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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마을

- 길에서 시를 쓰다 / 김용택 시인 -

길에서 시를 쓰다 - 시인 김용택 - 

초등학교 갈 나이에 처음 발걸음을 익힌 그 길 저문 산 그늘 속 흰 토끼풀과 자운영은 때로 까닭 없이 울게 했다. 내가 초등학교 갈 나이가 되어 그 길에 처음 발걸음을 익히기 시작했을 때, 그 길은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었다. 강물이 굽이쳐 흘러오는 강굽이를 따라 그 길은 나 있었다. 길 아래는 파란 강물이 때로 굽이치고 때로 부서지며 흘러가고 강 위로는 논이었다. 파란 모가 누런 벼가 되고 하얀 눈 속의 어린 보리 잎이 파란 보리 잎으로 너울거리며 익어갔다.

집에서 얼마쯤 가면 작은 논들이 나오고 논들을 다 지나면 넓은 강변이 나왔는데, 그 강변에는 작은 소나무들이 있었고 소나무 아래에는 커다랗고 시커먼 돌멩이들이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또 그 소나무 아래는 가랑나무 가랑잎들 속에 물새들의 작은 알들이 숨어 있었다. 산철쭉이 붉게 피어나면 꽃뱀들이 길을 건너 다녔다. 칡넝쿨이 넓적한 칡잎을 달고 길게 땅으로 뻗어 있었고, 산딸기가 칡넝쿨 속에 빨갛게 익어 있었다.

나는 봄을 좋아했다. 강변에 찔레꽃이 피고, 붓꽃이 피고, 아그배나무 꽃이 피어났다. 저문 산그늘 속에 흰 토끼풀 꽃과 자운영 꽃은 감성이 풍부한 나를 때로 까닭 없이 울게 했다. 산그늘 내린 자운영 꽃밭 속을 맨발로 걸어 들어가면 서늘한 기운이 내 정신을 깨웠다. 여름이면 길섶에 자란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내 옷깃을 적시고, 서리가 내린 가을이면 서리 가루들이 내 신발에 떨어지고, 눈이 발목을 파묻었다.

때로 나는 자운영 꽃밭에 앉아 시를 쓰고 강물로 사라지는 눈을 보며 강가 바위에 앉아 시를 썼다. 그 작은 솔숲에서 겨울이면 산토끼가 뛰쳐나갔고 때론 노루들이 뛰쳐나와 작은 들을 질러 큰 산으로 겅중겅중 뛰어 올라가면 우리들은 토기를 쫓다가 지각을 하기도 했다. 그 강변 솔밭 끝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호수로부터 흘러오는 작은 도랑에는 징검돌이 몇 개 놓여 있었다. 호숫가로 난 길은 아름다운 모래밭길이었다. 호수는 깊어서 들어갈 수 없었으며, 가물치, 잉어, 붕어가 살았고, 사람들은 용이 못 된 커다란 이무기가 살고 있다고 했다.

아름다운 그 징검돌들. 봄이면 강물 구석구석에 남아 있던 얼음이 녹고 새 물이 흘렀다. 봄이면 그 길에 커다란 자라들이 알을 낳으려고 엉금엉금 기어 다니다가 우리들이 가면 물로 풍덩 빠져들었다. 우리들은 모래를 파고 자라 알을 찾기도 했다. 여름이 되어 알에서 나온 작은 자라들이 깊은 물로 빠져들어 물속으로 들어가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호수엔 노란 개연 꽃이 솟났고, 눈이 오고 얼음이 짱짱하게 얼어 우리들을 유혹했지만 우리들은 무서워서 큰 돌멩이를 던져 얼음장만 쩌렁쩌렁 소리가 나게 울렸다. 호숫가에는 들판 쪽으로 아담한 산이 있었고 그 산에 봄이면 진달래꽃이 피어 호수에 어른거렸다. 호숫가를 한참 지나면 작은 시내가 나오고 그 시내에는 징검다리가 있었다. 물이 불어 징검돌이 넘으면 우리들은 동생들을 업고 건너기도 했고, 때로 잘못하여 징검돌에서 미끄러지면 강물에 풍덩 빠져 옷과 책이 다 젖어 울며 집으로 가기도 했다.

