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기도
노래 : John Michael Talbot
새해 새날이 시작되었다. 또 다시 새로운 시간과 펼쳐진 미래에 희망과 잔잔한 기쁨이 일어난다
. 새해 역시 영적 전진의 하루하루가 외롭게 나 혼자가 아니다. 먼저 인생을 살다 간 가르멜 성인 성녀들
의 발자취를 그려보며 그분들과의 동반을 꿈꾼다. 특별히 2008년 새해는 가르멜의 어머니이신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함께 가는 길을 묵상해 본다.
1. 사람들은 항상 일하고 활동한다. 일거리가 늘 쌓여있고 들판 가득 내린 백설에도 시린 겨울 하늘에도 눈 돌리지 않고 늘 생각으로 진지하다. 하느님의 사람이니까 하느님께 큰 빚을 지고 있어서 합당한 값을 치르러 바쁘게 산다.
사람들의 일 걱정은 끝이 없고, 능력도 한참이나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어느 때는 하느님과 만나는 기도 조차도 피곤한 상태로 어떻게 시간을 채워야 할 지 무관심하다. 사랑의 불은 뜨겁지도 못하고 속 깊게 타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하느님과 멀리 앉아 있다. 사실, 하느님은 분주한 활동으로 특별 대접해야 할 분이 아니다. 하느님에게 드릴 것은 만남의 시간이다. 하느님은 말없어도 함께 하시는 분이다. 오랫동안 함께 걸어온 분이시고,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 바람(희망)을 주고받는 분이다. 하느님은 자주 침묵으로 마음에 말씀하신다. 어느 때는 성경 말씀으로 나누신다. 만남을 원하기만 하면 하느님은 기뻐하시고, 함께 해주신다.
하느님은 태양이다. 어느 곳에 있어도 찾아오시고 함께 하신다. 사랑의 빛을 내려주고 사랑의 온기로 덥혀준다.
2.하느님은 사람을 창조하셔서 세상에 낳으셨고, 각자 지구 한 곳에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세상은 하느님의 것이고, 사람은 하느님을 위해 이 지구에 태어났다. 사는 동안 많은 곳을 지나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세월을 걸어간다. 하느님이 무엇을 위해 우리를 쓰셨는지, 과연 우리들은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노라면, 사건들마다 매번 주님이 함께 하셨고, 그 한가운데로 지나가신 주님 뒷모습을 본다. 늦어서야 하느님의 은총이 사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3. 지옥에 떨어져도 죄와 악보다 구원을 보아야 한다. 하느님은 죽을 위험에서도 건져주시고, 좁고 갇혀있던 벽을 깨뜨려 자유를 주신다.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서든 빼내시어 살려주신다.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빛은 비참한 가운데서도 밝게 빛난다. 때로 깊은 뿌리와 상처, 약점과 부정한 양심으로 하느님을 거절하고 이웃도 거절하고 자신의 모습도 거절하지만, 사실 오랫동안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살았다. 성찰의 불로 명백한 죄와 악을 볼 때, 하느님은 눈물보다 더 큰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
4.우리는 피조물로서 많은 불완전과 잘못된 습관이 있으며 하느님을 기쁘게 하기 위한 노력도 여전히 부족하다.
혼자 하는 이 노력들은 어렵고, 다만 인내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되지 않기에 하느님께 엎드려 변화시켜 달라고 간청해야 한다. 피조물을 구원하시는 하느님만이 마음에 자리 잡은 온갖 비참의 뿌리들을 온전하게 빼주시기 때문이다.
5. 피조물이지만 인간의 친구는 예수님이다. 예수님과 우정을 나누는 일에 열렬해야 한다. 성화를 보거나 성상을 볼 때에도 예수님을 위한 자신의 행동과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그려보아야 한다. 예수님이 가신 모든 길에 동행자가 되어야 한다. 우물가 샘터에서나, 고난의 길에서나 예수님을 면전에 두고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한다.
예수님이 멈춰 서실 때는 그분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어야 한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인간과 함께 하시는, 인성을 지닌 하느님이시다. 예수님을 따라 일하며 활동해야 한다.
6.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서 간혹 의혹이 일어나면, 자신의 판단보다는 하느님에게 아예 다른 길로 인도해주시거나, 아니면 가는 이 길이 올바르다고 말씀해주시기를 청해야 한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오신 살아있는 책으로 예수님은 친히 우리를 가르쳐주신다. 위로를 주시고, 용기를 주시며, 비추어 주시고, 때로는 꾸중도 하시기 위해 드러 내신다. 예수님은 함께 곁에 걸어가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무도 당신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을 것이라며 정배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일을 주님의 일처럼 보살피신다. 언제나 하느님은 우리 영혼 가장 깊은 곳에계신다. 그래서 주방에서도 주님과 만날 수 있다.
