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
CONSTITUTIO DOGMATICA DE ECCLESIA
LUMEN GENTIUM
1964. 11. 21.
강대인 번역
차례 |
1. 교회, 그리스도의 성사 2. 성부의 보편적인 구원 계획 3. 성자의 파견과 활동 4.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 5. 하느님의 나라 6. 교회의 표상들 7.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8. 가시적이고 영적인 교회 |
9. 새 계약, 새 백성 10. 보편 사제직 11. 성사와 보편 사제직의 수행 12. 하느님 백성의 신앙 감각과 은사 13. 하느님 유일한 백성의 보편성 14. 가톨릭 신자 15. 교회와 비가톨릭 그리스도인 16. 교회와 비그리스도인 17. 교회의 선교 특성 |
18. 서 론 19. 열두 사도의 소명과 선정 20.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 21. 주교직의 성사성 22. 주교단과 그 단장 23. 주교단 안에 있는 주교들의 관계 24. 주교의 봉사 직무 25. 가르치는 임무 26. 거룩하게 하는 임무 27. 다스리는 임무 28. 신부들, 그리스도, 주교, 사제단, 그리스도교 백성과 이루는 관계 29. 부제들 |
30. 교회 안의 평신도 31. 평신도의 본질과 사명 32. 하느님의 백성 안에서 누리는 평신도의 품위 33. 평신도 사도직 34. 사제직과 예배 35. 예언자직과 증거 36. 왕직 37. 교계와 평신도의 관계 38. 세상의 혼인 평신도 |
39. 거룩한 교회 40. 보편적 성화 소명 41. 단일한 성덕의 다양한 실천 42. 성화의 수단과 방법 |
43. 복음적 권고 44. 수도자 신분의 본질과 중요성 45. 교회의 권위와 수도자 신분 46. 수도자의 위대한 봉헌 47. 격려 |
48. 우리 소명의 종말론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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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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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하느님의 계획 53. 마리아와 교회 54. 공의회의 의도 |
55. 구약성서에 예언된 구세주의 어머니 56. 주님 탄생 예고 때의 마리아 57. 마리아와 예수님의 유년기 58. 마리아와 예수님의 공생활 59. 승천 뒤의 마리아 |
60. 마리아와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 61. 구원 협력 62. 종속적인 구원 임무 63. 동정녀이며 어머니이신 마리아, 교회의 전형 64. 동정녀이며 어머니인 교회 65. 교회가 본받아야 할 마리아의 완덕 |
66. 공경의 본질과 토대 67. 사목 규범 |
68. 하느님 백성의 표지이신 마리아 69. 마리아,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한 전구자 |
사전 설명 주석 |
하느님의 종들의 종 바오로 주교는 거룩한 공의회의 교부들과 더불어
영구적인 기록으로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을 공포한다.
교회, 그리스도의 성사
1. 인류의 빛(Lumen gentium)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 모인 이 거룩한 공의회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며(마르 16,15 참조), 모든 사람을 교회의 얼굴에서 빛나는 그리스도의 빛으로 비추어 주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와 같다. 교회는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이므로, 앞선 공의회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교회의 본질과 보편 사명을 자기 신자들과 온 세상에 더욱 명백하게 선언하고자 한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다양한 사회적 기술적 문화적 유대로 더욱 가까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하여야 할 교회의 이러한 직무는 현대의 상황에서 한층 더 절박해지고 있다.
성부의 보편적인 구원 계획
2.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 지혜와 자비의 지극히 자유롭고 심오한 계획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들어 높여 신적 생명에 참여하게 하셨다. 아담 안에서 타락한 인간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골로 1,15) 구세주 그리스도를 보시어, 언제나 인간들에게 구원의 도움을 주셨다. 그리고 성부께서는 모든 뽑힌 이를 영원으로부터 “미리 아시고,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신 당신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다”(로마 8,29 참조). 또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거룩한 교회 안에 불러모으기로 결정하셨다. 이 교회는 세상이 생길 때부터 이미 예표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와 구약에서 오묘하게 준비되었고,1) 마지막 시대에 세워져 성령 강림으로 드러났으며, 세말에 영광스러이 완성될 것이다. 그 때에는, 거룩한 교부들의 기록대로, “의인 아벨부터 마지막 뽑힌 사람까지 ”2) 아담 이래의 모든 의인이 보편 교회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 앞에 모이게 될
것이다.
성자의 파견과 활동
3. 성자께서는 성부에게서 파견되어 오셨다. 성부께서는 성자 안에서 천지 창조 이전에 우리를 뽑으시어 당신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시고, 당신 뜻에 따라 성자 안에서 만물을 새롭게 하고자 하셨다(에페 1,4-5.10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성부의 뜻을 이루시려고, 지상에서 하늘 나라를 세우기 시작하시고 성부의 신비를 우리에게 계시하셨으며, 당신의 순명으로 구원을 성취하셨다. 신비 안에서 이미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나라 곧 교회는 하느님의 힘으로 세상에서 볼 수 있게 자라고 있다. 그 기원과 성장은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창에 찔리신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 나온 피와 물로 상징되었고(요한 19,34 참조),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두고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높이 들리게 될 때에는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할 것이다.”(요한 12,32) 하신 주님의 말씀으로 예고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월절 양으로서 희생되신”(1고린 5,7) 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제단에서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시에 성찬의 빵을 나누는 성사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1고린 10,17 참조) 신자들의 일치가 표현되고 실현된다. 모든 사람이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와 이렇게 일치되도록 불리었으며,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와 그리스도를 통하여 살며 그리스도께 나아가고 있다.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
4. 그리고 성부께서 성자께 지상에서 이루시도록 맡기신 일이(요한 17,4 참조) 성취된 다음, 오순절에 성령께서 교회를 끊임없이 거룩하게 하시도록 파견되셨다. 또 이렇게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성부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에페 2,18 참조). 이 성령께서는 바로 생명의 영, 곧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샘이시다(요한 4,14; 7,38-39 참조). 이 성령을 통하여 성부께서는 죄로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며 마침내는 그들의 죽은 육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시키실 것이다(로마 8,10-11 참조).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그리고 바로 성전인 신자들의 마음 안에 머무르시고(1고린 3,16; 6,19 참조), 그 안에서 기도하시며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하여 주신다(갈라 4,6; 로마 8,15-16.26 참조).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시고(요한 16,13 참조) 친교와 봉사로 일치시켜 주시며, 교계와 은사의 여러 가지 선물로 교회를 가르치시고 이끄시며 당신의 열매로 꾸며 주신다(에페 4,11-12; 1고린 12,4; 갈라 5,22 참조). 복음의 힘으로 성령께서는 교회를 젊어지게 하시고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며 자기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도록 이끌어 주신다.3) 성령과 신부가 주 예수님께 “오소서!” 하고 말씀하신다(묵시 22,17 참조).
이렇게 온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로 모인 백성”으로 나타난다.4)
하느님의 나라
5. 교회의 신비는 그 창립에서 드러난다. 주 예수님께서는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마르 1,15; 마태 4,17 참조) 하시며 오래 전부터 성서에서 약속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심으로써 당신 교회를 시작하셨던 것이다. 이 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활동과 현존 안에서 사람들에게 빛나기 시작한다. 곧 주님의 말씀은 밭에 심은 씨앗과 비슷하여(마르 4,14 참조), 그 말씀을 믿음으로 듣고 그리스도의 작은 양 떼에(루가 12,32 참조) 들게 된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인 것이며, 그런 다음에 씨앗은 저절로 싹이 터 수확 때까지 자라난다(마르 4,26-29 참조). 예수님의 기적들 또한 그 나라가 이미 지상에 와 있음을 증명하여 준다. “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 내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가 11,20; 마태 12,28 참조). 그러나 모든 것에 앞서,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그리스도 자신에게서 드러난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섬기러 오셨고 또 목숨을 바쳐 많은 사람을 구원하러 오셨다”(마르 10,45 참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셨을 때에 주님으로서 또 그리스도로서 그리고 영원한 사제로서 나타나셨으며(사도 2,36; 히브 5,6; 7,17-21 참조), 성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당신 제자들에게 부어 주셨다(사도 2,33 참조). 그러므로 교회는 그 창립자의 은혜를 받아 사랑과 겸손과 극기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며,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를 선포하고 모든 민족 가운데에 이 나라를 세울 사명을 받았으며 또 지상에서 이 나라의 싹과 시작이 된 것이다. 교회는 조금씩 자라나는 동안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분투하며, 온 힘을 다하여 자기 임금님과 영광스럽게 결합되기를 바라고 갈망한다.
교회의 표상들
6. 하느님 나라의 계시가 흔히 표상으로 제시되었던 것처럼 그렇게 지금도 여러 가지 모상으로 교회의 깊은 본질이 우리에게 드러나고 있다. 유목 생활이나 농사, 건축 또는 가정과 부부 생활에서 가져온 그 표상들은 예언서들에 마련되어 있다.
실제로, 교회는 양 우리이며 그 유일하고 반드시 필요한 문은 그리스도이시다(요한 10,1-10 참조). 교회는 또한 양 떼이며, 하느님께서 친히 그 목자가 되시겠다고 예고하셨다(이사 40,11; 에제 34,11 이하 참조). 비록 그 양들이 인간 목자들의 다스림을 받지만, 착한 목자이시며 목자들의 으뜸이신 그리스도께서 끊임없이 그 양들을 기르시고 이끌어 주신다(요한 10,11; 1베드 5,4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양들을 위하여 당신 목숨을 바치셨다(요한 10,11-15 참조).
교회는 하느님의 농사 곧 하느님의 밭이다(1고린 3,9 참조). 그 밭에서 옛 올리브 나무가 자라고 있다. 성조들이 그 거룩한 뿌리이며, 거기에서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의 화해가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질 것이다(로마 11,13-26 참조). 바로 그 밭을 천상의 농부께서 포도밭으로 선택하셨다(마태 21,33-43 병행; 이사 5,1 이하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포도나무이시며 그 가지들인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며,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한 15,1-5 참조).
또 흔히 교회를 하느님의 집이라고 한다(1고린 3,9 참조). 주님께서 친히 당신을 돌에 비겨,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바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마태 21,42 병행; 사도 4,11; 1베드 2,7; 시편 117[118],22 참조) 하셨다. 그 기초 위에서 교회가 사도들을 통하여 지어졌고(1고린 3,11 참조), 그 기초 때문에 교회는 견고한 결속력을 지닌다. 그 건물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꾸며진다. 하느님의 집(1디모 3,15 참조), 곧 하느님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 하느님의 신령한 거처(에페 2,19-22 참조),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장막(묵시 21,3 참조), 특히 거룩한 교부들이 찬미하는, 돌로 지은 지성소에서 표상되는 성전이라 불리며, 전례에서는 당연히 거룩한 도읍, 새 예루살렘에 비겨진다.5) 바로 그 안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살아 있는 돌로 쓰인다(1베드 2,5 참조). 그 거룩한 도읍이 새로운 세상에서 “신랑을 맞을 신부가 단장한 것처럼 차리고”(묵시 21,1-2)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요한은 보았다.
“하늘의 예루살렘”인 교회는 또한 “우리 어머니”라고 불리며(갈라 4,26; 묵시 12,17 참조), 순결한 어린양의 순결한 신부로 묘사된다(묵시 19,7; 21,2.9; 22,17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셔서……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당신의 몸을 바치셨다”(에페 5,25-26). 풀릴 수 없는 계약으로 교회를 당신과 결합시키시어 끊임없이 “기르고 보살펴 주시며”(에페 5,29), 교회가 깨끗한 몸으로 당신과 결합되어 사랑과 신의로 당신께 순종하기를 바라셨다(에페 5,24 참조). 그리고 영원한 천상 은혜로 교회를 채우시어, 우리에 대한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사랑, 모든 지식을 초월하는 그 사랑을 깨닫게 해 주셨다(에페 3,19 참조). 교회는 이 세상에서 주님과 떨어져 있는 동안(2고린 5,6 참조) 마치 귀양살이를 하듯 살아가며 천상의 것을 추구하고 맛본다. 그 곳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또 교회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어, 교회가 자기 신랑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때까지는 그 생명이 보이지 않는다(골로 3,1-4 참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7. 하느님의 아들 성자께서는 당신과 결합시키신 인간 본성 안에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죽음을 이기시고 인간을 구원하시어 새 사람으로 변모시키셨다(갈라 6,15; 2고린 5,17 참조).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불러모으신 당신 형제들에게 당신의 성령을 주시어 신비로이 당신의 몸을 이루셨다.
그 몸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신자들에게 나누어지며, 신자들은 수난을 당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성사들을 통하여 신비롭게 실제로 결합되는 것이다.6)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께 동화된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1고린 12,13).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결합이 세례의 거룩한 예식으로 드러나고 이루어진다.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다. ……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같이 다시 살아나서 또한 그분과 하나가 될 것이다”(로마 6,4-5). 성찬의 빵을 나누어 먹으며 실제로 주님의 몸을 모시는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또 우리 사이에 친교를 이루도록 들어 높여진다. “빵은 하나이고 우리가 모두 그 한 덩어리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이다”(1고린 10,17). 이렇게 우리는 모두 그 몸의 지체가 되며(1고린 12,27 참조), “각각 서로서로의 지체 구실을 하고 있다”(로마 12,5).
사람 몸의 지체가 여럿이지만 모든 지체가 한 몸을 이루듯이 신자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러하다(1고린 12,12 참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룰 때에도 지체들이 서로 다르고 그 직무가 서로 다른 것이다. 성령께서는 한 분이시다. 그 성령께서 당신의 풍요와 직무의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선물을 교회에 유익하도록 나누어 주신다(1고린 12,1-11 참조). 그 선물들 가운데에서 사도들이 받은 은총이 가장 뛰어난 것이며, 성령께서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도 사도들의 권위에 복종시키셨다(1고린 14장 참조). 그 성령께서는 친히 당신의 힘으로 또 지체들의 내적 결합으로 한 몸을 이루시고 신자들 가운데에서 사랑을 일으키시고 재촉하신다. 그러므로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아파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한다(1고린 12,26 참조).
이 몸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습이시며, 그분 안에서 만물이 창조되었다. 그분께서는 모든 이에 앞서 계시며 만물이 그분 안에서 존속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시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의 시작이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아나신 최초의 분이시며 만물의 으뜸이 되셨다(골로 1,15-18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위대한 힘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당신의 탁월한 완전성과 활동으로 온 몸을 당신 영광의 부요로 채워 주신다(에페 1,18-23 참조).7)
모든 지체는 그리스도를 닮아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형성하여야 한다(갈라 4,19 참조).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신비 안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분과 동화되어 그분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마침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다(필립 3,21; 2디모 2,11; 에페 2,6; 골로 2,12 등 참조). 아직도 지상의 나그네인 우리가 환난과 박해 속에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며 머리에 결합된 몸으로서 그분의 고난을 함께 받는 것은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으려는 것이다(로마 8,17 참조).
그리스도에게서 “몸 전체는 각 마디와 힘줄을 통하여 영양을 받으며 서로 연결되어 하느님의 계획대로 자라나는 것이다”(골로 2,19).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에 곧 교회 안에 봉사 직무의 은총을 끊임없이 마련하여 주시므로, 우리는 그 은총을 받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구원을 위하여 서로 봉사한다. 이로써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따르며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자라나게 된다(에페 4,11-16 참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새로워지도록(에페 4,23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성령을 주셨으며, 머리와 지체들 안에 현존하시는 한 분이신 똑같은 성령께서는 온 몸에 생명을 주시고 온 몸을 일치시키시고 움직이신다. 그래서 거룩한 교부들은 성령의 임무를 생명의 원리인 영혼이 인체 안에서 하는 일과 비교할 수 있었다.8)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당신의 신부처럼 사랑하시어, 제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하는 남편의 모범이 되셨으며(에페 5,25-28 참조), 바로 그 교회는 자기 머리에 순종한다(에페 5,23-24 참조).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는 하느님의 완전한 신성이 깃들어 있으므로”(골로 2,9),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충만한 몸인 교회를 당신의 신적 은총으로 채워 주시어(에페 1,22-23 참조), 교회는 하느님의 온갖 충만함을 향하여 나아가 그 충만함에 이르게 된다(에페 3,19 참조).
가시적이고 영적인 교회
8.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믿음과 바람과 사랑의 공동체인 당신의 거룩한 교회를 이 땅 위에 가시적인 구조로 세우시고 끊임없이 지탱하여 주시며,9) 교회를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진리와 은총을 널리 베푸신다. 교계 조직으로 이루어진 단체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비체, 가시적 집단인 동시에 영적인 공동체, 지상의 교회인 동시에 천상의 보화로 가득 찬 이 교회는 두 개가 아니라 인간적 요소와 신적 요소로 합성된 하나의 복합체를 이룬다고 보아야 한다.10) 그그러기에 훌륭한 유비로 교회는 강생하신 말씀의 신비에 비겨지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께서 받아들이신 본성도 구원의 생명체로서 말씀과 떨어질 수 없도록 결합되어 말씀에 봉사하듯이, 다르지 않은 모양으로 교회의 사회적 조직도 교회에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성령께 봉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한다(에페 4,16 참조).11)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이며, 우리는 신경에서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라고 고백 한다.12) 우리 구세주께서는 부활하신 뒤에 베드로에게 교회의 사목을 맡기셨고(요한 21,17 참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교회의 전파와 통치를 위임하셨으며(마태 28,18 이하 참조), 교회를 영원히 진리의 기둥과 터전으로 세우셨다(1디모 3,15 참조). 이 교회는 이 세상에 설립되고 조직된 사회로서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다스리고 있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13) 그 조직 밖에서도 성화와 진리의 많은 요소가 발견되지만, 그 요소들은 그리스도 교회의 고유한 선물로서 보편적 일치를 재촉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가난과 박해 속에서 구원 활동을 완수하셨듯이, 그렇게 교회도 똑같은 길을 걸어 구원의 열매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부름 받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셨으며”(필립 2,6-7), 우리를 위하여 “부요하셨지만 가난하게 되셨다”(2고린 8,9). 이렇게 교회는, 그 사명을 수행하려면 인간적인 힘이 필요하겠지만, 현세의 영광을 추구하도록 세워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범으로도 비움과 버림을 널리 전하도록 세워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超? 마음을 싸매 주며”(루가 4,18 참조),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루가 19,10)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파견되셨다. 이와 같이 교회도 인간의 연약함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감싸 주고, 또한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기 창립자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알아보고, 그들의 궁핍을 덜어 주도록 노력하며,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한다. “거룩하시고 순결하시고 흠이 없으신”(히브 7,26) 그리스도께서 죄를 모르셨지만(2고린 5,21 참조) 오로지 백성들의 죄를 없애러 오셨으므로(히브 2,17 참조),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는 교회는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한다.
교회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십자가와 죽음을 전하며(1고린 11,26 참조), “세상의 박해와 하느님의 위안 속에서 나그넷길을 걷는다.”14)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굳세게 되어, 안팎으로 당하는 고통과 난관을 인내와 사랑으로 이겨 내며, 마지막 때에 충만한 빛 속에서 드러날 주님의 신비를 어렴풋이나마 충실하게 세상에 보여 준다.
새 계약, 새 백성
9.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이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두려워하며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받아들이신다(사도 10,35 참조).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이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거나 구원하시려 하지 않으시고, 오직 사람들이 백성을 이루어 진리 안에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거룩히 섬기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 백성으로 뽑으시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셨으며, 차츰차츰 그들을 가르치시고 그 역사를 통하여 당신과 당신 계획을 드러내시며 그 백성을 당신 것으로 거룩하게 하셨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저 새롭고 완전한 계약, 바로 사람이 되신 하느님 말씀을 통하여 전하여질 더욱 완전한 계시의 준비와 표상이 된다. “그 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 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으리라.……나는 그들 가슴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써 넣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낮은 자부터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나를 알아 모시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예레 31,31-34). 그 새로운 계약을 그리스도께서 세우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당신 피로 새로운 계약을 맺으시고(1고린 11,25 참조), 유다인과 이방인 가운데에서 부르신 백성을 혈육에 따라서가 아니라 오로지 성령 안에서 하나로 모으시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썩어 없어질 씨앗에서 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앗에서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났으며(1베드 1,23 참조), 혈육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요한 3,5-6 참조), 마침내 “선택된 민족, 왕의 사제들, 거룩한 겨레,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서……전에는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하느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1베드 2,9-10).
이 메시아 백성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셨으며”(로마 4,25), 지금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으시어 하늘에서 영광스럽게 다스리고 계신다. 이 백성은 그 신분으로 하느님 자녀의 품위와 자유를 지니며, 성령께서 마치 성전에 계시듯 그들의 마음 안에 머무르신다. 이 백성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여야 한다는 사랑의 새 계명을 그 법으로 지니고 있다(요한 13,34 참조). 마지막으로, 이 백성은 하느님의 나라를 그 목적으로 삼는다. 하느님께서 친히 이 땅에서 시작하신 그 나라는 세말에 또한 당신 친히 완성하실 때까지 끝까지 넓혀져야 한다. 그 때에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것이며(골로 3,4 참조), “피조물도 멸망의 사슬에서 풀려나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런 자유에 참여할 것이다”(로마 8,21). 그러므로 이 메시아 백성은 비록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을 다 포함하지도 못하고 가끔 작은 무리로 보이지만, 온 인류를 위하여 일치와 희망과 구원의 가장 튼튼한 싹이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생명과 사랑과 진리의 친교를 이루도록 세우신 이 백성을 또한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의 도구로 삼으시고, 세상의 빛으로서 땅의 소금으로서(마태 5,13-16 참조) 온 세상에 파견하신다.
사막을 헤매던 혈족 이스라엘이 이미 하느님의 교회라고 불렸던 것처럼(2에즈 13,1; 민수 20,4; 신명 23,1 이하 참조), 현세를 거닐며 미래의 영원한 나라를 찾고 있는(히브 13,14 참조) 새 이스라엘도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불린다(마태 16,18 참조). 그리스도께서 이 교회를 당신 피로 얻으셨고(사도 20,28 참조), 당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으며, 이 교회에 가시적 사회적 결합의 적절한 수단들을 부여하셨기 때문이다. 구원의 주인이시며 일치와 평화의 원리이신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는 이들의 무리를 하느님께서 불러모으시어 교회를 세우시고, 모든 사람과 개인의 구원을 이룩하는 이 일치의 볼 수 있는 성사가 되게 하셨다.1) 이 교회는 모든 지역에 전파되도록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지만 동시에 시대와 민족의 경계를 초월한다. 시련과 고난을 거쳐 나아가는 교회는 주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여 주신 하느님 은총의 힘으로 위로를 받고, 인간의 나약함 속에서도 완전한 신의를 지켜 자기 주님의 어엿한 신부로 살아가며, 성령의 활동 아래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쇄신하여 마침내 십자가를 통하여 결코 꺼질 줄 모르는 빛에 이를 것이다.
