 고찰하였고, 예배로서 탁월한 가치를 지닌 전례가 그리스도교 신심의 황금률이 됨을 되새겨보았습니다. 나아가 거룩한 신비를 기념함에 있어, 동정녀께서 지니셨던 믿음과 사랑의 태도를 교회가 어떻게 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교회의 모든 자녀들에게 보낸 권고의 타당성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공의회는 "복되신 동정녀 공경 특히 전례적 공경을 충분히 촉진하기를"(66)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인은 이러한 권고가 어디에서나 조건없이 받아들여지고 열심히 실천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24항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전례적인 예배와 함께 다른 형태의 신심들, 특히 교회의 교도권이 권장하는 신심들도 진흥시키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67) 그런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신자들의 신심과 하느님의 어머니께 드리는 공경의 형태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민족들의 감정에 따라, 문화적 전통에 따라 각기 다릅니다. 이렇듯이 다양한 신심의 표현양식은 시간의 흐름에 지배를 받기에, 퇴색한 요소들을 대체하고, 참신한 요소들을 강조하며, 신학적인 반성과 교회 교도권이 제공하는 교의 자료들을 통합하는 쇄신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주교회의들과 지역교회들, 수도회와 신자 공동체들이 더욱 순수하고 창조적인 활동을 추진해야 하며, 아울러 복되신 동정녀께 드리는 신심 형태와 그 표현양식들을 신중하게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 개정작업은 건전한 전통을 존중하며, 이 시대 사람들의 합당한 요구에도 부응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본인은 이 분야의 작업에 필요한 몇 가지 원칙들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25항

우선, 동정 마리아께 대한 신심 행위가 그 내적이고 본질적인 요소인 삼위일체론적이며 그리스도론적인 면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합당한 일입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예배는 그 자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전례적으로 표현한다면 그리스도교 예배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예배는, 물론 본질적으로 다른 방법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그리고 고유한 방식으로 주님의 어머니와 그 다음으로 성인들을 포용하는 것이며, 교회는 이들 안에서 파스카 신비를 선포합니다. 왜냐하면 이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겪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럽게 되셨기 때문입니다.(68) 동정 마리아께 있어서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연관되어있고 그리스도께 속해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영원으로부터 마리아를 택하시어 지극히 거룩한 어머니가 되게 하시고, 그 누구에게도 주시지 않았던 성령의 은사들로 꾸며주신 것은 그리스도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교의 참된 신심은 동정녀와 거룩한 구세주와의 본질적이며 불가분의 관계를 한 번도 도외시한 적이 없었습니다.(69) 더구나 동정녀께 드리는 공경에서 그리스도론적인 면이 특별히 부각되어야 함은, "그리스도께 대한 물음"(70) 에 의해 좌우되고 흡수되는 이 시대의 정신적 성향에 대단히 적합한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기원과 거룩하신 '지혜'의 강생을 함께 배려하신"(71) 하느님의 계획을 반영한다는 점에서도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예수의 어머니께 대한 신심을 더욱 견고하게 해줄 것이며,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드님께 대한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에페 4,13) 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게 해줄 것입니다. 이는 또한 그리스도께 드리는 예배를 증진시키는 데에도 이바지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권위있게 재천명되고 있는 교회의 항구한 정신에 따라,(72) "하느님의 여종께 드린 것은 주님께 드린 것이 되고, 어머니께 드린 것은 아드님께도 해당되며…여왕께 공손히 드린 것은 왕께 영예가 되기"(73) 때문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26항