7. 피조물이 하느님에게 가는데 심각한 방해가 되는, 마음 안에서 끊어야 하는 것들로 우리는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자신에게 애정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마음에도 파고들어, 생각에 심취하게 된다. 보고파 하고 또 그를 생각하며, 해로운 결점일 때에도 끊을 줄 모른다. 하느님은 우리 마음 전부를 차지하시어 이 우정을 끊어버리게 한다.
주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나서야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마음이 해방된다. 우리는 그 누구에 대한 애정보다는 유일한 사랑이신 하느님을 위해 있다. 모든 것을 예수님의 빛 안에서 보아야 한다. 그 사람 안에 사시고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위한 애정이여야 한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에 마음을 온전히 의탁해야 한다.
8.하느님과 합일 전에 인간에게는 근본이 되는 고행이 있다. 약한 우리들이기 때문에 단단한 결심을 하고, 항구하게 예수님을 위해 죽어야 한다. 결심한 순간부터 하느님은 손을 잡으신다. 하느님 외에는 포옹할 분이 없다고 여기면, 앞으로 싸워야 할 것도 별로 없다. 이웃사랑은 무엇보다 순수하고, 무사무욕하고 자신을 찾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편리함에서 이탈해야 한다. 자신을 받쳐주고 토대를 이뤄주는 것들의 집착을 이탈해야 겸손해진다. 부모와 가족, 친척들 간에도 서로에 대한 집착, 애정, 명예심이 서로 갈라지게 하고 분파를 이룬다.
9. 하느님과 합일을 향한 단단한 결심이 흐트러지는 것은 미리 힘이 들까봐, 멸시할까봐, 용기가 없어서이다. 이 일에 따라오는 모든 것들, 모든 일들이 힘들기 때문이다. 말들, 고생들, 다른 사람들이 앞서는 모습, 도중에 포기해야 하는 상황들. 유혹도 만만치 않다. 세상 것이 재미있어 보이고, 세상이 떠받드는 존경이 그립고, 친구나 부모 친척들의 단란한 모습이 환상처럼 떠오른다. 결심한 일이 건강에 해로운 것처럼 보이고, 실행도 전에 장애물이 눈앞을 막아선다. 결심은 흐트러지고 과거에 대한 애착과 앞으로의 걱정과 갈망이 마음 가득 차지하게 된다.
하느님과 합일은 먼저 영혼 안에 거처하고 계신 하느님께 항구하게 나아가는 기도의 길이다. 기도는 복잡하고 힘든 세상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역동적이다. 다시 시작하는 일이 빈번하고, 한번 만족했다가도 분심이 일어나고, 충실하다가도 약해지고 공허해진다. 한 마디로 영적투쟁이다. 기도를 그치는 경우도 생기는데, 기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끌려지는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하느님이 손을 잡아주시고 기도는 더 단순해지고 순수한 사랑으로 채워지게 된다.
10. 하느님은 당신 마음에 드실 때, 당신 곁으로 끌어당긴다. 그때 기도와 행동은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바로 하느님의 표지와 양식을 드러낸다. 그리고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은 신앙인들이 단지 하느님을 아는 데서 오는 기쁨, 심리적으로 오는 기쁨과 다르다. 믿음 안에 있다가 갑자기 사로잡히게 되고, 아무 원인이 없는데 평온해지고, 신뢰심을 가지고 관대해진다. 자신 것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인 빛, 열매들로서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진실, 온유, 절제이다 그러나 아직 성덕의 완전에 이루지는 못한 것이다.
11. 하느님의 사랑받는 영혼은 하느님께 사로잡혔다 새로 태어난다. 자신이 전과는 다른 개념으로, 다른 생활과 다른 사고방식으로, 시간까지도 달라진 곳에 있는 것 같은… 세상과, 자신에게 죽는다. 사실 하느님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죽이려고 했고, 자신에 떠나려고 했고, 극기했는가. 이제 하느님을 통해 이루어진다. 오직 하느님의 뜻을 좇는데 마음 두었고 그 보람으로 하느님이 도우셔서 이루어진 은총이다. 스스로도 알아보지 못한다. 누에였다가 나비처럼 하느님께로 날아오르기 때문이다. 이제 이 세상 것들에 발 딛지 않으며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하느님의 세상만을 본다. 이제 생각이 아니라, 사랑하는 일이 전부다.