아름다운 그 징검돌들, 그 위에 눈이 소복! 소복 쌓여 있을 때의 징검돌 모양들이 흐르는 물에 어른어른 비쳤다. 더러 우리의 책보나 신발을 빼앗아가기도 했던 징검다리를 건너면 아주 작은 오두막집 주막이 두 곳에 있었고 거기 할머니 두 분이 각각 두 오두막집을 차지하고 술과 고기를 팔았다. 아버지들이 이따금씩 그 집에서 술과 고기를 먹다가 우리들을 만나 고깃국을 사주기도 했다. 그 집을 지나면 바로 신작로였다. 자갈돌이 뒹구는 신작로 길에 이따금 차가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지나갔다. 그 길 어디쯤엔 아무리 냄새를 맡지 못하는 코맹맹이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더덕 냄새가 났다. 아무리 찾으려야 찾지 못했던 그 더덕 냄새는 내가 어른이 되어 선생을 오래 할 때까지 내 코를 벌름거리게 하다가 자갈길이 아스팔트길로 바뀌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봄이면 강물 구석구석에 남아 있던 얼음이 녹고 새 물이 흐르면, 강가에 새소리가 들리고 새 풀잎이 돋아나고 풀꽃들이 피어나 강물에 어리면, 학교 길에 강물에 발을 적시며 고기를 잡기 시작했다. 함박 딸기가 풀잎 뒤에 익어가는 길, 못밥을 얻어 먹는 찔레꽃이 피어나는 길, 붓꽃이 파란 풀밭에서 서늘하게 솟아나던 길, 풀잎들이 노랗게 색이 바래면 바람에 하염없이 흔들리다 쓰러지던 길, 바람이 불고 하얀 눈송이가 산을 내려와 강물로 겁 없이 사라지던 길, 큰물이, 새파란 큰물이 하얗게 부서지며 내달려오던 길, 그 길에서 나는 초등학교 6년을 울고 웃으며 보냈다. 그리고 나는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이 되어 그 길에 들어서서 동네 아이들과 20여 년을 걸어 학교를 다녔다.

길은 사라졌지만 그 길에서 쓴 시들은 아직도 옛길에 풀꽃처럼 피어 있을 것이다
그동안 그 길도 많이 변화했다. 섬진강 댐 공사 자재를 이 길로 가져 갔고 강이 크게 막히니 물의 양에 변화가 생겨 그 푸른 물결이 사라지고 강변엔 풀들이 우거져 강을 잡아먹어갔고 그 넓던 강변은 논이 되었고 그 파란 호수도 메워져 논이 된 채 사라졌다. 길들은 아무렇게나 변해버렸고 아이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도 나는 그 길을 걸어 다녔다. 그래도 그 길엔 억새가 피어 지는 해를 받아 아름다웠고, 눈이 왔으며, 비가 내렸고, 봄이 왔으며 가을이 왔고, 바람이 불었다.

눈에 익은 아름다운 길이 사라지고 변할 때마다 나는 너무나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며칠 밤을 뒤척였으며 사는 맛을 잃기도 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징검돌들이 파헤쳐지면 나는 어디다 말도 못하고 가슴앓이를 했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지곤 하는 날들이 지나며 나는 또 새로 변한 길을 사랑했다. 나는 그 길들 어딘가 마른 풀밭 속에 앉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꽃들 곁에 앉아 시를 쓰고, 저문 산그늘에 앉아 시를 썼다. 강변은 한없이 따사롭고 추웠으며, 외롭고 쓸쓸했으며 내게 한없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죽였다.

나는 그 길에서 자랐고 그리고 그 길에서 슬픈 시인이 되었다. 이제 나는 그 길에 들어설 수 없다. 그 길은 이제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경지 정리를 하여 그 길을 밀어버렸다. 볼썽사나운 시멘트 옹벽이 강둑을 만들어 사람의 길을 죽이고 찻길을 만들었다.

어느 해부터 동네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마침내 아이들이 그 길에서 사라진 어느 해 나는 그 아름다운 강 길을 바라보며 유리창에 머리를 대고 울었다. 아이들과 고기를 잡고, 딸기를 따먹고, 토끼를 쫓고, 허방을 만들어 어른들을 넘어지게 하던 길, 고구마를 캐 먹고, 무를 뽑아 먹다 들켜 논두렁을 뛰던 길, 집에 가다가 느닷없이 소낙비를 만나 옷과 책을 다 적시며 친구들과 집으로 뛰어가던 길, 어른이 되어 집에 가다가 논에서 일하시는 아버지를 만나 해 저문 논두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길 그 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길이 사라진다. 산과 들과 이웃마을로 가는 구불구불한 길들이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의 길이 사라진 것이다. 아름다운 자기 발소리를 들으며 자박자박 걷던 길이 사라지고 이제 차가 질주하는 도로만 남았다. 길이 없고 도로만 있는 세상은 삭막하고 황량하고, 아이들이 사라진 시골길은 더 쓸쓸하고 슬프다. 차를 타고 씽씽 달리는 길은 길이 아니다. 어디를 둘러볼 수 없이 바삐 달리는 찻길에서 사람이 무슨 생각을 키우겠는가.

고향에 사는 일이 때로 고통이었고, 슬픔이었으며, 감당하기 힘든 고역이기도 했다. 나는 고향이 부서지는 것을 다 보았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길이 사라지고 강변이 부서지고 강물이 죽어가는 것을 두 눈을 뜨고 똑똑히 보며, 그 고통이 때로 분노로, 사랑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은 고통이다. 길은 사라졌지만 그 길에서 쓴 나의 시들은 아직도 그 옛길에 풀꽃처럼 피어 있을 것이다.

나는 초등학생이 된 이후 중·고등학교만 빼고 내 일평생을 이 학교에서 보냈다. 그 강길에 또 봄이 오고 있다. 이따금 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그 아름답고 정다웠던 길을 다시 그려본다. 사라진 그 길을… 나는 그 사라진 길을 다시 시로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