보편 사제직
10.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히신 대사제 주 그리스도께서는(히브 5,1-5 참조) 새 백성이 “한 왕국을 이루게 하시고 또 당신의 하느님 아버지를 섬기는 사제들이 되게 하셨다”(묵시 1,6; 5,9-10 참조). 세례 받은 사람들은 새로 남과 성령의 도유를 통하여 신령한 집과 거룩한 사제직으로 축성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통하여 신령한 제사를 바치며 그들을 어두운 데에서 당신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불러 주신 분의 능력을 선포한다(1베드 2,4-10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하느님을 함께 찬양하며(사도 2,42-47 참조),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고(로마 12,1 참조) 세상 어디에서나 그리스도를 힘차게 증언하며,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자신들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1베드 3,15 참조).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과 직무 또는 교계 사제직은, 정도만이 아니라 본질에서 다르기는 하지만,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각기 특수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다.2) 직무 사제는 참으로 그가 지닌 거룩한 힘으로 사제다운 백성을 모으고 다스리며, 성찬의 희생 제사를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거행하고 온 백성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봉헌한다. 그리고 신자들은 자신의 왕다운 사제직의 힘으로 성찬의 봉헌에 참여하며,3) 여러 가지 성사를 받고 기도하고 감사를 드리며 거룩한 삶을 증언하고 극기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사제직을 수행한다.
성사와 보편 사제직의 수행
11. 사제 공동체의 거룩한 특성과 유기적 구조는 성사와 덕행을 통하여 현실화된다.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교회에 합체되어 그리스도교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인호를 받고, 또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께 받은 신앙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려고 힘쓴다.4) 견진성사로 신자들은 더욱 완전히 교회에 결합되며 성령의 특별한 힘을 받아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로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전파하고 옹호하여야 할 더 무거운 의무를 진다.5)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찬의 희생 제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신적 희생제물을 하느님께 바치며, 자기 자신을 그 제물과 함께 봉헌한다.6) 이이렇게 봉헌에서나 영성체에서나, 똑같지 않고 저마다 다르게, 모든 신자는 전례 행위 안에서 자기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거룩한 모임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신 신자들은 이 지존한 성사로 적절히 드러나고 놀랍게 이루어지는 하느님 백성의 일치를 구체적인 방법으로 보여 준다.
고해성사를 보는 신자들은 하느님께 끼친 모욕에 대하여 그분의 자비로 용서를 받으며, 또한 동시에 범죄로 상처를 입혔던 교회, 사랑과 모범과 기도로써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노력하는 교회와 화해를 한다. 병자들의 거룩한 도유와 사제들의 기도로 온 교회는 병자들을 수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주님께 맡겨 드리며, 그들의 병고를 덜어 주시고 낫게 하여 주시도록 간청하는(야고 5,14-16 참조) 한편, 병자들도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자유로이 결합시켜(로마 8,17; 골로 1,24; 2디모 2,11-12; 1베드 4,13 참조) 하느님 백성의 선익에 기여하도록 권고한다. 그리고 신자들 가운데에서 성품에 오르는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으로 교회를 사목하도록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워진다. 끝으로,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풍요로운 사랑과 일치의 신비를 드러내고 그 신비에 참여하는 혼인성사의 힘으로(에페 5,32 참조), 그리스도인 부부는 부부 생활은 물론 자녀 출산과 교육을 통하여 성덕에 나아가도록 서로 도와 주며, 또한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에서 자기 생활 신분과 영역에 고유한 은총을 받는다.7) 실제로 이 혼인에서 가정이 생겨나고, 가정에서 인간 사회의 새로운 시민들이 태어나며, 성령의 은총을 통하여 그들은 하느님 백성을 역사의 흐름 속에 영속시키도록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 가정 교회에서 부모는 말과 모범으로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최초의 신앙 선포자가 되어야 하며, 각자의 고유한 소명을 특별한 배려로 육성하여야 한다.
이렇게 크고 많은 구원의 수단을 갖춘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생활 신분이나 처지에서든, 하느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성덕에 이르도록 저마다 자기 길에서 주님께 부르심을 받는다.
하느님 백성의 신앙 감각과 은사
12.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은 또한 그리스도의 예언직에도 참여한다. 특히 믿음과 사랑의 생활로 그리스도께 대한 생생한 증거를 널리 전하며,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는 입술의 열매를 찬미의 제물로 하느님께 바친다(히브 13,15 참조). 성령께 도유를 받는 신자 전체는(1요한 2,20과27 참조)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며, “주교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8) 신앙과 도덕 문제에 관하여 보편적인 동의를 보일 때에, 온 백성의 초자연적 신앙 감각의 중개로 이 고유한 특성을 드러낸다. 실제로 진리의 성령께서 일깨워 주시고 지탱하여 주시는 저 신앙 감각으로 하느님의 백성은 거룩한 교도권의 인도를 받는다. 교도권에 충실히 따르는 백성은 그 가르침을 이미 사람의 말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1데살 2,13 참조), “성도들에게 한번 전해진 믿음”(유다 3 참조)을 온전히 지키며, 올바른 판단으로 그 믿음을 더욱 깊이 깨닫고 그 믿음을 실생활에 더욱 충만히 적용시킨다.
더 나아가 같은 성령께서는 성사와 교역을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고 인도하시며 여러 가지 덕행으로 꾸며 주실 뿐 아니라 또한 당신 은혜를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며”(1고린 12,11) 모든 계층의 신자들에게 특별한 은총도 나누어 주신다. 각 사람에게 주신 성령의 선물은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1고린 12,7 참조)이라는 말씀에 따라, 성령께서는 그러한 은총으로 교회의 쇄신과 더욱 폭넓은 교회 건설을 위하여 유익한 여러 가지 활동이나 직무를 받아들이는 데에 알맞도록 신자들을 준비시키신다. 그러한 은사는 뛰어난 것이든 더 단순하고 더 널리 퍼진 것이든 교회의 필요에 매우 적합하고 유익한 것이므로 감사와 위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례적인 은총은 함부로 간청하지 말아야 하며, 지레 그러한 은총에서 사도직 활동의 결실을 바라지도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은사의 진실성과 올바른 실천에 관한 판단은 교회를 다스리는 이들에게 속하며, 성령의 불을 끄지 않고 모든 것을 시험하여 좋은 것을 붙드는 일은 특별히 그들의 소관이다(1데살 5,12와 19-21 참조).
하느님 유일한 백성의 보편성
13.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이루도록 불린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이고 유일한 이 백성은 모든 세대를 통하여 온 세상에 퍼져 나가, 처음에 인간 본성을 하나로 만드시고 흩어진 당신 자녀들을 마침내 하나로 모으고자 하신 하느님 뜻의 계획을(요한 11,52 참조) 성취시켜야 한다. 이를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을 보내시어,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시고(히브 1,2 참조), 모든 사람의 스승이요 왕이며 사제가 되고 하느님 자녀들 곧 새롭고 보편적인 백성의 머리가 되게 하셨다. 이를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마침내 당신 성자의 성령,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보내 주셨다. 성령께서는 온 교회를 위하여 또 개인과 모든 신자를 위하여 사도들의 가르침과 친교에서 그리고 빵의 나눔과 기도에서 모임과 일치의 근원이 되신다(사도 2,42 참조).
따라서 지상의 모든 민족 가운데에 하나의 하느님 백성이 있다. 그들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지상 왕국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시민으로서 자기 백성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신자가 성령 안에서 다른 이들과 친교를 이룬다. 이렇게 하여 “로마에 앉아서 인도인들이 자기 지체임을 안다.”9)
그러나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 세상의 왕국이 아니므로(요한 18,36 참조), 이 나라를 이끌어들이는 교회 곧 하느님의 백성은 어떠한 민족이든 그 현세적 선을 결코 없애지 않으며, 오히려 정반대로 민족들의 역량과 자산과 관습을 좋은 것이라면 촉진하고 받아들이며, 받아들임으로써 실제로 정화하고 강화하며 승화시킨다. 사실 교회는 저 임금님과 함께 모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임금님께 만방이 유산으로 주어지고(시편 2,8 참조), 뭇민족들이 그분의 나라로 선물과 예물을 가져온다(시편 71[72],10; 이사 60,4-7; 묵시 21,24 참조). 하느님의 백성을 돋보이게 꾸며 주는 이 보편성은 바로 주님의 선물이다. 이로써 가톨릭 교회는 온 인류가 그 모든 부요와 함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분 성령의 일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려고 힘껏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10)
이 보편성의 힘으로, 각 부분이 그 고유한 은혜를 다른 부분들과 온 교회에 가져다 주어, 전체와 각 부분은 모든 것을 서로 나누며 일치 안에서 충만을 함께 도모하는 가운데에 자라나게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은 여러 민족들 가운데에서 모인 것일 뿐 아니라 그 자체 안에서도 여러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하느님 백성의 지체들 사이에는 다양성이 있다. 직무에 따라 어떤 이들은 자기 형제들의 선익을 위하여 거룩한 봉사 직무를 수행하며, 신분과 생활 양식에 따라 많은 이들은 수도 생활 속에서 더 좁은 길로 성덕을 추구하며 형제들을 자신의 모범으로 격려한다. 그러기에 또한 교회의 친교 안에는 고유한 전통을 지니는 개별 교회들이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베드로 교좌의 수위권은 온전히 보존된다. 사랑의 모든 공동체를 다스리는 베드로
교좌는11) 정당한 다양성을 보호하고 또 동시에 개별 요소들이 일치에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일치에 이바지하도록 감독한다. 그러기에 마침내 교회의 여러 부분들 사이에는 영적 부요와 사도직 인력과 현세적 자원에 관한 긴밀한 친교의 유대가 존재한다. 사실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들은 서로 선익을 나누도록 불렸으므로, “각자가 받은 은총의 선물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가지고 서로 봉사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갖가지 은총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1베드 4,10) 한 사도의 말씀은 각 개별 교회들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하느님 백성의 이 보편적 일치는 세계 평화를 예시하고 증진하므로 모든 사람이 이 일치로 부름 받고 있다. 가톨릭 신자이든 그리스도를 믿는 다른 신자이든 모든 사람이 다 여러 모로 이 일치에 소속되거나 관련되어 있다. 하느님의 은총은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부른다.
가톨릭 신자
14. 그러므로 거룩한 공의회는 먼저 가톨릭 신자들을 생각한다. 공의회는 성서와 성전에 의지하여 이 순례하는 교회가 구원에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한 분만이 중개자요 구원의 길이시며, 당신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신앙과 세례의 필요성을 분명한 말씀으로 강조하시면서(마르 16,16; 요한 3,5 참조), 동시에 교회의 필요성도 확인하셨다. 사람들은 마치 문과 같은 세례를 통하여 교회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로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저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교회의 모임에 완전히 합체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고, 교회 안에 세워진 완전한 질서와 구원의 모든 수단을 받아들이며, 교회의 가시적 구조 안에서 교황과 주교들을 통하여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와 결합된다. 곧 신앙 고백과 성사, 교회 통치와 친교의 유대로 결합된다. 그러나 교회에 합체되더라도 사랑 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교회의 품안에 “마음”이 아니라 “몸”만 남아 있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12) 그러나 교회의 모든 자녀는 자신의 뛰어난 신분을 자기 공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특별한 은총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만 한다. 그 은총에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응답하지 않는다면 구원을 받기는커녕 더욱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13)
성령의 감도를 받아 명백한 의지로 교회에 합체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예비신자들은 이 소망 자체로 교회와 결합된다. 어머니인 교회는 이미 자기 자녀가 된 그들을 사랑과 배려로 감싸 안는다
교회와 비가톨릭 그리스도인
15.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녔지만 완전한 신앙을 고백하지 않거나 베드로의 후계자 아래에서 친교의 일치를 보존하지 못하는 저 사람들과도 교회는 자신이 여러 가지 이유로 결합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14)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영예롭게 성서를 신앙과 생활의 규범으로 삼고, 진실한 종교적 열정을 보여 주며,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와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 그리스도를 사랑으로 믿고,15) 세례의 인호를 받아 그리스도와 결합되고, 다른 성사들까지도 자기 교회나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인정하고 받는다. 그들 가운데에 많은 이들은 주교직도 향유하고 성찬례를 거행하며 천주의 동정 성모님께 대한 신심도 존중한다.16) 기도와 다른 영적 은혜의 친교가 이루어지고, 성령 안의 어떤 결합까지도 진실하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은혜와 은총으로 그들 안에서도 거룩하게 하시는 당신의 능력을 발휘하시며, 그들 가운데에서 어떤 이들은 피를 흘리기까지 그 힘을 북돋워 주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모든 이가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방법대로 하나인 양 떼 안에서 한 목자 밑에 평화롭게 일치되게 하려는 열망과 활동을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에게서 일으켜 주신다.17) 이 일치를 이루고자 어머니인 교회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희망하고 행동하며, 그리스도의 표지가 교회의 얼굴에서 더욱 찬란히 빛나도록 자녀들에게 정화와 쇄신을 권고한다.
교회와 비그리스도인
16. 끝으로, 복음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하느님의 백성과 관련되어 있다.18) 먼저, 계약과 약속이 주어졌던 저 백성이 참으로 그렇다. 인성으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 백성에게서 태어나셨으며(로마 9,4-5 참조), 선택에 따라 보면 그 백성은 조상 덕택으로 하느님의 가장 큰 사랑을 받았다. 하느님께서는 한 번 주신 선물이나 소명을 다시 거두지 않으시기 때문이다(로마 11,28-29 참조). 그러나 구원 계획은 창조주를 알아 모시는 사람들을 다 포함하며, 그 가운데에는 특히 모슬렘도 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간직하고 있다고 고백하며, 마지막 날에 사람들을 심판하실 자비로우시고 유일하신 하느님을 우리와 함께 흠숭하고 있다. 어둠과 그림자 속에서 미지의 신을 찾고 있는 저 사람들에게서도 하느님께서는 결코 멀리 계시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고(사도 17,25-28 참조), 구세주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1디모 2,4 참조). 사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19) 또한 하느님의 섭리는 자기 탓 없이 아직 하느님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사실 그들이 지닌 좋은 것, 참된 것은 무엇이든지 다 교회는 복음의 준비로 여기며,20) 모든 사람이 마침내 생명을 얻도록 빛을 비추시는 분께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악마에게 속아 허황한 생각에 빠져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과 뒤바꾸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섬기며(로마 1,21.25 참조), 또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 없이 살다가 죽어 가며 극도의 절망에 놓인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광과 이 모든 사람의 구원을 증진하고자,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하신 주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선교 촉진에 진력하고 있다.
교회의 선교 특성
17. 성자께서 성부에게서 파견되신 것처럼 성자께서는 사도들을 파견하시며(요한 20,21 참조) 말씀하셨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라는 그리스도의 이 장엄한 명령을 교회는 사도들에게서 받았으며, 땅 끝에 이르기까지 이 명령을 이행하여야 한다(사도 1,8 참조). 그러므로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1고린 9,16)이라고 한 사도의 말씀을 자기 것으로 삼아, 교회는 끊임없이 선교사들을 파견하여 새 교회들이 완전히 세워지고 또 스스로 복음화 활동을 지속하게 한다. 성령의 재촉을 받아 교회는 그리스도를 온 세상 구원의 근원으로 세우신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히 실현되도록 협력하고 있다.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교회는 청중을 신앙과 신앙 고백으로 이끌어 세례를 받도록 준비시키고, 오류의 예속에서 구출하고, 그들을 그리스도께 합체시켜 사랑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에 이르기까지 자라나게 한다. 교회는 자신의 활동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 또는 민족들의 고유 의례와 문화에 심어져 있는 좋은 것은 무엇이든 없어지지 않도록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과 악마의 패배와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치유되고 승화되며 완성되게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누구나 다 제 나름대로 신앙을 전파하여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21) 믿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세례를 줄 수 있지만, 성찬의 희생 제사로 “몸”의 건설을 완성하는 것은 사제의 임무이다. 사제는 예언자를 통하여 “나의 이름은 해 뜨는 데서 해지는 데까지 뭇 민족 사이에 크게 떨쳐, 사람들은 내 이름을 부르며 향기롭게 제물을 살라 바치고 깨끗한 곡식 예물을 바치고 있다.”(말라 1,11) 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이행한다.22) 이렇게 교회는 동시에 기도하고 일하여, 온 세상이 모두 하느님의 백성, 주님의 몸, 성령의 궁전이 되어 만물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주의 창조주이신 성부께 온갖 영예와 영광을 드린다.
서론
18.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백성을 사목하고 또 언제나 증가시키도록 당신 교회 안에 온몸의 선익을 도모하는 여러 가지 봉사 직무를 마련하셨다. 실제로, 거룩한 권력을 가진 봉사자들이 자기 형제들에게 봉사하여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품위를 지닌 모든 사람이 자유로이 질서 정연하게 동일한 목적을 함께 추구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 거룩한 공의회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발자취를 따라 그 공의회와 더불어, 영원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교회를 세우시고 당신 친히 성부에게서 파견되신 것처럼 사도들을 파견하셨으며(요한 20,21 참조), 그들의 후계자들 곧 주교들이 당신 교회 안에서 세상 끝날까지 목자가 되기를 바라셨다고 가르치며 선언한다. 참으로 주교직 자체가 하나로서 갈라지지 않도록, 그리스도께서는 복된 베드로를 다른 사도들 앞에 세우시고 베드로 안에 신앙의 일치와 친교의 영속적이고 가시적인 근원과 토대를 마련하셨다.1) 교황의 거룩한 수위권의 설정, 영속성, 권한과 성격 그리고 교황의 그르칠 수 없는 교도권에 관한 교리를 거룩한 공의회는 모든 신자가 굳게 믿어야 할 것으로 거듭 제시하고, 또 그렇게 해 나가면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2) 온온 교회의 볼 수 있는 으뜸인 베드로의 후계자와 더불어 살아 계신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는,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주교들에 관한 교리를 모든 사람 앞에 천명하고 선언하기로 결정한다
열두 사도의 소명과 선정
19. 주 예수님께서는 성부께 기도하신 다음에 당신 마음에 두셨던 사람들을 부르시어 열두 사람을 당신과 함께 있게 하셨는데, 이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그들을 파견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 3,13-19; 마태 10,1-42 참조). 그 사도들을(루가 6,13 참조) 확고한 단체 또는 집단의 형태로 세우시고, 그들 가운데에서 선택하신 베드로를 으뜸으로 삼으셨다(요한 21,15-17 참조). 그들을 먼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리고 모든 민족들에게 보내시어(로마 1,16 참조), 그들이 당신 권력을 나누어 받아 모든 민족들을 당신 제자로 삼고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다스리게 하셨으며(마태 28,16-20; 마르 16,15; 루가 24,45-48; 요한 20,21-23 참조), 또한 그렇게 하여 교회를 전파하고 주님의 인도를 받아 교회에 봉사하며 세상 끝까지 모든 날에 교회를 사목하게 하셨다(마태 28,20 참조).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하신 주님의 약속에 따라, 오순절에 그들은 그 사명을 수행할 힘을 받았다(사도 2,1-36 참조). 그러므로 사도들은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파하고(마르 16,20 참조) 청중이 성령의 활동으로 그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보편 교회를 모아들인다. 주님께서는 보편 교회를 사도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사도들의 으뜸인 복된 베드로 위에 지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 친히 그 머릿돌이 되셨다(묵시 21,14; 마태 16,18; 에페 2,20 참조).3)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
20.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그 신적 사명은 세말까지 지속될 것이다(마태 28,20 참조). 사도들이 전하여야 할 복음은 교회를 위하여 모든 시대에 모든 삶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사도들은 위계적으로 조직된 이 단체 안에서 후계자들을 세우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로, 사도들은 봉사 직무에서 다양한 협조자들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4) 자기들에게 맡겨진 사명이 자기 사후에도 지속되도록, 자신의 직접 협력자들에게, 일종의 유언 형식으로, 자기들이 시작한 일을 완성하고 견고하게 할 임무를 맡겼으며,5) 성령께서 하느님의 교회를 사목하도록 그들을 세우신 바로 그 온 무리를 보살피라고 부탁하였다(사도 20,28 참조). 이렇게 사도들은 이러한 후계자들을 세웠으며, 또 나중에 그들이 죽으면 다른 훌륭한 사람들이 그 직무를 받아들이도록 법규를 마련하여 주었다.6) 교회 안에서 맨 처음부터 수행되어 온 저 여러 봉사 직무 가운데에서, 전통이 증언하는 대로, 처음부터 이어 내려오는 계승을 통하여 주교직에 세워져,7) 사도의 씨앗에서 나온 포도 가지를 간직하고 있는 이들의 임무가 으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8) 이렇게, 이레네오 성인의 증언대로, 사도들이 주교로 세운 이들과 우리에게까지 이르는 그 후계자들을 통하여 사도 전승이 온 세상에 천명되고9) 보존되는 것이다.10)
그러므로 주교들은 공동체의 봉사 직무를 협조자인 신부들과 부제들과 함께 받아들여,11) 하느님의 대리로서 양 떼를 다스리는12) 그 목자들이 되고, 교리의 스승, 거룩한 예배의 사제, 통치의 봉사자가 되는 것이다.13) 또한 주님께서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에게 특별히 맡기시어 그 후계자들에게 전수되는 임무가 영속하듯이, 사도들의 교회 사목 임무도 영속하며 주교들의 거룩한 품계에서 끊임없이 수행되어야 한다.14) 그러므로 거룩한 공의회는 주교들이 신적 제도에 따라 사도들의 자리를 계승하였다고 가르친다.15) 주교들은 교회의 목자들이므로, 주교의 말을 듣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고 주교를 배척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그리스도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루가 10,16 참조).16)
주교직의 성사성
21. 그러므로 신부들의 협력을 받는 주교들을 통하여 대사제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자들 가운데에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지만, 당신 주교들의 모임에도 계신다.1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특히 주교들의 탁월한 봉사를 통하여 만민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신자들에게 신앙의 성사들을 계속 집전하시며, 주교들의 부성을 통하여(1고린 4,15 참조) 천상의 새로 남으로 새로운 지체들을 당신 몸에 합체시키시며, 마침내 주교들의 지혜와 슬기로 새로운 계약의 백성을 그 나그넷길에서 영원한 행복으로 이끄시며 다스리신다. 주님의 양 떼를 치도록 선택된 이 목자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고 하느님 신비의 관리자들이다(1고린 4,1 참조). 이들에게는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전하는 증언(로마 15,16; 사도 20,24 참조) 그리고 성령과 의화의 영광스러운 봉사 직무가 맡겨졌다(2고린 3,8-9 참조).
이렇게 중대한 임무를 다하도록 사도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내려오시는 성령의 특별한 분출로 충만해졌다(사도 1,8; 2,4; 요한 20,22-23 참조). 사도들은 자기 협조자들에게도 안수를 통하여 영적 선물을 전해 주었으며(1디모 4,14; 2디모 1,6-7 참조), 그것은 우리에게까지 주교 축성 안에서 전해 내려온다.18) 거룩한 공의회는 주교 축성으로 충만한 성품성사가 수여된다고 가르친다. 이를 교회의 전례 관습과 교부들은 분명히 대사제직, 거룩한 봉사 직무의 정점이라고 하였다.19) 그리고 주교 축성은 거룩하게 하는 임무와 함께 가르치는 임무와 다스리는 임무도 부여한다. 그러나 이 임무는 그 본질상 오로지 주교단의 단장과 단원들과 이루는 교계적 친교 안에서만 행사될 수 있다. 특히 전례 예법과 동서방 교회의 관습으로 드러난 전통에서 분명한 것은, 안수와 축성의 말씀으로 성령의 은총이 부여되고,20) 거룩한 인호가 새겨져,21) 주교들은 탁월하고 가시적인 방법으로 바로 스승이시고 목자이시며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한다는 것이다.22) 성품성사를 통하여 새로 뽑힌 이들을 주교단에 받아들이는 것은 주교들의 소임이다.
