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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화, 미술

** 산드라 보티첼리 / 성모 찬송 **



제목 : 성모찬송 (Madonna del Magnificat: 1480)
작가 : 산드로 보티첼리 :Botticelli Sandro (1445- 1510)
크기 : 템페라 118cm
소재지 : 이태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중세기의 종말과 함께 근세로 나아가기 위한 발돋음의 계기가 된 르네상스 운동은 중세 교회 가르침이 너무 신적인 것의 강조를 질식되어 있던 인간성과 문예부흥의 기치로 시작되었으며 그 진원지가 바로 피렌체였다

작가는 이 도시의 출신으로 섬세하고 세련되며 박학한 인품으로 작가의 삶 자체가 바로 르네상스를 대변한다고 여길 수 있을 만큼 르네상스 피렌체의 대표 인물이었다.

금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나면서 가계의 영향으로 그에겐 진하면서도 수려한 예술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부터 그의 자질을 인정한 아버지는 당시 피렌체의 실세인 메디치 가의 후원을 받으며 이태리 전체에 명성을 떨치던 필립보 리피 (성화해설 86번)의 문하에 들어가 수습생으로서 교육을 받게 했으며 이것은 그의 작품성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종교화는 대부분이 성모화이나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은 백미에 속하는 것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그리게 된 데는 시대적인 요청이 있었다.
바로 3 년전 피렌체에 페스트가 발병해서 수천 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있었다.
중세기의 페스트는 인간이 손을 쓸 수 없는 천형과 같았기에 많은 시민들이 죄를 뉘우치며 하느님께 매달리게 되었다.

이런 처지에서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 작품은 바로 성모님께 대한 지극한 신심을 가진 어떤 신자의 요청으로 제작되었다.






이 그림의 액자는 전체가 도금된 틀안에 모셔져 있기에 작품의 고귀성을 더하고 있다.

아기 예수님을 안으신 성모께서 두 천사의 옹위로 왕관을 받고 계신다.
두 천사는 기품 있게 성모님의 머리 위로 우아한 왕관을 받들고 있다

두 천사의 옹위로 성모님의 머리에 씌여지는 왕관은 너무도 고급스러워 작가의 집안의 내력인 금세공을 상기시키고 있다.
아 왕관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별들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성모님의 존재성이 암흑 속을 거니는 중생들의 인도자로서 새벽 하늘을 비추는 "샛별"임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의 성모님은 "하늘의 여왕"이시다.
오늘도 성모찬송으로 많이 불리고 있는 "하늘의 영원한 여왕"이시다.

성모님을 보필하는 천사들은 전통적 성화에 나타나고 있는 날개 달린 천상의 존재가 아니라 당시 대단한 부를 누리고 있던 피렌체의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멋쟁이 젊은이들이다.
성모님의 옷차림은 하늘의 여왕임이 무색 할 만큼 많은 금별이 박힌 왕관에다 옷감 역시 대단한 것이다.

성모님을 위시해서 등장하는 천사들은 하나 같이 세련된 모습에다 그들의 복장 역시 한곳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모습이어서 풍요시대에 가능한 삶의 여유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성모님은 천사의 옹위 속에 왕관을 쓰고 계시면서도 그 표정은 환하지 않으며 무었인가 애잔스러운 근심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
이것은 작가의 깊고 정확한 주님 수난 신앙의 표현이다.
성모님은 당신 아들이 겪어야 할 십자가의 죽음을 미리 예견하셨다
성모님은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시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났던 예언자 시메온의 다음과 같은 말을 가슴에 간직하고 사셨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트리기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 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 루까 2:34)





아기 예수님은 오른손은 루가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성모찬송을 쓰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붙들고 있으며 왼손엔 석류를 잡고 계시는데, 표정 역시 어느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밝은 표정이 아닌 무었인가 깊은 상념에 잠긴 모습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들고 계신 석류에서 드러난다
중세기 작가들은 작품 안에 많은 상징을 사용했는데, 석류는 그 속이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열매로 가득 차있기에 자연스럽게 주님 수난의 상징이되었다.


