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명상과 기도는 혼동되고 있지만 명상이 기도로 바뀌거나 기도가 명상 속으로 변질되어 갈 때 이와 같은 혼동에는 위험이 없습니다. 명상이란 본래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며 하느님께서 우리 사고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가 점차 숭배와 찬미의 감정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며, 주의 존재가 아주 강력해져서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점점 명상에서 벗어나서 기도를 하게 되면 이는 올바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는 결코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명상과 기도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명상과 평상시 우리가 제멋대로 하는 사고와의 중요한 구별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일관성으로 지적인 절제에 대한 금욕적 훈련이어야 합니다.
데오판 드 라클로스는 사람들이 평상시에 하는 사고의 벙법에 대해 애기하면서 <사고는 모든 방향으로 단조롭게 순서도 특별한 결과도 없이 모기떼처럼 머리 속에서 분주히 돌아 다닌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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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된 사고의 주제가 무엇이든지 배워야 할 첫 번째는 하나의 진로를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이나 신성한 어떤 것을 향해 영혼의 삶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할 때 부수적인 사고로 나타나는 수많은 가능성과 흥미와 풍요로 가득 차 있는 많은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사고의 주제를 선택했을 때 선택된 주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거절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우리의사고가 똑바로 깊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명상의 목적은 사고 중에 학문적인 훈련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즉, 단순히 지적 수행이나 더 깊은 결과도 없는 사고의 아름다운 조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인도 아래 하느님께 향하는 한 조각의 직선적인 사고를 의미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겠끔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명상이란 그 결과로써, 복음서에 따라 더욱 명백하고 구체적으로 살 수 있게 할 때 유용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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