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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주기도를 안하면 천주교 신자가 아닙니다 ' (김웅렬 토마스 신부님)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25년동안 모시고 있는 파티마 성모상-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예수님이 계시는 성전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

종탑도 새로 옷을 입히고 성당바닥도 지금 거의 다 끝내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들 자신의 영혼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성당의 종탑을 아무리 금으로 입히고 바닥을 으리으리한 대리석으로 입힌 들, 그 안에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우리 신자들 마음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버린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포도밭입니다.

구약적인 의미에서 포도밭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그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에게 선민으로 선택되었지만 그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나중에는 메시아까지 죽인다는 얘기를 오늘 예수님이 미리 예언을 하고 계십니다.


구약에 있어서 포도밭은 이스라엘 백성이었지만

신약에 있어서 포도밭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 교회요,

그 교회에 몸담고 있는 구성원인 우리들 각자 각자가 주님의 포도밭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지주가, 그 땅의 포도밭주인이 확을 파고 망대를 세우고

고 기름진 포도밭을 잘 만들어서 소작인들에게 나누어주고 떠났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들이 묵상해야할 첫 번째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들에게 시간과, 내 생명...그 모든 것을 거저 선물로 주셨습니다.

포도밭이라고 하는 내 삶을 하느님의 자비로써 풍요롭게 해주시려고

무던히도 애쓰시는 분이 바로 그분입니다.

우리들 머리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하느님의 은총의 손길이 안 머무는 데가 없습니다.


우리는 저녁때 피곤해서 잠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침에 눈이 떠지는 것은 내가 능력이 있기 때문에 떠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하느님께서 눈을 뜨게 해주셨기 때문에 하루하루 연명이 되는 겁니다.

왼쪽 가슴속에서 팔딱팔딱 뛰고 있는 이 심장도 내가 하루 밥 세끼 먹었다고 해서

심장이 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허락을 하시니까 심장이 뛰고 있는 겁니다.

하룻밤사이에도 이 대한민국 땅덩어리에서 심장이 멈추어서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이 300명에서 500명 가량이 된다고 합니다.

그 일이 나와는 관계가 없다 이렇게 얘기할 수 없는 겁니다.


하느님께서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시켜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들은 주님의

포도밭에서 건강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들은 숨 쉬는 것도 지덕이요. 심장이 뛰는 것도 지덕이요.

아침에 눈떠지는 것도 지 눈꺼풀의 힘으로 떴다고 착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오랫동안 성당에 나오지 않는 사람을 냉담자라고 합니다.

제가 어느 날 어느 냉담자로부터 아주 교만하기 이를 데 없는 편지를 한 장 받았습니다.


그 편지 내용을 조금만 얘기를 하면 서두가 존경하는 신부님, 냉담자 주제에 그래도

사제는 존경한다고 ‘존경하는 신부님’ 이렇게 써놨습디다.

저는 봄이 되면 일부러 성당에 안 나가려고 일부러 주일날을 골라서  씨를 뿌렸습니다.

여름에도 주일날이 되면 일부러 성당에 안 나가기 위해서

주일날만 골라서 들에 나가서 일을 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또 주일날을 어기기 위해서 일부러 주일날에 곡식을 거두어들였습니다.

결과는 주일에 열심히 성당에 나간 사람보다 우리 집 농사가 훨씬 잘됐습니다.

신부님 어디 해명 좀 해보십시오.


참 세상 살다가 별의별 편지를 다 받아봅니다.

얼마나 그 편지 글자 하나하나에 교만이 꽉 차 있었는지....

아무튼 나는 주일 안 나가도 주일 기를 쓰고 열심히 나가는 사람보다

농사 훨씬 더 잘 지었는데 신부님 어디 설명해보라 이겁니다. 그 사람이…….


그래서 나도 답장을 썼습니다. 간단히 세 줄로....

 

형제, 편지 잘 읽었소.

그러나 하느님께서 계산하실 때는 꼭 가을에만 계산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두시오.  

여러분들 무슨 뜻인지 알아들으시겠습니까?

 

 

그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추수 그것만이 모든 추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하느님의 추수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추수가 아니라 죽고 난 다음에 셈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마 그 냉담자는 이 사제의 답장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히 몰랐을 겁니다.

그런데 소름이끼칠정도로 놀랍고 무서웠던 것은  

그 사람이 나한테 그 편지를 쓰고 나서 5개월도 안돼서 교통사고로 즉사를 했습니다.

이거는 참 무서운 얘깁니다.

사제에게 그렇게 도전적으로 하느님이 마치 어디 있느냐는 듯이 그런 식으로 해놓고서

아주 그 죽음은 너무너무 비참했습니다.

그는 끝까지 냉담을 해도 열심한 신자들 보다 잘살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너무너무 기쁨에 차서

나한테 편지를 썼던 겁니다.

그 교통사고가 어떻게 해서 생긴 교통사고인지 모르지만 그때 그 성당에서 신자들이 많이

수군거렸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교만하게 살더니 아이고 스스로 벌 받았어....사람이 저렇게 죽으면 안 돼.’


한편으로 그 편지를 보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그 사람 말이 맞는 게 아닌가?

안 믿고 안 나오면 무엇인가 고장이 나서 벌받아야하는데 오히려 주변에 보면 못되게

구는 사람들이 더 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당 열심히 나오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죽는 순간까지 지지리 고생하다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걸 볼 때 우리 신자들은 갈등을 겪습니다.

