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테레사 기념관 앞에 세워진 동상.
마더 테레사는 1910년 8월27일에 마케도니아의 스코프예(현제수도)란곳에서 태어났다.
3남매중 막내였고 이름은 '꽃봉오리'라는 뜻을 지닌 아그네스 곤자였다.
아그네스의 가족들은 모두 믿음이 깊은 가톨릭 신자여서 그녀의 어머니는
아그네스와아그네스의 언니,오빠에게 항상 기도하라 가르쳤고 가난한사람을 도와주라고 가르쳤다.
그러던중 아그네스가 9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그네스는 어머니께서는 잠시 기운을 잃으셨다가 다시 기운을 찾으셔서 옷감이나 수예품을팔아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을보고 어린 아그네스는 이런 어머니에게서 어려움과 가난을 이기고 힘차게 살아가는 것을 배우게되었다
그러나 아그네스는 18세가 되던해에 수녀가 되어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수녀가 되어 떠나면 다시는 볼수 없을지도 모른다는것을 알고있었지만 가난한사람들을 도와주려는 딸의 마음을 이해하고 도와주었다고한다.
아그네스는 인도지방에서 봉사하고있는 단체인 로레토 수녀회에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면접을 봐서 통과,수녀가 되기위한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1929년 아그네스는 수녀가 되기위해 테레사라고 이름을 바꾸고 테레사란 이름은 리지에수녀원에서 일생을 마친 프랑스 수녀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1931년5월24일에 테레사수녀는 가난하게 살고 순결하게 살겠다고 맹세하고 거대한 히말라야 산기슭의 작은 구릉에 있는 다르질링으로 파견되었다. 그 마을 한 곳에 자라잡은 로레토 수녀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기도 했다.
테레사수녀는 다르질링에서 임기를 마치고 캘커다로 돌아와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다.
그러던 1937년5월14일 테레사 수녀는 일생을 하느님께 바치겠다는 종신서원을 했다. 이것으로 테레사 수녀는 수녀가 되겠다고 결심한지 10년만에 비로소 진정한 수녀가 된것이다
마더 테레사는 사랑의 선교회를 만들어 기도와 검손,사랑이 담긴 봉사
정신으로 자선활동을 폄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회망과 사랑을
불어 넣어준 20세기의 성녀.
1979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프예에 있는 기념관에는
많은 유물과 생전의 사진이 있다
마더 테레사는 사후 교황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시복되어 "켈커타의 복녀 테레사"라는
호칭을 받음.
1980년에 인도의 가장높은 시민 훈장인 "바라트 라트나"를 수여받음.
1983년에는 영국 명예 "메리트"훈장 수훈.
1950년 인도에 귀화.
1997년 9월5일 켈커타에서 사망,9월13일 인도 국장으로 장례.
마더 테레사가 사용했던 침실.
마더 테레사가 사용헸든 식틱.
마더 테레사가 출생 하고 살았던 집의 모형.
테레사 부모님은 알바니아에서 출생.
기념관
옆에서 본 기념관
기념관은 시내 중심지 번화가에 있다.
아담한 2층의 기념관 모습.
기념괸 2층에서 바라본 입구.
기념관 이웃.
기념관 2층에서 바라본 이웃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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