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라져가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장인(匠人) 정신입니다.
장인 정신이란 무엇인가에 변함없이 헌신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며
충실히 몰두하는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는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한 충실성과 헌신의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편의주의와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빨리 변하는 현상 때문인지
신앙생활마저도 ‘대충주의’에 젖어가는 듯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루카 복음사가는 ‘충성스런 종과 불충한 종의 비유’(12,42-46)를
교회 지도자들에게 적용시켜 전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주님의 뜻을 잘 알아 합당한 준비를 하고
하느님 백성을 잘 돌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책임은 일시적으로 흉내만 내는
형식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은 늦어질 수도 있지만, ‘생각지도 않은 때’(12,40),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12,46)에
오실 수도 있기에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책임을 맡은 이들에게 이르십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충실하고 슬기롭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12,42-44)
늘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하느님 백성을 충실히 돌보는 교회 지도자들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게 되고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게 됩니다.
한편, 주님이 늦게 오시는구나 하며 하느님 백성을 잘 돌보지 않는
불충한 지도자는 ‘절단을 내버리는’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12,46).
나아가 교회 지도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알면서도 준비를 하지 않거나
주인 뜻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몰라서 행하지 못한 평신도들보다
더한 책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12,46-47).
예수님께서는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12,48) 하고 말씀하시며
지도자들의 책임을 강조하십니다.
하느님 백성의 영혼을 돌볼 책무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요
그분의 사랑으로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일 수 없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이 책무는 본질적이고 일차적인 책무로서
그 어떤 핑계나 다른 일 때문에 미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시는 주님을 맞을 합당한 준비입니다.
그런데 이런 책무가 교회지도자들만의 몫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 축성과 사제 축성, 수도 축성 등을 통하여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기로 약속하였습니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든 주님의 뜻대로 행동하고,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삼지 않고 주님께 되돌리며,
오직 하느님의 일에만 마음을 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의 자발적인 봉헌과 하느님의 축성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기 시작되고 행복의 길이 열립니다.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려면 변덕을 부리지 않는 항구함과 깨어있음,
충실성, 책임을 지는 태도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온갖 현상들에 휘둘리지 말고
변함없이 주님을 의식하고, 깨어 주님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항구함이 없다면 우리는 주님의 매를 맞을 것입니다.
또한 충실함은 주님의 일에만 몰두하는 것입니다.
세상일도 집중하고 몰입하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는데
하물며 영혼 구원이야 얼마나한 충실함이 필요하겠습니까.
충실함은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는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사랑이 깃든 인내야말로 충실함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대충주의와 편의주의, 그리고 변덕과 현상적인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는 충실한 종으로서 사랑의 책임을 다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