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9월 6일/‘먼저’ 나부터 살피는 영성생활 ♣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루카 6,42)
연중 23주 금요일/ 루카 6,39-42
하느님과 일치하는 길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몇 십 년 수도생활을 하고 성경공부나 기도를 하여 영적으로 진보했다고 해도 자만심과 세속의 것으로 향하는 눈길, 악으로 기우는 육의 정신으로 말미암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지금 여기서 있는 그대로의 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어디서부터 영적 성장의 길을 시작해야 할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6,41) 하시며 위선자들을 향하여 책망하신다. 여기서 위선자들은 율법의 세세한 규정은 강조하면서도 그 근본정신을 소홀히 한 바리사이들이다.
바리사이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먼저’ 자신이 아닌 외부 환경과 다른 이들에게 시선이 향했다는 점이다. 자신에게는 눈이 먼 채 다른 이들의 율법 준수 여부에 촉각이 곤두서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성찰이나 영혼의 정화 없이 다른 이들에게 ‘사랑도 혼도 없는 율법 준수’를 강요했다.
바리사이들의 이러한 태도는 자기 폐쇄와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가져왔고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과의 단절을 가져왔다. 그들이 안식일법을 근거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처신을 문제 삼고 도발을 이어가 끝내는 그분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은 ‘먼저’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적 성장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중요한 것은 ‘먼저’ 자신을 돌보고 살펴 깨끗하고 순수한 자신이 되는 것이다. 내 영혼이 맑으면 하느님을 일상 안에서 뵈올 수 있고, 만나는 이웃도 사랑스럽고 좋게 보일 것이다. 영안(靈眼)이 열리면 만사를 하느님의 눈으로 보게 되고, 따뜻하고 관대한 눈길로 다른 이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6,39) 자신부터 성찰하고 다스려야 한다는 말씀이다.
하느님 앞에 성숙한 사람이란 이렇듯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어둠과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다. 육의 정신을 품은 채 남을 가르치거나 남의 행동을 고치려 하고, 정의롭게 살지 않고 마음의 평화가 없으면서 평화를 부르짖고 있지 않은지 ‘먼저’ 자신을 살필 일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6,42) 영적 성숙을 위한 출발점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나다운 나’가 되는 것이 영적 성숙이다. 어떤 기준에 따라 나다워져야 할까? 그 기준은 나 자신의 가치 기준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6,40)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이신 예수님을 넘어설 생각을 하지 말고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을 본받아 그분이 걸어가셨던 십자가의 길, 사랑의 길을 기쁘게 걸어가야겠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하느님을 향해 순례하는 모든 이들은 겸허한 마음으로 먼저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육(肉)의 정신을 버리고 주님의 영(靈) 안에 머무르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내가 ‘먼저’ 또 다른 복음이 되고 성체가 되어 걸어갈 때 모든 존재와의 만남이 성사가 되고 복음 선포가 되며 사랑의 향기가 될 것이다.
이제 가을이다. 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내 안으로 가져와 자신을 가다듬는 ‘영혼의 추수’를 준비하자! 밖에서 문제를 찾고, 남의 탓을 하고, 늘 자신은 제외한 채 살아온 발걸음을 멈추도록 하자! 지금이 바로 멈추어 주님께로, 주님께로부터 멀어져 있는 자신에게로 시선을 집중해야 할 때이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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