‘정말 하느님이 계신가?’


‘하느님이 계시다면 저 나쁜 놈들 저 벌 안주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 이렇게 고생해야 되는가?’

이 세상이 이것으로 끝난다면 그 이론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다음의 세상은 영원한 것입니다.

태평양바다에 떨어지는 물 한 방울보다 작은 것이 바로 60년, 70년... 80년의 이승의 삶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계산법으로 보면 거꾸로 진행될 때가 많다는 얘깁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듯이 열매는 없는 것이

꽃만 요란히 피는 그런 나무는 주변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가 아무리 세속적으로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그것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실로 허무하기 이를 데가 없는 겁니다.


오늘 밤에라도 내 목숨을 거두어 가신다고 한다면

내 통장에 있는 그 돈, 내 곳간에 쌓아둔 그 창고에 있는 어마어마한 재산은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성서에서 거듭거듭 경고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소작인들은 주인이 그토록 정성을 다해서 포도원을 꾸며서 소작인들에게

잘 가꾸라고 그랬는데 나중에 어떻게 했습니까?

도조를 내기 싫어서 마치 그 포도원을 지 것 인양 생각하면서

주인이 보낸 종들을 차례차례 죽여 버립니다.

나중에는 그 주인의 아들까지도 아주 학살해버립니다.

마치 하느님의 것을 지 것 인양 생각합니다.


내 목숨, 내 집, 내 차...... 내가 하는 말 가운데서

이기적인 대명사를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신앙인과는 거리가 멉니다.

내가 하는 말 가운데 나의 것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사람은 세속사람입니다.

내 생명, 어리석은 부자는 영혼까지도 지영혼이라고 그럽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대명사를 써야 됩니다.

내 몸뚱아리는 성령님의 것이요.

내 자식은 하느님의 선물이요.

내 재산도 하느님의 것이요.

이것이 바로 하느님에게 축복받는 신앙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자세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소득이 생기면 하느님에게 먼저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분이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잠자고 일어나면 제일 먼저

‘주님 생명 연장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기도를 먼저 올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포도원을 맡겨놓은 그 주인의 마음에 드는

소작인들의 자세라는 것을 잊지말아야합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이 소작인들이 도조를 내기 싫어서 종들을 죽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하느님에게 드리는 도조는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첫 번째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도조를 바쳐야 됩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신자가 아닙니다.


제가 어제 4시 미사 때, 어린이 미사 때 아주 충격을 받았습니다.

진천성당에 와서 2년 반 동안 사제생활하면서 이렇게 큰 충격을 받아본 적은 어제.... 아주 아찔했어요.

 

왜 충격을 받았느냐?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물었어요.

“10월 달이 무슨 성월입니까?”

로사리오 성월입니다.

아이들도 그것까지는 알아.

자기 묵주가 있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묵주를 가지고 있는 애가..... 2/3가 채 안 돼.

“너희들 가운데에서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묵주기도 하는 아이들은 손들어 봐라!”

그 많은 아이들 가운데서 묵주기도를 하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 저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하느님에게 바치는 첫 번째 도조는 기도의 도조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 보고 ‘니들 잘못이 아니다. 니들 부모들이 엉망진창이구나.’


그 다음주일부터는 주일학교 아이들 교리 가르칠 필요 없다 그랬어요.

한 시간 내내 묵주기도 하는 것만 가르치라고 했어요.

묵주 다 들고 와서 선생서부터 묵주기도 하는 거, 그것부터 가르쳐야한다.

내가 2 년 반 동안 신자들을 헛 가르쳤구나!

이렇게 아이들에게 구멍이 뚫어져 있다는 것을 보고 저는 어제 충격을 받았어요.

그 많은 진천성당의 아이들 가운데서 묵주기도를 바치는 아이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

기도는 부모로부터 받아야 됩니다. . 

 

부모가 묵주기도 하지 않으면 자식들 절대 따라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자식들한테 뭘 줄겁니까?

돈?

돈이라고 하는 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겁니다.

자식은 돈 많은 부모 좋아할 수는 있어도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영적인 유산은 신앙입니다.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아 주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기도 바치는 것 참 지겨웠어요.

우리 5형제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려놓고...옛날 저녁기도는 한 시간 반이예요.

묵주기도 15단 다 바쳐야 되고 성인호칭기도 그것 다 외워야 되고...

요즘 가톨릭 기도에 나오는 5분도 안 되는  그런 기도가 아니었어...옛날 저녁 기도는

어디 꾸벅꾸벅 좁니까?

뒤에서 불통이 튑니다.

아버지가 한 방 쥐어박으면 놀라서 바짝 깨었지요.


저녁기도를 바쳐야만 잠을 재웠어요.

‘나 이담에 크면 죽었다 깨도 기도 안 하고 바로 잘 거다!’

얼마나 그것이 지겨웠으면....그런데도 그때 그 아버지의 그 신앙교육이

나도 모르게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우리 자식들 영혼 안에 스며들어서

5남매 가운데서 사제가 둘이나 나왔지요.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 자식들 세속이름 불러준 적이 없었어요.

‘웅열’ 이 내 이름인데 저는 웅열이라는 이름은 없는 줄 알았어요.

오죽하면 저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선생님이 출석부를 부르는데

“김웅열, 김웅열......” 하는데도 대답을 못했어요.

우리 부모님은 세례명 하나 가지고도 너희들은 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