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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

~ 연중 제 34주간 금요일 - 늘 깨어 있는 생활 / 조욱현 신부님 ~



연중 제34주 토요일

복음: 루가 21,34-36: 늘 깨어 기도하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34절) 영원하신 임금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술의 위험과 또한 ‘술 중독’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먹는 사람도 의사가 술을 먹으면 이제 죽는다고 하면 모두 술을 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영혼과 육신의 의사이신 주님께서 만취와 방탕과 일상의 근심에 빠지지 말라고 하신다. 그렇게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에 빠져 살면서 아무 탈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만취는 모든 것을 망치는 원인이다. 육신과 함께 영혼까지 약하게 하는 유일한 병이다. 사도 바오로는 육신이 약할 때 영은 강해진다(2코린 12,10)고 하였다.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2코린 4,16)고 하였다. 그러나 술에 취해 살면 육신과 영혼이 파멸한다. 육신과 영혼이 한꺼번에 타락하는 것이다. 모든 지체가 약해지면서 손과 발이 말을 안 듣고, 혀는 풀리고 눈은 어두워진다. 정신 또한 망가져서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심하면 자기가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모른다. 술 중독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생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아직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고, 애써 잊으려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여도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 앞에 당당히 버티고 있으며, 언제나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다만 그 때가 언제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하여간에 우리 인간은 언제고 어느 때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깨어있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지금 당장에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 있게, 기쁘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느님을 기쁘게 잘 만날 수 있기 위해서는 평소에 죽는 연습을 잘 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실천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이기는,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는 나의 인간적인 뜻을 죽이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죽는 연습이 잘 되어있다면,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이 세상 삶도 잘 마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삶이며, 우리는 그 날 어떤 어려움과 고통도 이겨내고 주님을 뵈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은 항상 기도하는 자세와 함께 이루어갈 수 있다. 기도하면서 내가 살아가는 매 순간들의 삶이 하느님께 바쳐지는 아름다운 기도로써 바쳐질 수 있도록 한다면 진정 신앙인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써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잘 새기고 실천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