주교단과 그 단장
22. 주님께서 제정하신 대로, 거룩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하나의 사도단을 이루듯이, 비슷한 이치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도 서로 결합되어 있다. 전세계에 세워진 주교들이 일치와 사랑과 평화의 유대로 서로 교류하고 교황과 친교를 이루던 매우 오랜 옛 규율과23) 공의회 모임 자체가24) 주교단의 단체적 본질과 특성을 드러내 준다. 공의회를 통하여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든 공동으로 결정하고25) 많은 이의 의견을 숙고하여 판단한다.26) 여러 세기의 흐름 속에서 개최된 세계 공의회들이 그 단체성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 뽑힌 이를 대사제 직무로 올리는 데에 참여하도록 여러 주교들을 초대하는 오랜 권고와 관습 자체가 이미 그 단체성을 가리키고 있다. 주교는 누구나 성사적 축성의 힘으로 또 주교단의 단장과 그 단원들과 이루는 교계적 친교로 주교단의 구성원이 된다.
그러나 주교들의 단체인 주교단은 동시에 그 단장으로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더불어 이해되지 않을 때에는 권위를 가지지 못한다. 목자들이든 신자들이든 모든 이에 대한 교황의 수위권은 온전히 유지된다. 교황은 자기 임무의 힘으로 곧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온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에 대하여 완전한 최고의 보편 권력을 가지며 이를 언제나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 주교단은 교도권과 사목 통치에서 사도단을 계승할 뿐 아니라 그 안에 사도단이 계속하여 존속하며, 그 단장인 교황과 더불어 보편 교회에 대한 완전한 최고 권력의 주체로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단장 없이는 결코 그러하지 아니하며,27) 또한 그 권력은 오로지 교황의 동의가 있을 때에만 행사될 수 있다. 주님께서 한 사람 시몬을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시고 교회의 열쇠를 맡기셨으며(마태 16,18-19 참조), 그를 당신의 온 양 떼의 목자로 세우셨다(요한 21,15 이하 참조). 그러나 베드로에게 주어진 매고 푸는 저 임무는(마태 16,19 참조) 그 단장과 결합되어 있는 사도단에게도 부여되었음이 분명하다(마태 18,18; 28,16-20참조).28) 이 사도단은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하느님 백성의 다양성과 보편성을 드러내며, 또한 한 단장 아래 모여 있으므로 그리스도 양 떼의 단일성을 드러낸다. 주교단 안에서 주교들은 그 단장의 수위권과 최고 권위를 충실히 존중하면서, 교회의 유기적 조직과 화합을 끊임없이 북돋아 주시는 성령에 따라, 자기 신자들은 물론 온 교회의 선익을 위하여 고유한 권력을 행사한다. 이 주교단이 지닌, 보편 교회에 대한 최고 권력은 세계 공의회에서 장엄한 양식으로 행사된다. 그러나 베드로의 후계자가 세계 공의회로 확인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세계 공의회는 결코 인정되지 아니한다. 세계 공의회를 소집하고 주재하며 확인하는 것은 교황의 특권이다.29) 전세계에 살고 있는 주교들은 교황과 함께 그 동일한 합의체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나, 그것이 진정한 합의체적 행동이 되려면, 주교단의 단장이 주교들에게 합의체적 행동을 요청하거나 적어도 흩어져 있는 주교들의 일치된 행동을 승인하거나 자유로이 수락하여야 한다.
주교단 안에 있는 주교들의 관계
23. 단체적 일치는 또한 주교들이 각기 개별 교회들과 보편 교회와 맺고 있는 상호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은 주교들의 일치는 물론 신자 대중이 이루는 일치의 영구적이고 가시적인 근원이며 토대이다.30) 리고 개별 주교들은 자기 개별 교회 안에서 일치의 가시적인 근원과 토대가 된다.31) 보편 교회의 모습대로 이루어진 개별 교회들 안에 또 거기에서부터 유일하고 단일한 가톨릭 교회가 존재한다.32) 그러한 까닭에 개별 주교들은 자기 교회를 대표하고 모든 주교는 교황과 더불어 평화와 사랑과 일치의 유대 안에서 온 교회를 대표한다.
개별 교회의 으뜸이 되는 주교들은 각기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부분에 대하여 사목 통치를 하지만, 다른 교회들이나 보편 교회에 대하여는 그리하지 못한다. 그러나 주교단의 일원으로서 또 사도들의 정당한 후계자로서 개별 주교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명령에 따라 보편 교회를 위하여 관심을 기울인다.33) 그러한 관심은 재치권의 행사는 아니지만 보편 교회에 대단히 많은 이득을 가져다 준다. 실제로 모든 주교는 온 교회의 공통 규율과 신앙의 일치를 증진하고 수호하여야 하며,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를 사랑하도록, 특히 가난하고 고통당하며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지체들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마태 5,10 참조). 그리고 교회 전체의 모든 공동 활동을 촉진시켜야 하며, 특별히 신앙을 증진하고 충만한 진리의 빛으로 모든 사람을 비추어 주어야 한다. 그 밖에도 주교들이 보편 교회의 한 부분인 자기 교회를 잘 다스림으로써 교회들의 몸인 신비체 전체의 선익에 효과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34)
세상 어디에서나 복음을 선포하도록 배려하는 것은 목자단이 할 일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목자에게 똑같이 명령하시어 공동 의무로 부여하신 것이며, 이미 첼레스티노 교황이 에페소 공의회의 교부들에게 당부한 것이다.35) 그러므로 개별 주교들은 자신의 고유한 임무 수행이 허용하는 대로 주교들끼리 서로 공동 활동을 하여야 하고, 또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는 중대한 임무가 특별한 방법으로 맡겨진 베드로의 후계자와 협력하여야 한다.36) 따라서 주교들은 자기가 직접 하거나 신자들의 열렬한 협력을 불러일으켜, 선교 지역에 수확할 일꾼들과 영신적 물질적 원조를 넉넉히 보내 주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끝으로, 주교들은 옛날의 귀중한 모범을 따라, 사랑의 보편적 유대 안에서 다른 교회들, 특히 가깝고도 더 가난한 교회에 형제적 원조를 기꺼이 제공하여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로,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이 여러 곳에 세웠던 여러 교회들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유기적으로 결합된 여러 집단을 이루고, 하느님께서 세우신 보편 교회의 단일성과 신앙의 일치를 보존하면서도, 고유한 규율과 고유한 전례 관습과 신학적 영성적 세습 자산을 지니게 되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교회들은, 특히 옛 총대주교좌 교회들은 신앙의 어머니로서 딸을 낳듯이 다른 교회들을 낳았고, 그 교회들과 성사 생활에서나 상호 권리와 의무의 존중에서 더욱 긴밀한 사랑의 유대로 결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37) 하나로 살아가는 그러한 지역 교회들의 다양성은 갈릴 수 없는 교회의 보편성을 더욱 뚜렷이 보여 주고 있다. 비슷한 방법으로 오늘날 주교회의들은 합의체적 정신을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는 여러 가지 풍요로운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다.
주교의 봉사 직무
24.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주님에게서 만민을 가르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할 사명을 받는다. 이는 모든 사람이 믿고 세례를 받아 또 계명?? 지켜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마태 28,18-20; 마르 16,15-16; 사도 26,17-18 참조). 이 사명을 완수하도록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시고 오순절에 하늘에서 성령을 보내시어, 사도들이 성령의 힘으로 땅 끝에 이르기까지 민족들과 백성들과 제왕들 앞에서 당신의 증인이 되게 하셨다(사도 1,8; 2,1 이하; 9,15 참조). 그러나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목자들에게 맡기신 저 임무는 참 섬김이다. 성서에서는 이를 뜻 깊게도 “디아코니아”(diakonija) 곧 봉사라고 한다(사도 1,17.25; 21,19; 로마 11,13; 1디모 1,12 참조).
주교들의 교회법적 임명은 교회 최고의 보편 권력으로 폐지되지 않은 합법적인 관례를 통하여 또는 그 동일한 권위로 제정되거나 승인된 법률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고, 바로 베드로의 후계자가 직접 임명할 수 있다. 따라서 사도적 친교를 반대하거나 거절한다면, 주교는 직무를 맡을 수 없다.38)
가르치는 임무
25. 주교들의 주요 임무 가운데 첫째는 복음 선포 이다.39) 주교들은 새로운 제자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신앙의 선포자이며 진정한 스승 곧 그리스도의 권위를 지닌 스승이기 때문이다. 주교들은 자기에게 맡겨진 백성에게 믿고 살아가야 할 신앙을 선포하고, 계시의 곳간에서 새 것과 옛 것을 꺼내어(마태 13,52 참조) 성령의 빛으로 밝혀 주며, 그 신앙이 열매를 맺게 하고, 자기 양 떼를 위협하는 오류를 경계하여 막는다(2디모 4,1-4 참조). 교황과 친교를 이루며 가르치는 주교들은 하느님의 보편 진리에 대한 증인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아야 한다. 신자들은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린 자기 주교의 판단에 일치하여야 하고, 마음의 종교적 순종으로 그를 따라야 한다. 교황의 유권적 교도권에 대하여는, 비록 교좌에서 말하지 않을 때에도, 특별한 이유로 의지와 지성의 이 종교적 순종을 드러내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곧 교황의 최고 교도권을 공손하게 인정하여야 하고, 주로 문서의 성격이나 동일한 교리의 빈번한 제시나 표현 방법 등에서 드러나는 교황의 생각과 의향대로, 교황이 내린 판단을 성실히 따라야 한다.
각각의 주교들이 무류성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니지만, 전세계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상호간에 또 베드로의 후계자와 친교의 유대를 보전하면서 신앙과 도덕의 사항들을 유권적으로 가르치는 주교들이 하나의 의견을 확정적으로 고수하여야 할 것으로 합의하는 때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오류 없이 선포하는 것이다.40) 그것은 이제 주교들이 세계 공의회에 모여서 보편 교회를 위하여 신앙과 도덕의 스승들이 되고 재판관들이 될 때에는 더욱 명백해지므로, 그들의 결정에 신앙의 순종으로 따라야 한다.41)
그리고 하느님이신 구세주께서 당신 교회가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의 결정에서 오류가 없기를 바라셨던 이 무류성은 교회가 거룩하게 보전하고 충실히 설명하여야 할 하느님 계시의 위탁이 펼쳐지는 그만큼 펼쳐진다. 주교단의 단장인 교황은 참으로 신앙 안에서 자기 형제들의 힘을 북돋워 주는 사람이므로(루가 22,32 참조),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고 목자이며 스승으로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확정적 행위로 선언하는 때에, 교황은 자기 임무에 따라 그 무류성을 지닌다.42) 그러므로 교황의 결정은 교회의 동의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마땅히 바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복된 베드로 안에서 교황에게 약속된 성령의 도움을 받아 선포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결정은 결코 다른 누구의 승인도 필요하지 않고 다른 판단을 요구하는 어떠한 상소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할 때에 교황은 한 개인으로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교회 자체의 무류성의 은사를 특별히 지니고 있는 보편 교회의 최고 스승으로서 가톨릭 신앙의 교리를 설명하고 옹호하는 것이다.43) 교회에 약속된 무류성은 주교단이 베드로의 후계자와 더불어 최고 교도권을 행사할 때에 주교단 안에도 내재한다. 이러한 결정에 대하여 교회의 동의가 결코 없을 수 없다. 똑같은 성령의 활동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양 떼가 신앙의 일치 안에서 보전되고 진보하기 때문이다.44)
교황이 또는 교황과 더불어 주교단이 판단을 확정할 때에는 모든 사람이 견지하고 순응하여야만 할 계시 자체에 따라 이를 공표하는 것이다. 계시는 기록으로나 전승으로 주교들의 정당한 계승을 통하여 특히 교황의 배려로 온전하게 전달되며, 진리의 성령에게서 빛을 받아 교회 안에 거룩히 보존되고 충실히 해석되고 있다.45) 교황과 주교들은 자기 직무와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계시를 올바로 탐구하고 알맞게 표현하고자 적절한 방법으로 힘껏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46) 그러나 새로운 공적 계시를 신앙의 신적 위탁에 속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아니 한다.47)
거룩하게 하는 임무
26. 충만한 성품성사를 받은 주교는 특히 성찬례 안에서 “최고 사제직의 은총의 관리자 ”가48) 된다. 주교가 스스로 봉헌하거나 봉헌되도록 돌보는 그 성찬례 로49) 교회는 끊임없이 생명을 얻고 자라난다. 그리스도의 이 교회는 신자들의 모든 합법적 지역 집회에 존재하며, 자기 목자들과 결합되어 있는 이 회중을 신약성서에서 교회라고 부른다.50) 이 회중은 성령 안에서 굳은 확신으로(1데살 1,5 참조)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아 자기 지역에서 새로운 백성이 되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신자들이 모이고, “주님 몸의 살과 피를 통하여 모든 형제애가 두터워지도록”51) 주님 만찬의 신비가 거행된다. 주교의 거룩한 직무 아래에 있는 어떠한 제단의 공동체에서든52) 신비체의 저 사랑과 일치의 상징이 드러난다. “신비체의 일치가 없으면 구원도 있을 수 없다. ”53) 이 공동체들이 가끔 작고 가난하거나 흩어져 살더라도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며, 그분의 힘으로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가 이루어진다.54) 사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어 받는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받아 모시는 그것으로 우리가 변화되는 것이다.”55)
성찬례의 모든 합법적 거행은 주교에게 지도를 받는다. 주님의 명령과 교회의 법에 따라, 구체적인 판단으로 자기 교구를 위하여 제정한 더 자세한 규정에 따라, 존엄하신 하느님께 그리스도교 예배를 드리고 돌보아야 할 직무가 주교들에게 맡겨져 있다.
이렇게 주교들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고 일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성성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풍부히 쏟아 준다. 말씀의 교역을 통하여 구원을 가져다 주시는 하느님의 힘을(로마 1,16 참조) 신자들에게 전달하여 주며, 자기 권위로 정규적이고 효과적인 분배를 규정한 성사들을 통하여56) 신자들을 거룩하게 한다. 주교들은 그리스도의 왕다운 사제직에 참여하게 하는 세례의 수여를 지도한다. 주교들은 견진성사의 원집전자이고, 성품성사의 관리자이고, 참회 규율의 지도자이며, 자기 백성이 전례 안에서 특히 거룩한 미사의 희생 제사에서 신앙과 존경으로 그들의 역할을 다하도록 열심히 권고하며 가르친다. 끝으로, 주교들은 자기가 다스리는 이들에게 삶의 모범으로 도움을 주고 자기 품행에서 온갖 악을 끊어 버려야 하며, 할 수 있는 대로, 주님의 도우심으로 악을 선으로 바꾸어 자기에게 맡겨진 양 떼와 함께 영원한 생명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57)
다스리는 임무
27. 주교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사절로서 자기에게 맡겨진 개별 교회들을 다스린 다.58) 조언과 권고와 모범으로 또한 권위와 거룩한 권력으로 다스리지만, 오로지 진리와 성덕 안에서 자기 양 떼를 기르는 데에만 그 권력을 행사하며,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처럼 처신하여야 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처신하여야 한다는 것을(루가 22,26-27 참조) 기억하여야 한다. 주교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직접 행사하는 이 권력은 고유한 직접적 직권이다. 비록 그 권력의 행사가 궁극적으로는 교회의 최고 권위로 다스려지고 교회와 신자들의 선익을 고려하여 일정한 한계에 제한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하다. 이 권력의 힘으로 주교들은 주님 앞에서 자기에게 속한 신자들을 위하여 법률을 제정하고 판결을 내리며 예배와 사도직의 질서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다스릴 거룩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목자의 임무 곧 자기 양들을 날마다 늘 보살펴야 하는 일상 사목이 주교들에게 온전히 맡겨져 있다. 그리고 주교들은 자기 고유의 권력을 행사하므로, 교황의 대리자로 여겨지지 않으며, 참으로 자기가 다스리는 백성의 수장이라
일컬어진다.59) 그러므로 최고의 보편 권력이 주교들의 권력을 소멸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그 정반대로 이를 주장하고 강화하고
준다.60) 성령께서는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 안에 세우신 통치 형태를 확고히 보호하여 주신다.
가장이신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당신 가정을 다스리도록 파견된 주교는 착한 목자의 표양을 바라보아야 한다. 착한 목자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으며(마태 20,28; 마르 10,45 참조), 양들을 위하여 당신 목숨을 바치러 오셨다(요한 10,11 참조).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연약함을 지니고 있는 주교는 무지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동정할 수 있다(히브 5,1-2 참조). 주교는 아랫사람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하고 자기와 함께 기꺼이 협력하도록 권고하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주교는 그들의 영혼에 대하여 하느님께 셈을 치러야 하므로(히브 13,17 참조) 기도와 설교와 온갖 사랑의 행동으로 그들을 돌보아야 하고, 또한 아직 한 무리에 들지 않은 사람들도 주님 안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로 여겨 돌보아 주어야 한다. 주교는 바오로 사도처럼 모든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으므로, 기꺼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며(로마 1,14-15 참조), 자기 신자들에게도 사도직 활동과 선교 활동을 권장하여야 한다. 또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결합되어 계시듯이 신자들은 주교와 결합되어야 하며, 모든 일에서 일치하여 한 마음을 이루고61) 하느님의 영광이 넘쳐 흐르게 하여야 한다(2고린 4,15 참조).
신부들, 그리스도, 주교, 사제단, 그리스도교 백성과 이루는 관계
28. 성부께서 축성하시어 세상에 파견하신 그리스도께서는(요한 10,36 참조) 당신 사도들을 통하여 그 후계자들, 곧 주교들을 당신의 축성과 사명에 참여하게 하셨다.62) 주교들은 자기 봉사직의 임무를 여러 단계로 교회 안의 여러 아랫사람들에게 합법적으로 전수해 주었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교회 직무는 이미 옛날부터 주교, 신부, 부제라고 불리는 이들이 여러 품계로 수행하고 있다.63) 신부들은 비록 대사제직의 정점에는 이르지 못하고 권력의 행사에서 주교들에게 의존하고 있지만, 사제의 영예로는 주교들과 함께 결합되어 있으며,64) 성품성사의 힘으로65) 영원한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히브 5,1-10; 7,24; 9,11-28 참조) 신약의 참 사제로서66) 복음을 선포하고 신자들을 사목하며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도록 축성된다. 자기 봉사 직무의 단계에서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1디모 2,5 참조) 임무에 참여하며,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 성찬의 예배 또는 집회에서 자기의 거룩한 임무를 최대한으로 수행한다. 거기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하고,67) 그리스도의 신비를 선포하며, 신자들의 예물을 그들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제물과 결합시키고, 신약의 유일한 희생 제사를, 곧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깨끗한 제물로 성부께 단 한 번 바치신 희생 제사(히브 9,11-28 참조)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1고린 11,26 참조) 미사의 희생 제사 안에서 재현하고 봉헌한다.68) 참회하는 신자들이나 병든 신자들을 위하여 화해와 위안의 직무를 각별히 수행하며, 신자들의 요청과 기도를 하느님 아버지께 바친다(히브 5,1-3 참조). 목자이시며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임무를 자기가 받은 권위에 따라 수행하며,69) 형제애로 한 마음을 이룬 하느님의 가족을70) 모아,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인도한다. 무리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을 영과 진리 안에서 흠숭한다(요한 4,24 참조). 끝으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며(1디모 5,17 참조), 주님의 법 안에서 묵상하며 읽은 것을 믿고, 믿은 것을 가르치며, 가르친 것을 실천한다.71)
신부들은 주교 품계에 섭리된 협력자들이며72) 주교 품계에 도움이 되는 기관으로서 하느님의 백성에게 봉사하도록 부름 받아, 맡겨진 직무는 다르지만, 자기 주교와 더불어 한 사제단을 구성한다.73) 주교를 신뢰하며 넓은 마음으로 주교와 결합되어 있는 신부들은 각 지역 신자들의 회중 안에 주교를 어느 모로든 현존하게 하며, 주교의 임무와 관심사를 일부분 받아들여 일상 사목을 수행한다. 그들은 주교의 권위 아래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부분의 주님 양 떼를 거룩하게 하고 다스리며, 보편 교회를 자기 자리에서 볼 수 있게 만들고, 그리스도의 온몸이 자라나도록(에페 4,12 참조) 힘찬 도움을 가져다 준다. 언제나 하느님의 자녀들의 선익을 추구하며, 교구 전체는 물론 교회 전체의 사목 활동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신부들은 이렇게 주교의 사제직과 사명에 참여하므로 주교를 참으로 자기 아버지로 알아 존경하는 마음으로 순종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을 이제는 종이 아니라 벗이라고 부르시는 것처럼(요한 15,15 참조), 주교는 자기 협력자인 사제들을 아들로 또 친구로 여겨야 한다. 그러므로 성품과 직무의 관계에서 교구 사제이든 수도 사제이든 모든 사제는 주교단과 결합되어 있으며, 자신의 소명과 은총에 따라 온 교회의 선익에 봉사하는 것이다.
공통된 성품과 사명의 힘으로 모든 신부는 서로 친밀한 형제애로 결합되며, 이 형제애는 자발적으로 기꺼이 이루어지는 영성적이고 물질적인 상호 원조로, 사목적이고 개인적인 도움으로 생활과 활동과 사랑의 모임과 친교 안에서 드러나야 한다.
신부들은 세례와 교육을 통하여 영적으로 낳은 신자들을(1고린 4,15; 1베드 1,23 참조)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로서 돌보아야 한다. 스스로 양 떼의 모범이 되어(1베드 5,3 참조) 자기 지역 공동체를 섬기고 다스려, 하느님의 하나인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저 이름, 곧 ‘하느님의 교회’라는(1고린 1,2; 2고린 1,1과 여러 곳 참조) 이름으로 합당하게 불릴 수 있는 공동체가 되게 하여야 한다. 신부들은 일상 생활과 관심에서 신자들에게나 비신자들에게나, 가톨릭 신자들에게나 비가톨릭 신자들에게나 참으로 사제답고 목자다운 봉사자의 모습을 드러내고, 모든 사람에게 진리와 생명의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하며, 또한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는 받았지만 성사 생활을 하지 않거나 신앙에서 멀어진 사람들도 착한 목자로서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을(루가 15,4-7 참조) 명심하여야 한다.
오늘날 인류는 갈수록 더욱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일치를 추구하고 있으므로, 더더욱 사제들은 주교들과 교황의 지도 아래에서 모든 힘과 노력을 모아 온갖 분열의 구실을 없애고 온 인류를 하느님 가족의 일치로 인도하여야 한다.
