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에게 달려갑시다>
2014, 9, 1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평화방송 라디오 오늘의 강론)
루카 4,16-30 (나자렛에서 희년을 선포하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가난한 이에게 달려갑시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십니다.
나자렛 사람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자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던
오늘 복음에서
지금 이 시간,
2014, 9, 1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평화방송 라디오 오늘의 강론)
루카 4,16-30 (나자렛에서 희년을 선포하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가난한 이에게 달려갑시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십니다.
회당에는 수많은 고향사람들이 모여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기쁜 소식에 감탄합니다.
이들 모두는
자기 고장 출신인 예수님을 좋게 말하며,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합니다.
나자렛 사람들,
지금까지는 시골의 가난한 사람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사람입니다.
아니 적어도 부유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자리매김합니다.
예수님과 한 고장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동향인으로서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당에서 선포된
예수님의 감격스러운 기쁜 소식이
곧 자신들의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만이 이 기쁜 소식을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부유한 나자렛 사람들 편에 서지 않으십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해야 할 사명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십니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라는
자극적인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사람 취급받지 못했던
가난한 이방인 과부와
군인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구원을 예로 들면서 말입니다.
그러자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던
나자렛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예수님을 죽이려고 고을 밖 벼랑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주저함 없이 당당하게 당신의 길을 가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한결같은 우선적 선택을 목격합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곧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선택이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지난 8월 우리나라를 방문하셨을 때에,
주교님들과의 첫 만남에서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우리 교회의 결단을 촉구하셨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는
번영하는 교회이고,
선교하는 훌륭한 교회이고,
커다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 바로 교회의 예언자적 구조에서
가난한 이들을 제거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마십시오.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하나의 웰빙 교회
…… 그런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믿음의 벗님들은 이들과 함께 하고 계십니까?
우리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온 몸과 마음으로 보듬고 있습니까?
아무도 자신 있게 “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불편한 현실입니다.
이 현실을 깨뜨려야 합니다.
바로 지금 가난한 이들에게 힘차게 달려감으로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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