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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화, 미술

" 자비의 어머니 / 피에르델라 프란체스카 "



제목 : 자비의 어머니 (Madonna della Misericordia: 1450)
작가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 1415- 1492)
소재지 : 이태리 산 보르고 세폴크로 (San Borgo Sepolcro) 미술관

작가는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나 작가로서의 입지가 구축되었을 때 자기 고향에 돌아와서 일생을 작품

활동을 했기에 오랫동안 유럽 화단에서 잊혀진 존재로 있다가 근대 미술사가들에 의해 그 가치가 발견되면서 20세기 비평계에서는

 15세기 최고의 화가로 평가되는 작가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고향에 있던 형제단(confraternita)의 요청에 의해 제작된 제단화의 한 부분이다. 형제단은 중세기 평신도 영성 운동

의 하나였으며, 12세기 초부터 이태리를 중심으로 이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은 10세기부터 시작된 페스트나 전쟁과 같은 사회

적 혼란에서 연유된 불안감에서 죄를 뉘우치자는 신앙 각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 이들은 지은 죄에 대한 속죄의 뜻으로 현대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자기 몸에 채찍질을 하면서 죄를 뉘우치는 운동을 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복음적 회개의 진정한 면모를 발견하면서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나타나고 있는 초대교회의 이상 실현을 목표로

정하면서 복음적 성격이 정착된다.

이들은 수도자가 아니기에 서약이나 다른 법적인 의무는 없었으나 교회에서 인준한 규칙을 가지고 교회의 선익이나 이웃 사랑의

실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며, 자기 단체 고유의 복장을 착용함으로서 형제적인 일치와 유대를 강조하게 되고 크리스챤으로서의

 모범적인 삶에의 의무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작품은 아래에 제시되고 있는 대로 그곳 성당의 제단화로 사용되기 위해 제작된 것의 일부분이다. 제단 장식으로 성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1세기 전후였으며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이 14- 15세기부터였기에 이 작품은 제단화가 한창 유행할 때 제작된 것이다.

제단 뒤 장식 벽은 성인상이나 성스러운 도상 표현을 사용했는데, 위쪽에 십자가를 중심으로 해서 여기 소개하는 자비의 성모님 주위

에 당시 귀감으로 공경받던 성인들과 함께 아래 부분에는 주님의 일생을 소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제단화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기에 제단화의 성격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대표작이다 .

이 직품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성모님의 삶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중요한 속성인 자비와 사랑이다. 이 작품을 제작한 형제단은

 코린트 전서 12장 14- 26의 말씀을 통해 -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몸의 지체들 가운데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더 요긴합니다.” - 드러난 모든 것을 사랑하시고 배려하시는 하느님 자비의 표현에 깊은 공감을 느끼며 이것의 실천

과 증거를 목표로 설립된 형제단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자비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자신들의 주보로 모시게 되었다.

이들은 전쟁이나 질병 등의 사회적 불안 요인이 팽배할 때 빠지기 쉬운 기복적인 경향과 현실 도피적 개인 신심생활 위주의 신앙태도

에서 벗어나 하느님 자비의 실천이라는 이웃사랑의 관점으로 활동 방향을 정한 것은 대단히 예언적인 것이라 볼 수 있다.




성모님의 머리에는 황금빛 왕관이 씌워져 있다. 이것은 성모님은 큰 믿음으로 하느님이 은총을 가득히 받은 여인(루카 1, 28)의 표시

이며, 이런 축복 속에서 성모님은 “전능하신 분께서 큰일을 하셔서,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시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는 ”(루카 1,52- 53) 분이 되셨다.

성모님은 당신의 삶 안에서 자비와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속성을 더 없이 훌륭히 드러내서 피조물로서 더없는 하느님의 영광을 받으

셨음을 표현하고 있다. 아래 전체 도상 가장 위쪽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계시

고 그 아래 성모님이 계시는 것은 바로 “모든 은총의 중개자”로서의 성모님의 역할을 말하고 있다.

성모님의 모습을 위엄 있고 영광스럽게 표현한 것은 메시아 관한 내용인 다음 시편을 상기 시킨다. “인간의 아들네 보다 짝 없이 아름

다우신 용모, 당신 입술에는 은총이 넘쳐흐르기에 주께서 당신을 축복하셨나이다.......당신이 정의를 사랑하고 죄악을 미워하시기에

하느님이 당신의 하느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당신의 동료들 보다 당신을 더 바르셨나이다.” (시편 44, 3. 8)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격언처럼 성모님의 모성은 바위를 뚫는 물처럼 대단히 강인한 힘을 지니셨기에 위험 속에 살아

가는 모든 중생들을 가슴에 품어 그들 각자의 삶에 필요한 지혜와 용기를 주신다.




푸른 색 망토를 늘어트리고 팔을 벌려 서계신 성모님 좌우에 마치 암탉 품에 안겨 있는 병아리처럼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있다.

성모님은 세상살이의 어려움 때문에, 자신의 약함 때문에 힘겨운 현실을 피해 당신 품을 찾는 신자들을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받아주신다.