부제들
29. 교계의 더 낮은 품계에 부제들이 있다. 그들은 “사제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봉사 직무를 위하여” 안수를 받는다.74) 사실 그들은 성사의 은총으로 힘을 얻고, 주교와 그의 사제단과 친교를 이루어, 전례와 말씀과 사랑의 봉사로 하느님 백성을 섬기고 있다. 부제의 소임은 관할 권위가 그에게 맡겨 준 대로, 성대하게 세례를 집전하고, 성체를 보존하고 분배하며, 교회의 이름으로 혼인을 주례하고 축복하며, 죽음에 임박한 이들에게 노자 성체를 모셔 가고, 신자들에게 성서를 봉독하여 주며, 백성을 가르치고 권고하며, 신자들의 예배와 기도를 지도하고, 준성사를 집전하며, 장례식을 주재하는 것이다.* 자선과 관리의 직무를 부여받은 부제들은 복된 폴리카르포의 권고를 명심하여야 한다. “자비롭고 부지런하여야 하며, 모든 사람의 봉사자가 되신 주님의 진리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75)
교회 생활에 대단히 필요한 이러한 임무는 오늘날 라틴 교회의 현행 규율대로는 많은 지역에서 그 이행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부제직은 앞으로 교계의 고유하고 영구적인 품계로서 복구될 수 있을 것이다. 영혼들의 사목을 위하여 이러한 형태의 부제들을 임명하는 것이 적절한지 또 어디에 임명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여러 가지 관할 지역 주교회의들이 바로 교황의 승인을 받아 결정할 일이다. 이 부제직은 교황의 동의를 얻어 나이 많은 기혼자들에게 수여할 수 있고 또한 적합한 젊은이들에게도 수여할 수 있지만, 젊은이들에게는 독신제 법이 확고히 존속되어야 한다.
교회 안의 평신도
30. 교계의 임무를 밝힌 거룩한 공의회는 평신도라고 불리는 저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에 기꺼이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하느님의 백성에 관하여 말한 모든 것은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들에게 똑같이 해당되지만, 남녀 평신도들에게 그 신분과 사명으로 보아 특별히 관련되는 어떤 것들은 그 근본을 현대의 특수 환경 앞에서 더욱 깊이 숙고하여야 한다. 거룩한 목자들은 평신도들이 얼마나 교회 전체의 선익에 이바지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목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향한 교회의 구원 사명 전체를 자기들이 독점하도록 세우신 것이 아니며 오로지 모든 이가 나름대로 공동 활동에 한 마음으로 협력하도록 신자들을 사목하고 그들의 봉사 직무와 은사를 인정하는 것이 자신들의 빛나는 임무임을 안다. 실제로 “우리는 모두 사랑 가운데에서 진리대로 살면서 여러 면에서 자라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몸은 각 부분이 자기 구실을 다함으로써 각 마디로 서로 연결되고 얽혀서 영양분을 받아 자라난다. 교회도 이와 같이 하여 사랑으로 지체를 완성해”(에페 4,15-16) 나가야 한다.
평신도의 본질과 사명
31. 여기에서는 성품의 구성원과 교회가 인정한 수도 신분의 구성원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이 평신도라는 이름으로 이해된다. 곧 세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백성으로 구성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그리스도교 백성 전체의 사명 가운데에서 자기 몫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평신도들에게는 세속적 성격이 고유하고 독특하다. 성품의 구성원들은 어떤 때에 세속에 살며 세속 직업까지 가질 수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특수한 성소 때문에 주로 직무상 거룩한 교역에 임명되고, 수도자들은 참 행복의 정신이 아니고서는 세상을 변혁시킬 수도 없고 하느님께 봉헌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자기 신분으로 빛나는 뛰어난 증거로 보여 주는 것이다. 평신도들의 임무는 자기 소명에 따라 현세의 일을 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이다. 평신도들은 세속 안에서, 곧 각각의 온갖 세상 직무와 일 가운데에서, 마치 그들의 삶이 짜여지는 것 같은 일상의 가정 생활과 사회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거기에서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아, 자기의 고유한 임무를 수행하며 복음 정신을 실천하고 누룩처럼 내부로부터 세상의 성화에 이바지하며, 또 그렇게 하여 무엇보다도 자기 삶의 증거로써 믿음과 바람과 사랑으로 빛을 밝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이 특별히 하여야 할 일은 자신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모든 현세 사물을 조명하고 관리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일이 언제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고 발전하여 창조주와 구세주께 찬미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하느님의 백성 안에서 누리는 평신도의 품위
32. 하느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교회는 놀라운 다양성으로 이루어지고 다스려진다. “사람의 몸은 하나이지만 그 몸에는 여러 가지 지체가 있고 그 지체의 기능도 각각 다르다. 이와 같이 우리도 수효는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각각 서로 서로의 지체 구실을 하고 있다”(로마 12,4-5).
그러므로 선택된 하느님 백성은 하나뿐이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다”(에페 4,5).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난 지체들의 품위도 같고, 자녀의 은총도 같고, 완덕의 소명도 같으며, 구원도 하나, 희망도 하나이며, 사랑도 갈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또 교회 안에서는 민족이나 국가, 사회적 신분이나 성별에 따른 불평등이 결코 있을 수 없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이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이다”(갈라 3,28; 골로 3,11 참조).
따라서 교회 안에서 모든 이가 똑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이가 성덕을 닦도록 불리었고 하느님의 정의에 힘입어 똑같은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이다(2베드 1,1 참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남을 위하여 교사나 신비 관리자나 목자로 세워졌지만,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통된 품위와 활동에서는 참으로 모두 평등하다. 주님께서 거룩한 교역자들과 나머지 하느님 백성을 구별하셨지만 그 구별은 동시에 결합을 가져온다. 목자들과 다른 신자들이 공통의 필연 관계로 서로 묶여지기 때문이다. 교회의 목자들은 주님의 모범에 따라 서로 자기들과 다른 신자들에게 봉사하여야 하며, 신자들도 목자들과 교사들에게 기꺼이 협력하여야 한다. 이렇게 다양성 안에서 모든 이가 그리스도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일치에 대한 증거를 보여 주고 있다. 실제로 은총과 봉사와 활동의 다양성 그 자체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은다. “이 모든 것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1고린 12,11)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하느님의 호의로, 만물의 주인이시지만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그리스도를(마태 20,28 참조) 형제로 모시듯이, 그렇게 또한 거룩한 교역에 세워져 그리스도의 권위로 하느님의 가정을 가르치고 거룩하게 하고 다스리며 모든 이가 사랑의 새 계명을 지키도록 사목하는 이들도 형제로 삼고 있다. 이 점에 대하여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매우 아름답게 말한다. “여러분을 위하여 내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하여 줍니다. 실제로 여러분에게 나는 주교이지만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인입니다. 전자는 직무의 이름이며, 후자는 은총의 이름입니다. 전자는 위험한 이름이지만 후자는 구원받을 이름입니다.”1)
평신도 사도직
33. 하느님의 백성 안에 모인 평신도들, 하나의 머리 아래 하나인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평신도들은 누구든지 살아 있는 지체로서 교회의 발전과 그 끊임없는 성화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힘을 기울이도록 부름 받고 있다. 그 힘은 창조주의 은혜로 또 구세주의 은총으로 받은 것이다.
평신도 사도직은 바로 교회의 구원 사명에 대한 참여이며, 모든 이는 세례와 견진을 통하여 바로 주님께 그 사도직에 임명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성사로, 특히 성체성사로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저 사랑이 전해지고 자라난다. 그 사랑이야말로 모든 사도직의 혼이다. 그리고 평신도들은 특별히 교회가 오로지 평신도들을 통해서만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장소와 환경 안에서 교회를 현존하게 하고 활동하게 하도록 부름 받고 있다.2) 이렇게 모든 평신도는 “그리스도께서 알맞게 나누어 주신 대로”(에페 4,7) 자기에게 주어진 그 은혜로써 바로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살아 있는 도구이며 증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다 관련되는 이 사도직에 더하여 평신도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복음 안에서 바오로 사도를 도와 주며 주님 안에서 많은 일을 하였던 저 사람들처럼(필립 4,3; 로마 16,3 이하 참조), 교계 사도직과 더 직접적인 협력을 하도록 불릴 수 있다.3) 그 밖에도 평신도들은 영성적인 목적을 수행하는 어떤 교회 임무를 교계로부터 받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평신도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세상 어디에서나 더더욱 널리 가 닿도록 노력하여야 할 빛나는 짐을 지고 있다. 따라서 평신도들도 각자의 능력과 시대의 요구에 따라 교회의 구원 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어디에서나 열려 있어야 한다.
사제직과 예배
34. 영원한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평신도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증거와 당신의 봉사를 계속하기를 바라시기에, 당신의 성령으로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온갖 좋은 일과 완전한 일을 하도록 끊임없이 재촉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명과 사명에 밀접히 결합시키신 평신도들에게 당신 사제직의 일부도 맡기시어, 하느님의 영광과 인류 구원을 위하여 영신적인 예배를 드리게 하셨다. 그러한 까닭에 평신도들은 그리스도께 봉헌되고 성령으로 도유된 사람들로서 놀랍게도 언제나 그들 안에서 성령의 더욱 풍부한 열매를 맺도록 부름을 받고 또 가르침을 받는다. 그들의 모든 일, 기도, 사도직 활동, 부부 생활, 가정 생활, 일상 노동, 심신의 휴식은, 성령 안에서 그 모든 일을 하고 더욱이 삶의 괴로움을 꿋꿋이 견뎌 낸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인 제물이 되고(1베드 2,5 참조), 성찬례 거행 때에 주님의 몸과 함께 정성되이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된다. 또한 이와 같이 평신도들은 어디에서나 거룩하게 살아가는 경배자로서 바로 이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한다.
예언자직과 증거
35. 위대한 예언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생활의 증거와 말씀의 힘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를 선포하셨으며 영광이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당신의 예언자직을 수행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이름과 권력으로 가르치는 교계만이 아니라 평신도들을 통해서도 예언자직을 수행하시는 것이다. 바로 그 목적을 위하여 평신도들을 증인으로 세우시고 신앙 감각과 말씀의 은총을 주시어(사도 2,17-18; 묵시 19,10 참조), 가정과 사회의 일상 생활에서 복음의 힘이 빛나게 하셨다. 굳건한 믿음과 바람으로 현재의 기회를 잘 살려 나가며(에페 5,16; 골로 4,5 참조) 미래의 영광을 인내로 기다린다면(로마 8,25 참조), 평신도들은 약속의 자녀로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희망을 마음 속 깊이 감추어 두지만 말고, 끊임없이 회개하며 “이 암흑 세계의 지배자들과 악령들”(에페 6,12)을 거슬러 싸움으로써 세속 생활의 구조를 통해서도 이 희망을 드러내어야 한다.
신약의 성사들이 신자들의 생활과 사도직을 길러 주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미리 보여 주듯이(묵시 21,1 참조), 그렇게 평신도들도 신앙 생활과 신앙 고백을 확고히 결합시킨다면 바라는 것들에 대한 믿음을(히브 11,1 참조) 알리는 힘찬 선포자들이 될 것이다. 이러한 복음화, 곧 생활의 증거와 말씀으로 전하는 그리스도 선포는 세속의 일반 환경에서 이루어진다는 바로 이 점에서 어떤 특별한 징표와 독특한 효력을 얻는다.
그러한 임무에서는 특별한 성사로 거룩하게 된 저 생활 신분, 곧 혼인과 가정 생활이 매우 귀중하게 드러난다. 바로 여기에 평신도 사도직을 수련하는 훌륭한 도장이 있고, 거기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모든 생활 조직에 스며들어 이를 날로 더욱 변모시킨다. 여기에서 부부는 서로서로 또 자녀들에게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사랑의 증인이 되어야 할 고유한 소명을 지닌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하느님 나라가 지닌 현재의 힘만이 아니라 복된 삶의 희망을 드높은 소리로 선포한다. 이렇게 자기의 모범과 증거로 세상에 죄악을 밝히고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준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현세의 일에 종사하면서도 세상의 복음화를 위하여 귀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또 하여야 한다. 어떤 평신도들은 만일 거룩한 교역자들이 부족하거나 박해 체제에서 교역자들이 방해를 받을 때에는 어떤 거룩한 직무를 특별 권한에 따라 보완한다. 그리고 많은 평신도들이 사도직 활동에 온 힘을 다 기울이고 있지만, 모든 이가 세상에서 그리스도 왕국의 확장과 발전을 위하여 협력하여야 한다. 그러한 까닭에 평신도들은 계시 진리를 더 깊이 이해하도록 치밀한 노력을 하고 끊임없이 하느님께 간청하여 지혜의 은혜를 얻어야 한다.
왕직
36.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시고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 아버지께 높이 올려지시어(필립 2,8-9 참조) 당신 나라의 영광으로 들어가셨다. 당신께 모든 것이 굴복하고, 드디어 당신 자신과 모든 피조물을 하느님 아버지께 굴복시키시어,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이다(1고린 15,27-28 참조). 그러한 권한을 당신 제자들에게 주시어, 그들도 왕다운 자유 안에 세워져 극기와 거룩한 생활로 자기 자신 안에서 죄의 나라를 완전히 쳐 이기게 하시고(로마 6,12 참조),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그리스도를 섬기며, 섬기는 것이 다스리는 것인 그 임금님께 자기 형제들을 겸손과 인내로 인도하게 하신다. 주님께서는 실제로 당신의 나라를 평신도들을 통해서도 확장하기를 바라신다. 그 나라는 곧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이다.”4) 그 나라에서는 바로 피조물이 멸망의 사슬에서 풀려나 하느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릴 것이다(로마 8,21 참조). 참으로 큰 약속과 큰 계명이 제자들에게 주어진다. “모든 것이 다 너희의 것이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이다”(1고린 3,23).
그러므로 신자들은 하느님 찬미를 지향하는 모든 피조물의 가장 깊은 본질과 가치와 목적을 인식하고 세속 활동을 통해서도 서로 더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세상이 그리스도의 정신에 젖어들어 정의와 사랑과 평화 속에서 그 목적을 더욱 효과적으로 달성하게 하여야 한다. 그러한 의무의 수행에서 일반적으로 평신도들이 첫째가는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세속 분야의 자기 역량으로 또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아 내면에서 승화된 자기 활동으로 힘차게 일하여, 창조주의 섭리와 그분 말씀의 비추심에 따라 인간 노동과 기술과 시민 문화로써 참으로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창조된 재화를 계발하고 더욱 적절하게 모든 사람에게 분배하며, 인간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자유 안에서 자기 나름대로 세계의 진보에 기여한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지체들을 통하여 온 인류 사회를 당신 구원의 빛으로 갈수록 더욱더 밝게 비추어 주실 것이다.
평신도들은 또한 힘을 합쳐 그 풍습을 죄악으로 몰아가는 세상의 제도들과 조건들을 바로잡아, 이 모든 것이 정의의 규범에 부합하고 또 덕의 실천을 방해하기보다는 오히려 도와 주게 하여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 활동과 문화에 도덕 가치가 스며들게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방법으로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받아들이는 더 좋은 세상의 밭이 마련되고, 교회의 문도 더 넓게 열려, 거기에서 평화의 선포가 세상으로 퍼져 들어가야 한다.
바로 구원 계획 때문에, 신자들은 교회에 결합되어 자기의 본분이 된 권리와 의무 그리고 인간 사회 구성원이 되어 자기에게 딸린 권리와 의무를 구별하도록 열심히 배워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서로 조화롭게 결합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며, 현세의 어떠한 일에서나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어떠한 인간 행위든 현세의 일에서도 하느님의 지배를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에는 이러한 구별과 동시에 조화가 신자들의 행동 방식에서 최대한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만 교회의 사명이 현대 세계의 구체적인 상황에 더욱 충만히 부응할 수 있다. 세속의 관심사를 정당하게 돌보는 지상 국가가 고유한 원리로 통치된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하듯이, 종교를 전혀 도외시한 사회 건설을 추구하며 국민의 종교 자유를 탄압하고 근절하려는 위험한 주장은 당연히 배척된다.5)
교계와 평신도의 관계
37. 평신도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처럼 교회의 영적 보화에서 특히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들의 도움을 거룩한 목자들에게 풍부히 받을 권리가 있으며,6) 하느님의자녀들과 그리스도 안의 형제들에게 맞갖은 자유와 신뢰로, 자기들의 필요와 소원을 목자들에게 표명하여야 한다. 평신도들은 그들이 갖춘 지식과 능력과 덕망에 따라 교회의 선익에 관련되는 일에 대하여 자기 견해를 밝힐 권한이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그럴 의무까지도 지닌다.7) 그럴 경우에는 교회가 그 목적으로 설립한 기구들을 통하여 언제나 솔직하고 대담하고 지혜롭게 자기 의견을 밝혀야 하며, 거룩한 임무의 수행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이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지녀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처럼 평신도들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시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자유의 복된 길을 모든 사람에게 열어 주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거룩한 목자들이 스승과 지도자로서 교회 안에서 결정하는 것들을 그리스도인의 순종으로 즉각 받아들여야 한다. 지도자들은 우리 영혼들에 대한 셈을 치러야 할 사람으로서 우리를 돌보는 것이므로, 그들이 탄식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하도록(히브 13,17 참조), 자기 지도자들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는 기도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거룩한 목자들은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의 품위와 책임을 인정하고 향상시켜야 한다. 기꺼이 그들의 현명한 의견을 참작하고, 신뢰로써 그들에게 교회에 봉사하는 직무를 맡기며, 행동의 자유와 여유를 남겨 주고, 더 나아가 자발적으로 활동을 하도록 그들을 격려하여야 한다. 평신도들이 제기하는 계획과 요청과 열망에 어버이다운 사랑으로 관심을 기울여 그리스도 안에서 이를 깊이 헤아려야 한다.8) 또한 모든 사람이 지상 국가에서 누리는 정당한 자유를 목자들은 인정하고 존중할 것이다.
평신도들과 목자들 사이의 이러한 친숙한 교류에서 교회의 수많은 선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평신도들의 책임감이 튼튼해지고 열성이 자라나며, 평신도들의 힘이 더욱 쉽게 목자들의 활동에 결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자들은 평신도들의 경험에서 도움을 받아 영신적인 일에서나 현세적인 일에서 더욱 명백하고 더욱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그렇게 하여 온 교회가 모든 지체의 힘을 합쳐 세상의 생명을 위한 자기 사명을 더욱 효과적으로 성취할 수 있다.
세상의 혼인 평신도
38. 평신도는저마다 세속에서 주 예수님의 부활과 생명의 증인이 되어야 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표지가 되어야 한다. 모든 이가 다 함께 또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 영신적 열매를 맺어(갈라 5,22 참조) 세상을 길러 주어야 하고, 주님께서 복음에서 행복하다고 선언하신 가난한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마태 5,3-9 참조) 생명력을 얻는 바로 그 정신을 세상에 전파하여야 한다. 한 마디로, “영혼이 육신 안에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안에서 그 혼이 되어야 한다.”9)
제5장 교회의 보편적 성화 소명
거룩한 교회
39. 교회의 신비를 거룩한 공의회가 제시하는 대로, 교회는 흠 없이 거룩하다고 믿어진다. 성부와 성령과 더불어 “홀로 거룩하시다”고 칭송받으시는1)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당신의 신부로 삼아 사랑하시고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으며(에페 5,25-26 참조), 교회를 당신과 결합시켜 당신 몸이 되게 하시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령의 선물로 가득 채워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1데살 4,3; 에페 1,4 참조) 한 사도의 말씀대로, 교회 안에서 모든 이는 교계에 소속된 사람이든 교계의 사목을 받는 사람이든 다 거룩함으로 부름 받고 있다. 교회의 이 거룩함은 성령께서 신자들 안에서 맺어 주시는 은총의 열매로 끊임없이 드러나며 또 드러나야 한다. 그 거룩함은 자기 삶에서 사랑의 완덕을 지향하며 남들을 감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개인들에게서 여러 가지 형태로 표출되고, 흔히 복음적 권고라고 불려 왔던 권고의 실천에서 고유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 개인적으로든 교회에서 인정받은 생활 형태나 신분으로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인 복음적 권고의 실천은 이 거룩함의 빛나는 증거와 모범을 세상에 보여 주고 있으며 또 보여 주어야 한다.
보편적 성화 소명
40. 모든 완덕의 천상 스승이시며 모범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친히 거룩한 생활의 창시자요 완성자로서 당신의 모든 제자에게 어떠한 신분이든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생활의 성화를 가르치셨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2) 주님께서는 실제로 모든 사람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도록(마르 12,30 참조), 또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도록(요한 13,34; 15,12 참조) 내적으로 그들을 움직이시는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보내 주셨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기 업적 때문에 하느님께 불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계획과 은총에 따라 부름 받고, 주 예수님 안에서 의화되고, 믿음의 세례 안에서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 본성에 참여하였기에 참으로 거룩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룩하게 살며 이미 받은 성덕을 보존하고 완성해 나가야 한다. 사도는 권고한다. “성도로서 부끄럽지 않게”(에페 5,3) 살며, “하느님께 뽑힌 사람들로서, 성도들로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로서 자비와 친절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골로 3,12 참조), 성덕에 이르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갈라 5,22; 로마 6,22 참조). 우리는 모두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므로(야고 3,2 참조), 언제나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며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마태 6,12 참조).3)하고 날마다 기도하여야 한다
따라서 어떠한 신분이나 계층이든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으로 부름 받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명한 일이며,4) 그 성덕으로 지상 사회에서도 더욱 인간다운 생활 양식이 증진된다. 그 완덕에 이르고자 신자들은 그리스도께 받은 힘을 다하여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며, 그분의 모습을 닮아 모든 일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에 대한 봉사에 온 마음으로 헌신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느님 백성의 성덕은 교회의 역사에서 수많은 성인들의 생활을 통하여 빛나는 증거를 보여 주었듯이 풍성한 열매를 맺어 나갈 것이다.
단일한 성덕의 다양한 실천
41. 온갖 생활과 직무에서 모든 사람은 하나의 성덕을 닦고 있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하느님 아버지의 목소리를 따르고 영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흠숭하며, 가난하고 겸손하신 그리스도,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각기 고유한 은혜와 임무에 따라,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사랑으로 움직이는 살아 있는 신앙의 길로 주저 없이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양 떼를 돌보는 목자들은 먼저 우리 영혼들의 목자이시며 주교이신 영원한 대사제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자신의 봉사 직무를 거룩하고 기쁘게 겸손하고 용기 있게 수행하여야 하며, 그러한 직무 수행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도 성화의 뛰어난 수단이 될 것이다. 충만한 사제직에 뽑힌 목자들은 성사의 은총을 받아, 기도하고 희생 제사를 드리고 설교하며 주교로서 하는 온갖 형태의 배려와 봉사를 통하여 목자다운 완전한 사랑의 임무를 수행하여야 하며,5)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양 떼의 표양이 되어(1베드 5,3 참조) 자신의 모범으로 교회를 날로 더욱 큰 성덕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주교들의 영적 화관을 이루는 신부들 도6) 영원하시고 유일하신 중개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교 임무의 은총을 나누어 받고 있으므로, 주교 품계와 비슷하게 날마다 자기 직무의 수행으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안에서 자라나야 하고, 사제적 친교의 유대를 보존하고 온갖 영적 보화로 풍요로워져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산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하며,7) 여러 세기를 내려오며 가끔 드러나지 않은 비천한 봉사로 성덕의 뛰어난 표양을 남긴 사제들과 어깨를 겨루어야 한다. 하느님의 교회가 그들을 찬미하고 있다. 신부들은 직무상 하느님 백성 전체와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고 희생 제사를 봉헌하며, 자신이 거행하는 것을 알고 실천하여,8) 사도적 염려와 위험과 노고에 얽매이지 않고 이를 통하여 오히려 더 높은 성덕으로 오르고, 풍부한 관상으로 자신의 활동을 살찌우고 북돋아 하느님의 온 교회에 위안을 주어야 한다. 모든 신부, 특별히 그 고유한 성품 명의로 교구 사제라 불리는 신부들은 자기 주교와 이루는 충실한 결합과 적극적인 협력이 자기 성화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를 명심하여야 한다.
