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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화, 미술

"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 / 엘 그레코 "


제목 :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 (Il seppelimento del conte di Orgaz) 작가 : 엘 그레코 (El Greco, 1541- 1614) 크기 : 460 X 360cm.켄버스화 (1586-1588) 소재지 : 스페인 톨레도 성 토마스 성당

<그리스인>이란 뜻의 엘 그레코는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의 속지였던 그리스의 크레타(Creta)에서 태어나 베네치아, 로마를 거쳐 스페인 톨레도(Toledo) 에 정착해서 작가로서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의 이런 오딧세이적인 인생 여정은 비잔틴, 베네치아, 로마 등 서로 다른 화풍을 폭넓게 섭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톨레도에 정착해서는 당시 스페인을 지배하고 있던 반종교개혁의 정신에 전적으로 공감해서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톨릭 교리를 전해야 한다는 확고한 사명감으로 작품 활동을 했는데, 이 결과는 후대 사람들에게 놀라운 감동을 주는 독창적인 걸작을 많이 남기게 되었다.

작가로서의 특징은 당시 많은 대가들이 따뜻한 적색과 갈색 계통의 색채를 선호했던 시대에 이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차갑고 푸른 색채와 은회색조를 사용했으며, 차가운 색조, 거친 광선, 전통 규범에 대한 경시와 인물상들에 깊이 드러나고 있는 정신은 그의 천재성을 드러나게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으로서, 1312년 톨레도의 귀족 돈 곤잘레스 (Don Conzales Ruiz) 백작의 장례식 때의 일화를 그린 것인데, 당시 스페인은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더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에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이런 스페인적인 성향을 완벽히 표현했다.

백작은 평소 교회와 수도회에 많은 도움을 베풀어 신분적 고귀함뿐만 아니라 신앙의 고귀함으로 널리 존경을 받던 분이며 그의 정성은 당대에 그치지 않고 사후에도 유언으로 이어져서 250년 동안 매년 양 두 마리, 닭 열여섯 마리, 미사주 두병, 두 수레 분의 땔감, 800냥의 성금을 그가 다니던 아우구스티노 수도원에 헌납할 것을 유언으로 약속할 만큼 나눔을 삶으로 사신 분이었다.

유언서의 작성은 반드시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해야 한다는 중세 유언의 주요 내용은 교회나 수도원에 대한 기부였으며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나눌수록 구원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마태오 복음 25장의 사상이 13세기 이래 성직자, 귀족, 시민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고 백작은 바로 이런 실천의 대표자였으며, 이 장례식에 순교자 성 스테파노 부제와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나타나 백작을 추모하면서 “하느님과 그 백성들에게 봉사한 자의 상급”이라는 찬사를 남기고 승천했다고 전해진다.

이 그림은 두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구름 아래 백작의 장례식이 이루어지는 곳은 현실세계와 심판주이신 주님이 계신 천상 세계인데 양면으로 드리는 구름 사이 좁은 통로를 통해 천국으로 연결되고 있다. 심판주로서 그리스도께서 성모님과 사도 요한과 여러 성인들에 둘러 쌓여 있는 것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연상시키는 데, 사실 작가는 로마에 머물면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깊은 감동을 받아 이 작품에서 바로 그 감동을 재현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하늘의 영광”을 과거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법으로 표현했다. 즉 여기 천상 세계는 과거처럼 정적인 조용한 공간이 아니라 물결치듯 움직이는 동적인 공간으로 표현되면서, 주님 아래 오른 쪽에 천국 열쇠를 쥐고 백작의 영혼을 기다리고 있는 성 베드로와 성모님, 특히 세례자 요한의 길게 늘어트려진 벗은 몸은 신비감을 더하고 있다.

성모님의 붉은 옷자락 아래 있는 천사의 손에 안긴 은회색 번데기 모습, 혹은 포대기에 싼 아기 모습 같은 것은 공작의 영혼인데, 이 표현은 작가가 고향에서 익힌 비잔틴 양식의 전형적인 표현이며, 비잔틴 양식에서는 <성모승천> 그림에서 예수님이 당신 모친의 영혼을 아기 안으시듯 안고 계신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에 주님께 바쳐지기 위해 천사의 손에 들린 공작의 영혼은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고귀한 영혼임을 표시하고 있다.