마리아 신심의 그리스도론적 성격을 언급하면서 아울러 이 신심에서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 즉 성령의 위격과 그 역사하심을 부언하는 것도 좋으리라 봅니다. 사실 신학적 통찰이나 전례는, 나자렛의 동정녀 안에서 이루신 성령의 성화 행위가 구세사의 결정적인 순간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부들과 교회작가들은 마리아의 성덕을 원래부터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마리아를 "성령께 형성된 새로운 조물"(74)로 본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루가 1,35)라든지, "마리아는…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그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마태 1,18.20)라는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께서는 마리아의 동정을 축성하고 풍부한 결실을 맺게 해주시어,(75) 마리아를 '왕의 궁전' 또는 '말씀의 신방',(76) '주님의 성전' 또는 '주님의 감실',(77) '계약의 궤' 또는 '거룩함의 궤'(78) 등의 성서적인 의미가 풍부한 칭호로 변화시켰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강생의 신비를 깊이 묵상함으로써, "미혼의 동정녀가 성령의 신부가 되셨도다."(79)고 시적으로 표현한 프루덴시오처럼, 성령과 마리아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보아 마리아를 '성령의 궁전'(80)이라 불렀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성령의 항구한 거처가 되신 동정녀의 거룩한 본성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그들은 파라클리토의 교의를 고찰함으로써 샘물처럼 가득한 은총(루가 1,28 참조)과 풍성한 선물들이 성령께로부터 솟아나와 마리아를 단장시켰음을 알아보았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동정 마리아의 마음을 가득 채웠던 믿음과 희망과 사랑, 하느님의 뜻을 수락한 힘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서 고통을 참아낸 용기가 모두 성령께로부터 비롯하였다고 본 것입니다.(81) 또한 그들은 마리아의 예언적인 노래(루가 1,46-55 참조)에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해오신 성령의 특별한 감도하심을 알아보았습니다.(82) 끝으로, 그들은 성령께서 갓 태어난 교회에 내려오신 저 다락방에 예수의 어머니께서 함께 계셨다는 사실(사도 1,12-14; 2,1-4 참조)로 '마리아와 교회'라는 오래된 주제를 새롭게 발전시켜 풍부하게 하였습니다.(83)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성령을 통하여 그들의 영혼 안에 그리스도를 탄생시킬 능력을 얻고자 동정녀의 전구를 구하f늄윱求? 성 일데퐁소는 다음과 같은 기도로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당신께 청하나이다. 거룩하신 동정녀여, 성령으로 예수를 낳으셨듯이 저도 그 성령으로 예수를 얻게 하소서.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하셨듯이 제 영혼도 그 성령으로 예수를 받아들이게 하소서.…성령 안에서 예수를 주님으로 경배하며 당신 아들로 바라보셨듯이, 저도 그 성령 안에서 예수를 사랑하게 해주소서."(84)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27항

오늘날 많은 신심 서적들이 성령에 관한 모든 교의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고들 합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가리는 일은 전문가들의 과제입니다. 그러나 본인은 모든 신자들 특히 사목자들과 신학자들이 구세사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깊이 묵상하고, 경건한 그리스도교 저서들이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명확히 드러내주기를 권고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특히 하느님의 영(성령)과 나자렛의 동정녀와의 신비스러운 관계와 교회에 기여한 성령과 마리아의 공동 행위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신앙 교의들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더욱 깊고 실천하는 신심이 우러날 것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28항

또한 필요한 것은, 주님의 어머니께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는 신자들의 신심 행위가 마리아께서 교회에서 차지하시는 위치, 곧 “그리스도 다음으로 가장 높고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시는"(85) 그 위치를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잔틴양식의 성당들은 그 건축 구조와 각종 형상에서 마리아의 이러한 위치를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이코노스타시스(iconostasis)의 중앙문에는 동정 마리아의 주의 탄생 예고 장면이 그려져 있고, 성당 후면에는 영화로우신 하느님의 모친(Theot´ocos)상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여종의 동의를 통하여 인류가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되고, 지극히 거룩하신 여인의 영광이 바로 인류 여정의 목적지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신비 안에서 차지하는 마리아의 위치를 표현하고 있는 이러한 교회 건축양식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으로,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신심의 여러 형태가 어디에서나 교회적인 전망을 지니리라는 기대를 갖게 해줍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의 본질을 파악하는 근본 개념으로 교회를 하느님의 집안,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신비체 등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86) 이러한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신자들은 교회의 신비 안에서의 마리아의 사명과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의 마리아의 탁월한 위치를 더욱 쉽게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신자들은 "신도들을 낳아 기르시는 데에 모성애로 협력하시는"(87) 동정 마리아의 자녀로서, 또한 교회의 자녀로서 한 형제임을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품에서 태어나 그 젖으로 양육되며 그 영으로 힘을 얻기"(88) 때문입니다. 또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탄생시키는 데에 있어 교회와 마리아가 협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양자가 모두 그리스도의 어머니요 어느 한편도 혼자서 전체(신비체)를 낳는 일이 없기"(89) 때문입니다. 결국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교회의 활동이 마리아의 보살핌과 사랑의 연장이라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나자렛, 엘리사벳의 집, 갈릴래아의 가나 그리고 해골산에서 마리아께서 보이신 적극적인 사랑은 - 모두 교회적인 비중을 갖는 구원의 일화들로서 - 교회 안에서 계속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얻은 구원을 모든 이가 나누어 받을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함으로써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라는(1디모 2,4) 어머니다운 보살핌과 미천한 이들,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 대한 사랑에서 그리고 평화와 사회일치를 위해 투신함으로써 마리아의 그 사랑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교회에 대한 사랑은 마리아께 드리는 사랑이 되고, 마리아께 드리는 사랑은 교회에 대한 사랑이 됩니다.