더 낮은 품계의 교역자들도 최고 사제의 사명과 은총에 특수한 모양으로 참여한다. 특히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에 봉사하는 부제들은9) 온갖 허물에서 자신을 깨끗이 지키며 하느님의 마음에 들어야 하고 사람들 앞에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하여야 한다(1디모 3,8-10.12-13 참조). 주님께 불려 주님의 몫으로 뽑혀 목자들의 감독을 받으며 봉사 직무를 준비하는 성직자들은 자기 정신과 마음을 이 고귀한 선택에 맞갖게 닦아야 한다. 끊임없는 기도와 불타는 사랑 안에서 참되고 옳고 명예로운 것들을 생각하며 하느님의 영광과 영예를 위하여 모든 일을 하여야 한다. 성직자들과 함께 하느님의 선택을 받는 평신도들도 있다. 그들은 전적으로 사도직 활동에 헌신하도록 주교에게 부름을 받아 주님의 밭에서 일하며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10)
그리스도인 부부와 부모는 고유한 길을 따라 충실한 사랑으로 평생 동안 은총 안에서 서로 도와야 하며, 하느님께 받은 사랑스러운 자녀들을 그리스도의 교리와 복음적 덕행으로 교육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여 실제로 지칠 줄 모르는 너그러운 사랑의 모범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며, 사랑의 형제 관계를 이룩하고, 어머니인 교회의 풍요성의 증인이 되고 그 협력자가 되어, 그리스도께서 당신 신부를 사랑하시고 그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저 사랑에 참여하고 그 사랑의 표지가 된다.11) 이와 비슷한 모범은 짝 잃은 이들과 미혼자들에게서도 다른 모양으로 드러나는데, 그들도 교회의 성덕과 활동에 적지 않게 이바지할 수 있다. 그리고 흔히 힘든 노동을 하는 이들은 인간다운 노동으로 자기 자신을 완성하고, 동포들을 도와 주며, 온 사회와 창조계를 더 나은 상태로 진보시켜야 한다. 또한 손수 목수 일을 하시며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시는 그리스도를 행동하는 사랑으로 본받고 희망으로 기뻐하며 서로 다른 사람의 짐을 져 주어야 하고, 날마다 자신의 노동 그 자체로 더 높은 성덕, 사도적 성덕에 이르러야 한다.
가난, 쇠약, 질병, 온갖 고통에 짓눌리는 사람들, 또는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수난하시는 그리스도와 자기가 특별하게 결합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복음에서 그러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선언하셨다. “모든 은총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당신의 영원한 영광으로 불러 주신 하느님께서는 잠깐 고난을 받은 그들을 친히 완전하게 하여 주시고 힘을 주시고 든든하게 세워 주실 것이다”(1베드 5,10 참조).
그러므로 모든 것을 천상 아버지의 손에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뜻에 협력하며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바로 현세적 봉사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보여 준다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생활 조건과 직무와 환경 속에서 또 그 모든 것을 통하여 날로 더욱 거룩해질 것이다.
성화의 수단과 방법
42.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신다”(1요한 4,16).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당신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신다(로마 5,5 참조). 그러므로 가장 필요한 첫째 은혜는 사랑이며, 그 사랑으로 우리는 만유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좋은 씨앗처럼 영혼 안에서 자라나 열매를 맺으려면, 모든 신자가 각기 하느님의 말씀을 기꺼이 듣고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하느님의 뜻을 행동으로 채워 드려야 하며, 성사들, 특히 성체성사와 거룩한 전례에 자주 참여하고, 기도와 극기, 형제들에 대한 적극적인 봉사와 모든 덕의 실천에 꾸준히 헌신하여야 한다. 완덕의 끈이며 율법의 완성인 사랑은(골로 3,14; 로마 13,10 참조) 모든 성화 수단을 이끌고 가르쳐 그 목표에 이르게 한다.12)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표시가 난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시어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셨으므로, 주님과 형제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사람보다 더 큰 사랑을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다(1요한 3,16; 요한 15,13 참조). 사랑의 이러한 최대 증거를 모든 사람에게 특히 박해자들에게 보여 주도록,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첫 시대부터 부름 받았고 또 언제나 부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죽음을 자유로이 받아들이신 스승을 본받고 피를 흘려 스승과 동화되는 순교는 교회에서 최상의 은혜로 또 사랑의 최고 증거로 여겨진다. 그러한 은혜가 소수에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모든 제자는 그 준비를 갖추어,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교회가 늘 겪고 있는 박해 가운데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한다.
또한 교회의 성덕은 특별한 방식으로 주님께서 복음에서 당신 제자들에게 준수하도록 제시하신 여러 가지 권고로써 증진된다.13) 그 가운데에서도 뛰어난 천상 은총의 고귀한 선물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어떤 사람들에게만 허락하신 것으로(마태 19,11; 1고린 7,7 참조), 동정이나 독신 생활 안에서 갈리지 않은 마음으로(1고린 7,32-34 참조) 더욱 수월하게 오직 하느님께만 헌신하게 하는 것이다.14) 하늘 나라를 위한 이 완전한 금욕은 교회에서 언제나 특별한 영예를 누려 왔으며, 사랑의 표지와 자극제로 또 세상에 있는 영적 풍요성의 어떤 특별한 원천으로 여겨졌다.
교회는 또한 사도의 권고를 상기한다. 그는 신자들에게 사랑을 촉구하면서,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죽기까지 순종하셨으며”(필립 2,7-8) 또 “부요하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2고린 8,9 참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사랑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제자라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이러한 사랑과 겸손을 언제나 본받고 증언하여야 하므로, 어머니인 교회는 그 품안에서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구세주의 자기 비움을 더욱 철저히 따르고 더욱 명백히 보여 주며, 하느님 자녀들의 자유 안에서 가난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의 뜻을 버리는 모습을 보고 기뻐한다. 그들은 곧 순종하시는 그리스도를 더욱더 완전히 닮고자, 계명의 척도를 넘는 완덕의 문제에서 하느님 때문에 사람에게 스스로 복종하는 것이다.15)
모든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덕과 자기 신분의 완성을 추구하도록 권유받으며 또 그러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모든 이는 자기 마음을 바로 다스리도록 정신을 차려야 하며, 복음적 청빈 정신에 어긋나는 현세 사물의 사용이나 재산에 대한 집착으로 완전한 사랑의 추구를 가로막지 않게 하여야 한다. 사도는 권고한다. 이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결코 그 안에 안주하지 마라. 이 세상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1고린 7,31 그리스어 참조).16)
복음적 권고
43. 하느님께 봉헌된 정결, 청빈, 순명의 복음적 권고는 주님의 말씀과 모범에 토대를 둔 것이며, 또 사도들과 교부들을 비롯하여 교회의 학자들과 목자들이 권장하는 것으로, 교회가 자신의 주님께 받아 주님의 은총으로 언제나 보존해 오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바로 교회의 권위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이 복음적 권고를 해석하고 그 실천을 규정하며 거기에서부터 고정된 생활 형식도 세우도록 배려하였다. 그렇게 하여, 마치 하느님께서 심어 놓으신 씨앗에서 자라난 나무가 주님의 밭에서 놀랍게도 수없이 많은 가지가 뻗어나듯이, 독수나 공동의 여러 생활 형태와 다양한 수도 가족들이 생겨나 회원들의 진보와 그리스도의 몸 전체의 선익에
이바지한다.1) 실제로 실제로 그 수도 가족들은 자기 회원들에게 더욱 확고히 고정된 생활 양식, 완덕을 추구하는 확실한 가르침, 그리스도 군대의 형제적 친교, 순종을 통하여 강화된 자유 등의 도움을 주어, 자신의 수도 서원을 온전히 채우고 충실히 지킬 수 있게 하고 또 사랑의 길에서 기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2)
이러한 신분은, 교회의 신적이며 교계적인 구조를 헤아려 볼 때에, 성직자와 평신도 신분의 중간이 아니라, 그 양편에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아 교회의 삶에서 특별한 은혜를 누리며 각자 자기 방식대로 교회의 구원 사명에 이바지하는 것이다.3)
수도자 신분의 본질과 중요성
44. 서원을 통하여 또는 그 고유한 특성에서 서원과 비슷한 다른 거룩한 결연을 통하여 앞서 말한 세 가지 복음적 권고의 의무를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은 지극히 사랑하는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되며, 이렇게 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새롭고 특수한 자격을 받는다. 세례를 통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하느님께 봉헌되었으나, 세례 은총의 더욱 풍성한 열매를 얻을 수 있도록 교회 안에서 복음적 권고들을 서원하여 사랑의 열정과 완전한 하느님 예배를 가로막을 수 있는 장애에서 해방되고자 하며, 하느님 섬김에 더욱 깊이 봉헌되는 것이다.4) 그리고 더욱 견고하고 더욱 확고한 유대를 통하여, 신부인 교회와 불가분의 유대로 결합되신 그리스도를 더 잘 드러낼수록 이 봉헌은 그만큼 더 완전해질 것이다.
복음적 권고는 그 수행자들을 사랑을 통하여 사랑으로 이끌어 주고,5) 교회와 그 신비에 특별한 모양으로 결합시켜 주므로, 그들의 영성 생활은 또한 온 교회의 선익에 봉헌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고유한 성소의 형태에 따라 기도나 적극적 활동으로 그리스도의 나라가 사람들의 영혼 안에 뿌리내려 굳세어지게 하고 그 나라를 모든 지역에 전파하도록 힘껏 노력하여야 할 의무가 생긴다. 그러므로 교회도 여러 수도 단체들의 고유한 성격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적 권고의 서원은 교회의 모든 지체가 그리스도인 소명의 의무를 꾸준히 이행하도록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고 또 이끌어야 할 표지로 드러난다. 하느님의 백성은 여기에 영속하는 나라가 없어 미래의 나라를 찾아야 하므로, 수행자들을 현세 걱정에서 더 잘 해방시켜 주는 수도자 신분은 또한 이미 이 세상에 있는 천상 보화를 모든 신자에게 보여 주고,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얻은 새롭고 영원한 생명의 증거를 드러내며, 미래의 부활과 하늘 나라의 영광을 예고하여 준다. 수도자 신분은 또한 성자께서 성부의 뜻을 이루시려고 세상에 오시어 받아들이셨던 생활 양식,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제시하신 그 생활 양식을 더 철저히 본받고 교회 안에서 영구히 재현한다. 끝으로, 하느님 나라를 지상의 모든 것 위에 들어 높이고 그 결정적인 요구를 특수한 모양으로 밝혀 주며,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탁월하고 위대한 힘과 교회 안에서 기묘히 활동하시는 성령의 무한한 능력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 보여 준다.
그러므로 복음적 권고의 서원으로 이루어지는 신분은, 교회의 교계 구조와 관련되지는 않지만, 분명히 교회의 생활과 성덕에 속한다.
교회의 권위와 수도자 신분
45. 교회 교계의 임무는 하느님의 백성을 사목하며 가장 기름진 풀밭으로 인도하는 것이므로(에제 34,14 참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완덕을 각별히 북돋아 주는 복음적 권고의 실천을 교회법으로 지혜롭게 지도하는 것은 교계의 소임이다.6) 성령의 이끄심에 유순히 따르는 교계는 훌륭한 남자들과 여자들이 제시한 규칙들을 받아들이고, 더 보완된 규칙을 유권적으로 승인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고자 곳곳에 세워진 수도 단체들이 설립자들의 정신에 따라 자라나고 꽃피우도록 자신의 권위로 감독하며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주님의 양 떼 전체의 필요에 더 잘 부응하고자, 교황은 보편 교회에 대한 자신의 수위권을 근거로, 공동선을 고려하여, 어떤 완덕의 단체이든 개별 회원이든 지역 직권자들의 재치권에서 면속시켜 오로지 자신에게만 예속시킬 수 있다.7) 이와 비슷하게 총대주교들의 고유한 권위에 남겨 두거나 맡길 수 있다. 그 회원들은 자신의 특수한 생활 형태로 교회에 대한 의무를 다하며, 교회법에 따라 주교들에게 존경과 순명을 보여 주어야 한다. 주교들이 개별 교회에서 목자의 권위를 가지고 있고 또 사도직 활동에 일치와 화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8)
그리고 교회는 수도 서원을 자신의 인정을 통하여 교회법적 신분의 품위로 세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례 행위를 통하여 하느님께 봉헌된 신분으로 드러내 보인다. 사실 교회는 하느님께 위임받은 권위로 서원자들의 서원을 받아들이고, 공적 기도로 하느님에게서 그들에 대한 도움과 은총을 얻어 주며, 그들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고 그들에게 영적인 복을 빌어 주며, 그들의 봉헌을 성찬례의 희생 제사와 결합시켜 준다.
수도자의 위대한 봉헌
46. 수도자들은 자신들을 통하여 교회가 참으로 나날이 신자들이나 비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더 잘 드러내 보여야 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하여야 한다. 교회는 수도자들을 통하여, 때로는 산에서 관상하시고, 때로는 군중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때로는 병들고 상처 입은 이들을 고쳐 주시고, 죄인들을 건실한 사람으로 회개시키시고, 때로는 아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고, 모든 이에게 선을 베푸시며, 당신을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언제나 순명하시는 그리스도를 드러내 보여야 한다.9)
그리고 복음적 권고의 서원은 분명히 크게 존중하여야 할 선의 포기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인격의 발전에 지장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 본질상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모든 이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실 각자의 개인적 성소에 따라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복음적 권고는 마음의 정화와 정신적 자유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사랑의 열정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며, 수많은 성인 설립자들의 모범으로 증명되듯이 특별히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선택하시고 그분의 동정 성모님께서 받아들이신 순수한 동정과 청빈의 생활 양식에 그리스도인을 더욱더 동화시켜 줄 수 있다. 또한 그 누구든 수도자들이 자신의 봉헌으로 사람들에게서 소외되거나 지상 국가에서 무익한 존재가 된다고 여겨서는 결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수도자들이 때로는 자기 동시대인들을 직접 도와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마음 안에서 더욱 깊이 함께하며 그들과 정신적으로 협력하여, 지상 국가를 세우는 사람들이 헛되이 수고하지 않도록, 지상 국가 건설이 주님 안에 토대를 두고 또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10)
그러기에 마지막으로, 거룩한 공의회는 수도원, 학교, 병원, 선교 지역에서 앞서 말한 봉헌에 대한 한결같고 겸허한 충성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를 함께 꾸미며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온갖 봉사를 하는 남자들과 여자들, 수사들과 수녀들을 격려하고 찬양한다.
격려
47. 복음적 권고를 서원하도록 불린 사람은 누구나 각기 하느님께 불린 그 성소 안에 항구히 머무르며 더욱더 정진하도록 최선을 다하여, 교회의 거룩함을 더욱더 풍요롭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거룩함의 원천이며 기원이 되시는 한 분이시며 나뉨이 없으신 삼위일체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을 드려야 한다.
제7장 순례하는 교회의 종말론적 성격, 그리고 천상 교회와 그 일치
우리 소명의 종말론적 성격
48.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모두 그리로 부름 받아 그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덕을 얻게 되고, 만물이 새로워지는 시간이 올 때에(사도 3,21 참조) 비로소 천상 영광 안에서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에는 인간과 밀접히 결합되어 인간을 통하여 그 목적에 이르는 온 세상도 인류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될 것이다(에페 1,10; 골로 1,20; 2베드 3,10-13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땅에서 높이 들려지시어 모든 사람을 당신께 이끌어들이셨고(요한 12,32 참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로마 6,9 참조) 생명을 주시는 당신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 주시고 성령을 통하여 당신 몸인 교회를 구원의 보편 성사로 세우셨다.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면서도 끊임없이 이 세상에서 활동하시어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어들이시고 교회를 통하여 당신과 더욱 긴밀히 결합시키시며 당신의 몸과 피로 기르시어 당신의 영광스러운 생명에 참여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약속된 재건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어 성령의 파견으로 추진되고 성령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계속된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신앙을 통하여 우리 현세 생활의 의미도 배우며,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미래의 좋은 것에 대한 희망으로 그 목적을 향하여 이끌어 나가며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힘쓴다(필립 2,12 참조).
그러므로 이미 세기들의 종말이 우리에게 다가왔으며(1고린 10,11 참조) 세상의 쇄신도 되돌이킬 수 없이 결정되어 이 현세에서 어느 모로 미리 이루어지고 있다. 교회가 이미 지상에서 참된 성덕으로 불완전하게나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가 깃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때까지(2베드 3,13 참조), 순례하는 교회는 자신의 성사들 안에서 그리고 이 시대에 딸린 제도 안에서 지나갈 이 현세의 모습을 지니고, 아직까지 신음하고 진통을 겪으며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피조물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로마 8,19-22 참조).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와 결합되고 “우리가 받을 상속을 보증해 주시는”(에페 1,14) 성령의 인호를 받은 우리는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며, 실제로 하느님의 자녀들이다(1요한 3,1 참조). 그러나 아직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골로 3,4 참조). 그 영광 속에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참모습을 뵈올 것이므로 우리도 하느님과 비슷하게 될 것이다(1요한 3,2 참조). 그러므로 “육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것이며”(2고린 5,6) 성령의 첫 열매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속으로 신음하며(로마 8,23 참조)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를 갈망하는 것이다(필립 1,23 참조). 바로 그 사랑이 우리를 재촉하여 더더욱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한다(2고린 5,15 참조).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며(2고린 5,9 참조) 악마의 속임수에 대항하고 악한 날에 저항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무장을 한다(에페 6,11-13 참조). 그러나 주님의 경고대로 우리는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므로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단 한 번뿐인 우리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친 다음에(히브 9,27 참조) 주님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 축복받은 이들과 함께 헤아려질 수 있을 것이며(마태 25,31-46 참조), 악하고 게으른 종들처럼(마태 25,26 참조)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거나(마태 25,41 참조) 바깥 어둠 속에 내쫓아 거기에서 절치 통곡하게 하라는 명령을 듣지 않을 것이다(마태 22,13; 25,30 참조).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럽게 다스리기 전에 모두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한 일들이 숨김없이 드러나서 잘한 일은 상을 받고 잘못한 일은 벌을 받게 될 것이며”(2고린 5,10) 세말에 가서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단죄를 받게 될 것이다”(요한 5,29; 마태 25,46 참조).
따라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추어 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로마 8,18; 2디모 2,11-12 참조) 여기며 우리는 믿음 안에서 힘을 내어 “복된 희망을 안고 위대하신 하느님과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기를”(디도 2,13) 기다리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며”(필립 3,21),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당신의 성도들에게 영광을 받으시고 믿는 모든 사람 가운데에서 경탄의 찬미를 받으실것이다”(2데살 1,10 참조).
순례하는 교회와 천상 교회의 친교
49. 그러므로 주님께서 당신 위엄을 갖추시고 모든 천사를 거느리고 오실 때까지(마태 25,31 참조), 또 죽음을 물리치시고 모든 것을 당신께 굴복시키실 때까지(1고린 15,26-27 참조), 주님의 제자들 가운데에서 어떤 이는 지상에서 나그넷길을 걷고 있고, 어떤 이는 이 삶을 마치고 정화를 받으며, 또 어떤 이는 “바로 삼위이시며 한 분이신 하느님을 계시는 그대로 분명하게”1) 뵈옵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같은 사랑 안에서 참으로 여러 단계와 방법으로 친교를 이루고 있으며 우리 하느님께 영광의 같은 찬미가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스도께 딸린 모든 사람은 그분의 성령을 모시고 하나인 교회로 뭉쳐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에페 4,16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평화 속에 잠든 형제들과 나그네들의 결합은 조금도 중단되지 않으며, 더욱이 교회의 변함 없는 신앙에 따르면, 영신적 선익의 교류로 더욱 튼튼해진다.2) 천상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더 친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온 교회를 성덕으로 더욱더 튼튼하게 강화하고, 교회가 이 지상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를 존귀하게 만들며 교회의 더욱더 광범위한 건설에 여러 가지로 이바지하고 있다(1고린 12,12-27 참조).3) 왜냐하면 본향으로 받아들여져 주님과 함께 사는 이들은(2고린 5,8 참조) 주님을 통하여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끊임없이 하느님 아버지께 전구하며,4)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1디모 2,5 참조) 모든 일에서 주님을 섬기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으로 채우며(골로 1,24 참조) 이 지상에서 쌓은 공로를 보여 드리기 때문이다.5) 따라서 그들의 형제적 배려로 우리의 연약함이 많은 도움을 받는다.
순례하는 교회와 천상 교회의 관계
50.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의 이러한 친교를 명백히 인식하는 나그네들의 교회는 초대 그리스도교 이래로 죽은 이들에 대한 기억을 커다란 신심으로 소중하게 간직하여 왔으며,6) 죽은 이들을 위하여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도록 기도한다는 것은 거룩하고 유익한 생각이기 때문에(2마카 12,45 참조), 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하여 대리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자기 피를 흘려 믿음과 사랑의 최고 증거를 보인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순교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밀접하게 우리와 결합되어 있다고 교회는 언제나 믿었으며, 또한 동시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그들을 특별한 정성으로 공경하고7) 그들의 전구의 도움을 열심히 간청하였다. 그들에게는 오래지 않아, 또한 그리스도의 동정과 청빈을 더욱더 정확히 본받은 다른 이들과8) 마침내 그리스도인 덕의 훌륭한 실천으로9) 또 신적 은사들로 말미암아 신자들의 신심과 모범의 대상으로 추대된 다른 이들도 추가되었다.10)
실제로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른 이들의 삶을 바라보며 우리는 미래 도성을 찾으려는 새로운 동기로 자극을 받고(히브 13,14; 11,10 참조) 또한 동시에 현세의 변화 속에서도 각자 고유한 신분과 조건에 따라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 곧 성덕에 이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길을 배운다.11) 우리의 인간성을 지닌 형제 자매로서 마침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더욱 완벽하게 변모된 그들의 삶에서(2고린 3,18 참조),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얼굴과 현존을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드러내신다. 그들 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당신 나라의 표지를 우리에게 주신다.12)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구름처럼 우리를 둘러싸고(히브 12,1 참조) 우리는 복음의 진리에 대한 이러한 증언을 들으며 그 나라로 힘차게 이끌린다.