아래 부분의 장례식에는 톨레도 시의 유명 인사들이 다 모여 엄숙한 표정으로 성 스테파노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부축을 받아 무덤에 안장될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는 백작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이 그림에 자신의 모습도 그려 넣었는데, 백작의 시신을 부축하고 있는 성 스테파노의 머리 바로 위에서 슬픈 표정으로 관객을 바라보는 인물이 바로 엘 그레코이다. 성 스테파노의 뒤편에 서 있는 큰 모습의 프란치스칸은 당시 스페인에서 프란치스칸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증거이다.

작가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스페인에서 시작된 도미니코회 등 내노라 하는 수도회가 많았는데, 프란치스칸을 크게 등장시킨 것은 당시 스페인에는 성 안드레아 사도의 공경이 대단했는데, 작가는 안드레아 사도와 함께 성 프란치스꼬를 그릴만큼 당시 민심은 프란치스코에 대해 대단한 사랑을 보이고 있었기에 여기에 프란치스칸이 큰 모습으로 등장하고,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지만 작가의 그림 중 성녀 막달레나와 성 프란치스코가 유난히 많다.

반대편에 중백의를 입고 등을 돌리고 있는 사제는 이 작품의 의뢰인이며 작가의 본당 신부였던 안드레스 누네스 신부인데, 그가 입고 있는 모시처럼 아른하게 속이 비치는 중백의를 통해 작가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그가 베네치아에 머무는 동안 대가로 활약하고 있던 야고보 바사노의 작품을 참조한 것이며 장례식에 늘어져 있는 횃불 역시 16세기 후반 베네치아 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며 분위기의 장엄함을 더하고 있다.

스테파노 곁에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년은 작가의 아들이자 미래의 조수였던 호르헤 마누엘인데 소년은 관객을 바라보는 몇 안 되는 인물의 하나로 모두 백작에게 시선을 둠으로서 무위로움을 느끼기 쉬운 작품에 관객들과 연결고리를 만듦으로써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 소년이 손가락으로 백작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당시 강조하고 있던 가톨릭 신학, 즉 평소에 선행을 베풀면 하늘에서 많은 상급을 받는다는 것의 대표 인물로 바로 이 백작을 제시하는 것이며 이것을 통해, <홀로 믿음만으로>라는 기치로 선행의 중요성을 등한시하는 개신교 신학에 정면 도전장을 보내고 있다.



벗은 몸차림의 세례자 요한 뒤편에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은 작가 당시 스페인을 주무르던 필립페 2세인데, 왕은 에스코리알 궁전을 위해 그림을 그린 작가를 탐탁지 않게 여겼는데도, 작가는 자기 작품을 인정해달라는 아부하는 태도로 그를 성인들 반열에 넣었다.

가톨릭 신앙의 단일성에 너무 집착해서 유대인이나 이슬람의 피가 섞인 사람들, 개신교 신자들을 공포에 빠트린 장본인인 왕을 천국 성인들의 반열에 끼워 그린 것은, 그의 소신 있는 작품 경향에 비겨 아부적인 표현이며 작가의 삶 전체에 있어 옥의 티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왕으로부터 홀대 뿐 아니라, 그의 죽음과 함께 명성도 사라졌으나 300년이 지난 후 그의 작품이 북유럽 전위 작가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독일과 프랑스에서 작가는 모더니즘을 향한 발전의 선구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 그림의 백미는 아래 부분에 황금색 옷을 입고 백작의 시신을 안치하고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스테파노 부제이다.

성 스테파노는 그의 신분인 부제복을 입고 있는데, 그가 입은 부제복 밑 부분에 그의 순교 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때 묻지 않게 인생을 산 젊은이의 귀공자다운 청순한 모습임에 비해 성 아우구스티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노인의 모습으로 주교관을 쓰고 계신다.