성모님의 푸른 망토는 그분의 가없는 모성의 상징으로 전통적 성모 신심에서 드러나고 있는 “죄인의 피난처”( Refugium Pecatorum)

로서의 역할의 현실성을 상징하고 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해 빌어 주소서.”라는 성모송의 현실성을 드러내고 있다.
형제단 회원들이 무릎을 꿇고 자기 형제단의 목표인 “하느님 자비”의 산 증인인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고 있다. 피렌체 근방에서 시작

된 형제단은 직업별 동업조합의 성격을 띄고 있었는데,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신앙 안에서 서로 상부상조하며 여력을 모아

 자선사업을 하기도 했다.

유명한 피렌체의 “꽃의 성모 대성당”은 당시 이 도시 양모(瀁毛) 업자들의 형제단이 주축이 되어 건축되었을 만큼 이들의 신앙 열기

는 구체적 지역사회와 교회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여기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은, 당시 사회 수준으로는 중류 이상의 계층에 있는 안정된 삶을 꾸리던 사람임을 그들의 복장에서

볼 수 있다.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이 아닌 세상의 눈으로 보면 성공하고 풍요로운 삶을 꾸리던 사람이었지만 이들은 참된 삶의 진리

를 깨친 사람들이다.

세상 것은 어떤 것이라도 잠시 지나가는 허망한 것으로 여겨 영원한 생명을 찾기 위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매달리고 있는 영적

 구도자들이며 시편 62편 2절의 기도를 연상시킨다: “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히 찾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작가는 하느님의 자비 체험에 대한 높은 이상을 여기에서 제시하고 있다. 보통 자비와 사람을 말할 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그

곤궁한 처지를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서 생각하나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사람들도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하느님을 찾았을 때 삶의

 정상에 오를 수 있기에 하느님의 자비 체험은 모든 크리스챤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단계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당시 사회 수준으로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성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이 모습에서 중세 사회의 건강한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감동은 어줍잖은 부분에서도 찾을 수 있다. 4명의 단원 가운데 붉은 옷을 입은 사람 옆에 복면을 쓰고 철저히 자신을 숨기

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바로 이 작품을 성당에 봉헌한 기증자이다.

이 기증자는 상당한 액수의 이 작품을 봉헌하면서 복음이 말씀하신 다음 구절을 명심하며 살았기에 자신의 선행을 숨기기 위해 두건

을 쓰고 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자선을 숨겨 두어라.“(마태오 6, 3)


이런 선행의 정신을 이 작품 뿐 아니라 중세기 교회 예술에서 예외 없이 표현되었기에 많은 성미술 작품들의 작가가 익명으로 남아

있다.

하느님께 받은 재능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마음으로 했기에 자기 이름을 남기기를 몹시 자제 했으며 이 기증자 역시 그런 마음이었기

에 복면을 쓴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는 자기선전의 시대이며 이것이 성공과 출세의 지름길로 여기기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자기 존재를 과시하는데 대단한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이것은 어떤 때 교회생활에서도 예외가 아닌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교회 역시 인간들이 모인 곳이기에 그러려니 한다면 별 문제이지만, 교회는 복음을 외치는 곳이 아니라 복음을 보여주고 증거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거룩한 것을 등에 업고 자기 과시를 한껏 하고자 하는 얄팍한 신앙의 표현은 마음을 좀 씁쓸하게 만드

는 현실이다.

두건을 쓰고 등장하고 있는 이 기증자의 모습은 자기 과시에 혈안이 되어 우리가 자칫 잊기 쉬운 신앙의 중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 작품과 비슷한 년대에 만들어진 "Sub Tuum"이라는 성모 찬송가의 내용은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에 매달리고픈 너무도

인간적인 공감대를 지닌 이 작품과 너무 어울리는 내용이다.

“천주의 성모님 당신의 보호에 우리를 맡기오니, 어려울 때 우리를 버려두지 마시고 모든 위험에서 항상 구하소서.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여 ! ”




마지막 아래 부분은 이 작품을 담고 있는 제단화의 전체이다. 전체를 천천히 살피노라면 가톨릭 신앙의 심오하면서도 너무도 인간적

인 따스함을 체온처럼 느낄 수 있다. 이 한폭의 제단화는 문맹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신자들에게 대단한 설득력있는 복음 선포가 될

수 있었고, 이것을 바라보며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은 교회 전통에서 영글은 다음과 같은 사은 찬미가(Te Deum)의 아름다운 음률

에 도취될 수 있었을 것이다.

“찬미하나이다 우리 천주여, 주님이신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영원하신 아버지를 온 세상이 삼가 받들어 모시나이다.

엄위로운 당신의 영광 하늘과 땅에 가득도 하시어라.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의 대열, 그 보람 뛰어나신 선지자의 대열,
눈부시게 무리진 순교자들이 아버지를 높이 기려 받드나이다.

우리도 성인들과 한몫에 끼어
영원토록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