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論 / 교회 51 회
원초공동체의 자기 이해 : 예루살렘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을 ‘상도’ (사도
9, 1. 32. 41 : 26, 10 : 로마 15,25 이하 31 : 1코린트 16, 1)로, ‘하느님의 공동체’
(갈라 1, 13 : 1코린 8, 4)로, 표시하였다. 하느님 공동체는 구약의 ‘카할 야훼’ 라는
표현을 통해 신학적으로 규정된 자기 이해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을 유대
그리스도적 공동체 (1테살 2, 14 : 1코린 11, 16)와 바오로 공동체 (코린트 교회 :
1코린 1, 2 : 10, 32)에 전수되었다. 바오로는 지역 공동체를 부를 때에는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1코린 1, 2 : 2코린 1, 1). 이로써 에클레시아는 처음부터 새 하느님 백
성의 전체성을 알 수 있다 (사도 9, 31 : 20, 28 : 1디도 3, 51, 51). 첫 공동체, 예
루살렘의 원초 공동체에 대해서 사도행전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들은 사도들
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 .믿
게 된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
로 내어 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
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사도 2,
42-46). 새 하느님 백성이 성령으로 가득 채워진 데서 사회적 장벽들이 지양되고, 근
원적인 형제애가 실천으로 옮겨지며, 폭력의 포기가 실현된다. 이 공동체는 “서로 함
께“의 실천으로 특성지어진다. (G. 로핑크). 이런 교회의 조성과 보전, 장려와 실현
을 바오로는 “오이코도메인(건설하다)” 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
면 그 공동체는 실제 그렇게 이상적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리스계 산자들과 유다
계 신자들 사이에 생긴 마찰과 긴장이라든지 (1고린 1, 10 - 17), 온갖 부정과 패륜
이 단죄되고(1고린 5장), 음행 (1고린 6장) 과 우상 숭배 (1고린 8장)가 경고되는 것
등이 이를 입증한다.
참고 : 한국가톨릭대사전 제2권 1995년 판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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