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성모님의 생애, 예수님 제자들과 성인의 생애로 확대되면서 성서에도 없는 사건들 특히 성인들의 전구로 일어나는 기 적이 주제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바로 여기에 속한다. 래하고 있으며, 당시 유럽을 석권하던 선배 화가 티치아노((Tiziano : 1489- 1576)와는 전혀 다른 귀족적인 풍모보다 서 민적인 작품(作風)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작가이다. 튀어나올 것 같이 역동적인 모습으로 노예가 누워 있어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노예에게 향하도록 배려되어 있다. 교여행에 동행했고 나중에 그를 따라 로마에 가서 성 베드로의 제자가 되어 자신의 복음서에 그의 가르침을 반영시켰으 며, 베드로의 순교 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xandria)에 가서 교회를 세우고 선교하다 순교했다. 그는 베네치아의 수 호성인이 되었으며, 따라서 여기에는 어느 국가나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들기가 그들의 민족성을 반영하기 마련이인데, 베네치아인들은 삶의 기본인 땅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다른 민족이 상상을 할 수 없는 노력을 치루어야 했고 그 결과로 베네치아는 세상에서 손꼽히는 우수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되었다. 호성인으로 모시게 된다. 연대기에 의하면 828년 베네치아 상인 두 명이 알렉산드리아에 무역 차 방문하면서 마르코 성인 의 유해를 모신 수도원을 방문했다. 이슬람들에게 점령되면서 교회는 서서히 박해를 받으면서 하루가 다르게 쇠퇴하던 시기였다. 위험하니 안전한 곳으로 모실 수 있도록 하자고 설득한 후 후한 돈을 지불하고 베네치아로 운반키로 했다. 이 가장 싫어하는 돼지를 잡아 덮어두자 놀란 세관원들이 통과를 시키게 되어 무사히 베네치아에 도착하게 된다. 치아 항구에 도착하게 되고 총독을 위시해서 전 베네치아 시민들의 영접을 받으며 유해가 성 마르코 성당에 모셔지면서 유럽에 많은 순례자들이 베네치아를 순례하게 되고 이때부터 성인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여러 기적 일화들이 생기게 되 며 이 작품도 그 일화 중 하나이다. 었는데, 죽기 전에 한번 베네치아를 순례하는 것을 소원으로 여기며 살다 열정에 사로잡혀 주인의 허락도 없이 성 마르코 대성당의 유해를 참배한 후 성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한다는 서약을 하고 주인에게 돌아갔다. 이것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여러 사람이 아무리 고문을 해도 이 노예의 몸에 아무런 상처를 낼 수 가 없자, 주인은 이 순수한 믿음을 지닌 노예를 학대한 자신의 행동을 참회하고 자신도 성 마르코 대성당에 가서 참회하 고 새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고 우악스러운 몸집의 사나이가 창으로 노예를 찌를 자세를 위하고 있으며 그 옆엔 망치를 든 사내가 다음 동작을 준비하 고 있다. 않는 무방비 상태의 나신이나 노예로 보기엔 그의 모습은 너무 준수하고 기품이 있다. 나체가 주는 관능성이 아닌 십자가 에 달린 주님의 모습처럼 경건한 분위기를 창출하고 있다. 예가 아니라 하느님의 귀한 자녀가 되었음을 상징하고 있다. 참으로 폭탄선언을 하신다. 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마르코 3, 34- 35). 예를 구하기 위해 내려온다. 노예를 죽이기 위해 동원된 병사들의 일부가 혼비백산이 되는데, 이것은 마치 죽음을 이기시 고 부활하시는 순간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을 경비하던 사람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 쳤다”(마태오 28, 2- 3). 을 막을 수 있는 그물 옷을 입고 있는데, 밝은 색과 어두움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하느님의 현현앞에 당황하는 어둠 의 인간들의 실상을 그리고 있다. 발치에서 서서 순례의 죄를 지은 노예의 다리를 자르기 위해 망치를 들고 있는 노란 옷의 형리에 까지 이어지는데 이 물 결같은 인간 군상은 바로 당시 유행하던 마네리즘(manerism)의 기법이다. 표현함으로서 역동감을 더하고 있다. 작품의 여러 곳에 터번을 쓴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무슬림 교도들이다. 안타깝게 도 중세기 교회는 무슬림 교도들을 악마의 화신으로 간주했기에 모든 야만적인 것 잔인한 것, 악한 것의 상징으로 무슬림 교도들을 매도했기에 착한 노예를 처벌하는 악한 형리들 틈에 무슬림 복장의 사람들을 등장히키고 있다. 다행한 일이다. 나 도서관에 있는데, 이것은 베네치아 문화의 심볼로 남아 있다. 을 중요시했는데, 여기엔 90만권의 장서와 귀중한 사료가 보존되어 있는 베네치아의 자랑이며 지성의 상징이다. 다. 산 마르코 대성당은 말굽 모양의 건물에 둘러 싸여 있으며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정복한 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표현했던 곳이다. 순한 선으로 대성당과 조화를 이루는 종각이 있다. 구하기 위해 내려오는 성 마르코의 모습이다. 른 대단한 역동성을 띄면서 보는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하고 흥분되게 만들고 있다. 중지하라”는 듯이 형리의 터번을 잡을듯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그의 손은 천치창조 때 하느님의 손처럼 우람차고 힘 이있다. 중에 노예를 구하고자 하는 힘찬 표현이며 시편 45편의 내용을 연상시킨다. 적인 노예와 전혀 다른 기품 있는 모습의 사나이가 생명을 앗아가고자 광기에 사로잡힌 형리들 사이에 있다. 정받는 작가로서의 위치가 되었다. 성공의 정상에 선 작가는 어린 시절의 쓰라린 기억을 회상하게 된다. 의 티치아노 (Tiziano Veccello: 1489- 1576)의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있었으나, 어린 제자의 그림 솜씨를 본 티치아노는 놀람과 함께 불편한 심기가 되었다. 12세 소년 틴토레토의 솜씨가 보 통이 아니기에 잘못 했다간 자기 자리를 빼앗기겠다는 불안감과 시기심에 열흘 만에 이 제자를 쫓아내 버렸다. 식처럼 스승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으니, 자질이 없고 무능해서가 아니라 유능해서 장래가 촉망된다는 질투에 의해 쫓 겨난 어린 소년의 충격은 헤아리기 어렵다. 작가는 어떤 보복도 그 스승에게 돌리지 않고 자기의 길을 초연히 달려서 스 승과 다른 성공의 정상에 올랐다. 의 초상화를 남김을 위시해서 귀족들과의 교제로 단단한 인맥을 구축한 사이 작가는 자유로운 화풍으로 많은 작품을 남 기면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작가로 성장했다. 아첨과 아부는 누구도 좋게 보지는 않지만 신분상승에는 큰 도움이 된다 는 것을 티치아노는 자기 생애를 통해 잘 증거했다. 나체 모델을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던 시대 영향도 있지만 작가는 자신을 이 작품의 노예 모델로 삼았다. 이것은 작가의 길에 들어서면서 받아야 했던 충격을 상처가 아닌 신앙으로 승화시 키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인지 모른다. 아부, 질투와 시기의 유혹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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