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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대림 3주간 화요일 / 기경호 신부님 ~




대림 3주 화 마태 21,28-32(15.12.15)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 21,31)




The parable of the two sons






착각에서 벗어나야 할 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세리와 창녀들이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21,31).


스바니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계약을 어긴

 예루살렘의 지도 계급을 비판합니다

(3,3-4).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인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율법을 잘 알고 엄격하게 지켜왔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창녀들이 수석 사제와 원로들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셨을까요?


또 스바니야 예언자는 왜 예루살렘 지도계급을 비판하였을까요?


 그것은 죄의 유무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의 삶의 태도와 회개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세리나 창녀들과는 달리 하느님을 믿었고

율법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함’에 대해 가르치는

 요한의 말을 믿지도 생각을 바꾸어 실행하지도 않았습니다

(21,32).


 그들은 가난한 이들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의인’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기원전 8-6세기에 세계를 호령하던 아시리아의 지배 상황에서

 예루살렘 지도 계급은 하느님의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않았습니다.”

(스바 3,2)


그들의 눈에 이웃은 보이지 않았으며

정의를 찾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정의와 진리를 실행하는

가난하고 충실한 이들과 계약을 맺으십니다

(3,12).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시 예루살렘 지도계층처럼 하느님의 뜻에 온순하게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앞세우며,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않고

현세의 우상을 섬기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느님을 삶의 목표로 삼고 사는 이들답게 시간도 돈도 그분을 위해 쓰고,

생각과 말과 행동의 동기도 그분이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 시대의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처럼 세례를 받고

수도자나 성직자로서 축성을 받았으니 당연히 구원받으리라는 안일함과

 나는 다른 이들보다 더 깊은 믿음과 영성을 지녔다는

 ‘나 홀로 의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적극적으로 생각과 태도를 바꾸거나

가난하고 힘없고 버림받은 이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채

 말로만 떠들어대며 관념의 동굴 속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오늘의 사회는 끊임없이 하느님보다는 자신에 집중하라고 부추기고,

하느님의 힘보다는 돈과 인간의 권력에 의존하도록 길들입니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과 정보가 만들어내는 변화들은

 스스로의 내면의 변화와 회개의 의지를 꺾어버리기도 합니다.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도덕적, 지성적, 정서적 착각의 늪에서 깨어나야 할 때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