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2014, 9, 5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평화방송 라디오 오늘의 강론)
루카 5,33-39 (단식 논쟁-새것과 헌 것)
그때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때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음악 좋아하시죠? 어떤 장르의 음악을 즐겨 들으십니까? 저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듣는 편입니다. 음악에 관한한 잡식성이죠. 그런데 어려서부터 팝송은 즐겨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어서, 반쪽만의 감상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가 중고등학생 때 즐겨 듣던 노래가 있습니다. The Byrds(버즈)라는 록그룹의 “Turn, Turn, Turn” 우리말로 하면 ‘변하고, 변하고, 변한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곡입니다. 경쾌한 선율과 조용하지도 격하지도 않은 박자가 귀뿐만 아니라 마음도 밝게 해주었던 노래이지요. 그런데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던 더 큰 이유는 바로 노랫말에 있습니다.
구약성경 코헬렛 3장 1-8절에서 따온 노랫말은 영어로 들어도 알아듣기 쉽고, 내용도 심오합니다. 좀 길지만 코헬렛의 원문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돌을 던질 때가 있고 돌을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 버릴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다시 음미해보아도 참으로 심오한 삶의 지혜가 담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는 분명 무수히 많은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때가 있음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매 순간마다 그 때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각자에게 주어진 때를 알고, 그 때에 맞게 행동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식하며 기도해야 할 때에는 자신을 낮추고 차분히 머물러야 하고,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를 즐길 때에는 마음껏 먹고 즐겨야 하는 것이지요. 이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의 물음이 생깁니다. ‘도대체, 누구를 기준으로 하여 때를 가늠할 것인가?’ ‘내가 기준인가? 아니면 내가 함께 하고 있는 다른 이들이 기준인가?’ 라는 물음이 자연스레 생깁니다. 믿음의 벗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혼인 잔치에 신랑과 함께 있는 친구들을 떠올려 봅시다. 이들 가운데는 개인적인 일로 힘들어 하거나 슬퍼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신랑이나 혼인 잔치에 참여한 다른 친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침울하게 있다면 혼인 잔치 분위기는 망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혼인 잔치를 잔치답게 만들려면 다른 이들의 흥겨움에 맞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복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치는 ‘때를 아는 지혜와 때에 맞는 실천’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때에 맞추라고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기보다, 다른 이의 때에 자신을 기꺼이 맞춰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할까요? 우선 자신만을 향한 이기적인 시선을 열어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의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에 마음 깊은 곳에서 공감해야 합니다.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지탱해온 생각, 자세, 기득권 등을 포기하고 그들을 품에 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모두,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슬퍼하는, 공감과 연대의 아름다운 오늘을 보듬어 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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