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지종(베르나르도) 신부님 글

~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 어디로 갈 건가 ? /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 어디로 갈 건가?>

2014, 9, 4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루카 5,1-11 (고기잡이 기적-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다)

...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 어디로 갈 건가?>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은총 가득한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 오늘은 벗님들께 동요의 가사 하나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나
이병에 가득히 넣어가지고서 라라라 라라라라 온다나”

어렸을 적 즐겨 부르던 동요입니다. 고기를 잡으러 어디로 가야할까요? 당연히 고기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는 어리석음을 빗대는 말로서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한다.’ 라는 뜻의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만나러 어디로 가야하겠습니까? 모두가 흔히 생각하듯 성당으로, 기도하기 위한 고요한 침묵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가야 합니다. 믿음의 벗님들께서도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약 성당에‘만’, 고요한 침묵의 시간과 공간 속에‘만’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린 답입니다. 적어도 주님을 만나는 데 있어서만큼은 ‘연목구어’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일상생활 안에서는 주님과 함께 있음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애써 특별한 장소와 시간을 찾는 분들을 보면, 그분들의 열심인 모습에 감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상생활 안에서, 자그마한 만남들 안에서는 주님을 만나고 있지 못하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가지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만난 어부 베드로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부럽기까지 합니다. 자신의 일상생활 안에서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남으로써 베드로에게 있어서 오늘의 일상은 어제와는 다른 일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어디로 갔을까요? 아무데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 자리를 진득하니 지키고 있었을 뿐입니다.

행운의 사나이 어부 베드로는 물고기도 많이 잡고, 주님의 부르심도 받았습니다. 혹시 ‘왜 나에게는 이런 행운이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아니요.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 행운(‘은총’이라고 하는 것이 신앙인다운 표현이겠죠.)을 지금까지 잡지 못한 것뿐이지요. 높은 곳만, 먼 곳만 바라보고 있으니,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베르나르도야! 너는 날 만나러 어디로 갈 거니?” 친구 예수님께서 던지시는 귀한 물음입니다. 물론 지금 이 시간 벗님들께도 똑같이 물어보실 것입니다.

“가긴 어딜 가요? 지금 함께 계시잖아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내게 맡기신 일들을 통해, 당신은 언제까지나 함께 하시잖아요. 함께 하시고 부르시는 당신을 몰라 본 제가 바보죠!”

이렇게 답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아닐까요?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모두,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하든 가장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