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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화, 미술

' 아브라함의 영접을 받는 세 천사 / 죠바니 바티스타 티에플로 '


제목 : 아브라함의 영접을 받는 세 천사 (1726- 1729) 작가: 죠반니 바티스타 티에플로(1696-1770) 크기 : 4,000 X 2,000cm . 프레스코 소재지 : 이태리 우디네(Udine) 대주교관저

이 그림은 창세기 18장 1- 15절에 나타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야훼께서 마므레의 상수리 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문 어귀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어 웬 사람 셋이 자기를 향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들을 보자 천막 문에서 뛰어나가 맞으며 땅에 엎드려 청을 드렸다. 손님네들, 괜찮으시다면 소인 곁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물을 길어 올 터이니 발을 씻으시고 나무 밑에서 좀 쉬십시오. 떡도 가져 올 터이니 잡수시고 피곤을 푸신 뒤에 길을 떠나십시오. 모처럼 소인한테 오셨는데, 어찌 그냥 가시겠습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아 !그렇게 하여주시겠소?”(창세기 18: 1-5)

이것은 크리스챤이 믿는 하느님의 중요한 속성 ,즉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표현하는 것이며 크리스챤 영성의 중요 부분인 환대(Hospitality)의 아름다운 모습을 전하고 있다.

작가는 이 그림을 통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세 명의 나그네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듯이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시기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접대가 바로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이라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조화로운 모습을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 자 했다.

작가는 먼저 아브라함을 겸손한 모습 , 즉 늙은 노인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생면부지의 젊은이들을 자기 집에 초대하는 모습으로 그리면서 이웃사랑의 실천은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와의 관계성 즉 수직이나 종속관계가 아닌 ,오히려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사람을 상전처럼 대하는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랑의 복음적 관계성을 표시하고 있다.

그 위에 있는 세 명의 천사는 신적인 권능을 가진 힘 있는 모습이 아닌 곱상한 젊은이로서 그리면서 하느님의 모습을 누구나 받아들이기 부담 없는 친근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부각시키고 있다.

왼쪽 중간 잘려진 푸른 나무에 움트는 가지에 있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늙으막에 아들을 얻을 아브라함의 축복을 암시하는 것인데, 18장 10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 내가 틀림없이 찾아오리라 , 그때 내 아내 사라는 이미 아들을 낳았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품에 이사악이라는 멋진 아들을 안겨 주심으로서 믿는 사람에게 언제나 새로운 꿈과 풋풋한 희망을 선사하신 분이심을 이 나무 가지가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 전체에서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하느님 신성의 표현이 우리 삶의 정황과 동떨어진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만난 젊은이 모습의 하느님처럼 우리 주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인간적인 만남을 신앙으로 승화시킬 때 체험할 수 있는 것임을 이 작품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전례용이 아닌 대주교 관저의 장식용이긴 하나, 교회 지도자로서의 복음적 태도가 바로 섬기는 역할임을 이 작품의 성격을 통해 정확히 표현한다는 면에선 장소에 어울리는 내용이다

대주교는 자기를 방문하는 모든 신자들을 천사들을 맞는 아브라함의 마음으로 맞겠다는 결심의 표시로 이 그림을 주문했기에 복음의 깊은 내용을 합당한 장소에 잘 표현한 셈이다.

과거 다른 작가들이 표현키 어려웠던 경쾌하고 화려한 형상처리는 유럽 왕가의 기호에 맞아 여러 왕실의 초청을 받았으며, 스페인에 가서 마지막 인생의 8년을 보내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으나 신고전주의의 탄생으로 사람들의 기호가 변하면서 작가가 주제로 삼은 희랍 신화적 환상이 유행에 뒤떨어진 것으로 평가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게 되자 화려한 시작과 달리 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작가로서의 삶을 마무리 하게 된다.

작가로서의 이런 생애는 우연스럽게도 베네치아 공화국의 역사와 보조를 맞추는 셈이 되었는데, 그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시기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였으며 그의 죽음은 공화국의 몰락을 바로 앞둔 시기였음을 생각하면 이 작품과 작가의 인생에서 우리가 꾸리기로 힘써야 야 할 멋진 삶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베네치아의 역사를 기록한 시모노 나나미는 베네치아 역사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성자(盛者)는 필쇄(必衰)”라는 역사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갯펄이라는 열악한 자연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이룬 풍요를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키면서 즐기다 천운(天運)이 다 했을 때 지는 벚꽃 처럼 산듯하게 사라진 베네치아의 역사야 말로 언젠가 한번은 떠나야 할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과거 선배들이 남긴 유산의 바탕위에 자신의 독창성을 가미한 새로운 형상미학을 창출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생기와 기쁨을 선사하면서 작가로서의 영광을 누리다 새로운 화풍이 일어나자 혼연히 영광의 자리를 넘겨 두고 떠난 티에플로의 삶과 작품은 언젠가 떠날 운명의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조그만 이익을 얻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훼절과 변절을 반복하는 추한 모습으로 살기보다 지조를 지키며 기품 있고 아름답게 살다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해야 할 때가 되었을 때 부끄러운 흔적을 남기지 않고 떠남이 인간다운 품위 있는 마무리임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 많지 않는 성서적인 내용의 작품을 제외하고 현대인들에게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여 다소 생소한 희랍신화나 환상적인 사건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을 대할 때 관객들은 비발디의 음악처럼 경쾌한 삶을 기쁨을 느끼면서 몰락의 과정에서도 서글픔이나 궁상스러운 뒷모습을 보임이 없이 밝고 당당하게 우아한 모습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한 베네치아인들이 남긴 지혜와 용기를 본받고픈 충동에 빠지게 된다.

<이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