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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연중 제 4주간 수요일 복음 말씀 / 기경호 (프란치스코) OFM ~

연중 4주 수 마르 6,1-6(15.2.4)


예수께서는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마르 6,6) 

  

The Rejection at Nazareth

  

                      

 

 인내하는 거룩한 인생 순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고향으로 가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업적을 보고 매우 놀라면서도

 의문을 제기하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고향사람들과 친척들은 장인으로 통했던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기 어려웠음을 말해주지만 결국 그들은 불신 때문에 걸려 넘어졌다

(6,3).

 

 거져 굴러들어온 복덩어리를 발로 걷어 차버린 셈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마음이 무디고 믿음이 없는 그들을 보시고 ‘놀라셨다’

(6,6).

 

그러나 그들을 꾸짖거나 그런 그들의 모습에 대하여 분노하시지 않고

사랑으로 견뎌내시며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6,6)

 

 예수님께서는 인내로써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거룩한 순례의 모범을 통해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하고자 하신다.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12,14)

 

 인내는 거룩함의 속성이요 순례자의 중요한 삶의 태도이다.

인내(?πομον?)는 성서적으로 하나의 종말론적인 태도로서 견고히 섬,

 기대나 기다림을 뜻한다.

 

인내는 하느님을 향해 고대하고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2테살 3,5).

 

 이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균형을 이루는 그리스도께 대한 한결같은 고대를 뜻한다.

묵시록에서도 인내를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 고난과 박해를 참는 것으로 본다.

 

 또한 인내란 세상을 향하여 굳건히 견디는 것을 뜻한다.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인내는 믿음과 소망에서 나오며, 악하고 불의한

현시대에서의 견딤을 나타낸다

(로마 12,2; 1코린 3,7).


인내는 선행을 만들어 내며

(로마 2,7),

 

 시련을 통해 믿음이 강해지고 온전함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내는 참고 견디어내며 기다리는 능력이다.

 

그것은 일상에서의 지루함과 단조로움을 참는 능력이다.

인내하는 사람은 감정에 따라 반사적으로 행동하거나 즉각적인 변화를

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다리며 준비하는 사람이다.

 

그는 항상 마음속에 하느님 뜻에 맞는 목적을 간직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처리해나가는 사람이다.

인내의 열매는 일이 잘 될 때보다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 맺어진다.


인내란 이스라엘 백성들의 끊임없는 배반 앞에서도

 사랑으로 기다리고 받아주는 하느님의 마음이다.

 

 인내란 내 사고의 틀에 다른 사람을 끼워 맞추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내란 일부가 아닌 약점과 결점까지도 포함한 전부를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내란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이상의 것이다.

 

 곧 그리스도처럼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하는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면서,

그 무엇도 문제 삼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여 대신 속죄할 마음까지 갖는 것이다.

 

 인내란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살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인내란 '하느님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의 삶을 사는 것이다.

 신앙인은 모든 판단을 하느님께 맡겨드리며 그 어떤 불편 가운데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그 누구 앞에서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어떠한 아픔 중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를 외치며 살아나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야 할 거룩함이요, 순례자의 태도이다.

 

 예수님께서는 고향사람들과 친척들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으시고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6,6)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인생길도 예수님처럼 이해받지 못하고 배척을 당하더라도

침묵 중에 인내하며 걷는 나자렛에서 갈릴래아를 향한 사랑의 순례임을 잊지 않도록 하자.

 

오늘도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능력을 굳게 믿으며

 매순간을 기적으로 체험하는 순례의 길을 떠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나를 사랑하느냐 - 신상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