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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베르나르도) 신부님 글

- 박해자의 길 , 순교자의 길 / 상지종 신부님 ~

<박해자의 길, 순교자의 길>

2014. 09. 30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평화방송 라디오 오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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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9,51-56 (사마리아의 한 마을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박해자의 길, 순교자의 길>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벗님들 모두 오늘도 힘차게 주님과 함께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 여정을 시작하면서 오늘 복음의 길을 떠나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는 것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의 활동을 마치시고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갈 것을 결심하십니다. 당신께서 그토록 사랑하셨던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그럼으로써 사랑과 화해라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당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때가 다가왔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통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사마리아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지만, 사마리아의 역사를 보면 보다 심오한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가 북부왕조 이스라엘을 패망시킨 다음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결혼하여 생긴 족속으로, 야훼신앙을 변질시키고 가리짐 산에 성전을 세움으로써 유대인들과는 상종조차 할 수 없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받던 이들과 함께 하시고자, 예루살렘 상경의 첫 통과지로 그들의 고장을 삼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연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을 냉대하던 유대인 중의 한 명쯤으로 생각했고, 특히 자신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던 사람들의 정신적, 실질적 성소인 예루살렘으로 향한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마치 “지금까지 우리를 괄시하더니 이제 잠자리가 없어 우리 마을로 들어오려는 거냐? 어디 고생 좀 해봐라. 여기서는 잠자리 뿐 아니라 잠시라도 머물 수 없을 테니까.” 라는 심보를 드러내듯이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은 방법으로 응수하려 합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자만심에 자신을 맹신하고, 자신을 홀대한 사람들에게 저주로 응수합니다. 더 이상 화해의 국면은 이어질 수 없는 상황입니다. 패싸움이라도 벌어질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기 위해, 당신의 죽음으로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참 화해를 이루시려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시건만, 그 과정에서 예수님의 참 뜻을 모르는 잘난 제자들은 오히려 다른 이들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기막힌 현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마리아 사람들을 책망했다는 내용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 가지는 의미를 제자들도, 사마리아 사람들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각기 자기 생각대로 예수님의 뜻과는 반대로 말하고 행동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와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그것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 모두를 이해하셨겠지만, 당신과 함께 했던 제자들에게는 좀 더 가혹하셨습니다. 바로 당신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나의 제자라면서 어쩌면 그렇게 모를 수 있느냐? 사마리아 사람들을 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냐? 그들의 처지와 생각이 어찌 그들만의 죄로 치부될 수 있느냐? 그들도 우리와 함께 할 것이고 궁극적으로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이 길을 가는 것이 아니냐?”

박해자와 순교자, 믿는 이들이 지닐 수 있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모습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제자들에게서 박해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순교자의 자세로 무엇이 진정 당신을 따르는 모습인지를 보여주십니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박해자의 길입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의 삶이 참된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철저히 예수님을 따라야 하기에, 믿는 이들이 걸어야 할 길은 오직 순교자의 길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오늘 삶의 여정에서 과연 어떠한 모습을 지니고 싶으십니까? 박해자입니까? 아니면 순교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