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브레이트 듀러 (Albrecht Durer, 1471-1528, 독일)
벌써 부터 나눔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러 사정으로 차일피일 하던 것을
이제 시작하면서 지금이 제때란 생각이 든다.
대림절은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새로움을 시작하신 것이니
여기에 걸맞는 시작의 차원에서 중요한 것이라 믿는다.
요즘 종교 미술에 대한 소개가 일반 서적에서도 심심찮은 것을 보면
수도자이기 이전 이 세상 사람들과 대화를 위한
상식 차원에서도 필요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현대인들이 신앙을 떠나 있으면서도 종교 예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절대적 가치의 추구에 대한 집념 때문이다.
종교가 집단화되고 제도화 되면서 자기 집단의 이익에 너무 몰두하다보니
사람들에게 종교가 줄 수 있는 순수함에 대한 매력을 상실한 처지에 사람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순수함을 전해 주는 종교 예술로 마음이 쏠리게 되었다.
영국 성공회의 총본산인 런던의 성 바울로 대성당에는 이런 안내문이 있다.
“인간은 자기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선물로 여겼기에
자기의 가진 가장 좋은 것을 하느님께 바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
이것이 바로 종교 예술로 승화되었으며
대성당은 바로 이런 인간의 아름다운 정성들이 모인 보물 창고이며
이 대성당의 방문을 통해 하느님의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제도적인 종교에 실망과 혐오감을 느끼는 현대인들도
종교 예술에는 변함없는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바로 아직도 종교에서 가장 근원적이고 순수함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라 생각한다
“시작이 반이란” 말이 아니더라도
시작은 이 전개의 성격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중요히 여기는데,
나는 시작으로 독일의 알브레히드 뒤러(Albrecht Durer)로 시작하고 싶다.
종교 예술이라면 이태리를 위시해서 스페인, 프랑스 등 라틴 문화권이 본산인데
독일 작가로 시작하는 데는 뜻이 있다.
그가 태어났던 뉴른베르그는 교역의 중심지로서 많은 부를 축적함으로서
여러 가능성을 키울 수 있었고
문화도시로서 종교 개혁과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본산이 되었고
뒤러는 이 도시의 성격을 대표할 만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1471년 당시 단단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던 금속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으면서
부모의 사회적 기반과 재력의 도움으로 휼륭한 스승의 지도 아래
예술가로서의 단단한 소양을 쌓은 후
젊은 나이에 당시 예술의 본거지인 베네치아에 가서 르네상스 기법과 함께
국제적인 안목을 키운 후 귀국해서 고향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화가이기 이전 사상 면에 있어서도
당시 유럽 사회를 풍미하던 로텔담의 에라스무스를 위시해서
여러 인문주의들과 깊은 교류를 가짐으로 균형있는 감각과
종교에 대해서도 성숙한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투병중인 어머니의 쾌유를 위해
하느님께 매달릴 만큼 열심한 신자였으나,
당시 교회의 제도적인 면과 성직자들의 횡포에 대해선 강한 거부 반응을 표시했으며
이 도시가 개신교의 도시로 변하는 과정에서 그 역시 개신교로 개종하게 된다.,
즉 그는 십자군 전쟁, 종교재판 등으로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사회의 거대한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부패한 교회는 개혁되어야 하고
루터는 바로 복음으로 교회를 개혁하려는 지도자로 보고 존경했다.,
이 작품은 작가가 르네상스의 도시로써 큰 역할을 하고 있던
베네치아를 방문하고 돌아와 제작한 것으로
작가가 그린 아담과 이브의 그림 중 유일한 유화이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누드화였다.
중세기에 누드로 나선다는데 대한 두려움과 부끄러움 때문에
화가들은 대부분 모델을 사용했으나
그는 다른 사람들이 거북해 하는 것을 자신이 맡는다는 마음으로
거울 앞에선 자기 모습의 누드화를 제작한 2년 후인 1507년 이 그림을 완성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창세기에 나오는
원조의 실락원 사건의 교훈을 주고자 하는게 아니라
인간 나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성서를 이용한 것에 불과했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들고 있으나
그들의 표정은 마치 종교적 교훈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유혹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즉 그는 당시 무르익은 르네상스의 정신대로
세상의 중심은 바로 인간이라는 관점을 강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에겐 관음증이(觀淫症)있으며,
오늘날 “몰래카메라”는 바로 현대적 방법의 관음증 충족이라 볼 수 있다.
인간적인 것에 대한 극도의 자제를 요구하는 중세기에
가장 좋은 재료가 바로 “아담과 이브”이기에 여러 화가들이 이 주제를 그린바 있다.
대부분 작가들은 관람자들에게 교훈을 준다는 뜻에서
아담과 이브의 범죄 후의 고통,
즉 노동과 출산에 시달려야 하는 고통스러운 삶의 그림자를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으나,
이 그림은 하느님이 만드신 작품으로서의 인간,
더 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시원히 표현하면서
인문주의로 단련된 그의 성숙한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은 지금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있으며 2m 가까운 실물 크기의 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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