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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민족들의 복음화 미사 / 기경호 신부님 ~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이사 2,1-5;로마 10,9-19;마태 28,16-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20)



The Great Commission






 모두가 행복해지는 날까지 함께


성경의 가르침과 그리스도교 전통은

구원의 보편성과 모두를 위한 사랑을 추구해왔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도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시고 교회가 기쁘게 선포하는 이 구원은

모든 이를 위한 것”(복음의 기쁨, 113항)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무엇보다도 자본이 맹렬한 힘을 떨치고 있는

 이때에 과연 교회와 신앙인은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체포되자 제자들은 달아나버렸습니다

(마태 26,47-56).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을 보러갔던 여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28,10)


 유다를 제외한 열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갈릴래아의 산으로 가서

 그분을 뵙고 엎드려 경배드립니다

(28,17).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28,18)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과 삶이 하늘과 땅,

곧 전 우주적으로 결정적이며 그분이야말로 모든 피조물의 주님이시며

 우주의 주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소명을 주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28,19-20)

마태오복음에 따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은

 성경 말씀을 알리고, 봉사활동을 하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루카24,47)와 같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총체적이고 우주적인 소명입니다.


곧 모든 존재를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며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어주시는

주님의 ‘모든 것’을 ‘모든 이’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소명을 사는 이들과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함께 계실 것’입니다

(28,20).


이러한 소명은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는 의무이며 행복의 조건입니다

(1코린 9,16).

교회와 세상을 성(聖)과 속(俗)으로 엄격하게 구분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 구분 속에 교회와 세상은 소통하지 못한 채 속화된 세상을 단죄하고 배척하였습니다.


 그런 교회는 결국 배타적이고 폐쇄적으로 변하기 마련이었고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민의식을 재현함으로서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 모두에게 햇빛을 내려주시는’ 하느님의 그 사랑 앞에

 편 가르기를 하면 착각에 빠졌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

 신앙인들의 모습에서도 이런 모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눈 속의 티는 못보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은 책임 있게 하지 않으면서

남의 허물을 비판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길 즐기면서

어떻게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에 불의가 판치고,

 정치권력이 공동선을 지향하지 않고

사회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려도 무관심한 채

교회의 외적 성장만을 추구한다면 어찌 예수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건네는 교회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명하는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도록 하는 것은

곧 그분의 삶 전체인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돈으로 전해지거나 수치로 계산할 수 있는

 효율성의 범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철저히 가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가난한 모습, 신앙인들의 오직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내야 할 근본소명입니다.

우리 모두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우리 자신이 먼저 회개함으로써

 사랑의 존재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느님께로 되돌아가고 예수님의 말씀과 삶에 일치되지 않고서는

예수님처럼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느님이 의미가 되고 생명의 힘이 되지 못하는

세계 구석구석의 가난과 고통, 전쟁, 사회갈등, 이념 대립, 차별, 소외 등에

대한 사랑 깊은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이해한 만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함으로써 행복하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 줄 때,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이가 복음이 참되며 기쁜소식임을 믿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면의 평화나 기도 안에서 체험하는 기쁨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좀 더 능동적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하느님의 생명과 얼이 인간 삶의 전 영역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멈추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