교회없이 마리아가 존재할 수 없고, 마리아없이 교회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퀼레이아의 성 크로마시오는 "교회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형제들과 함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이 없다면 교회를 말할 수 없습니다."(90)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복되신 동정녀께 드리는 공경은 그 본질적이며 교회적인 내용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마리아 공경의 형태와 내용을 올바른 방향으로 개정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29항

지금까지의 고찰들은 하느님 - 성부, 성자, 성령 - 과 동정 마리아, 그리고 교회와 동정 마리아의 관계를 검토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91) 성서, 전례, 교회일치 그리고 인간학적 관점에서 본 몇 가지 지침들을 더 언급하고자 합니다. 신심행위들을 개정하거나 새로이 창안할 때는 이러한 지침들을 깊이 새겨두어야 합니다.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친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분과 우리와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30항

오늘날, 어떠한 형태의 예배일지라도 성서적인 성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심의 일반적인 원칙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성서 연구의 발전, 성서 보급의 증가 그리고 무엇보다 전승의 예시와 성령의 내적 활동은 현대의 신자들로 하여금 성서를 기도의 바탕으로 삼고 날로 더욱 성서를 활용하여, 거기서 순수한 영감과 더없이 좋은 모범들을 찾아내게 해줍니다. 복되신 동정녀 공경 역시 이러한 그리스도교 신심의 일반적인 방향에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92) 오히려 새로운 활력과 확고한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성서로부터 더 많은 영감을 받아야 합니다. 성서는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놀라운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고, 구세주의 신비로 가득 차있으며, 구세주의 모친이시며 협조자이신 마리아께 대한 언급이 창세기로부터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전성서 안에 명확하게 나타나있습니다. 그러나 성서적 특징이란 단지 성서 구절이나 성서적 표상들을 자주 인용하는 정도일 수는 없습니다.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기도문이나 성가가 성서로부터 그 용어와 영감을 받아야 하며, 특히 동정녀께 대한 신심은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대주제들로 채워져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상지의 좌를 공경하는 신자들은 거룩한 말씀의 빛을 받아 '강생하신 지혜'의 가르침에 따라 살게 될 것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31항

교회가 전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모친께 드리는 공경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공경의 형태와 그 기준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본인은 이제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이 제시하고 있는 규정을 상기하고자 합니다. 이 헌장은 그리스도인의 신심 행위들을 기꺼이 승인하면서도 "신심 행사들은 전례시기에 어울리는 것이어야 되고 전례는 그 성질상 이런 신심행사보다 월등히 우위를 차지하느니 만큼, 이런 행사는 전례와 조화되고 어느 정도 전례에서 나오며 또한 신자들을 전례에로 인도하도록 마련되어야 한다."(93)고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슬기롭고 분명한 규정이기는 하지만 이를 적용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마리아 공경은 그 표현양식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특히 그러합니다. 따라서 이 규정을 합당하게 적용하기 위해 지역교회의 책임자들은 사목적인 분별력을 지니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끊임없는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반면, 신자들에게는 그리스도교 예배의 참된 본질에서 기인하는 지침이나 사상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지침이나 사상은 때때로 그리스도교 예배의 참된 본질이 모호해진 낡은 관습들을 바꾸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규정을 실제 사목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두 가지 태도에 대해 언급하고자 합니다. 첫째, 영혼들을 돌보는 사목자들 중에는 신심기도들을 우선적으로(a priori) 경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도권이 장려하는 올바른 기도문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없앰으로써 채워주지도 못하는 공백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이들은 신심 기도문들을 없앨 것이 아니라 전례와 조화시켜야 한다는 공의회의 가르침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전례적이고 사목적인 올바른 기준도 없이 신심 행사와 전례 행사를 혼합시켜버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9일 기도나 이와 비슷한 신심 행사들을 미사성제에 삽입시킴으로써 빚어집니다. 이는 주님을 기념하는 제사를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최고의 집회가 단순한 신심 행사로 전락시키는 위험을 초래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이들에게는 신심 행사를 전례와 뒤섞어놓을 것이 아니라 전례와 조화시키라고 한 공의회의 규정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슬기로운 사목활동이라면, 전례 행위의 고유한 성격을 잘 알아 이를 강조하면서도, 신심 행위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 지역 공동체의 필요성에 맞추어 신심 행사가 전례에 값진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32항

