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나라및 세계교회현황

독일 / 슈파이어 대성당 2= 유네스코 문화재 등재

독일-슈파이어 대성당 2. 내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성당의 내부를 둘러 봅니다...

 

성당의 서쪽 입구  전실...

 

전실의 조각상들...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1세 - 로마의 왕 루돌프라고 쓰여 있다.

 

나사우의 아돌프왕

 

 

임구 전실의 천장...

 

성당 내부 1 중앙 신도석...

운 좋게도 남성 성가대의 멋진 성가의 화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도 네 곡이나...
 

 

특히 대학시절 남성합창단에서 불렀던 슈베르트의 미사곡 중

'Heilig, heilig, Heilig, Heilig ist der Herr~'로 시작되는 'Zum sanctus'를

이 곳에서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런 할아버지들이 만드는 노련한 화음들...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

 

천장...

 

파이프오르간...

 

 

벽화...

 

남쪽 회랑...

 

 

북쪽 회랑

 

제단

 

제단 위의 십자가...

 

돔(Dome) 

 

 

지하실

 

지하의 무덤들...

벽에 배치된 무덤이다...

 

아래 사진의 바닥에 있는 총 10개의 무덤 중 제일 왼 쪽 안의 석관이 카노싸의 굴욕의 주인공인 하인리히 4세의 무덤이다.

교황으로부터 대관을 받은 황제 3명, 대관받지 못한 황제 (왕)4명 그리고 황후 3명이다.

 

 

무덤의 주인공들은 왼 쪽 위부터 오른 쪽으로,

황제 하인리히 4세(1106 사망), 황제 하인리히 3세( 1056사망), 황제 콘라드 2세(대성당의 창건자 1039년 사망)

콘라드 2세의 황후 기젤라 (1043사망),하인리히 4세의 황후 베르타(1087 사망)

아래 왼 쪽에서 오른 쪽으로,

나사우의 아돌프왕(1298 사망),  오스트리아의 알브레히트왕(1308 사망), 합스부르크의 루돌프왕(1291 사망),

프리드리히바바로싸의 왕비 베아트릭스(1184 사망), 프리드리히 바바로싸의 아들 슈바벤의 필립 왕(1208 사망)

 

 

특히 세계사에서 배웠던 카노싸의 굴욕의 주인공
하인리히 4세를 이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역사의 현장에 서게된 감회가 새로웠다.
 
*카놋사의 굴욕..
1077년 1월에 일어난 사건으로 중세 서양사에서 황제권과 교황권의 충돌로 일어난 사건이다.
1075년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교회의 쇄신책의 하나로 이전부터 관행적으로 이어져 오던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의한
독일지역의 주교 서임을 부정하고  주교의 서임권은 교황의 권한임을 선언하였다. 이에 반발한 황제 하인리히 4세는
황제의 권한도 신이 내린 것이므로 이에 따를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1076년 1월 하인리히 4세는 보름스에 제국의회를 소집하여
그레고리오 7세를 폐위한다는 결의를 통과시켰다.
이에 교황은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하고 누구도 황제를 접촉하지 못하도록 했다.
잇단 제후들의 교황진영으로의 이탈로 인해  폐위의 위기에 몰린  하인리히4세는 슈파이어를 출발하여
이탈리아 북부의 카노싸성에 머무르고 있던 교황을 찾아가서 눈밭에서 얇은 옷을 입고 맨발로 사흘 밤낮을 서서 빈 결과
교황의 용서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을 '카노싸의 굴욕'이라고 하며 중세 교황의 권한이 얼마나 막강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용서를 받아 사면된 하인리히 4세는 절치부심, 반대 쪽에 있던 제후들을 하나씩 제압하여 황제권을 회복하고
로마를 침공, 그레고리오 7세를 폐위시키고 대신 클레멘스 3세를 교황으로 옹립하게 된다.
 
중국 춘추 전국시대의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의 이야기를 보는 듯하다.
 

 

 

슈파이어 대성당 ...

로마네스크 건축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직접 보게된 것도 큰 행운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