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구원은 사랑 안에서만 가능하다 / 빅토르 프랑클
유대교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유대인으로서 큰 영향을 끼친 심리학자 빅토르 프랑클 종교로서의 유대교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유대인으로서 현대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심리학자 빅토르 프랑클(Viktor Emil Frankl, 1905-1997)의 삶과 가르침에 대해 알아보고 유대교 전통을 배경으로 한 위대한 스승 편을 끝내려 한다. 프랑클은 1905년 3월 2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인 부모의 세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18세에 우리나라 고등학교에 해당되는 김나지움을 졸업할 때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연구하써서, 『국제정신분석 학회지』에 출판할 정도였다. 이 논문을 계기로 그 당시 정신분석학의 대가 시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잦은 서신 교환이 있었다.
김나지움 졸업 후 비엔나 대학교 의과대학에 들어가 정신신경과를 전공으로 택하여 우울증과 자살 문제를 전문으로 연구했다. 프로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빈의 또 다른 심리학의 대가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를 더 좋아하여 아들러가 책임으로 있던 『개인심리학 국제학회지』에 “심리치료와 세계관”이라는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1926년부터는 이 두 대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심리학 이론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1928년부터 2년 동안 빈과 다른 여섯 개 도시에 청소년들을 위하 무료 상담소를 설치하고, 1930년에는 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어 이른바 빈 심리요법의 ‘제3학파’의 등장인 셈이었다.
아우슈비츠에서도 희망 안버려
1933년부터 정신과 병원에 자살미수 여인들을 위한 병동 책임자로 일했다. 1934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에 진군. 프랑클은 미국으로 가는 비자를 얻었지만 비자를 받지 못한 나이든 부모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어서 이민을 포기했다. 1940년 빈에 있던 유일한 유대인 병원의 정신신경과 과장이 되었다. 이 때 정신질환자를 안락사 시키라는 나치 정부의 지시를 피하기 위해 거짓 진단서를 쓰기도 했다. 이 시기 영어 제목으로 『의사와 영혼』이라는 책의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1942년 결혼.
그러나 그해 9월 새로 얻은 부인, 부모, 형제와 함께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체포되어 체코에 있던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체포 직전에 호주로 이민 간 여자 형제만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식구들은 수용소에서 뿔뿔이 헤어졌다. 프랑클은 수용소를 전전하면서도 자기가 쓴 원고를 코트 안자락에 숨겨서 다녔는데, 결국 그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발각되어 빼앗기고 말았다.
그는 그 절망적인 수용소 생활에서도 언제고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이 원고를 다시 완성하여 출판한다는 생각, 그리고 식구들을 다시 만날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 어려움을 참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른 수감인들이 자기 부인들의 생사를 몰라 애타고 있을 동안에도 프랑클은 자기 부인이 자기 속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살았다. 그는 그 경험을 토대로 “인간의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가능해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게 된 사람이라도 자기의 사랑하는 이를 깊이 생각할 때, 비록 짧을 순간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59쪽)고 했다.
‘삶의 의미를 찾아서’ 대표 저서
프랑클의 저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 1945년 4월 27일 미군의 진군으로 그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식구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찌감치 굶어서 죽고, 어머니와 형제는 1944년 아우슈비츠에서 죽임을 당하고, 부인은 1945년 다른 수용소에서 죽었다.
그는 수용소에서 빼앗긴 원고 내용을 다시 써서 책으로 출판했다. 1947년 수술실 조수로 일하던 여자와 재혼하고, 그해 12월 딸을 얻었다. 1948년 『무의식의 신』이라는 논문으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해 빈 대학 신경정신의학 연구소 소장직에 선임되어 1990년 85세로 은퇴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1950년 오스트리아 심리치료의학회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하버드, 피츠버그, 산디애고, 댈러스, 스탠퍼드 등에서 방문 교수로 초빙되기도 했다. 1970년 이후 1997년 죽기 전까지 세계 여러 대학에서 29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또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되기까지 했다.
그는 전문 산악인이기도 했고, 67세에 비행기 조종사 면허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1995년에 자서전을 쓰고, 1997년 죽기 바로 전에 자기의 철학박사 학위 논문을 기초로 32권의 책을 저술하고 그 책들은 34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의 저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삶의 의미를 찾아서』이다. 이 책은 수용소에서 돌아온 다음해 빈의 시민대학에서 세 번에 걸쳐서 행한 강연 원고였다.