복되신 동정녀 공경은 그 교회적인 특징으로 인해 교회의 관심사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교회의 관심사는 그리스도교 재일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어머니께 대한 신심은 일치운동이라는 염원과 목적에 부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일치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영화로우신 하느님의 모친을 특별한 애정으로 공경하고 그분을 "그리스도인들의 희망"(94)으로 환호하며 맞아들임에 있어, 가톨릭 신자들은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정교회의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신심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표현과 확고한 교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또한 성공회 신자들과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성공회의 고전신학자들은 주님의 어머니께 대한 신심을 성서를 근거로 하여 밝혀주고 있으며 현대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마리아께서 차지하시는 위치의 중요성을 더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톨릭 신자들은 개신교 신자들과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성서에 대한 열성이 대단한 개신교 신자들은 동정녀께서 친히 하신 그 말씀(루가 11,46-55 참조)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모친이시며 그리스도인들의 모친이신 마리아께 대한 신심은, 세례받은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한 백성으로 일치하도록 아드님께 전구해달라고 그 어머니께 청하는 자연스럽고도 빈번한 기회가 됩니다.(95) 그뿐 아니라 마리아 신심의 일치적인 면은 가톨릭교회의 바람에서도 드러납니다. 그것은 마리아 신심의 독특한 특징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96) 가톨릭교회의 참된 교의에 대해 다른 그리스도교 형제들의 오해를 살 수 있는 어떠한 과장도 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97) 마찬가지로 교회는 올바른 가톨릭 의식에 위배되는 어떠한 제의적 표현도 제거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끝으로,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은 "성모가 공경을 받으심으로써 성자가 옳게 이해되시고 사랑과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는 것이”98) 당연하기에, 교회일치의 근원이요 중심이신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 안에서 그리스도를 하느님이시며 주님으로, 구세주이시며 유일하신 중재자(1 디모 2,5 참조)로 천명하는 모든 이들이 서로 하나가 되고 성령의 일치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되도록 불리우고 있습니다.(99)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33항

다른 교회들이나, 교회의 성격을 띤 공동체들에 속한 많은 형제들은 "구세사업에 있어서의 마리아의 역할"(100)에 관해 가톨릭의 가르침과는 아주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마리아께 드려야 할 공경에 있어서도 입장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자렛의 동정녀를 감싸주었고(루가 1,35) 오늘날 교회 일치운동 안에서 활동하면서 그 결실을 맺게 해주는 것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같은 힘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전능하신 분께서 큰일을 해주신 주님의 겸손한 여종(루가 1,49 참조)께 대한 신심은 서서히나마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의 일치를 위한 길이요 만남의 장이 될 것이며 걸림돌이 결코 아니라는 확신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사실 갈라진 형제들 편에서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의 마리아의 위치를 이전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어서, 일치의 길이 평탄해지고 있음을 볼 때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정녀께서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께 첫 기적을 행하게 하셨듯이(요한 2,1-12 참조),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신앙 안에서 완전한 일치를 다시 이루게 될 그날이 오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본인의 이러한 바람을 선임 교황 레오 13세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북돋아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문제는 특별히 마리아의 영적 모성의 역할에 속합니다. 사실, 마리아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을 단 하나의 신앙, 단 하나의 사랑으로 낳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가 갈라졌단 말입니까?'(1고린 1,13)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고 그 품안에서 '하느님께 유용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로마 7,4)."(101)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34항