그러나 우리는 오로지 표양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늘에 있는 이들을 기억하며 공경할 뿐 아니라 또한 더 나아가서 형제적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온 교회의 일치가 성령 안에서 강화되도록 그렇게 한다(에페 4,1-6 참조). 나그네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인의 친교가 우리를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인도하는 것처럼 이렇게 성인들과 이루는 통공도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켜 주고, 온갖 은총과 하느님 백성의 생명 자체가 그 원천이며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흘러 나오기 때문이다.13)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동무요 공동 상속자들이며 우리의 형제요 탁월한 은인들인 이 성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마땅한 감사를 드리며14) “우리의 유일한 구속주이시며 구세주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은혜를 얻고자 우리가 간절히 그들을 부르고 그들의 기도와 힘과 도움에 의지하는 것”15) 은 매우 합당하다. 우리가 천상 형제들에게 보인 사랑의 모든 진정한 증거는 바로 그 본질에서 “모든 성인의 월계관"이신16)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그리스도에게서 끝나며, 또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성인들 가운데에서 놀라운 일을 하시고 그들 안에서 찬양을 받으시는 하느님을 지향하고 하느님에게서 끝나는 것이다.17)
천상 교회와 우리의 결합은 특히 성령의 능력이 성사적 표지를 통하여 우리 위에 작용하는 거룩한 전례 안에서 우리가 함께 기뻐하며 하느님의 위엄을 함께 찬미할 때에 가장 고귀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18) 그 그 전례 안에서 모든 민족과 언어와 백성과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묵시 5,9 참조) 우리 모든 사람이 하나인 교회로 모여 하나의 찬미가로 한 분이시며 삼위이신 하느님을 찬양한다. 그러므로 성찬의 희생 제사를 거행하는 우리는 천상 교회의 예배와 밀접히 결합되고 일치되어, 영광스러운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를 비롯하여 성 요셉과 복된 사도들과 순교자들과 모든 성인을 기억하고 공경한다.19)
공의회의 사목 지침
51. 천상의 영광 안에 있거나 또는 죽은 뒤에 아직 정화를 받고 있는 형제들과 이루는 활기찬 통공에 관한 우리 조상들의 존귀한 신앙을 이 거룩한 공의회는 커다란 신심으로 받아들이며, 거룩한 제2차 니케아 공의회,20) 피렌체 공의회,21) 트리엔트 공의회의22) 결정들을 거듭 제시한다. 또한 동시에 공의회는 그 사목적 관심에서 모든 관계자가 어떤 남용이나 과도함이나 결함이 여기저기 스며들어 있을 때에 그것들을 방지하고 시정하도록 노력하며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하느님께 더욱 충만한 찬미가 되도록 개선하기를 권고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인 공경은 복잡한 외적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랑의 강렬한 실천에 있다는 것을 신자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 사랑으로 우리는 우리와 교회의 더 큰 선익을 위하여 성인들의 “생활에서 모범을, 통공에서 참여를, 전구에서 도움을”23) 찾는다. 또 다른 한편으로 천상 형제들과 이루는 우리의 교류가 신앙의 더욱 충분한 빛을 받아 이해된다면 결코 그것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바쳐지는 흠숭 예배를 약화시키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정반대로 그 예배를 더욱더 값지고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24) 신자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을 이루고 있는 우리가 모두(히브 3,6 참조) 서로 사랑하고 하나의 찬미가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찬미하며 서로 교류할 때에 우리는 교회의 근본 소명에 부응하며, 완성된 영광의 전례를 미리 맛보고 그 전례에 참여하기 때문이다.25)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고 죽은 이들의 영광스러운 부활이 이루어질 때에는 하느님의 광채가 하늘 나라를 비출 것이고 어린양이 그 나라의 등불이 될 것이다(묵시 21,23 참조). 그 때에 성도들의 온 교회는 사랑의 최고 행복 속에서 하느님과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묵시 5,12)을 흠숭하며 한 목소리로 외칠 것이다. “옥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께서 찬양과 영예와 영광과 권능을 영원 무궁토록 받으소서!”(묵시 5,13).
제8장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
하느님의 계획
52. 지극히 자비로우시고 지혜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세상 구원을 완수하시려고 “때가 찼을 때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우리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셨다”(갈라 4,4-5).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으며,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셨나이다.”1) 그 구원의 신비가 우리에게 계시되고 주님께서 당신 몸으로 세우신 교회 안에서 지속되고 있다. 그 안에서 신자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결합되고 그분의 모든 성인과 일치하여 먼저 “우리 주 천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며 영광스러운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를”2) 기억하며 공경한다.
마리아와 교회
53. 동정 마리아께서는 천사의 예고로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과 몸에 받아들이시어 ‘생명’을 세상에 낳아 주셨으므로 천주의 성모로 또 구세주의 참 어머니로 인정받으시고 공경을 받으신다. 당신 아드님의 공로로 보아 뛰어난 방법으로 구원을 받으시고 아드님과 불가분의 긴밀한 유대로 결합되시어, 천주 성자의 모친이 되시고 따라서 성부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딸이 되시며 또한 성령의 궁전이 되시는 이 최고의 임무와 품위를 지니고계신다. 이 뛰어난 은총의 선물로 마리아께서는 하늘과 땅의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훨씬 앞서 계신다. 그러나 동시에 구원받아야 할 모든 사람과 함께 아담의 혈통 안에 결합되어 계실뿐더러 “분명히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어머니이시다.……왜냐하면 저 머리의 지체인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태어나도록 사랑으로 협력하셨기 때문이다.”3) 이 때문에 마리아께서는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유일무이한 지체로서 또 믿음과 사랑 안에서 교회의 가장 훌륭한 전형과 모범으로서 존경을 받으시며, 가톨릭 교회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자녀다운 효성으로 마리아를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로 받든다.
공의회의 의도
54. 그러므로 거룩한 공의회는 하느님이신 구세주께서 구원을 이룩하시는 교회에 관한 교리를 설명하면서, 한편으로는 강생하신 말씀과 그 신비체의 신비 안에서 복되신 동정녀의 임무를, 또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고 인류의 어머니이시며 특히 신자들의 어머니이신 천주의 성모님께 대한 구원받은 사람들의 의무를 성실하게 밝히고자 한다. 그러나 마리아에 관한 완벽한 교리를 제시하거나 신학자들의 노력으로도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문제들을 종결시킬 마음은 없다. 그러므로 거룩한 교회 안에서 가장 높으신 그리스도 다음으로 높고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는 그분에 대하여 가톨릭 학파들에서 자유로이 제시되는 견해들은 당연히 유지된다.4)
구약 성서에 예언된 구세주의 어머니
55. 구약 성서와 신약성서 그리고 존귀한 성전은 구원 계획 안에서 맡으신 구세주 어머니의 임무를 갈수록 더욱더 분명하게 밝혀 주며 마치 눈앞에 보여 주듯이 제시하고 있다. 참으로 구약성서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을 느린 걸음으로 준비하는 구원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제대로 읽혀지고 충만한 마지막 계시에 비추어 이해되는 그 초기 문서들은 구세주의 어머니인 여인의 모습을 한 걸음씩 더욱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여기에 비추어 보면, 죄에 떨어진 첫 조상들에게 주어진 약속, 뱀을 이기리라는 승리에 대한 약속(창세 3,15 참조) 안에 그 여인의 모습이 이미 예언적으로 어렴풋이 그려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여인은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라 불릴 아들을 잉태하여 낳을 동정녀이다(이사 7,14; 미가 5,2-3; 마태 1,22-23 참조). 그 여인은 신뢰로 주님께 구원을 바라고 받는 주님의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빼어난 분이다. 약속의 오랜 기다림 뒤에, 마침내 빼어난 시온의 딸인 이 여인과 더불어 때가 차고 새로운 계획이 시작되었으며, 그 때에 하느님의 아들이 이 여인에게서 인성을 받아들이시어 당신 육신의 신비로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셨다.
주님 탄생 예고 때의 마리아
56.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예정된 어머니의 동의가 강생에 앞서 이루어져 마치 어느 모로 여인이 죽음에 이바지한 것처럼 그렇게 또한 여인이 생명에 이바지하기를 바라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어머니에게서 가장 탁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 어머니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생명 자체를 세상에 낳아 주셨고 하느님에게서 이 위대한 임무에 맞갖은 은혜를 받았다. 그러므로 거룩한 교부들 가운데에서, 천주의 성모님을 온전히 거룩하신 분, 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신 분으로, 이를테면 성령께서 빚어 만드신 새로운 인간이라고 부르던 관습이 널리 퍼졌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5) 잉태되시는 첫 순간부터 더없이 뛰어난 성덕의 빛을 가득히 받으신 나자렛의 동정녀께서는 하느님의 명령으로 소식을 알리는 천사에게서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라는 인사를 받으시고(루가 1,28 참조), 하늘의 사자에게 친히 대답하셨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이렇게 아담의 딸이신 마리아께서는 하느님 말씀에 동의하시어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셨고, 온전한 마음으로 아무런 죄의 거리낌도 없이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받아들이시고, 주님의 종으로서 당신 아드님의 인격과 활동에 당신 자신을 온전히 바치시어, 전능하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아드님 밑에서 아드님과 함께 구원의 신비에 봉사하셨다. 그러므로 거룩한 교부들이 마리아께서 순전히 피동적으로 하느님께 이용당하신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신앙과 순종으로 인류 구원에 협력하신다고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이레네오 성인이 말한 대로, 그분께서는 “순종하시어 자신과 온 인류에게 구원의 원인이 되셨다.”6) 그러기에 적지 않은 옛 교부들이 자신의 설교에서 그와 함께 기꺼이 주장하였다. “하와의 불순종으로 묶인 매듭이 마리아의 순종을 통하여 풀렸다. 처녀 하와가 불신으로 묶어 놓은 것을 동정녀 마리아께서 믿음을 통하여 풀어 주셨다.”7) 그리고 그리고 하와와 비교하여 마리아를 “살아 있는 이들의 어머니”라 부르고,8) 더 자주 이렇게 주장한다. “하와를 통하여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하여 생명이 왔다.”9)
마리아와 예수님의 유년기
57. 구원 활동에서 성모님과 아드님의 이 결합은 그리스도의 동정녀 잉태 때부터 그분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드러난다. 먼저 마리아께서 서둘러 일어나 엘리사벳을 찾아가시어 그이에게서 약속된 구원을 믿으셨으니 복되시다는 인사를 받으시고, 선구자가 어머니의 태중에서 기뻐 뛰놀던 때에(루가 1,41-45 참조), 또 천주의 성모님께서 당신의 완전한 동정성을 감소시키시지 않고 오히려 성화하신 당신의 맏아드님을10) 목자들과 박사들에게 기꺼이 보여 주시던 성탄 때에 그 결합이 드러난다. 성전에서 가난한 이들의 제물을 바치시며 주님께 아드님을 봉헌하셨을 때에, 성모님께서는 또한 아드님이 장차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고 어머니의 마음이 칼에 찔릴 것이며 많은 사람의 마음에서 숨은 생각이 드러나게 되리라는 시므온의 예언을 들으셨다(루가 2,34-35 참조). 어린 예수님을 잃고 애태우며 찾던 그 부모는 성전에서 당신 성부의 일에 열중하시던 예수님을 발견하였으나 아드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을 당신 마음에 깊이 새겨 간직하셨다(루가 2,41-51 참조).
마리아와 예수님의 공생활
58. 예수님의 공생활에서 그분의 어머니께서는 맨 처음부터 뚜렷이 나타나신다. 갈릴래아의 가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께서는 자비심이 우러나 당신의 전구로 구세주 예수님의 첫 기적을 이끌어 내셨다(요한 2,1-11 참조). 예수님의 복음 선포 과정에서는 아드님께서 혈육의 관계나 유대를 넘어 하느님 나라를 들어 높이시며, 성모님께서 충실히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루가 2,19.51 참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선언하신(마르 3,35; 루가 11,27-28 참조) 그 말씀을 받아들이셨다. 이렇게 복되신 동정녀께서도 신앙의 나그넷길을 걸으셨고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아드님과 당신의 결합을 충실히 견지하셨다. 거기에 하느님의 계획대로 서 계시어(요한 19,25 참조), 성모님께서는 당신 외아드님과 함께 극도의 고통을 겪으시며 당신에게서 나신 희생 제물에 사랑으로 일치하시어 아드님의 희생 제사에 어머니의 마음으로 당신을 결합시키셨다. 마침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성모님을 제자에게 어머니로 주셨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요한 19,26-27 참조).11)
승천하신 뒤의 마리아
59.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시기 전에는 하느님께서 인류 구원의 성사를 장엄하게 드러내시기를 바라지 않으셨으므로, 사도들은 오순절 전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하여 여러 여자들과 예수님의 형제들과 함께 모두 마음을 모아 기도에만 전념하였으며”(사도 1,14 참조), 마리아께서도 주님의 탄생 예고 때에 이미 당신을 덮어 그느르셨던 성령의 은혜를 당신의 기도로 간청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마침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12)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시고,13) 주님께 천지의 모후로 들어 높여지시어, 군주들의 주님이시며(묵시 19,16 참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14) 당신 아드님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렸다.
마리아와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
60. 사도의 말씀대로, 우리 중개자는 한 분뿐이시다.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고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뿐이신데, 그분이 바로 사람으로 오셨던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바치셨다”(1디모 2,5-6). 사람들에 대한 마리아의 어머니 임무는 그리스도의 이 유일한 중개를 절대로 흐리게 하거나 감소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힘을 보여 준다. 사실 복되신 동정녀께서 사람들에게 미치시는 모든 구원의 영향은 사물의 어떤 필연성이 아니라 하느님의 호의에서 기인하고 또 그리스도의 넘치는 공로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므로, 그 영향은 그리스도의 중개에 의지하고 거기에 온전히 달려 있고 거기에서 모든 힘을 길어 올리며, 그리스도와 믿는 이들의 직접 결합을 결코 가로막지 않고 오히려 도와 준다.
구원 협력
61. 영원으로부터 하느님 말씀의 강생과 함께 천주의 성모로 예정되셨던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하느님 섭리의 계획에 따라 이 세상에서 하느님이신 구세주의 거룩하신 어머니이시고 그 누구보다 각별히 헌신적인 동반자이셨으며, 또 주님의 겸손한 종이셨다. 그리스도를 잉태하시고 낳으시고 기르시고 성전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시고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당신 아드님과 함께 수난하시고, 순종과 믿음과 바람과 불타는 사랑으로 영혼들의 초자연적 생명을 회복시키시고자 온전히 독특한 방법으로 구세주의 활동에 협력하셨다. 그러한 까닭에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셨다.
종속적인 구원 임무
62. 은총의 계획 안에 있는 이러한 마리아의 모성은 주님 탄생의 예고에 믿음으로 동의하시고 십자가 밑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간직하셨던 그 동의에서부터 모든 뽑힌 이들의 영원한 완성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지속된다. 실제로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모님께서는 이 구원 임무를 그치지 않고 계속하시어 당신의 수많은 전구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어 주신다.15) 당신의 모성애로 아직도 나그넷길을 걸으며 위험과 고통을 겪고 있는 당신 아드님의 형제들을 돌보시며 행복한 고향으로 이끌어 주신다. 그 때문에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교회 안에서 변호자, 원조자, 협조자, 중개자라는 칭호로 불리신다.16) 그러나 이것은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존엄과 능력에서 아무것도 빼지 않고 아무것도 보태지 않는다고 이해되어야 한다.17)
실제로 어떠한 피조물도 강생하신 말씀 곧 구세주와 결코 똑같이 헤아려질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교역자나 신자들이 여러 모양으로 참여하듯이, 또 하느님의 유일한 선성이 피조물들 안에서 실제로 갖가지 모양으로 퍼져 나가듯이, 구세주의 유일한 중개도 피조물들 가운데에서 그 유일한 원천에 참여하는 다양한 협력을 가로막지 않고 오히려 불러일으킨다.
마리아의 이러한 종속적인 임무를 교회는 의심 없이 믿고 끊임없이 체험하며, 신자들의 마음에 권장하여 어머니의 이러한 도우심과 보호로 중개자 곧 구원자를 더욱더 가까이 따르자고 한다.
동정녀이며 어머니이신 마리아, 교회의 전형
63.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신적 모성의 은혜와 임무로 구세주이신 아드님과 일치되시고, 당신의 탁월한 은총과 임무로 교회와도 밀접히 결합되어 계신다. 이미 암브로시오 성인이 가르친 대로, 믿음과 사랑 그리고 그리스도와 이루는 완전한 일치의 영역에서 천주의 성모님께서는 교회의 전형이시다.18) 실제로 실제로 교회 자체도 당연히 어머니라 또 동정녀라 불리는 그 교회의 신비 안에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앞장서 가시며 탁월하고도 독특하게 어머니로서 또 동정녀로서 모범을 보여 주신다.19) 사실 사실 마리아께서는 믿고 또 순종하시어 바로 성부의 아들을 세상에 낳아 드렸다. 참으로 남자를 몰랐지만 성령의 그느르심을 받아 새 하와로서 옛 뱀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자에게 어떠한 의혹도 섞이지 않은 믿음을 보여 드렸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많은 형제들 가운데에서 맏아들로 삼으신(로마 8,29 참조) 성자를 낳으셨으며, 그 형제들 곧 신자들을 낳아 기르는 데에 모성애로 협력하신다.
동정녀이며 어머니인 교회
64. 그리고 또한 교회는 마리아의 깊은 성덕을 바라보며 그 사랑을 본받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충실히 이행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받아들여 그 자신도 어머니가 된다. 실제로 교회는 복음 선포와 세례로써, 성령으로 잉태하여 하느님에게서 난 자녀들을 불멸의 새 생명으로 낳는다. 교회는 또한 신랑에게 바친 믿음을 온전하고 깨끗하게 지키는 동정녀이다. 교회는 자기 주님의 어머니를 본받아 성령의 힘으로 동정녀답게 온전한 믿음과 확고한 바람과 진실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20)
교회가 본받아야 할 마리아의 완덕
65. 교회는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 안에서 이미 완덕에 이르러 어떠한 티나 주름도 없이 서 있지만(에페 5,27 참조), 그리스도 신자들은 아직도 죄를 극복하고 성덕 안에서 자라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눈을 들어 뽑힌 이들의 온 공동체에 덕행의 모범으로 빛나고 계시는 마리아를 바라본다. 교회는 자녀다운 효성으로 마리아를 받들고 사람이 되신 말씀의 빛으로 마리아를 바라보며 드높은 강생의 신비를 공경하고 더 깊이 파고들어 갈수록 더욱더 자기 신랑을 닮아 간다. 마리아께서는 실제로 구원의 역사 속으로 가장 깊이 들어가시어 신앙의 최고 진리를 어느 모로 당신과 결합시키고 반영하시므로, 찬미와 공경을 받으실 때에 당신 아들과 그 희생으로 또 성부의 사랑으로 신자들을 부르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추구하는 교회는 자신의 탁월한 전형과 비슷해져, 끊임없이 믿음과 바람과 사랑 안에서 나아가며,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따른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사도직 활동에서도 당연히 그리스도를 낳으신 마리아를 우러러보며,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하여 신자들의 마음 속에도 태어나시고 자라나시기를 바란다. 그 동정녀께서는 당신의 생애에서 저 모성애의 모범이 되셨으며, 그 모성애로 교회의 사도직 사명 안에서 사람들이 새로 나도록 협력하는 모든 이가 활력을 찾아야 한다.
공경의 본질과 토대
66.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성자 다음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 위에 들어 높임을 받으신 마리아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신 지극히 거룩한 천주의 성모로서 교회에서 특별한 공경으로 당연히 존경을 받으신다. 사실 오랜 옛적부터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로 공경을 받으시고, 신자들은 온갖 위험과 곤경 속에서 그분의 보호 아래로 달려들어가 도움을 간청한다.21) 그리하여 “이제로부터 과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 능하신 분이 큰 일을 내게 하셨음이로다.”(루가 1,48-49 참조) 하신 마리아의 예언 같은 말씀대로, 특히 에페소 공의회에서부터 하느님 백성의 마리아 공경은 존경과 사랑과 기도와 모방에서 놀랍게 발전하였다. 그 공경은 교회 안에 언제나 있었던 그대로 온전히 독특한 것이지만, 강생하신 말씀과 똑같이 성부와 성령께 보여 드리는 흠숭의 공경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또한 그 흠숭을 최대한 도와 준다. 천주의 성모께 대한 다양한 형태의 신심을 교회는 건전한 정통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시대와 장소의 상황에 따라 또 신자들의 품성과 기질에 따라 승인하였으며, 그 신심은 어머니께서 존경을 받으실 때에 그 아드님 곧 만물이 그분을 위하여 있고(골로 1,15-16 참조)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기꺼이 주신”(골로 1,19) 성자께서 바르게 이해되시고 사랑과 영광을 받으시게 하며 그분의 계명이 준수되게 한다.
사목 규범
67. 거룩한 공의회는 이러한 가톨릭 교리를 분명하게 가르치며, 동시에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공경, 특히 전례적 공경을 적극 촉진하고, 여러 세기의 흐름에서 교도권이 권장하여 온 성모 신심의 실천과 관습을 중시하며, 지나간 시대에 그리스도와 복되신 동정녀와 성인들의 성상 공경에 관하여 결정한 것들을 경건하게 지키도록 교회의 모든 자녀에게 권고한다.22) 그리고 신학자들과 하느님 말씀의 선포자들은 천주 성모의 독특한 품위를 숙고하는 데에서 어느 모로든 온갖 거짓 과장이나 지나치게 협착한 마음을 애써 삼가도록 간곡히 권고한다.23) 교도권의 지도 아래에서 성서와 거룩한 교부들과 교회 학자들과 교회의 전례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모든 진리와 성덕과 신심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로 지향하는 복되신 동정녀의 임무와 특권을 올바로 밝혀야 한다. 말로든 행동으로든 갈라진 형제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교회의 참된 교리에 대하여 오해로 이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힘써 막아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신심은 쓸모없고 일시적인 감정이나 허황한 맹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참된 신앙에서 나온다는 것을 신자들은 명심하여야 한다. 참된 신앙으로 우리는 천주 성모의 탁월함을 인정할 수 있고, 또 우리 어머니께 대한 자녀다운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그분의 덕행을 본받을 수 있다.
V. 하느님의 순례하는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가 되시는 마리아
하느님 백성의 표지이신 마리아
68.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는 어느 모로든 하늘에서 영혼과 육신으로 이미 영광을 받으시어 내세에 완성될 교회의 표상이 되시고 그 시작이 되시는 것처럼, 이 지상에서 주님의 날이 올 때까지(2베드 3,10 참조)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로서 빛나고 계신다.
마리아,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한 전구자
69. 형제들 가운데에서도, 주님이신 구세주의 어머니께 마땅한 존경을 드리는 이들이 없지 않고, 특히 동방 형제들 가운데에는 평생 동정이신 천주의 성모 공경에 뜨거운 열정과 신심으로 함께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24) 이 거룩한 공의회에 큰 기쁨과 위로를 가져다 준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천주의 모친이시며 사람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간절한 기도를 바쳐야 한다. 당신의 기도로 교회의 시작을 도와 주시고 이제 모든 성인과 천사들 위에 들어 높여지신 성모님께서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당신 아드님께 전구하시어,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지녔든 아직 자기 구세주를 모르든, 모든 인류 가족이 평화와 화합 속에서 하느님의 한 백성으로 행복하게 모여 지극히 거룩하신 불가분의 삼위일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되도록 기도하여야 한다.
거룩한 공의회의 교부들은 이 교의 헌장의 모든 것에 낱낱이 찬성하였다. 본인은 그리스도께서 본인에게 부여하신 사도 권한으로 존경하는 교부들과 더불어 이를 성령 안에서 승인하고 결정하고 제정하며, 공의회에서 제정한 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공포하기를 명령한다.
