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이 곧 예수님의 그것이도록 합시다>
2014. 10. 03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평화방송 라디오 오늘의 강론)
루카 10,13-16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우리의 삶이 곧 예수님의 그것이도록 합시다>
주님의 길을
함께 걷는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이제
제법 쌀쌀한 가을
기운이 물씬 풍기는 새 아침이 열렸습니다.
일상에
젖어 지내다 보면,
크게 다를 것이 없는
하루하루의 시간이지만,
오늘
우리에게 주어질
아직은 알지 못하는
주님의 선물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세상 깊숙이 파견하십니다.
당신에 앞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억눌린 이들을 일으켜 세우며
아픈 이들은 고쳐주고
갇힌 이들을 해방시키라는 귀한 사명을,
두려움 없이 주저함 없이
흔들림 없이 수행하라고 말입니다.
‘주님의 부르심과
파견’을 굳게 믿으며
삶의 여정을 이어가는 우리에게
오늘 복음의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감격스럽게 들려옵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 10장 1절부터
이어져온 일흔두 제자의 파견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일흔두
제자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파견의 첫 말씀과
마지막 말씀을 음미하고 싶습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님의
첫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분명 막중한
사명감에 따른
비장함 못지않게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들었던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라는 마무리 말씀으로
제자들은
더할 수 없는
힘과 용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일흔두
제자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곧 스승이요
주님이신
당신의 대리자라는
예수님의 확정적인 말씀만큼
가슴 벅찬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분명
이 말씀에
힘입어 제자들은
자신들의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혼신의 힘을 다해
기쁜 소식을 선포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루카 복음 11장1절은 일흔두 제자가
예수님께
돌아와 자신들이
일구어내 값진 결과들을
환희에
차서 보고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전하고 있습니다.
2000년 전
일흔두 제자에게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고스란히 우리에게도 이어집니다.
‘가거라.
이기적인 탐욕과
죽음
같은 경쟁이
지배하는 세상 가운데
온 몸 송두리째 먹힘으로써,
오히려
함께 사는 세상,
나눔으로써 살찌는 세상,
자기를
죽임으로써
모든 이를 살리는 세상,
하느님께서
만드셨고
다시금 이루고자 하시는
생명사랑 정의 평화
가득한 세상을 일구어라.
너희를
거부하는 세상을,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바로
너희를 통해
내가 일하기 때문이니까.
너희가
곧 나이고,
나를 통해서 너희가
곧 나를 보내신 분이기 때문이니까.’
참으로
가슴 저며
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더할 수 없는
기쁨과 희망이
용솟음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라는
주님의
말씀을
우리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기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부르심과 파견을 받은
우리이기에
무슨 말을 해도
그것이 예수님의 말씀이고,
어떠한
행동을 해도
그것이 예수님의 행동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말과 행동으로써
주님의 부르심과 파견을 받은 이라는 것을
드러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부르시고 파견하신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곧 예수님과 예수님을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되게끔
말하고 행동할 때에
비로소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우리를 배척하는 것이
오히려 예수님과
예수님을 보내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면,
우리는 위선적인 거짓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모두,
오늘도 힘차게 예수님의 대리자로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곱게 보듬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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