복되신 동정녀 공경은 인문과학의 연구 결과들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주님의 모친을 공경하면서 체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의 원인을 제거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어려움들은 마리아 공경의 몇몇 양상들이 현대의 인간학적 반성이나 현대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 심리학적 영역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변화와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사실, 신심 서적들에서 보게 되는 복되신 동정녀께 관한 어떤 표상들은 현대의 생활양식, 특히 여성들의 생활양식과 잘 맞지 않고 있습니다. 집안에서는 가정을 꾸려나가는 데에 있어 부인과 남편의 동등한 권리와 공동책임이 법적으로나 관행상으로 타당하게 인정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영역에 있어서는 많은 나라들이 여성들에게도 남성들과 동등한 공직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영역에서도 여성들은 가정이라는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 각종 분야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문화적인 영역에서조차 과학적 탐구 및 지적 활동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여성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일부 신자들은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신심을 멀리하고, 나자렛의 마리아를 모범으로 삼는 데에 곤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생활 범위가 현대의 개방되고 폭넓어진 활동 영역에 비해 너무 좁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하여 본인은, 신학자, 지역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책임자 그리고 신자들 스스로가 올바른 관심을 가지고 이 어려움들을 검토해주기를 당부하면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35항

우선, 교회가 동정 마리아를 신자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항상 제시해온 것은 마리아께서 살아가신 생활 형태나, 오늘날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그 시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마리아께서 신자들의 모범이신 것은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그리고 책임있게 받아들이셨다는 데에 있습니다(루가 1,38 참조).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셨으며, 그 힘은 사랑과 봉사의 정신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를 본받아야 하는 것은 마리아께서는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온전히 그리스도를 따르셨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영원하고 보편적인 모범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36항

두 번째로, 앞에서 언급한 어려움은, 대중 서적들에서 보게 되는, 마리아 상에 관한 특정한 요소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복음서의 마리아 상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계시를 꾸준히 진지하게 연구하여 밝혀낸 교의와도 무관합니다. 서로 다른 사회 문화적 상황 속에서 살아온 각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각 시대를 반영해주는 방법과 태도로 마리아께 대한 느낌들을 표현해왔는데, 이는 지극히 타당한 것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이들 각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와 그녀의 사명을 묵상하면서 마리아를 새로운 여인,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서 여성의 탁월한 모범인 동정녀, 아내, 어머니로서의 모습과 복음을 따라 산 삶의 탁월한 모범 그리고 여인의 일생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특징적인 면을 요약한 삶을 발견하였습니다. 마리아 신심의 오랜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교회는 마리아 신심의 기본 요소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기뻐합니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특정 시대의 특정한 표현이나 그러한 표현들을 낳게 한 특별한 인간학적 개념 등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외적으로 드러난 특정한 종교적 표현들이, 그 자체로는 훌륭하다 할지라도, 다른 시대와 문화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교회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37항

끝으로, 본인은 이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이 시대도 이 시대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우리 주제에 국한시켜 말씀드리자면 현대의 인간학적 개념이나 이로부터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복음서가 제시하는 동정 마리아의 모습에 비추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서를 읽고 여기에 인문과학의 업적과 현대세계의 갖가지 상황들을 참작한다면, 어떻게 해서 마리아께서 이 시대의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귀감이 되실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동체의 일에 결정권을 가지고 참여하고자 하는 현대 여성들은, 뜻밖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기의 대사업인 말씀의 강생(102)에 대해 하느님과의 대화 속에서 능동적이며 책임있게 동의하신 마리아(103)를 넘치는 기쁨으로 우러르게 될 것입니다.

