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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레오나르도) OFM

~ 죽음은 삶을 밝혀주는 것일 뿐 / 김찬선(레오나르도) 신부님 ~

죽음은 삶을 밝혀주는 것일 뿐!

-김찬선신부-

20여 년 전 저의 딸과도 같은 보영이가 죽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과 같은 12살의 나이였습니다
.
보영이는 정말로 예뻤고 죽음이 뭔지도 모른 채 죽었습니다
.
그날 밤, 저는 하느님께 따졌습니다
.
이렇게 죽을 것을 왜 태어나게 했느냐고 말입니다
.
따지는 말에 하느님께서 일일이 대꾸하실 리 없으시지만

저는 그때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존재하기 위해 태어났다.

“살기 위해 태어났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태어남으로 그의 존재는 시작되었고
이 세상을 떠남으로 그의 영원한 삶은
하느님 안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기도 합니다
.
보영이가 일찍 죽었다고 죽을 것을 왜 태어나게 했냐고 따졌는데

늙어 죽으면 괜찮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런 세속적인 생각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
나이 먹어 죽으면 살만큼 살았고

그래서 그런 죽음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
우리는 이 세상에 70년 또는 80년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
80
년 살았으면 이 세상 태어난 목적 다 이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보영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허망한 것입니다.

12
년을 살건 80년을 살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존재의 장엄한 시작이고

시간으로는 영원의 세계에
공간으로는 무한의 세계에 접어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지혜서의 말씀은 타당합니다
.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
하느님은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
저승의 지배가 지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저승의 지배는 저승에 있는 사람에게만 미치는 것입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

하느님 안에 머무는 사람은 죽음을 모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 이것을 잘 보여주십니다
.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고 사람들이 말하자

주님께서는 죽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설사 이 세상에서 죽었을지라도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고 삶의 형태를 바꾸었을 뿐입니다
.
우리를 떠나서 하느님 관계 안으로 들어간 것일 뿐입니다
.

저는 그날 밤 보영의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
보영이를 위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고

보영이가 먼저 간 그 하느님 관계 안으로 따라 가라고 말입니다.
죽음을 초월해 하느님 안에서 사는 삶의 신비를 사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우리의 삶입니다
.
어두워지니 조명이 두드러지듯

죽음은 삶을 Highlight, 두드러지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 소녀가 살아있을 때 가지 않고

죽은 다음에야 소녀에게 간 것은 어쩌면 이런 연출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