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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대림 1주간 수요일 / 기경호 신부님 ~





대림 1주 수 마태 15,29-37(15.12.2)



"저 군중이 가엾구나."(마태 15,32)




The feeding of the four thousand, Giovanni Lanfranco, 1620-1623



 


 배고픔마저 잊게 하는 연민


이사야 예언자는 때가 오면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시고

(25,6),

모든 겨레들의 슬픔을 거둬주시고 온갖 설움을 위로해 주시리라는 희망을 선포합니다

(25,7).


또한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고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며,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며 모두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25,8).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로 그런 하느님의

 보편적이고 인격적인 사랑을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 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모두 고쳐주십니다

(15,30).


군중은 이런 예수님의 불타오르는 사랑을 지켜보느라

사흘 동안이나 먹지도 못한 채 그분 곁에 머뭅니다

(15,32).


그들은 음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과 업적을 통해

드러난 생명과 사랑에 넋을 잃어 광야에서 사흘씩이나 굶었을 것입니다.


 사랑은 그렇게 육신의 배고픔조차 잊게 하는가 봅니다.

군중이 치유를 통한 자유와 하느님의 사랑에 깊이 젖어들 때, 예수님께서는

 당신 곁에 머무르느라 벌써 사흘씩이나 굶은 군중을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굶은 채 돌아가다가 쓰러질지도 모르는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그들을 먹이십니다

(15,32-35).


군중을 먹이는데 턱없이 모자라는 음식이었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그들 모두를 배불리고도 넘쳤습니다.

이 놀라운 일은 예수님의 모든 인간을 향한 인격적인 사랑과

 그 사랑을 체험하여 저마다 가지고 있던 빵을 나누었던 군중의

 사랑의 마음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기 목숨마저도 기꺼이 내놓을 힘을 줍니다.


이런 사랑은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하며

그 사랑을 체험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빵을 늘어나게 한 것은 돈도 누룩도 아니었으며 사랑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과 물고기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실 때

군중들이 영원한 생명의 빵인 당신을 알아 모시기를 간절히 바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을 절절히 체험한 군중 또한

 예수님께서 들어 올린 빵과 물고기를 바라보면서 육신의 굶주림을 채워줄

음식을 목말라하기보다는 영원한 사랑의 음식이 되어 오신 사랑을 보았을 것입니다.

내 삶의 누룩은 무엇일지 생각해봅니다.


그 누룩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사랑이 아니라면,

예수님과 함께함으로써 사랑의 얼이 박히지 않는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내 삶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하고 근원적인 힘이 사랑이어야 할 텐데

너무도 많은 것들을 찾아 헤매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영성생활의 출발도 궁극적인 목표도 결국은

사랑의 존재가 되는 것 외에 다른 것일 수 없습니다.

겨울 찬바람에 벌거벗은 몸을 맡기는 나목(裸木)처럼 이제부터라도

 가슴시린 진실함으로 아랫목 구들장의 온기를 품은 사랑이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의 그침 없는 사랑이 군중의 무딘 가슴에 사랑의 꽃잎을 뿌려

 사랑을 싹틔웠듯이 나 또한 그렇게 만나는 모든 이의 가슴에

사랑의 혼을 불러일으키는 감동이었으면 합니다.

주님,

당신 사랑 때문에 사랑이 되게 하시고,

 모든 사람들과 피조물, 세상사를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감수성과 관대함을 깨워주소서.

나마저 잊고 당신에 취해 연민의 눈으로

세상의 고통과 불의와 아픔을 바라보고

품는 사랑의 기적을 이루어가게 하소서!

아멘.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