현대 여성들은, 강생의 신비를 위해 하느님의 계획으로 마련된 동정생활을 마리아가 선택한 것은 결혼생활의 가치를 도외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온전히 바쳐 하느님을 사랑하고자 한 용기있는 결단이었음을 깊이 헤아리게 될 것입니다. 현대 여성들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면서도 수동적으로 순명만 하거나 배타적인 믿음을 지닌 여인이 결코 아니라 하느님은 비천하고 억눌린 이들을 돌보시며 권세있는 자들을 자리에서 내치시는 분이라고 천명한(루가 1,51?3 참조) 여인임을 놀라운 기쁨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현대 여성들은 "주님의 겸손하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104) 마리아에게서 가난과 고통, 피난과 유배를 체험한(마태 2,13-23 참조)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러한 모습들은 인간과 사회를 복음 정신으로 해방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마리아는 하느님이신 당신의 아드님에게만 배타적으로 사랑을 쏟으신 어머니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사도 공동체의 믿음을 북돋우신(요한 2,1-12 참조) 분으로서 해골산에서 만인의 어머니가 되신 분으로(105) 드러나실 것입니다.

이상은 단지 예에 불과하지만 이 예들은 현대인들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주님의 제자로서 완전한 모범이 되시는 동정녀의 모습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제자는 이 세상의 잠정적인 도시를 건설하면서도 영원한 천상도시를 향해 부지런히 순례의 길을 갑니다. 이 제자는 억4??이들을 해방시키고 없는 이들을 도와주는 정의와 애덕의 옹호자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제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심어주는, 사랑의 활기에 찬 증인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38항

지금까지 주님의 어머니께 대한 신심을 더욱 조화있게 발전시키기 위한 몇 가지 지침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제 이 신심의 그릇된 태도들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마리아 교의를 왜곡시키는 내용상 형식상의 과장과 마리아의 모습이나 그분의 사명을 흐리게 하는 옹졸함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의회는 진지하고 참된 내적 충실을 외면한 채 외적 행위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음과 부질없고 일시적인 기분에 이끌려 행동함으로써 꾸준하고 구체적인 행위를 요하는 복음 정신에 어긋나는 그릇된 신심에 대해서도 경고하였습니다.(106) 본인은 공의회의 가르침을 재확인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가톨릭 신앙에 위배되므로 가톨릭의 예배에 포함시켜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이런 오류와 탈선을 잘 막아야만 마리아 신심은 더욱 활력이 넘치고 순수해지며 그 기반이 튼튼해질 것입니다. 아울러 계시의 원천들을 연구하고 교도권으로 발표된 문헌들에 귀기울임으로써, 새롭고 이상한 현상들을 좇는 일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류와 탈선을 방지함으로써, 마리아 신심은 그 역사적 맥락을 올바로 지니게 되고, 터무니없는 전설이나 허위가 제거되며, 교의적인 가르침과 잘 어울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느 한 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복음이 제시하는 보편적인 상을 흐리게 하는 편파적인 마리아의 모습을 그려내는 일도 없게 될 것입니다. 오류와 탈선을 막음으로써 마리아 신심의 동기가 더욱 순수해지며 그 결과 헛된 이기주의가 성스러운 영역에서 제거될 것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39항

마지막으로 본인은, 마리아 신심의 최종목표는 신자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찬미하며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부합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실로, 교회의 자녀들은 복음에 나타나는 한 익명의 여인의 소리에 맞추어 "당신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합니까!"(루가 11,27) 하고 예수께 외치면서 그 어머니를 찬미할 때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가 11,28)고 하신 거룩하신 스승의 엄숙한 대답을 묵상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여러 교부들이 풀이하였고(107)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재확인하였듯이(108) 주님의 이 말씀은 마리아께 드리는 생생한 찬미이며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권고이기도 합니다. 이는 또한 "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요한 15,14)고 하신 구세주의 말씀을 상기시켜줍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40항

지금까지 주님의 어머니께 대한 신심에 새로운 활력을 심어줄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였습니다. 복되신 동정녀를 공경하는 신심행사와 그 실천 방안을 지혜롭게 쇄신하고, 순수한 종교적 감응과 사목적 관심에 따라 새로운 신심 형태들을 모색하려는 사람들의 창의적인 노력을 북돋아주는 일은, 이제 각주교회의와 지역교회의 책임자들 그리고 여러 수도단체들이 수행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러나 삼종 기도와 로사리오 기도 이 두 가지 신심행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보아 이 자리에서 다루는 것이 좋으리라고 봅니다. 서방교회에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신심행위들은 본사도좌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습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41항