독일어 원제목은 『...trotzdem ja zum Leben sagen: Ein Psychologe erlebt das Konzentrationslager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네: 한 심리학자가 수용소를 경험하다)』였는데, 영어로 번역할 때 『Man's Search for Meaning: An Introduction to Logotherapy』라 고쳤다. 1997년 집계에 의하면 이 책은 미국 내에서만 9백만 부가 팔리고 전 세계적으로 천2백만 부가 나갔다고 한다. 미국 의회도서관과 the Book of the Month Club 조사에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열권의 책”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영어 번역판 서문을 쓴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 골든 올포트 교수는 이 책을 “우리 시대 가장 의미심장한 심리학적 운동에 대한 서론”이라 칭했다. 프랑클은 2부로 된 이 책에서 1부는 수용소에서 겪은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그 경험을 토대로 하여 ‘로고테라피’라는 심리요법에 대해 설명한다. 나치 수용소에서 비슷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살아남고 어떤 사람은 죽는 것을 보고, 그 주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살아남거나 죽는 것이 신체가 건장하냐 하는 것과 직접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거의 어떤 경우에라도 견딜 수 있다(He who has a why to live for can bear with almost any how.)"는 말이 사실이라 생각했다. 몸이 건장한가와 거의 상관없이, 앞으로 뭔가 의미 있는 일이 있다고 믿고 희망하는 사람은 살아남고, 절망적인 사람은 죽었다는 것이다.
고통에 대한 태도가 결과 창출
1945년 2월 수용소에서 어느 작곡가가 3월30일에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에서 풀려날 꿈을 꾸었다고 한다. 희망을 가지고 기다렸는데, 그 날이 가까워져도 그 꿈이 실현될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3월29일 그는 갑자기 고열에 시달리다가 30일 의식을 잃고 31일 죽고 말았다. 깊은 절망이 우리 몸속의 면역체계를 약화시켜 병에 대항할 힘을 잃게 한다는 것이다.(118-120쪽)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기보다 오히려 ‘건전한 정신에 건전한 육체’가 더 진실에 가깝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관찰을 토대로 그는 ‘로고테라피’라는 심리요법을 확고한 기반에 정착시켰다. 로고테라피란 그리스말 ‘로고스’와 ‘테라피’를 결합한 말이다. 예수님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했을 때 그 ‘말씀’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이 로고스이다. 이 낱말은 말씀 뿐 아니라, 이성, 이유, 의미 등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로고테라피’를 ‘의미요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정신적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앞날에 그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음을 보여줌으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려는 심리요법이다. 우리가 지금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이 과거 유아시절의 문제 때문이므로 연상법 등의 방법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알아내고 그것을 치유해야 지금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본 프로이트의 과거 중심주의적 치료법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인간을 움직이는 동인으로서 프로이트가 쾌락의지를, 아들러가 권력의지를 강조했다면 프랑클은 의미의지(will to meaning)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로고테라피’ 심리요법 확립
프랑클은 사람들의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오로지 신체적•생리적 요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든가 두뇌의 구조의 부작용에 따른 것이라 보는 환원주의적 태도를 위험한 것으로 보았다. 현대 사회에 만연된 우울증, 중독증, 공격성도 결국 그 원인이 생물학적이나 사회적인 요인보다 결국은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의미 없음(meaninglessness)’ 혹은 ‘실존적 공허(existential vacuum)’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의미를 찾는 방법으로 프랑클은 우선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체험적 가치’를 통해서이다. 체험적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누구를 사랑함으로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이 삶에 의미를 가질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 우리 스스로도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프랑클에 의하면 사랑은 “인간이 희구할 수 있는 최종, 최고의 목표다.”(59쪽) 의미를 찾는 둘째 방법은 ‘창조적 가치’를 통해서이다. 무엇인가 의미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미술, 음악, 저술, 발명 등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 삶이 의미 있게 되는 것이다. 셋째 방법은 ‘태도적 가치’를 통해서이다. 자비, 용맹, 유머감각 같은 태도를 견지하는 데서 삶이 의미 있게 된다는 뜻이다. 특히 고통에 대해 어떤 태도를 견지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므로 고통을 의연하게 견디어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프랑클은 이런 세 가지 가치 외에 더욱 근본적인 가치를 제시하고, 거기에서 궁극적인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의미를 그는 초의미(supra-meaning) 혹은 초월이라 했다. 초의미는 우리의 일이나 경험이나 태도 같은 이 세상적 조건과 상관없이 발견될 수 있는 삶의 궁극적 의미라고 보았다. 프랑클은 오늘도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를 돌이켜 보도록 하고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의미는 무엇일까?
경제적 안정이나 사회 정의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은 내 속에 있는 불성(佛性)이나 신성(神性)을 찾는 영적 가치에서 참된 의미를 찾으라고 촉구하는 것이 아닐까? 프랑클은 1997년 9월 2일 92세를 일기로 마더 테레사 수녀,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와 같은 주간에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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