성 스테파노를 여기 등장시킨 것은 그의 순수한 신앙과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주님을 증거했던 용기, 순교의 순간에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 오른편에 사람의 아들이 서있는 것이 보인다.”(사도행전 7, 56)는 고백처럼 신앙의 증거를 위해 생명까지 바치면서 고귀한 삶을 살았던 그의 삶의 모습을 통해 백작의 고귀한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즉 일생 사랑의 실천으로 일관된 백작의 죽음은 무덤에 묻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열린 것을 바라본 스테파노처럼 하느님의 천사에 의해 천상 영광에로 올라가는 승리의 순간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을 향한 긴 그리움으로 살았던 그의 인생, “하느님 저는 당신을 향해 창조되었기에 당신 안에 쉬기까지 저에게 안식이 없습니다.”라는 말씀같이 백작의 죽음은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처럼 하느님을 향한 긴 기다림을 끝내고 그토록 기다리던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감격의 순간임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작가는 세 주인공을 통해 하느님의 신앙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전하고자 했다. 성 스테파노는 티없이 깨끗한 젊은이로서 인생의 시작인 일출(日出)에 해당한다면, 성 아우구스티노는 온갖 정신적인 방황과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하느님 안에 새로 태어난 늙은이로서 인생의 일몰(日沒)에 해당된다.

작가는 일생을 하느님의 뜻대로 살다가 죽음을 맞은 백작의 고귀한 모습과 인생의 일출과 일몰을 상징하는 두 인물을 대비시킴으로서, 죽음으로 끝나야 하는 인생의 허망함이 아닌 하느님 안에 살아가는 인생은 어떤 처지에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백작의 시신을 둘러싸고 있는 지상 세계 사람들의 표정은 선명한 반면, 천상계의 사람들은 실체가 없는 듯한 희미한 모습으로 그리면서 육체의 한계성을 벗어난 천상 존재의 실체를 전하고 있으며, 광택이 번쩍이는 백작의 갑옷에 나타나는 사실적 표현은 백작이 항구한 신앙 안에서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선행에 몰두한 삶을 살았던 모범적 크리스챤임을 강조하고 있다.

앞 부분에서 언급한 작가의 풍요로운 여정에서의 체험이 이 작품 전체에 드러나고 있기에 우리는 베네치아 화풍의 대표격인 티치아노의 화려하고 우아한 색채, 르네상스의 대표격인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로마식 구성, 그의 고향 크레타에서 도입한 비쟌틴 아이콘의 신비로움, 야고보 틴토레토(Tintoretto, 1519-1594)와 야고보 바사노(Jacobo Vasano, 1510-1592)가 사용한 마법과 같은 빛, 후기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연결하던 가교 역할을 했던 메너리즘(Mannerism)의 비틀린 몸짓 등, 너무도 다양하고 풍요로운 예술의 표현들을 이 작품 전체에서 찾아 볼 수 있기에 이 작품은 내용과 표현과 규모에 있어 너무도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대작이다.

이 작품에서 더 중요한 것은 성당에 걸린 이 작품 바로 밑에 백작의 실재 무덤이 어서 이 작품 앞에 서면 그림속의 백작의 시신이 바로 무덤으로 내려가는 것 같은 현장감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오늘도 많은 관람객들을 끌어 들이고 있으며 천상과 지상의 복합적 요소가 엉켜 있으면서도 완벽한 질서와 조화를 보이는 이 작품 앞에 서는 관객들은 죽음의 슬픔이나 무게에서 벗어나 위령 감사송이 주는 아름다운 감동에 빠지게 된다.

“과연 주님을 믿는 이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이 세상에서 깃들어든 거처가 허물어진 다음에는 천국에서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리라 믿나이다.”

이 작품은 죽음은 삶의 연장이요 삶의 일부이기에 멋진 죽음을 맞는다는 것은 멋진 삶을 산다는 것과 같다는 강력하면서도 매력적인 메시지와 함께 죽음의 축제성을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죽음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유효하게 쓴 하루의 마지막에 기분 좋은 잠이 찾아오듯이, 유효하게 쓴 일생의 끝에는 기분 좋은 죽음이 찾아온다.”

우리 천상병 시인도 <귀천>에서 다음과 같은 죽음의 미학을 전하고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위령성월에 들어야 할 화두로서는 너무 평범한 느낌도 들지만 크리스챤에게 있어 죽음의 묵상이란 어떤 행사성이 아닌 일생 곱씹으며 살아야 할 화두라는 관점에서 적당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