로마 성 베드로 좌에서
1964년 11월 21일
가톨릭 교회 주교 바오로 자서
(교부들의 서명이 따른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회의록 공지
1964년 11월 6일의 제123차 전체 회의에서 지극히 거룩한 공의회의 사무총장이 발표한 교회에 관한 의안에서 제시되어 투표에 붙여지는 교리의 ‘신학적 성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물었다. 교리 위원회는 교회에 관한 의안 제3장에 대한 수정안을 심의하면서 그 물음에 이렇게 답변하였다. “자명한 대로, 공의회의 문안은 언제나 모든 사람이 아는 일반 법칙에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 그 기회에 교리 위원회는 1964년 3월 6일의 위원회 선언을 상기시키고 있어, 그 본문을 여기에 전재한다. “공의회의 관습과 현 공의회의 사목적인 목적을 고려하여, 이 거룩한 공의회는 교회가 믿어야 할 신앙이나 도덕의 문제에 관한 것들도 결정하며, 이를 공의회가 그러한 것으로 분명히 선언할 것이다.” “그러나 거룩한 공의회가 교회의 최고 교도권의 가르침으로 제시하는 다른 것들은 모든 그리스도인 각자가 바로 거룩한 공의회의 정신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여야 한다. 공의회의 정신은 신학적 해석의 규범에 따라 그 다루는 소재에서나 말하는 방법에서 드러난다.”
(단체성의 의미)
그러고 나서 더 높은 권위로부터 교회에 관한 의안 제3장의 수정안에 대한 사전 설명 주석이 전달된다. 따라서 그 제3장에 제시된 가르침은 이 주석의 정신과 견해에 따라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사전 설명 주석
"위원회는 수정안들의 심의에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견해들을 전제하기로 결정하였다
1. ‘단체’는 ‘엄밀한 법률적’ 의미로 이해되지 않는다. 곧 자기 권력을 자신의 단장에게 위임하여 버린 평등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그 조직과 권위를 계시에서 이끌어 내야 하는 확고한 집단에 대한 의미로 이해된다. 그 때문에 수정안 12에 대한 답변에서 열두 사도들에 대하여 주님께서 그들을 ‘확고한 단체 또는 집단의 형태로’ 세우셨다고 명백히 말한다. 수정안 53c도 참조. 같은 이유에서 주교들의 ‘단체’에 대하여 ‘단’ 또는 ‘집단’이라는 말도 여기저기에 쓰인다. 한편으로 베드로와 사도들, 또 다른 한편으로 교황과 주교들 사이의 병행 비교는 사도들의 특권이 그 후계자들에게 전수된다는 의미도 아니고 또 분명하거니와 단체의 단장과 구성원들 사이의 ‘평등’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첫째 관계(베드로-사도들)와 둘째 관계(교황-주교들) 사이의 ‘비례’만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위원회는 제22항에서 ‘동일한’이 아니라 ‘비슷한’ 이치로 쓰도록 결정하였다. 수정안 57 참조.
2. 누구나 주교 축성의 힘으로 그리고 주교‘단’의 단장과 그 ‘단원들’과 이루는 교계적 친교로 주교단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제22항 1의 끝 참조. ‘축성’으로 거룩한 ‘임무’의 ‘존재론적’ 참여가 주어지고, 성전에서 의심 없이 명백한 대로, 전례적 참여도 주어진다. ‘권력’이 아니라 ‘임무’란 말이 신중하게 쓰이고 있다. 권력이란 말은 권력의 ‘행사’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 행사를 하려면 교계의 권위를 통하여 ‘교회법적’ 또는 ‘법률적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한 권력의 결정은 구체적인 직무의 부여나 수하의 지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또한 최고 권위가 승인한 ‘규범’에 따라 주어진다. 이러한 상위 규범은 ‘사안의 본질상’ 요구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교계적으로 협력하는 ‘여러 주체들이’ 수행하여야 할 임무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친교’는, 이를테면 ‘법’으로 성문화되기 전에, 교회의 ‘생활 속에서’ 시대 상황에 따라 적용되어 온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교회의 으뜸과 그 구성원의 ‘교계적’ 친교가 요구된다고 명백히 말한다. ‘친교’는 고대 교회에서 (오늘날에도 특히 동방에서처럼) 크게 존중되는 개념이다. 그것은 막연한 어떤 ‘감정’이 아니라, 법률적 형식을 요구하는 동시에 사랑으로 살아가는 ‘유기체적 실재’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위원회는 거의 만장 일치로 ‘교계적 친교 안에서’로 써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수정안 40과 제24항 아래에서 교회법적 임명에 관하여 말하는 것도 참조.
주교들의 재치권에 관한 최근 교황들의 문서들은 이 필요한 권력 결정에 대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3. 주교단은, 단장 없이는 존재하지 않으며, ‘보편 교회에 대한 완전한 최고 권력의 주체로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교황의 완전한 권력을 손상시키지 않으려면 그러한 진술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로 주교단은 필연적으로 언제나 그 단장과 함께 이해되며, ‘그는 주교단 안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또 보편 교회의 목자로서 자신의 임무를 온전히 보존한다.’ 달리 말하면 교황과 집단으로 여겨지는 주교들이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는 교황과 주교들과 함께 있는 교황이 구별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황은 주교단의 단장이므로 교황 홀로 어느 모로도 주교들의 소관이 아닌 어떤 일들, 예컨대 주교단을 소집하고 지도하고 행동 규범을 승인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있다. 수정안 81 참조. 그리스도의 양 떼 전체를 돌보는 일이 교황에게 맡겨져 있으므로,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변천하는 교회의 필요에 따라 개인적인 방식으로든 합의체적인 방식으로든 이 사목의 실행에 알맞은 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교황의 판단에 달려 있다. 교황은 교회의 선익을 고려하여 자기 재량에 따라 합의체적 사목 수행을 조정하고 증진하고 승인하는 것이다.
4. 교황은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자신의 임무가 요구하는 대로 언제나 자기 뜻대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주교단이 언제나 존재하기는 하지만, 성전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처럼, 그렇다고 지속적으로 ‘엄밀하게’ 합의체적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면 언제나 ‘충만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다만 간격을 두고 오로지 ‘단장이 동의할 때에만’ 엄밀한 합의체적 행동을 한다. 그리고 ‘단장이 동의할 때에만’이라고 하지만, 이를 마치 ‘외부’의 다른 사람에게 예속되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동의’라는 용어는 그와 반대로 단장과 구성원 사이의 ‘친교’를 상기시켜 주며, 단장에게 고유한 ‘행동’의 필요성을 함축하고 있다. 그 사실은 제22항의 2에서 명백히 강조되고 또 그 말미에서 설명되고 있다. ‘오로지’라는 부정적 표현은 모든 경우를 포괄한다. 그러므로 최고 권위로 승인된 ‘규범’이 언제나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수정안 84 참조.
그리고 모든 경우에서 주교들과 ‘그 단장’인 교황의 결합에 관하여 말하며 결코 교황과 ‘독립하여’ 주교들의 행동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단장의 행동이 없는 그러한 경우에, ‘단체’의 개념에서 분명하듯이, 주교들은 단체로서 행동할 수 없다. 교황과 모든 주교의 이러한 교계적 친교는 성전 안에서 확실히 관례적인 것이다.
주의:교계적 친교가 없으면 성사적-존재론적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이것은 교회법적-법률적 측면과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원회는 ‘합법성’과 ‘유효성’에 관한 문제에는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특별히 갈라진 동방 교회에서 실제로 행사되고 있는 권력에 관련되고 또 그 해석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 이 문제는 신학자들의 토론에 맡겨 둔다."
사모사타 명의 대주교
공의회 사무총장
페리클레스 펠리치 대주교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 |
서론 / 제1장 1. 성 치프리아노, 「서간집」, 64,4: 「라틴 교부 총서」(PL), 3,1017: 「라틴 교회 저술가 전집 비판본」(Hartel), III B, 720면; 푸아티에의 성 힐라리오, 「마태오 복음 해설」, 23,6: PL 9,1047; 성 아우구스티노, 여러 곳;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창세기 해설」, 2,10: 「그리스 교부 총서」(PG), 69,110A 참조. 2. 성 대 그레고리오, 「복음 강론」, 19,1: PL 76,1154B; 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 341,9,11: PL 39,1499-1500;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 「변론」, 11: PG 96,1357 참조. 3. 성 이레네오, 「이단 반론」, III, 24,1: PG 7,966B: Harvey 2,131: Sagnard 편, 「그리스도교 원전 비판본」, 398면 참조. 4. 성 치프리아노, 「주님의 기도 해설」, 23: PL 4,553: Hartel, III A, 285면; 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 71,20,33: PL 38,463-464; 「변론」, 12: PG 96,1358D 참조. 5. 오리게네스, 「마태오 복음 해설」, 16,21: PG 13,1443C; 테르툴리아누스, 「마르키온 논박」, 3,7: PL 2,357C: 「라틴 교회 저술가 전집」(CSEL), 47,3, 386면 참조. 전례 문헌으로는, 「그레고리오 전례서」: PL 78,160B; 또는 C. Mohlberg, 「로마 교회 전례서」, 로마, 1960년, 111면, XC: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성도들의 모든 모임 안에 당신의 영원한 거처를 마련하시나이다.…….”; 수도원 성무일도의 찬미가 “복된 도읍 예루살렘”; 로마 성무일도의 “천상 도읍 예루살렘” 참조. 6. 성 토마스, 「신학대전」, III, q.62, a.5, ad 1 참조. 7. 비오 12세, 회칙 「신비체」, 1943.6.29.: 「사도좌 관보」(AAS), 35(1943년), 208면 참조. 8. 레오 13세, 회칙 Divinum illud, 1897.5.9.: 「성좌 공보」(ASS), 29(1896-1897년), 650면; 「신비체」: AAS 35(1943년), 219-220면: 「신앙 규정 편람」(DS), 2288(3808); 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 268,2: PL 38,1232와 다른 곳;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에페소서 강론」, 강론 9,3: PG 62,72; 알렉산드리아의 디디무스, 「삼위일체론」, 2,1: PG 39,449-450; 성 토마스, 「골로사이서 주해」, 1,18, 제5과: Marietti 편, II, 46항 참조: “영혼의 단일성에서 한 몸이 형성되듯이 성령의 단일성에서 교회가 형성된다.…….” 9. 레오 13세, 회칙 Sapientiae christianae, 1890.1.10.: ASS 22(1889-1890년), 392면; 회칙 Satis cognitum, 1896.6.29.: ASS 28(1895-1896년), 710.724면 이하; 「신비체」: AAS 35(1943년), 199-200면 참조. 10. 비오 12세, 「신비체」: AAS 35(1943년), 221면 이하; 회칙 Humani generis, 1950.8.12.: AAS 42(1950년), 571면 참조. 11. Satis cognitum: ASS 28(1895-1896년), 713면 참조. 12. 사도신경: DS 6-9(10-30);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DS 86(150); 트리엔트 신앙 선서문: DS 994.999(1862.1868) 참조. 13. “거룩한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로마 교회”라는 표현은 트리엔트 신앙 선서문: DS 994.999(1862.1868)에 있고, 또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제3회기, 가톨릭 신앙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아드님」: DS 1782(3001)에 있다. 14. 성 아우구스티노, 「신국론」, XVIII, 51,2: PL 41,614. 제2장 1. 성 치프리아노, 「서간집」, 69,6: PL 3,1142B: Hartel, IIIB, 754면 참조: “일치의 나뉠 수 없는 성사.” 2. 비오 12세, 훈화 Magnificate Dominum, 1954.11.2.: AAS 46(1954년), 669면; 회칙 「하느님의 중개자」, 1947.11.20.: AAS 39(1947년), 555면 참조. 3. 비오 11세, 회칙 Miserentissimus Redemptor, 1928.5.8.: AAS 20(1928년), 171-172면; 비오 12세, 훈화 Vous nous avez, 1956.9.22.: AAS 48 (1956년), 714면 참조. 4. 「신학대전」, III, q.63, a.2 참조. 5.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교리교육」, 17, 성령에 관하여, II, 35-37: PG 33, 1009-1012; 니콜라오스 카바실라스, 「그리스도 안의 삶」, III, 은사의 유익함에 대하여: PG 150,569-580; 「신학대전」, III, q.65, a.3; q.72, a.1.5 참조. 6. 「하느님의 중개자」: AAS 39(1947년), 특히 552-553면 참조. 7. 1고린 7,7: “사람마다 하느님께로부터 받는 은총의 선물이 각각 다르므로(i[dion cajrisma), 이 사람은 이렇게 살고 저 사람은 저렇게 삽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프로스페루스에게 보낸, 「인내의 은사론」, 14,37: PL 45,1015-1016 참조: “금욕만이 아니라 부부의 정결도 하느님의 선물이다.” 8. 성 아우구스티노, 프로스페루스에게 보낸, 「성도들의 예정론」, 14,27: PL 44,980 참조. 9.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요한 복음 강론」, 강론 65,1: PG 59,361. 10. 「이단 반론」, III, 16,6; III, 22,1-3: PG 7,925C-926A.955C-958A: Harvey 2,87-88.120-123: Sagnard, 290-292.372면 이하 참조. 11. 성 이냐시오 순교자, 「로마인들에게 보낸 서간」, 서문: 「사도 교부 전집」(Funk), I, 252면 참조. 12. 성 아우구스티노, 「도나투스파를 논박하는 세례론」, V, 28,39: PL 43,197: “교회 안에 있다 또는 밖에 있다고 말하는 그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같은 곳, III, 19,26: col. 152; V, 18,24: col. 189; 「요한 복음 강해」, 61,2: PL 35,1800과 다른 여러 곳 참조. 13. 루가 12,48: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은 것을 돌려 주어야 한다.”; 마태 5,19-20; 7,21-22; 25,41-46; 야고 2,14 참조. 14. 레오 13세, 교황 교서 Praeclara gratulationis, 1894.6.20.: ASS 26(1893-1894년), 707면 참조. 15. 레오 13세, Satis cognitum: ASS 28(1895-1896년), 738면; 회칙 caritatis studium, 1898.7.25.: ASS 31(1898-1899년), 11면; 비오 12세, 라디오 담화 Nell’alba, 1941.12.24.: AAS 34(1942년), 21면 참조. 16. 비오 11세, 회칙 Rerum Orientalium, 1928.9.8.: AAS 20(1928년), 287면; 비오 12세, 회칙 Orientalis Ecclesiae, 1944.4.9.: AAS 36(1944년), 137면 참조. 17. 성무성성, 훈령, 1949.12.20.: AAS 42(1950년), 142면 참조. 18. 「신학대전」, III, q. 8, a. 3, ad 1 참조. 19. 성무성성, 보스턴 대주교에게 보낸 서한: DS 3869-3872 참조. 20.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 「복음의 준비」, 1,1: PG 21,28AB 참조. 21. 베네딕토 15세, 교황 교서 Maximum illud: AAS 11(1919년), 440면, 특히 451면 이하; 비오 11세, 회칙 Rerum Ecclesiae: AAS 18(1926년), 68-69면; 비오 12세, 회칙 Fidei Donum, 1957.4.21.: AAS 49(1957년), 236-237면 참조. 22. 「열두 사도의 가르침」, 14: Funk, I, 32면; 성 유스티노, 「트리폰과 나눈 대화」 41: PG 6,564; 「이단 반론」, IV, 17,5: PG 7,1023; Harvey 2, 199-200면; 트리엔트 공의회, 제22회기, 제1장: DS 939(1742) 참조. 제3장 1.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그리스도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영원하신 목자」: DS 1821(3050-3051) 참조. 2. 피렌체 공의회, 그리스인들을 위한 교령: DS 694(1307);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같은 곳: DS 1826(3059) 참조. 3. 성 그레고리오, 「전례서」, 성 마티아와 성 토마스 축일 감사송: PL 78,51.152: 라틴어 바티칸 사본, 3548, f. 18; 성 힐라리오, 「시편 강론」, 67,10: PL 9,450: CSEL 22, 286면; 성 예로니모, 「요비니아누스 논박」, 1,26: PL 23, 247A; 성 아우구스티노, 「시편 상해」, 86,4: PL 37,1103; 성 대 그레고리오, 「욥기 교훈」, 28,5: PL 76,455-456; 프리마시우스, 「묵시록 해설」, V: PL 68,924BC; 파스카시우스 라드베르투스, 「마태오 복음 해설」, L. VIII, 제16장: PL 120,561C; 레오 13세, 교서 Et sane, 1888.12.17.: ASS 21(1888년), 321면 참조. 4. 사도 6,2-6; 11,30; 13,1; 14,23; 20,17; 1데살 5,12-13; 필립 1,1; 골로 4,11. 여러 곳 참조. 5. 사도 20,25-27; 2디모 4,6-7; 1디모 5,22; 2디모 2,2; 디도 1,5; 로마의 성 클레멘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서간」, 44,3: Funk, I, 156면 참조. 6.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서간」, 44,2: Funk, I, 154-155면 참조. 7. 테르툴리아누스, 「이단자 변론 기각」, 32: PL 2,52-53; 성 이냐시오 순교자, 여러 곳 참조. 8. 「이단자 변론 기각」, 32: PL 2,53 참조. 9. 「이단 반론」, III, 3,1: PG 7,848A: Harvey 2,8: Sagnard, 100-101면 참조: “manifestatam.” 10. 「이단 반론」, III, 2,2: PG 7,847: Harvey 2,7: Sagnard, 100면: “custoditur”; 같은 곳, IV, 26,2: col. 1053: Harvey 2,236; 또한 IV, 33,8: col. 1077: Harvey 2,262 참조. 11. 성 이냐시오 순교자, 「필라델피아인들에게 보낸 서간」, 머리말: Funk, I, 264면 참조. 12. 성 이냐시오 순교자, 「필라델피아인들에게 보낸 서간」, 1,1;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낸 서간」, 6,1: Funk, I, 264.234면 참조. 13. 로마의 성 클레멘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서간」, 42,3-4; 44,3-4; 57,1-2: Funk, I, 152.156.171-172면; 성 이냐시오 순교자, 「필라델피아인들에게 보낸 서간」, 2;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낸 서간」, 8;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낸 서간」, 3; 「트랄레스인들에게 보낸 서간」, 7: Funk, I, 265-266.282.232.246-247면 등; 성 유스티노, 「호교론」, 1,65: PG 6,428; 성 치프리아노, 「서간집」, 여러 곳 참조. 14. Satis cognitum: ASS 28(1895-1896년), 732면 참조. 15. 트리엔트 공의회, 교령 「성품성사에 관한 교리」, 제4장: DS 960(1768); 「영원하신 목자」, 제3장: DS 1828(3061); 「신비체」: AAS 35(1943년), 209.212면; 구교회법 제329조 1항 참조. 16. Et sane: ASS 21(1888년), 321-322면 참조. 17. 성 대 레오, 「설교집」, 5,3: PL 54,154 참조. 18. 트리엔트 공의회, 제23회기, 제3장에서는 성품이 참 성사임을 증명하려고 2디모 1,6-7을 인용한다.: DS 959(1766). 19. 「사도 전승」, 3: Botte 편, 「그리스도교 원전」(SC), 27-30면을 보면, 주교에게 “사제직의 수위권”이 주어진다.; 「레오 전례서」: C. Mohlberg 편, 「베로나 전례서」, 로마, 1955년, 119면: “대사제직의 봉사를 위하여…… 주님의 사제들 안에서 주님 신비의 정점을 이루소서.…….”; 마찬가지로, 「로마 교회 전례서」, 로마, 1960년, 121-122면: “주님, 주님의 교회와 온 백성을 다스리도록 그들에게 주교좌를 주소서.”: PL 78,224 참조. 20. 「사도 전승」, 2: Botte, 27면 참조. 21. 트리엔트 공의회, 제23회기, 제4장에서, 성품성사는 불멸의 인호를 새겨 준다고 가르친다.: DS 960(1767); 요한 23세, 연설 Iubilate Deo, 1960.5.8.: AAS 52(1960년), 466면; 바오로 6세, 바티칸 대성전에서 한 강론, 1963.10.20.: AAS 55(1963년), 1014면 참조. 22. 성 치프리아노, 「서간집」, 63,14: PL 4,386: Hartel, III B, 713면: “사제는 참으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직무를 수행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디모테오 2서 강론」, 강론 2,4: PG 62,612: 사제는 그리스도의 “상징(suJmbolon)”이다.; 성 암브로시오, 「시편 해설」, 38,25-26: PL 14,1051-1052: CSEL 64,203-204; 암브로시아스테르, 「디모테오 1서 해설」, 5,19: PL 17,479C; 「에페소서 해설」, 4,11-12: col. 387C;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 「교리 강론」, XV, 21.24: Tonneau 편, 497.503면; 예루살렘의 헤시키우스, 「레위기 해설」, L. 2,9,23: PG 93,894B 참조. 23.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V,24,10: 「그리스 그리스도교 저술가 총서」(GCS), II,1, 495면: Bardy 편, SC, II, 69면; 에우세비우스의 저술에 나오는 디오니시오, 같은 곳, VII,5,2: GCS II,2, 638-639면: Bardy, II, 168-169면 참조. 24. 옛 공의회들에 관하여: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V,23-24: GCS, II,1, 488면 이하: Bardy, II, 66면 이하. 여러 곳; 니케아 공의회, can. 5: 「세계 공의회 결의문집」(COD), 7면 참조. 25. 테르툴리아누스, 「금식」, 13: PL 2,972B: CSEL 20, 292면, 13-16행 참조. 26. 성 치프리아노, 「서간집」, 56,3: Hartel, III B, 650면; Bardy, II, 154면 참조. 27.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치넬리 공식 보고서: 「공의회 교령집」(Mansi),i 52,1109C 참조. 28.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그리스도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제2초안, c. 4: Mansi 53,310; 수정 초안에 대한 클로이트겐 보고서: Mansi 53,321B-322B; 치넬리 선언: Mansi 52,1110A 참조; 또한 성 대 레오, 「설교집」, 4,3: PL 54,151A를 보라. 29. 구교회법 제222.227조 참조. 30. 「영원하신 목자」: DS 1821(3050-3051) 참조. 31. 성 치프리아노, 「서간집」, 66,8: Hartel, III, 2, 733면: “교회 안에 주교 있고 주교 안에 교회 있다.” 참조. 32. 