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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레오나르도) OFM

~ 하느님 앞에 우열 없이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하느님 앞에 우열 없이

-김찬선신부-

지금도 교만하지만 옛날 더 교만하던 때 저는
비교를 하려면 하느님하고 비교하던지 적어도 聖人하고 해야지

다른 인간하고 비교하여 잘 났다 못 났다 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옛날 신분제가 있을 때 도련님을 머슴 아들과 비교하여

훌륭하다고 칭찬을 하면 칭찬을 들은 도련님이
머슴 아들과의 비교 자체를 수치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심사겠지요
.
그런가 하면 대단히 속물적으로

용의 꼬리가 되느니 닭의 머리가 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런 이율배반이 당시 저의 주제였지요
.
그러니 그 당시에는 비록 도토리 키 재기를 하는

저의 세속성을 뛰어넘으려는 좋은 뜻도 있었지만

그 안에는 지독한 교만이 숨어 있었음을 저도 몰랐던 것입니다.
진정 제가 인간과의 비교를 초월한 그런 경지에 있었다면

그저 하느님 앞에 있을 뿐 아예 비교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여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 자존심 상하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 우위에 서려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겸손에 대해서 하신 말씀은 그래서 탁월합니다
.
“사람들로부터 천하고 무식하며

멸시받을 자로 취급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
칭찬과 높임을 받을 때도

자기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종은 복됩니다
.
사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이지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이 말씀하듯
우리는 진정 누가 우월하고 누가 열등하지 않은 형제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형제로서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존재이고

하느님 앞에 같이 서 있는 존재입니다.
같이 하느님을 흠숭하고

같이 하느님 뜻을 받드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같이 하느님을 흠숭하고 받든다는 말은

‘함께’라는, 즉 공동체성을 포함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누구는 하느님을 더 잘 흠숭하고 받들고
누구는 그렇지 못하는, 그런 것이 없이
‘모두 똑같이’라는, 즉 평등성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어제는 수도원 당가 형제께

외국에 나가 있는 어른께 보낼 선물 좀 사다달라고 했습니다
.
대수롭지 않게 본다면

시장가는 김에 사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지만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면
한 번도 그런 것을 제 손으로 산적이 없는 저의 무의식 안에는
‘나는 그런 것 살 줄 몰라’ 하면서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 말씀하시듯
손가락 하나 까닥하려 하지 않음이 숨어있습니다.
부탁해도 되는 사람 따로 있고
,
부탁 받아도 되는 사람 따로 있다는 식입니다
.

그런데 자기 손가락은 하나 까닥하지 않고

다른 사람 어깨에 큰 짐을 올려놓는 것이

그저 시장바구니 정도라면 그래도 낫겠는데
,
그것이 자기 십자가든, 공동체의 십자가든
,
하느님께서 제게 맡기신

그래서 제가 져야 할 십자가가 아닌지 두렵고 걱정이 됩니다
.
십자가는 지지 않고

칭찬과 영광만 받으려는 그 날도둑놈의 심보가 있지 않은지
오늘 복음을 통해 들여다보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