삼종 기도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이 기도를 가능한 한 언제 어디서나 계속 바치도록 간곡히 부탁하는 바입니다. 삼종 기도는 단순한 구성과 성서적 성격, 평화와 안녕을 비는 역사적 기원, 아침, 낮, 저녁 시간을 거룩하게 하는 준전례적 리듬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의 강생을 기념하면서 "그의 고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도록"(109) 기도하는 파스카 신비를 회상하게 하는 특징들로 이루어져있어 개정이 필요없는 기도입니다. 이러한 여러 요소들은 수세기를 거치면서도 불변의 가치와 때묻지 않은 신선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삼종 기도와 관련된 몇 가지 전통적인 관습들이 현대에 와서는 사라져버렸고 때로는 계속 유지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들은 지엽적인 요소에 불과합니다. 말씀의 강생의 신비를 묵상하고 복되신 동정녀께 인사하며 그녀의 자비로운 전구를 바라는 것 등은 변함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시대적 상황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신자들은 여전히 아침, 낮, 저녁으로 잠시 일손을 멈추고 이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42항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이제 "요약된 복음"(110)이라고 불리는 신심기도인 로사리오 기도의 쇄신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선임 교황들은 이 기도에 지극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 이 기도를 자주 바칠 것을 여러 번 강조하시고 그 보급을 도우셨으며, 그 본질을 해설하시면서 찬미이며 간구인 이 기도가 묵상기도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셨으며, 그리스도인 생활과 사도적 헌신을 키워주는 이 기도의 고유한 효력을 상기시키셨습니다. 본인 역시 1963년 7월 13일, 취임 첫 일반알현에서 로사리오신심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고(111) 그 이후에도 기회있을 때마다 그 가치를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괴롭고 불안했던 시기에 복되신 로사리오의 동정녀를 통하여 하느님께로부터 최고선인 평화의 은혜를 받기 위해 교황교서 '그리스도의 모친'(Christi Matri, 1966년 9월 15일)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112)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로사리오 기도의 전통적인 형태를 결정지었다고 볼 수 있는, 선임 교황 비오 5세의 교서 Consueverunt Romani Pontifices 반포 400주년을 기념하는 본인의 교황권고 Recurrens Mensis October(1969년 10월 7일)에서 다시 호소한 바 있습니다.(113)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43항

복되신 동정녀의 로사리오에 대한 부단하고 애정어린 관심에서 본인은 현대세계에 있어서 로사리오 기도의 사목적 역할에 관한 최근의 여러 모임에 참석했었습니다. 이런 모임들은 로사리오신심에 깊은 관심을 가진 단체나 개인들이 주최하였는데, 경험 많고 교회 의식이 깊은 주교, 신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들이 참가했었습니다. 이런 모임들 중에는 특히 은혜로운 이 신심을 전통적으로 보호하고 전파해온 도미니코 수도회가 개최한 모임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임들과 병행하여, 로사리오 기도의 초기 형태를 고고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초기의 영감과 원동력 그리고 그 근본 구조를 알아보기 위한 역사학자들의 연구도 있었습니다. 이런 모임과 연구를 통해 로사리오 기도의 근본적인 특징과 본질적인 요소 그리고 이 둘의 상호관계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44항

예를 들면 로사리오 기도의 복음적인 성격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로사리오 기도의 신비들과 그 기본 형태가 복음에서 비롯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이 기도가 천사의 기쁨에 찬 인사와 동정녀의 신앙 깊은 응답을 기도문으로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으며, 이로써 신자들이 이 기도를 바칠 때의 합당한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성모송을 아름답게 수놓음으로써, 로사리오 기도는 주의 탄생 예고의 결정적 순간에 묵상하게 되는 '말씀의 강생'이라는 복음의 근본신비를 밝혀줍니다. 오늘날 사목자들과 신학자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즐겨 정의하고 있듯이, 로사리오 기도는 복음적인 기도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45항

