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못 볼 사람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웠던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한 가난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의 공부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부인은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가장 하기 쉬운 일을 먼저 찾다가 미국 교포들을 위한 한국 음식점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허드렛일이었습니다. 설거지도 하고 홀서빙도 하고 청소도 하고 닥치는대로 궂은 일만 골라서 하게 되었지요.
어느 날 식당에서의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친 부인이 주방을 한 바퀴 둘러보니 육개장이
많이 남은 것을 보았습니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허락을 얻고 한 냄비 챙겨와 남편을 위해 저녁상을 차렸습니다.
부인은 오랜만에 남편이 좋아하는 육개장을 먹게 된 것이 흐믓해서 남편 앞에 바짝 다가앉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생겼습니다. '이게 웬 떡이냐?' 하며 남편이 신이 나서
육개장을 한 숟가락 떠 먹으려는 순간, 뭔가가 육개장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눈치채지 않게 조심조심 살펴보니 누군가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가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그 순간 '이걸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며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즉시 결정했습니다.
이걸 먹지 않으면 육개장에 담배꽁초가 들어 있는 것을 아내가 알게 될 테고,
그러면 아내가 가슴 아파할 걸 생각해 남편은 육개장을 남김없이 먹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남편은 말없이 뒤뜰로 나가 오랫동안 울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이 일을 모르고 있다가 세월이 흐른 후에야 남편의 제자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제가 그 순간 남편이었다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내가 개나 돼지인 줄 알아? 도대체 이걸 나보고 먹으라고 가져왔어?'
화가 치밀어 올라 한바탕 소란을 피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남편은 꾹 참으며 침묵했습니다.
성모님처럼 혼자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것입니다.
결혼이라는 한배를 타고 먼바다를 항해하고 계시는 분들이 꼭 기억하면 좋을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생활하는 분들은 지난 삶을 돌아보며 다들 공감하실 것입니다.
서로 좋아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시절, 살짝 맛이 갔던 시절, 잠시라도 못 보면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시절이 불과 10년, 20년 전인데 이젠 어떻게 하면 잠시라도 좀 떨어져 있을 수 없을까 생각합니다.
한때 저 사람으로 말미암아 내 인생이 행복하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저 사람이 없어야
내가 숨을 쉬겠구나라고까지 생각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노력이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려는 노력입니다.
앞만 보고 서로 으르렁거릴 일이 아니라 철저하게도 가련한 그의 약함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입니다.
상대방을 내 소유물로 설정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상대방을 내 성취의 도구로도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상대방을 내 욕구 충족의 대상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결혼은 어쩌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입니다. 결혼은 어쩌면 또 다른 우주를 만나는 것입니다.
결혼은 어쩌면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결혼을 통해 부부는 긴 항해를 시작해야 합니다.
결혼을 통해 부부는 긴 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어쩌면 배우자는 신천지입니다.
온갖 다양한 탐구거리로 가득 찬 새로운 대양이 바로 여러분의 배우자입니다.
그는 멀고 먼 은하계에서 오직 나만을 찾아 정확하게 내 안에 떨어진 하나의 별입니다.
그는 나의 성장을 위해, 나의 구원을 위해 다가오신 또 다른 하느님입니다.
때로 슬픈 일이지만 결혼은 현실입니다. 사람은 이슬만 먹고 살지 않습니다.
결혼은 사랑에 밥 말아 먹고 사는 일일 거라는 환상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결혼은 때로 쓰디쓴 현실입니다.
길고 험난한 자신과의 투쟁입니다. 결혼은 수도생활 못지않은 오랜 자기 수련과 고행의 길입니다.
매일 저녁이면 저녁마다 어제의 그를 내 안에서 몰아내면 좋습니다.
그 빈자리에 처음 만난 그, 좋았던 시절의 그, 상냥하고 자상하고 친절하던 그로 채우는 노력을
한번 반복해 보십시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그'를 바라모며 주문 한 가지를 습관처럼 외워 보십시오.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못 볼 사람!"
< 축복의 달인 >
양승국 신부의 영성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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