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天主敎會史
― 韓國天主敎會史에서 보여준 순교자들의 모습들 ―
2. 이경도(李景陶) 가롤로의 순교
① 이경도(李景陶) 가롤로는 서울에서 났는데, 현 왕조(王朝)의 시조(始祖)인 태조(太祖)의 어떤 서자(庶子)의 12대 내지 15대의 장손(長孫)이었다. 그의 가문(家門)은 경령군(敬寧君)이라는 칭호로 반열(班列)에 들었으나, 벌써 여러 대째 왕족(王族)의 행세는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라 안에서 대단히 높은 지위(地位)를 유지하고 있었고, 남인(南人)의 지도층(指導層)에 있었다.
이경도(李景陶) 가롤로는 성격이 온순(溫順)하고 너그럽고 점잖아, 어려서부터 천박(淺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일찍부터 뛰어난 천부(天賦)의 재질(才質)과 학문(學問)의 진보(進步)로 뭇사람의 주의를 끌었다.
② 17세에 자기의 처지(處地)에 맞는 결혼을 하였고, 결혼(結婚)한 지 3개월 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장자(長子)인 관계로 부유(富裕)하고 번화(繁華)한 집안의 가장(家長)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별세(別世)하였을 적에, 그런 경우에 흔히 양반가(兩班家)에서 성행(盛行)되는 미신(迷信)에 참여(參與)하지 않기가 몹시 어려웠다. 그러나 슬기와 결단(決斷)을 써서 부당한 협력(協力)은 하지 않고, 견디기에 성공(成功)할 수 있었다.
벌써 오래 전부터 세속(世俗)을 멀리하고, 자기와 같이 높은 지위(地位)에 있는 젊은 사람에게는 없을 수 없는 매일의 유혹(誘惑)을 피하기 위하여, 일부러 곱추 행세(行勢)를 하며, 하느님께 그 병을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그는 언제나 몸을 구부리고 몹시 힘이 드는 것처럼 걸었다. 차츰 등뼈가 어그러져서 앞으로 굽어졌고, 다리가 약하여지고 몹시 허약(虛弱)해져서, 나중에는 신문(訊問)을 받으러 재판정(裁判廷)에 출두할 때, 사람들에게 들려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③ 큰 집안의 가장(家長)으로서 그는 집안을 잘 인도(引導)하기에 힘쓰며, 모든 것을 질서(秩序)있게 처리(處理)하고, 아랫사람들을 잘 가르치며, 교우(敎友)의 체통에 어긋나는 것은 조금도 보이지를 않았다. 그는 친척(親戚)과 친구들을 만나러 집을 나가는 일이 결코 없었고, 쓸데없는 이야기와 오락(娛樂)에는 조금도 끼지를 않았다.
이렇게 근신(勤愼)하고 숨은 생활을 하는 까닭에 많은 비난(非難)과 책망(責望)을 피할 길이 없었다. 이경도(李景陶) 가롤로는 그런 것들을 겸손되이 받았으나, 자기의 결심(決心)은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
그의 누이동생 이순이(李順伊) 누갈다와 유중철(柳重哲) 요한의 결혼(結婚) 때에는 사정이 더욱 악화(惡化)하였다. 원망(怨望)과 반대(反對)가 비 오듯 그에게 쏟아졌다. 그러나 자기와 집안 식구들의 구원(救援)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기로 결심(決心)한 그는 화평(和平)한 마음으로 폭풍우(暴風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④ 1801년에 체포(逮捕)되어, 그는 처음 얼마 동안 은 마음이 약하였던 모양이나, 이내 신앙(信仰)이 다시 우세하여지고 결심(決心)이 단단해져서, 처형(處刑)되던 날까지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
그의 재판(裁判)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한다. 그는 음모(陰謀)나 역적(逆賊)으로 기소(起訴)된 것이 아니고, 순전히 천주교인(天主敎人)이라는 명목(名目)으로 선고를 받았다. 그가 죽기 전날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便紙)는 아래와 같다.
『소자는 오늘로써 마지막 글월을 어머님께 드립니다. 저는 비록 가장 큰 죄인이지만, 주님께서는 비상한 은혜(恩惠)를 내리시어, 특별하게 저를 당신 곁으로 불러주십니다. 저는 통회(痛悔)와 사랑이 가득 차있어야 할 것이며, 저의 죽음으로 이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 일생 동안의 죄의 무더기가 하늘까지 닿았고, 제 마음은 목석(木石)과 같아, 이렇게 뛰어난 은혜(恩惠)를 받으면서도 아직도 눈물을 흘릴줄을 모릅니다. 아무리 천주의 무한(無限)하신 인자(仁慈)를 생각하여도, 어찌 부끄럽지 않을 수가 있겠으며, 어찌 그분의 무서운 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제 죄가 끝이 없기는 하나 천주의 자비(慈悲)도 한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천주께서 당신의 너그러우신 손으로 저를 끌어당겨 주신다면, 만 번 죽어야 한다 해도 무엇이 원통(寃痛)하며, 무엇이 불안(不安)스럽겠습니까?
몹시도 마음이 약한 저는 용감(勇敢)한 결심(決心)을 할 수가 없어, 가끔은 이렇게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천주의 특별한 은혜(恩惠)로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없게 되면, 내게는 얼마나 행복(幸福)한 일일까? 그런데 오늘 천주께서 저의 소원(所願)을 들어 주시니, 이것이 가장 큰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자식(子息)의 본분(本分)을 다하지 못하고, 어머님께 순종(順從)을 못다 하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제게는 마음이 아프고 후회(後悔)가 되는 일입니다. 어머님과 집안 식구들은 서로 떨어지지 마십시오. 그리고 머지않아 천국(天國)에서 영원히 다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저는 외아들「귀필」을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하는 귀필아, 말 잘 듣고 집안 어른들과 결코 떨어지지 마라. 그리고 때가되거든 아버지 있는 데로 오너라.
드릴 말씀은 많으나, 길게 쓸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이 세상에서 육체(肉體)와 영혼(靈魂)을 잘 보전(保全)하시다가 영원히 함께 모이기를 바랍니다.
신유년(辛酉年) 12월 25일
불초자(不肖子) 이 가롤로 올림』
이튿날, 이 순교자는 형장(刑場)에서 참수(斬首)되었는데, 나이는 22세였다.
-샤를르 달레 神父 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