또한 로사리오 기도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당신의 자비로우신 결정에 따라 인간의 역사에 들어오시어 구속사업을 이루신 과정이 순서적으로 잘 반영되어있습니다. 로사리오 기도에는 동정녀의 잉태와 예수의 유년기 시절의 신비들로부터 파스카 신비의 절정 곧 복된 수난과 영광스러운 부활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구원사건들이 조화있게 연결되어있습니다. 나아가 성령 강림날 태어난 교회와 이 세상에서의 일생을 마치시고 영혼과 육신이 하늘나라로 올림을 받으신 동정 마리아에게서 나타난 파스카의 결실이 총망라되어있는 것입니다. 로사리오의 신비가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있는 것은 단순히 연대기적인 순서만을 충실히 고수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초대교회가 신앙을 선포하던 양식을 반영하며, 성 바오로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노래한 찬가(2,6-1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신비를 자기 비하(Kenosis), 죽음, 영광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46항

따라서 로사리오 기도는 강생의 구속신비를 중심으로 삼고 있는 복음적인 기도로서 그리스도론적인 성향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로사리오 기도의 특징적인 요소인 성모송의 반복은 그리스도께 대한 끊임없는 찬미입니다. 천사의 인사와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루가 1,42)라는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의 인사는 궁극적으로 모두 그리스도께 드리는 인사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본인은, 성모송을 되풀이하여 바침은 구원의 신비들을 계속 묵상하는 것이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각 성모송의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동정녀의 아들이신 예수의 신비를 상기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즉 성모송의 예수는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탄생하신 예수, 어머니에 의해 성전에 봉헌되신 예수, 아버지의 일에 대한 열성이 넘치는 소년 예수, 동산에서 고뇌를 겪으시고 죄인으로 가시관을 쓴 채 십자가를 지고 해골산에 올라 죽으신 구세주로서의 예수,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르시고 성령을 보내주신 바로 그 예수이십니다. 지금도 그런 습관이 남아있는 곳이 있지만, 한때는 묵상을 도와주고 기도의 말마디와 정신이 일치되도록 하기 위해 각 성모송의 예수 다음에 구원의 신비를 환기시키는 말을 추가한 적도 있었습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47항

로사리오 기도에서, 찬미와 간구의 요소 외에도 더욱 본질적인 요소인 관상의 중요성이 시급히 요청되어왔습니다. 관상의 요소가 없는 로사리오 기도는 영혼이 없는 육체에 불과하며 기도문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게 될 위험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 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 안다."(마태 6,7)고 하신 예수님의 권고 말씀을 거스르는 일이 될 것입니다. 로사리오 기도는 그 본질상 고요한 리듬과 지속성을 요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의 일생의 신비를, 주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셨던 분의 마음으로 묵상할 수 있게 되며 그 무궁한 풍요성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바오로 6세 - 마리아 공경 - 48항

끝으로, 오늘날의 연구 결과 전례와 로사리오 기도의 관계를 더욱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로사리오 기도는 그리스도교 전례의 오랜 줄기인 복되신 동정녀의 찬가에서 파생된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동정녀의 찬가로 비천한 사람들은 교회의 찬미와 보편적 전구에 동참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전례 정신이 희박했고 신자들이 전례에서 멀어져 그리스도의 인간성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대한 신심이 외적이고 감상적으로 기울어졌던 중세기 후반에 발전하였다는 점이 주지되어 왔습니다. 근

래에 와서 일부 사람들은 로사리오 기도를 전례에 포함시키기를 바라고, 반면 어떤 사람들은 지난날의 사목적 오류를 피하고자 로사리오 기도를 지나치게 무시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례 행사와 로사리오신심이 서로 대립되거나 동일시되어서는 안된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의 원칙들(114)에 비추어본다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릇, 기도문은 그 본래의 성격과 고유한 특징을 잘 보존할수록 그 효과도 뛰어난 법입니다. 따라서 전례 행사의 탁월한 가치를 잘 깨닫게 되면 로사리오 기도가 거룩한 전례에 잘 어울리는 신심 행위임을 인정하기가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전례 행사와 마찬가지로 로사리오 기도는 공동체적 성격과 성서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신비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본질적인 차원은 다르지만, 전례의 기념(Anamnesis)과 로사리오 기도의 관상적 기념(Recordatio)은 모두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례는 구원의 가장 큰 신비들을 표징으로 현존시키고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작용하게 합니다. 반면 로사리오 기도는 열심한 관상으로 구원의 신비들을 기도자의

출처 : 37. 성모 마리아에 관한 주요 교도권 문헌(마리아 공경)
글쓴이 : 봄처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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