12. 아무것도, 그 누구도 하느님의 사랑받는 영혼을 예수님과 갈라서게 할 수 없다. 영혼은 오직 주님의 일만을 하고, 또 주님이 바로 영혼이 하는 일을 보살피신다고 신뢰한다. 하느님 뵙고 싶은 갈망이 심하지만,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내 형제들을 찾아 가거라”하시는 예수님 말씀에 따라 새벽같이 달려가 반대와 위험을 무릅쓰고, 부활의 기쁨을 알리는 마리아가 된다. 후회 없이 뒤 돌아보지 않으며 주님의 일만을 한다. 그래서 마르타가 되어 활동하고 일한다. 그러나 마리아가 되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 어떤 일도, 어떤 병도, 육체의 고통도, 어떤 애정도 영혼이 마음 안에 살아계시는 분과 동반자로 사는 몫을 빼앗지 못하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산다.
13. 하느님의 사랑받는 영혼은 교회를 위해서 산다. 역사와 전통 안에서 지속되어온 교회지만, 교회가 많은 아픔을 당한다. 한 시대 속에 하느님의 사랑받는 영혼은 어느 때, 어느 곳에든 고통 받는 교회에 무관심하지 않는다. 하느님께 울며불며 애원하기도 하고, 이러한 처지에서는 별도리가 없구나 하고 부족함을 느끼기도 한다.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가진 일을 통해 하느님을 돕는다. 하느님은 당신을 위해 무엇인가 다 버리기로 작정한 사람을 언제나 도우시는 분, 그런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다.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 하시면, 집짓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다”(시편 127).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복음 말씀을 따라 철저히 사는 사람이 된다. 영혼은 하느님을 위해 무장해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위해 무엇과 대항해도 지지 않으려고 잘 싸워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린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영혼은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복음 말씀대로 철저히 살고 동시에 교회를 지키고 교회의 방패가 되는 하느님의 종(장상, 설교가, 신학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남달리 뛰어나야 하는 착한 하느님의 종들(선교사, 박사, 목자)들이 패배하지 않고, 유혹과 고통에 쓰러지지 않게, 하느님께 충만한 은혜를 받도록 기도한다. 세상 어둠과 안개와 심한 폭풍 속에서도 깨어서 꾸준하고 안전하게 교회를 이끌어 나아가도록 깨어 하늘 높이 기도하는 등대지기가 된다.
사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영혼의 기도는 많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모두 다 쓰도록 자신의 마음과 온 자유를 다 내어주는 것이다.
14. 하느님의 사랑받는 영혼은 한 사람이라도 하느님을 더 사랑하도록 도와주는 일에 헌신한다. 사람을 돕도록 요청하는 하느님 말씀을 듣는 마음과 응답할 준비를 늘 갖추고 있다. 영혼을 위로하고 위험에서 구하는 일이라면, 휴식하거나 홀로 고요 중에 하느님을 기리며 맛을 즐기려 하던 것도 제쳐둔다. 바로 영혼 구하는 그 일이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일하는 것이 자신에게 하느님 사랑을 위해 더 소중한 것으로 순명이나 의무로 다가올 때, 비록 하느님을 바라보고 싶다는 기도의 마음이 꺾였다 해도 슬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애심과 자기만족보다는 희생의 일을 더 원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주방에도 계시다는 것을 안다. 바로 예수님은 제자들과 아침 요기 중에 부활의 현존을 드러내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항상 여기에 계신다. 하느님은 시간과 공간으로 제약되지 않으신다. 우리가 하느님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곳과 그곳에 가기 위한 자신의 죽음과 나의 믿음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현존의 표시와 표징을 믿음으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하느님 현존의 표시와 표징은 자신과 자신의 성품과 자신이 살아가는 곳, 사는 과정에서 만난다. 하느님이 계시는 곳은 바로 자신이 있는 곳, 그 곳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15. 몸이 둔해지고 무거워지며, 위로 없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 하느님을 뵙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영혼은 진작부터 하느님을 소유해왔다. 그래서 그때 분주하지 않고 침묵과 평화 속에 머물 것이다. 육체는 여위어가고, 정신이 낡아서 혹 분별없이 하느님을 거스를까 두렵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믿기에 기쁘고 평화로울 것이다. 일과 활동이 마음대로 따라가 주지 못하나 일에서가 아니라 바로 하느님이 주시는 천국을 미리 맛본 기쁨으로 견디어 낸다.
우리는 매 순간 하느님께 마음을 다 내주는 일이 중요하다. 지금 이 순명에, 이 봉사에, 이 요구에 모든 것을 내어맡겨 사는 일이 중요하다.
(박 병해 신부 옮김, 요한 아비벤 신부 지음 “아빌라의 데레사와 함께 하는 기도” 참고)
* 2008년 1월 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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