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고백
-장재봉신부-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의 자유를 속박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짓는 일마저도
죽음을 향하는 영혼에게 마저도
호소하고 일깨울 뿐입니다.
스스로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 굳은 생각을,
부수지 않는 고집을 말리지도 꺽지도 못하십니다.
‘내 마음’이
‘내 뜻대로’ 행하여 죄를 짓는
인간의 짓거리에 속수무책이신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죄의 값을 치루기로 작정하고 세상에 오십니다.
+++
오늘 복음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성탄 때마다 듣는
흔하디 흔한 말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바오로 사도는 오늘 이 복음 말씀이야말로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신비는
이사야 예언자의 ‘처녀 수태 예언’이 있은 지
700여년이 지난 후에 이루어진 일입니다(이사 7,16 참조).
길어야 백년을 살 수 있는 인간에게
700년은 너무나 까마득한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그 긴 세월동안 내내
하느님께서는 그 약속을 잊지 않으셨고
묵살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저는
하느님께서 700년 전에 예언된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한 인간에게 의중을 물으셨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날처럼
오늘 우리에게
다가와 묻고 계신 것이라 싶은 까닭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들려드린 답변이
하느님의 기쁨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명과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 때
무엇이라 답하십니까?
복음은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일을 맡기신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하느님의 일을 맡고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서 찾으신 세상의 단 한명,
그분께서 원하시는 깨끗하고 순수한 처녀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찾아내셔서
소명을 맡기는 사람은
전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변방 갈릴래아 지방,
그 안에서도 깡촌 나자렛에 살았던 순박한 처녀에 불과했습니다.
교회의 일을 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일에
세상의 힘이나 돈, 혹은 학력이나 능력이 기준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 처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습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해야 하는 우리에게도 이미
세상 살아가는 일만으로도
꼼짝없이 매일만큼 중요한 직장이 있고
살림살이만으로도 너무 바쁘고
할 일이 태산같은 상황이라는 뜻이 아닐까 짚어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할 일이 많은 나에게
도저히 시간을 내기 어렵고
능력도 모자라는 나에게 찾아와 물으십니다.
처녀가 잉태를 할 만큼 곤란한 상황,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그 처지야말로
교회의 일을 맡기시는
하느님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 싶습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일
있을 수가 없는 일
정말 살아갈 수조차 없다고 생각되는
그 일을 맡기시면서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마라”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라는 말을 들려주십니다.
까딱없다하지 않으시고
굳이 “두려워 마라”고 말씀하신 걸 보니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겁이 날만큼
어렵고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택하신 것은
결코
우리가 여유롭고 시간이 많고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서가 아닌 것이지요.
여유나 시간이 많은 사람에게만 교회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늘 마리아의 순명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생각도 할 수 없이 황당한 일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그 일에
“예”라고 답을 드린 까닭에 돋보입니다.
+++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이 막바지입니다.
하느님께서 듣고 싶은 그 말을 준비하셨습니까?
그분께서 듣고 싶은 말은
“주님의 종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분께서는
“예”라는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십니다.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리는
결코 마리아처럼 순명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아직 “주님의 종”이 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종은
주인의 뜻에 무조건 예합니다.
종은 주인의 지시에 이견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예하고
알 수 없어도 따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모르지만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당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번 성탄에도
처녀같이 순결한 마음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 분으로 성결해진 거룩한 마음을 만나서
함께 살으실 계획이십니다.
하느님의 일에 순명할 때
우리는 하느님을 모시는 지성소가 됩니다.
하느님의 일에 곧이 곧대로 따를 때
또 한 사람의 마리아가 되어
세상에 하느님의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이 깊은 신비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으신 까닭에
이제 우리에게 오십니다.
태어날 아기
거룩한 분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
그 긴 시간동안
처녀의 순수로 단장하고
종의 몸으로 단련하며 기다렸습니다.
오소서 주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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