성모자는 "하늘의 여왕"이라는 큰 영광의 순간에도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십자가의 역설과 지혜를 관객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성모자와 천사들의 뒷 배경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펼쳐 져 있다.

성모자와 천사들의 배치를 볼 때 실내를 연상시킬 수 있지만 작가는 관객들을 아름다운 자연 풍경으로 인도하고 있다.

이것 역시 작가가 지녔던 국제적 안목의 표현이다.
무역업의 수준이 대단했던 피렌체인들은 이웃나라를 여행할 기회가 많았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국제적인 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

당시 북부 유럽에 속하는 네델란드에는 이런 풍경화 기법이 발달했는데, 작가는 바로 이 방법으로 성모자의 뒷면을 장식해서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등장하면서 생길 수 있는 답답한 분위기를 배제했다.





또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곳에서 성모자의 우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인물들 간의 비례를 주위 깊게 배려해서 주인공인 성모자의 위상을 자연스럽게 격상시키고 있다.

다섯 명의 천사 중 성모님의 왕관을 들고 있는 두 천사와 성모님의 붓든 손을 잡고 있는 천사는 성모자를 응시하고 있고 다른 두 천사는 성모님이 쓰시는 성모찬송을 바라보고 있다.



이 부분에서 또 작가의 대단한 신앙이 드러난다.
성모님은 가브리엘 천사의 예고로 구세주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을 들었을 때 "주님의 여종이니 지금 말씀하신 바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라는 응답을 하신 후 루까복음 1;46- 55에 나타나는 성모찬송을 노래하셨다.

그런데 작가는 이 부분에서 성모님은 아들 예수님을 육신의 아들이 아닌 하느님의 성자로 받아들여 그분의 지시에 따라 찬송을 하는 듯 아기 예수님의 손이 당신 어머니의 손을 인도하고 있다.

요한 복음 저자는 예수님이 첫 번째 기적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행하실 때 일꾼들에게 "무었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하셨는데, 여기에서도 성모님이 직접 아들 예수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으로 표현함으로서 성모님은 구세주의 어머니임과 동시에 가브리엘 천사 앞에서 바친 " 보십시오 ,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루가 1: 38)하신 말씀을 충실히 실천하는 크리스챤임을 보이고 있다.

아기 예수님의 앙징스러운 손으로 부축받은 성모님의 손끝은 잉크를 들고 있는 천사의 손끝과 연결되어 하느님의 사랑받는 피조물인 인간과 천사과 하느님의 뜻안에서 어우러진 조화로움을 보이고 있다.





예수님의 도움으로 성모님은 대단한 찬송을 하고 계신다.
오른 편에는 루까복음 1: 46- 55의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라는 말로 시작되는 성모찬송인데, 성모님의 찬양 이유는 성서의 다음 말씀에서 드러나고 있다.

" 그분께서는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시어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니 "( 루가 1: 48 )


왼편은 루까 복음 1: 68-79에 나타나고 있는 " 주여 이스라엘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라는 말로 시작되는 복음 찬송이다.

이것은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인 즈카리아가 늘그막에 하느님의 도움으로 아들 요한을 얻은 후 감사의 마음으로 바친 것이다.

작가가 이 찬송을 등장시킨 것은 피렌체의 주보 성인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었기 때문이다 .
작가는 여기에서 성인에 대한 공경과 함께 이 작품을 통해 피렌체 시민의 자부심과 목숨을 바치면서 까지 주님 오심을 준비했던 세례자 요한을 주보로 모신 크리스챤으로서 신앙을 일깨우고 있다.

작가는 천성적으로 르네상스적인 기질이 있기에 화려하고 멋진 르네상스적인 표현을 작품을 통해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지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