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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성인의 꿈과희망

' 심미주의가아닌 성 프란치스코 정신 '

심미주의가 아닌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


 


먼저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살펴보기로 한 이유는 종교적 영정이 이 수도회에서 거의 완전한 순수성을 띄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서이다. 즉 이 수도회 정신은 사람들이 가끔 비난하는 데서도 알아 차릴 수 있듯이-비록 이 수도회에서도 저명한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배출하기는 햇지만- 학문적 탐구에는 전혀 끼어 들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이를 무익한 것으로 여겼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수도회의 정신은 단순성과 신뢰심의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이니, 악과 대항해 싸우는 것까지도 직접 더욱 가깝게 능동적으로 느끼게 되는 하느님의 현존이다. 그래서 영적 생활의 다른 모든 방향 안에서 프란치스코적 영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은까 자문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프란치스코의 정신 안에서 종교 생활 자체의 가장 깊은 필요성을 보다 특징 있게 잡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성 프란치스코의 메세지를 즐겨 받아들였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는 우리가 삼가야 할 이유들이다. 첫째 이유는 심미적인 것이었으니, '프란치스코적 양식'이라는 표어까지도 생겨났다. 이런 표현은 먼저 "성 프란치스코의 잔 꽃송이"란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거기서 느낀 신선한 맛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이 그들의 마음속에 얼마나 깊은 종교적 감명을 남겨 놓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며, 또 그것이 자연적 신선미로 충만한 이미지와는 다른 이미지를 남겨 놓았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다음, 아시시가 순례지가 됨에 따라 순례자들은 이곳 경치의 미려함에 경탄하게 되고, 그곳의 신선한 공기와 밝은 햇빛은 순례자들의 마음 안에 종교적 분위기를 일으켰다. 경치와 신선한 공기, 밝은 햇빛이없었다면 사람들은 이곳에서 달리 어떻게 종교적인 분위기에 접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상 프란치스코의 정신은 놀랄만한 예술의 풍요함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프란치스코의 정신으로 말미암아 예술이 그 원래의 수준으로 들어 높여짐을 의미하는 것이지, 프란치스코의 정신이 심미주의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영적 생활이 심미주의에 빠지게 될 때 그것은 멸망하고 만다.

두번째 이유는 성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는 것으로서, 정신이 이완됨으로써 빠져 들어가는 일종의 즐거운 기분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즐거움 속에서 정신은 어린 아이의 정신과 비교할 만한 순진 무구의 상태를 찾게 되고,또 자연이나 동물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게 되며, 반대되는 장애물에 대해서도,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주어진 모든 것을 신의 의지로 받아 들이게 된다. 또한 악에 대한 투쟁에 있어서도 톨스토이가 전 세기에 생각했고 또 간디가 사용했던 무저항주의를 쓴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 생활과 크게 어긋나는 견해로서, 마치 우리의 자연적 경향으로 하여금 순수한 원시적 선함으로 되돌아가게 하고 모든 피조물들로 하여금 그 상호간의 호의로 되돌아가게 한다는 것과같이 성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을 변질시키는 것이며, 또 무엇이 우리에게 귀찮고 강요하는 것같이 느껴질 때, 흥분하지 말고 자제심과 소극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하느님 홀로 행하시도록 하라는 것과같이 왜곡된 것이다. 인간의 영혼에 대한 프란치스코회의 젼해는 이와 다른 것으로서, 의지는 우리 자신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의 참된 견해에 따르면 의지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시는 빛과 힘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것을 활용하도록 언제나 마음을 써야 한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회원이었던 제멜리 신부와 그 밖에 많은 학자들은 오늘에 있어서도 이 현세대를 엄습하는 불안과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데에 성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이 가징 적당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의 성덕 안에서는 모든 것이 쉽게 보인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 성덕을 단순히 쉬운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쉽게 보이는 것들은 외적으로 겉꾸민 거짓된 제스처가 아니라 실재를 가리고 있던 베일 뒤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실재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가장 획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오자남은 성 프란치스코를 중세기의 로르패우스라고 했다. 성 프란치스코는 오르페우스와 같이 자연을 길들였으며 돌과 바위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고, 물질 요소들을 조화의 법칙에 따라 모이게 하엿으며, 극히 어두운 영혼 안에 빛을 비추게 해주었다. 그는 어디서나 무관심을 희망으로, 분노를 사랑으로 변화시켰다. 그의 승리는 모든 삶을 제아무리 비참하고 반역적인 것이라 해도, 주님께 대한 찬미로 변화시키는 데에 있었다. 그는 13세기를 충만하게 한 보기 드문 영성의 시원(始原)이다. 성왕 루이는 프란치스코의 회원이었다. "잔 꽃송이"에 의하면 성왕이 한번은 페루지아에 있는 에지디오 수사를 만나러 간 일이 있었닫. 두 사람은 아무 말없이 서로 무릎을 꿇었다. 이들은 하느님의 빛 안에서 서로 알아보게 되었다.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은 화가 지오트의 그림에 영향을 미쳤다. 지오토는 움부리오 지방에서의 성 프란치스코의 일생을 그림으로 그렸는데, 이때 그는 인물이나 사물들을 무색으로 묘사했다. 이는 그가 인물이나 사물들의 얼만을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말하기를 지오토가 단테한테서 -단테는 그의 "신곡"에서 지오토를 인용하고 있다.-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단테의 신학은 토미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천국은 성 프란치스코의 천국이라고 한다.

◎토미즘(thomisme):원래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 체계나 그 학파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인간의 자유와 신의 은총의 문제에 관해 몰리니즘과 대립되는 사상으로서의 토미즘은 바네스(1528~1604년:스페인 신학자)가 토마스 철학사상을 토대로 하여 확립해 놓은 학설을 가리킨다. 이 학설은 아리스토텔레스적, 토마스적 철학의 핵심 면제인 "무엇이나 움직이는 것은 타자에 의해 움직인다"라는 원리를 토대로 해서 인간의 자유와 신의 은총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인간의 자유 의지도 가능태에 있는 한, 절대로 자력에 의해서 어떤 행위를 선택할 수 없으며 반드시 순수 현동자인 신의 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