성 치프리아노, 「서간집」, 55,24: Hartel, 642면, 13행: “하나인 교회가 온 세상에 두루 많은 지체로 나뉘어 있다.”; 같은 곳, 36,4: Hartel, 575면, 20-21행 참조. 33. Fidei Donum: AAS 49(1957년), 237면 참조. 34. 푸아티에의 성 힐라리오, 「시편 강론」, 14,3: PL 9,206: CSEL 22, 86면; 「욥기 교훈」, IV,7,12: PL 75,643C; 위 바실리오, 「이사야서 해설」, 15,296: PG 30,637C 참조. 35. 성 첼레스티노, 「에페소 공의회에 보낸 서간」, 18,1-2: PL 50,505AB; 슈바르츠, 「세계 공의회 회의록」, I,1,1, 22면; Maximum illud: AAS 11(1919년), 440면; Rerum Ecclesiae: AAS 18(1926년), 69면; Fidei Donum: AAS 49(1957년), 237면 참조. 36. 레오 13세, 회칙 Grande munus, 1880.9.30.: ASS 13(1880년), 145면; 구교회법 제1327.1350조 2항 참조. 37. 총대주교좌의 권리에 대하여: 니케아 공의회, can. 6;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에 관하여: can. 7; 예루살렘에 관하여: COD, 8면;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 1215년, 헌장 V: 총대주교의 품위에 대하여: 같은 곳, 212면; 페라라-피렌체 공의회: 같은 곳, 504면 참조. 38. 구 「동방 교회법전」, 제216-314조: 총대주교에 관하여; 제324-339조: 상급 대주교에 관하여; 제362-391조: 다른 품위자들에 관하여; 구체적으로는 제238조 3항, 제216.240.251.255조: 총대주교가 임명하는 주교들에 관하여 참조. ¶J우리는 이 각주의 설명을 다음 문서에서 본다.: 비오 12세, 자의 교서 Cleri sanctitati, 1957.6.2.: AAS 49(1957년), 497-527면(구교회법 제216-314조: 총대주교에 관하여), 530-534면(구교회법 제324-339조: 상급 대주교에 관하여), 540-547면(구교회법 제362-391조: 다른 품위자들에 관하여); 구체적으로는 497-510면(구교회법 제238조 3항, 제216.240.251.255조: 총대주교가 임명하는 주교들에 관하여). [N.d.R.] 참조. 39. 트리엔트 공의회, 개혁에 관한 교령, 제5회기, 제2장, 9항; 제24회기, can. 4: COD, 645.739면 참조. 40. 「하느님의 아드님」, 3: DS 1792(3011); 교회에 관한 제1의안에 붙여진 주해(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의 말 인용): Mansi 51, 579C; 또한 제2헌장 “그리스도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수정안과 더불어 클로이트겐의 해설: Mansi 53, 313AB; 비오 9세, 교서 Tuas libenter: DS 1683(2879) 참조. 41. 구교회법 제1322-1323조 참조. 42. 「영원하신 목자」: DS 1839(3074) 참조. 43. 가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 해설」: Mansi 52,1213AC 참조. 44. 같은 곳: Mansi 52, 1214A 참조. 45. 「제1차 바티칸 공의회 해설」: Mansi 52, 1215CD, 1216-1217A 참조. 46. 같은 곳: Mansi 52, 1213 참조. 47. 「영원하신 목자」, 4: DS 1836(3070) 참조. 48. 비잔틴 예법의 주교 축성 기도: 「대 기도서」, 로마, 1873년, 139면. 49.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낸 서간」, 8,1: Funk, I, 282면 참조. 50. 사도 8,1; 14,22-23; 20,17; 여러 곳 참조. 51. 모자라비아 기도문: PL 96,759B. 52.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낸 서간」, 8,1: Funk, I, 282면 참조. 53. 「신학대전」, III, q. 73, a. 3. 54. 성 아우구스티노, 「마니교도 파우스투스 논박」, 12,20: PL 42,265; 「설교집」, 57,7: PL 38,89 등 참조. 55. 성 대 레오, 「설교집」, 63,7: PL 54,357C. 56. 히폴리토, 「사도 전승」, 2-3: Botte, 26-30면 참조. 57. 주교 서품 시작 때에 하는 ‘서약’과 주교 서품 미사 끝의 ‘사은 찬미가’ 다음에 하는 ‘기도’ 참조. 58. 베네딕토 14세, 소칙서 Romana Ecclesia, 1752.10.5., 1항: 「베네딕토 14세 칙서집」, 제4권, 로마, 1758년, 21: “주교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니고 그리스도의 임무를 수행한다.”; 「신비체」: AAS 35(1943년), 211면: “(주교들은) 각자 자기에게 맡겨진 각각의 양 떼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살피고 다스린다.” 59. 레오 13세, Satis cognitum: ASS 28(1895-1896년), 732면; 교서 Officio sanctissimo, 1887.12.22.: ASS 20(1887년), 264면; 비오 9세, 「독일 주교들에게 보낸 교황 교서」, 1875.3.12.; 추기경 회의 연설, 1875.3.15.: DS 3112-3117(신판) 참조. 60. 「영원하신 목자」, 3: DS 1828(3061); 치넬리 보고서: Mansi 52,1114D 참조. 61.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서간」, 5,1: Funk,Ⅰ, 216면 참조. 62.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서간」, 6,1: Funk, I, 218면 참조. 63. 「성품성사에 관한 교리」, 제2장: DS 958(1765); can. 6: DS 966(1776) 참조. 64. 성 인노첸시오 1세, 「데첸시우스에게 보낸 서간」: PL 20,554A: Mansi 3,1029: DS 98(215): “신부들은 비록 둘째 사제들이기는 하지만, 대사제직의 ‘정점’에 이른 것은 아니다.”; 성 치프리아노, 「서간집」, 61,3: Hartel, 696면 참조. 65. 「성품성사에 관한 교리」: DS 956a-968(1763-1778), 특히 can. 7: DS 967(1777); 비오 12세, 교황령 Sacramentum Ordinis: DS 2301(3857-3861) 참조. 66. 「데첸시우스에게 보낸 서간」;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호교론」, II,22: PG, 35,432B; 위 디오니시우스, 「교계」, 1,2: PG 3,372D 참조. 67. 트리엔트 공의회, 제22회기: DS 940(1743); 「하느님의 중개자」: AAS 39(1947년), 553면: DS 2300(3850) 참조. 68. 트리엔트 공의회, 제22회기: DS 938(1739-1740);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 7.47항 참조. 69. 「하느님의 중개자」: AAS 39(1947년), 553면: DS 2300(3850); 각주 67 참조. 70. 성 치프리아노, 「서간집」, 11,3: PL 4,242B: Hartel, II,2, 497면 참조. 71. 「로마 주교 예식서」, 사제 서품 예식, 제의 수여 참조. 72. 같은 곳, 사제 서품 예식, 감사송 참조. 73. 「필라델피아인들에게 보낸 서간」, 4: Funk, I, 266면; 성 고르넬리오 1세, 성 치프리아노의 「서간집」 48,2에서 인용: Hartel, III,2, 610면 참조. 74. 「이집트 교회 법령」, III,2: Funk 편, 「사도들의 가르침」, II, 103면; 「고대 교회 규정집」, 37-41: Mansi 3,954. 이와 같이 열거된 직무들은 그 품계에 머무르지 않고 사제직에 오르고자 하는 부제들에게도 해당한다(공의회교령해석위원회, 답서, 1968.3.26.: AAS 60, 1968년, 363면 참조). 한편, 현행 규정에 따르면, 부제는 법에서 명시적으로 허용된 축복만 할 수 있고 그러한 준성사만 집전할 수 있다(공의회교령해석위원회, 답서, 1974.11.13.: AAS 66, 1974년, 667면). [N.d.R.] 참조. 75. 성 폴리카르포,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서간」: Funk, I, 300면: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의 봉사자가 되신 분”이라고 한다.; 「열두 사도의 가르침」, 15,1: 같은 곳, 32면; 성 이냐시오 순교자, 「트랄레스인들에게 보낸 서간」, 2,3: 같은 곳, 242면; 「사도 법령」, 8,28,4: Funk 편, 「사도들의 가르침」, I, 530면 참조. 제4장 1. 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 340,1: PL 38,1483. 2. 비오 11세, 회칙 「사십주년」, 1931.5.15.: AAS 23(1931년), 221-222면; 비오 12세, 연설 De quelle consolation, 1951.10.14.: AAS 43(1951년), 790-791면 참조. 3. 비오 12세, 연설 Six ans se sont ecoules, 1957.10.5.: AAS 49(1957년), 927면 참조. 4. 「로마 미사 전례서」, 그리스도 왕 대축일 감사송. 5. 레오 13세, 회칙 Immortale Dei, 1885.11.1.: ASS 18(1885년), 166면 이하; Sapientiae christianae: ASS 22(1889-1890년), 397면 이하; 비오 12세, 연설 Alla vostra filiale, 1958.3.23.: AAS 50(1958년), 220면: “국가의 정당하고 건전한 세속성” 참조. 6. 구교회법 제682조 참조. 7. 비오 12세, 연설 De quelle consolation: AAS 43(1951년), 789면: “결정적인 전투에서는, 때때로 최전선에서 가장 유익한 주장들이 나온다.”; 연설 L’importance de la presse catholique, 1950.2.17.: AAS 42(1950년), 256면 참조. 8. 1데살 5,19; 1요한 4,1 참조. 9.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간」, 6: Funk, I, 400면;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 복음 강론」, 강론 46(47),2: PG 58,478, “반죽 속의 누룩에 대하여” 참조. 제5장 1. 「로마 미사 전례서」, 대영광송; 루가 1,35; 마르 1,24; 루가 4,34; 요한 6,69(oJ aJgioı tou~ qeou~;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사도 3,14; 4,27.30; 히브 7,26; 1요한 2,20; 묵시 3,7 참조. 2. 오리게네스, 「로마서 해설」, 7,7: PG 14,1122B; 위 마카리우스, 「기도론」, 11: PG 34,861AB; 「신학대전」, II-II, q.184, a.3 참조. 3. 성 아우구스티노, 「재론고」, II,18: PL 32,637-638; 「신비체」: AAS 35(1943년), 225면 참조. 4. 비오 11세, 회칙 Rerum omnium, 1923.1.26.: AAS 15(1923년), 50.59-60면; 회칙 Casti Connubii: AAS 22(1930년), 548면; 비오 12세, 교황령 Provida Mater, 1947.2.2.: AAS 39(1947년), 117면; 연설 Annus sacer, 1950.12.8.: AAS 43(1951년), 27-28면; 연설 Nel darvi, 1956.7.1.: AAS 48(1956년), 574-575면 참조. 5. 성 토마스, 「신학대전」, II-II, q.184, a.5와 6; 「영성 생활의 완성에 대하여」, c.18; 오리게네스, 「이사야서 강론」, 강론 6,1: PG 13,239 참조. 6.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낸 서간」, 13,1: Funk, I, 241면 참조. 7. 성 비오 10세, 권고 Haerent animo, 1908.8.4.: ASS 41(1908년), 560-561면; 구교회법 제124조; 비오 11세, 회칙 Ad catholici sacerdotii, 1935.12.20.: AAS 28(1936년), 22면 참조. 8. 「로마 주교 예식서」, 사제 서품 예식, 훈시 123항 참조. 9. 「트랄레스인들에게 보낸 서간」, 2,3: Funk, I, 244면 참조. 10. 비오 12세, 연설 Sous la maternelle protection, 1957.12.9.: AAS 50(1958년), 36면 참조. 11. Casti Connubii: AAS 22(1930년), 548-549면; 「에페소서 강론」, 강론 20,2: PG 62,136 이하 참조. 12. 성 아우구스티노, 「교리 요강」, 121,32: PL 40,288; 「신학대전」, II-II, q.184, a.1; 비오 12세, 교황 권고 Menti nostrae, 1950.9.23.: AAS 42(1950년), 660면 참조. 13. 복음적 권고 전반에 대하여:, 「로마서 해설」, X,14: PG 14,1275B; 성 아우구스티노, 「거룩한 동정 생활」, 15,15: PL 40,403; 「신학대전」, I-II, q.100, a.2C(in fine); II-II, q.44, a.4, ad 3 참조. 14. 거룩한 동정 생활의 탁월성에 대하여: 테르툴리아누스, 「정결에 대한 권고」, 10: PL 2,925C; 성 치프리아노, De habitu virginum, 3.22: PL 4,443B.461AB; 성 아타나시우스(?), 「동정에 대하여」: PG 28,252 이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동정 생활」: PG 48,533 이하 참조. 15. 정신적 청빈에 대하여: 마태 5,3; 19,21; 마르 10,21; 루가 18,22;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신 순명에 대하여: 요한 4,34; 6,38; 필립 2,8-10; 히브 10,5-7 참조. 이와 관련하여, 교부들과 수도회 설립자들의 언급이 많다. 16. 모든 사람의 의무는 아닌 복음적 권고의 실제적 실천에 대하여: 「마태오 복음 강론」, 강론 7,7: PG 57,81-82; 성 암브로시오, 「과부론」, 4,23: PL 16,241-242 참조. 제6장 1. 로스웨이두스, 「교부들의 생애」, 안트베르펜, 1628년; 「교부들의 금언」: PG 65; 팔라디우스, 「라우소스 역사」: PG 34,995 이하: C. Butler 편, 케임브리지, 1898(1904)년; 비오 11세, 교황령 Umbratilem, 1924.7.8.: AAS 16(1924년), 386-387면; 비오 12세, 연설 Nous sommes heureux, 1958.4.11.: AAS 50(1958년), 283면 참조. 2. 바오로 6세, 연설 Magno gaudio, 1964.5.23.: AAS 56(1964년), 566면 참조. 3. 구교회법 제487.488조 4호; Annus sacer: AAS 43(1951년), 27-28면; Provida Mater: AAS 39(1947년), 120면 이하 참조. 4. Magno gaudio: AAS 56(1964년), 567면 참조. 5. 「신학대전」, II-II, q.184, a.3; q.188, a.2; 성 보나벤투라, 소품 XI, Apologia Pauperum, c.3,3: Quaracchi 편, 제8권, 1898년, 245면 a 참조. 6. 그리스도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초안, 제15장과 주 48: Mansi 51,549-550.619-620; 레오 13세, 교서 Au milieu des consolations, 1900.12.23.: ASS 33(1900-1901년), 361면; Provida Mater: AAS 39(1947년), 114-115면 참조. 7. 레오 13세, 교황령 Romanos Pontifices, 1881.5.8.: ASS 13(1880-1881년), 483면; Annus sacer: AAS 43(1951년), 28-29면 참조. 8. Annus sacer: AAS 43(1951년), 28면; 비오 12세, 교황령 Sedes Sapientiae, 1956.5.31.: AAS 48(1956년), 355면; Magno gaudio: AAS 56(1964년), 570-571면 참조. 9. 「신비체」: AAS 35(1943년), 214-215면 참조, 10. Annus sacer: AAS 43(1951년), 30면; Sous la maternelle protection: AAS 50(1958년), 39-40면 참조. 제7장 1. 「그리스인들을 위한 교령」: DS 693(1305). 2. 알렉산데르 4세(1258.9.27.) 이래로 온갖 강신술을 반대해 온 옛 문헌들 외에도; 성무성성, 회람 De magnetismi abusu, 1856.8.4.: ASS 1(1865년), 177-178면: DS 1653-1654(2823-2825); 성무성성, 답서, 1917.4.24.: AAS 9(1917년), 268면: DS 2182(3642) 참조. 3. 바오로 사도의 이러한 가르침에 대한 종합적인 해설은, 「신비체」: AAS 35(1943년), 200면과 여러 곳에서 보인다. 4. 예컨대, 「시편 상해」, 85,24: PL 37,1099; 성 예로니모, 「비질란시우스 논박」, 6: PL 23,344; 성 토마스, 「명제집」 4, d.45, q.3, a.2; 성 보나벤투라, 「명제집」 4, d.45, q.3, a.2 등 참조. 5. 「신비체」: AAS 35(1943년), 245면 참조. 6. 로마 지하 묘지에 있는 수많은 명문(銘文) 참조. 7. 젤라시오 1세, 교령 De libris recipiendis, 3: PL 59,160: DS 165(353) 참조. 8. 성 메토디오, 「토론회」, VII, 3: GCS(Bonwetsch), 74면 참조. 9. 베네딕토 15세, 「하느님의 종 요한 네포묵 뉴먼의 시복 시성 사건에서 한 덕행 인정 교령」: AAS 14(1922년), 23면; 비오 11세, 성인들에 대한 많은 연설: Inviti all’eroismo, 「연설과 라디오 담화」, 제1-3권, 로마, 1941-1942년, 여러 곳; 비오 12세, 「연설과 라디오 담화」, 제10권, 1949년, 37-43면 참조. 10. 「하느님의 중개자」: AAS 39(1947년), 581면 참조. 11. 히브 13,7; 집회 44-50장; 히브 11,3-40; 또한 「하느님의 중개자」: AAS 39(1947년), 582-583면 참조. 12. 「하느님의 아드님」, 제3장: DS 1794(3013) 참조. 13. 「신비체」: AAS 35(1943년), 216면 참조. 14. 바로 성인들에 대한 감사와 관련하여: E. 디엘, 「옛 라틴 그리스도인들의 명문(銘文)」, I, 베롤리니, 1925년, 2008.2382항. 여러 곳 참조. 15. 트리엔트 공의회, 성인 공경 등에 관한 교령: DS 984(1821). 16. 「로마 성무일도」, 모든 성인 대축일, 청원 기도. 17. 예를 들자면, 2데살 1,10 참조. 18. 전례 헌장, 제5장, 104항 참조. 19. 「로마 미사 전례서」, 감사기도 제1양식 참조. 20. 제2차 니케아 공의회, 「회의록」, VII: DS 302(600) 참조. 21. 그리스인들을 위한 교령: DS 693(1304) 참조. 22. 트리엔트 공의회, 성인 공경 등에 관한 교령: DS 984-988(1821-1824); 연옥에 관한 교령: DS 983(1820); 의화에 관한 교령, 제30조: DS 840(1580) 참조. 23. 「로마 미사 전례서」, 프랑스 교구들에 허용된 성인 감사송. 24. 성 베드로 가니시오, 「상급 교리서」, 제3장(F. 슈트라이허 비판본), 제1부, 15-16면, 44항; 100-101면, 49항 참조. 25. 전례 헌장, 제1장, 8항 참조. 제8장 1.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Mansi 3,566; 에페소 공의회, 같은 곳, 4,1130(또한 같은 곳, 2,665; 4,1071); 칼케돈 공의회, 같은 곳, 7,111-116; 제2차 콘스탄?설崙倖?스 공의회, 같은 곳, 9,375-396; 「로마 미사 전례서」와 신경 참조. 2. 「로마 미사 전례서」, 감사기도 제1양식. 3. 「거룩한 동정 생활」, 6: PL 40,399. 4. 바오로 6세, 공의회에서 한 연설, 1963.12.4.: AAS 56(1964년), 37면 참조. 5.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 제르마누스, 「성모 영보에 관한 강론」: PG 98,328A; 「성모 영면에 관한 강론」, 2: PG 98,357; 안티오키아의 아나스타시우스, 「성모 영보에 관한 둘째 설교」, 2: PG 89,1377AB; 같은 설교, 3,2: PG 89, 1388C; 크레타의 성 안드레아, 「성모 성탄 찬미가」, 4: PG 97,1321B; 「성모 성탄에 관한 강론」, 1: PG 97,812A; 「성모 영면에 관한 강론」, 1: PG 97, 1068C; 성 소프로니우스, 「성모 영보에 관한 둘째 강론」, 18: PG 87(3), 3237BD 참조. 6. 「이단 반론」, III, 22,4: PG 7,959A: Harvey 2,123. 7. 같은 곳: Harvey 2,124. 8. 성 에피파니우스, 「이단 논박」, 78,18: PG 42,728CD-729AB. 9. 성 예로니모, 「서간집」, 22,21: PL 22,408; 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 51,2,3: PL 38,335; 「설교집」, 232,2: PL 38,1108;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교리교육」, 12,15: PG 33,741AB;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시편 강론」, 44,7: PG 55,193;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 「성모 영면에 관한 둘째 강론」, 3: PG 96,728 참조. 10. 649년의 라테라노 공의회 can. 3: Mansi 10,1151; 성 대 레오, 「플라비우스에게 보낸 서간」: PL 54,759; 칼케돈 공의회: Mansi 7,462; 성 암브로시오, 「동정녀 교육」: PL 16,320 참조. 11. 「신비체」: AAS 35(1943년), 247-248면 참조. 12. 비오 9세, 칙서 Ineffabilis Deus, 1854.12.8.: 「비오 9세 어록」, 1, I, 616면: DS 1641(2803) 참조. 13. 비오 12세, 교황령 Munificentissimus Deus, 1950.11.1.: AAS 42(1950년): DS 2333(3903);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 「성모 영면에 관한 회람」, 강론 2,3: PG 96,721-761, 특히 728B;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 제르마누스, 「성모 영면에 관한 강론」, 설교 1: PG 98(6),340-348; 설교 3: PG 98(6),361; 예루살렘의 성 모데스투스, 「성모 영면에 관한 강론」: PG 86(2),3277-3312 참조. 14. 비오 12세, 회칙 Ad coeli Reginam, 1954.10.11.: AAS 46(1954년), 633-636면: DS 3913 이하; 크레타의 성 안드레아, 「성모 영면에 관한 셋째 강론」: PG 97,1089-1109;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 「정통 신앙」, IV, 14: PG 94,1153-1161 참조. 15. 클로이트겐, 「강생하신 말씀의 신비」, 수정 본문, 제4장: Mansi 53,290; 크레타의 성 안드레아, 「성모 성탄에 관한 강론」, 설교 4: PG 97,865A;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 제르마누스, 「성모 영보에 관한 강론」: PG 98,321BC; 「성모 영면에 관한 강론」, III: PG 98,361D;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 「성모 영면에 관한 강론」, 강론, 1,8: PG 96,712BC-713A 참조. 16. 레오 13세, 회칙 「신자들의 도움」, 1895.9.5: ASS 28(1895-1896년), 129면; 성 비오 10세, 회칙 Ad diem illum, 1904.2.2.: 「성 비오 10세 어록」, 제1권, 154면: DS 1978a(3370); Miserentissimus Redemptor: AAS 20(1928년), 178면; 비오 12세, 라디오 담화, 1946.5.13.: AAS 38(1946년), 266면 참조. 17. 성 암브로시오, 「서간집」 63: PL 16,1218 참조. 18. 성 암브로시오, 「루가 복음 해설」, II,7: PL 15,1555 참조. 19. 다마스쿠스의 위 베드로, 「설교」, 63: PL 144,861AB; 생빅토르의 고데프리두스, 「성모 성탄에 관한 강론」, 파리 마자린 도서관 사본, 1002, fol. 109r.; 게르호우스 라이치, 「사람의 아들의 영광과 영예」, 10: PL 194,1105AB 참조. 20. 성 암브로시오, 「루가 복음 해설」, II,7; X,24-25: PL 15,1555.1810; 성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13,12: PL 35,1499; 「설교집」, 191,2,3: PL 38,1010 등; 또한 성 베다, 「루가 복음 해설」, I, 제2장: PL 92,330; 스텔라의 이사악, 「설교」, 51: PL 194,1863A 참조. 21. 「로마 성무일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소일과, 제1저녁기도, 후렴 “거룩하신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지켜 주시고”: 「가톨릭 기도서」, 성모님께 보호를 청하는 기도(일을 마치고 바치는 기도), 19면 참조. 22. 제2차 니케아 공의회, 787년: Mansi 13,378-379: DS 302(600-601); 트리엔트 공의회, 제25회기: Mansi 33,171-172 참조. 23. 비오 12세, 라디오 담화, 1954.10.24.: AAS 46(1954년), 679면; Ad coeli Reginam: AAS 46(1954년), 637면 참조. 24. 비오 11세, 회칙 Ecclesiam Dei, 1923.11.12.: AAS 15(1923년), 581면; 비오 12세, 회칙 Fulgens corona, 1953.9.8.: AAS 45(1953년), 590-591면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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