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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마을

~ 적막한 해가 기울면 / 수메르 ~

                                                        




      적막한 해가 기울면 / 수메르


        적막한 해가 기울면
        어둠을 틈타, 땅속으로 스미는 그림자
        분주했던 유종의 시간이 발 아래 눕는다

        어디에도 깃들지 못하고 궁지에 내몰린 회한들
        허무가 존재의 조건인 것처럼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차라리 비어있어 여유로운 경지에서
        의식은 언제나 무의식 위에 군림하려 든다

        세파가 지나가는 듯
        별빛보다 많은 거리의 불빛들, 인파들
        사람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다
        약간의 술을 나눠마시고 또다시 떠나간다

        신을 떠올리게 하는 종소리와
        여기저기 이방인들의 언어가 난무했으며
        착각이 빚어낸 어둠은 늘 휘청거렸다

        세월을 향한 고뇌도 없이
        가난이 사회악처럼 느껴지는 공간
        술 한잔에 세상이 달라졌을까
        기억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정확하지도 않았지만
        소주 몇 잔에 대부분 기억들은 흩어졌고
        잊었던 것을 기억해내기 위해
        더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삶은 매년 되풀이 되는 후렴 같은 것
        초월을 꿈꾸면서
        허기진 벌판을 쏘다니는 짐승처럼
        누군가 떠났다고 슬퍼하지 않으며
        잃어버린 것들을 동경하지도 않으니
        시선 또한 경박하여

        한 순간 모든 것을 거두어 떠나는,
        세월 저편으로 가는 몰락 가운데
        가슴 저리게 하는 그 무엇들
        어김없이 밝아올 내일의 희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