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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c Ko 신부님

~ 2015 년 12월 30일 수요일 묵상과 기도 / 고 도미니코 신부님 ~

2015년 12월 30일 수요일 묵상과 기도

<성무일도> 이사 9,5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어깨에는 주권이 메어지겠고 그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입니다.

응송
◎ 주께서 구원하심 드러내 보이시고, * 알렐루야,알렐루야.
○ 그 정의 백성들 앞에서 밝히셨도다.


<청원기도>
태초에 성부와 함께 계시며 때가 되어 사람이 되신 성자여,
― 모든 사람을 형제같이 사랑하게 하소서.
◎ 지극히 사랑하올 성자 그리스도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오늘의 복음 말씀> 루카 2,36-40
그때에 한나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예수님의 부모는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영적 독서> 내 영혼을 위한 3분, 게르하르트 바우어 지음: 최용호 옮김
오르막길, 분주한 시간

몰입에서 얻는 행복
얼마전에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노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
요하다는 듯이 푹 빠져서 아주 즐겁게 놀고 있었습니다. 노는 것 이외에 다른 모든 일은 잊은 듯이 말이지요.

그에 비해 어른들은 여러 가지 일에 정신을 쏟으며 쫓기듯이 분주하게 삽니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어른들은 모래알이 손가락을 빠져나가듯이 시간이 덧없이 흘러가는 것을 더 강하게 느낍니다. 아무리 분주하게 살아도 사실 지금하고 있는 이 순간의 일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는 없는데도 말이지요.
지금 하고 있는 놀이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처럼 우리가 지금하고 있
는 일과 오늘 해야 할 일에만 충실하게 몰입한다면 우리의 삶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지니간 과거를 후회하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대신에 말이지요.

행복을 여는 열쇠는 지금 이 순간에 있습니다. 늘 바쁘고 분주하게 살기보다 바로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온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사진: 이태리 그레치오 은둔소 성프란치스코)
Photo: Italy Greccio San 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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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수요 강좌>
교회사 강좌
세계교회사

고대그리스도교
제1기 1-311년
제5절 그리스도교 최초의 정신적 발전

초기 그리스도쿄의 호교가:
2세기의 초기 그리스도교 호교가들은 저술로 그리스도교를 변호활 과제를 이어받았다. 당시의 그리스도교는 이미 역사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외부세계로부터 무시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신분이 높고 교양있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개종을 변명하기 위해서나 그리스도인에 대한 편견과 중상을 물리치기 위해서 교양있는 외교인들과의 대화를 모색하였다.
호교가들은 자신들 주변의 세계를 이해시키려는 노력에서, 그들 시대의 개념언어를 널리 시용하였다. 그들은 후기 스토아 및 플라톤 주의적 정신세계, 그리고 그리스적 • 동방적인 밀의종교의 종교적인 관념세계에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였다. 그들은 예를 들어 오랜 탐구 끝에 비로소 그리스도교 진리로의 길을 발견한 유스티노처럼,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에
이 두 세계와 더불어 성장하였고 매일같이 그들과 접촉하였다. 그들이 자신들의 세계에서 말하고 또한 자신들의 모국어였던 언어로 복음을 설명하였다면 그것이 무엇이 이상하겠는가! 이러한 점 때문에, 그들이 하느님의 말씀올 “그리스화”하였다고, 그 결과 하느님의 말씀을 변조시켰다고 비하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그들의 목표는 그리스도에게로 자신들의 세계를 끌어들이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증언하고 선교활동을 하려는 의도에서, 그들은 용감하게 자신들의 주변세계와 대화를 시도하였다. 그들이 게토로 밀려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칭찬받을 만한 행위로 길이 남을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 세계는 이러한 대화를 위하여 귀중한 연결점을 충분히 제공하였다. 요한 복음 서문의 로고스 사상은, 물론 그 자체는 후기 유대교의 지혜에 대한 가르침에서 유래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대조되는 내용이 제논과 스토아 철학 안에 있었다. 여기서 언급된, 전 우주가 그의 기원과 그의 혼(생명)에 힘입고 있는 창조적인 로고스로서 지배하는 하느님의 힘은, 벌써 사도시대 교부들에 의하여(이냐시오의 「마그예시아인에게 보낸 편지」 8.2)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었다. 오랫동안 로마에서 그리스도교의 철학교사로서 활동하였던 유명한 순교자요 철학자언 유스티노는, 165/167년경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 때문에 처형되기까지, 모든 인간은 그의 이성안에 이미 영원한 로고스의 싹을 지니고 있다는 사상을 두 편의 호교론에서 완성하였다. 모든 인간은 자연적으로 다시 말해 창조주에 의하여 하느님의 진리로 향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스도 • 로고스의 계시에서 이 신적 진리가 마지막으로, 최고도로 그 정체를 드러내게 되었다. 구약에 등장한 하느님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한 그리스 문명의 위대한 사상가들도 이미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있었고, 신적 로고스인 그리스도에 관여한 징후를 보였다. 그들은 말하자면 이미 그리스도 이전의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리스도교는 참된 철학이요 지혜이다. 그것은 궁극적이고 가장 깊은 연관성을 인식하려는 인류의 동경의 실현, 즉 참된 그노시삶이다.

유스티노와 마찬가지로 다른 호교가들도 논쟁을 벌였는데, 어떤 이들은 유대교와, 어떤 이들은 이교의 다신교나 밀의종교의 구원 약속과 대결하였을 뿐이다. 모든 이에게 공통된 것은 그리스도교를 인류의 유일한 실현으로, 또한 영원한 예정으로 증명하려는 노력이었다.

유스티노 외에 철학지들인 아테네의 아리스티데스와 아테나고라스 그리고 시리아 사람 타시아누스를 초기 그리스도교 호교가 그룹으로 간주한다. 타시아누스는 「그리스인에 보내는 답변」 외에 「네 복음서 조화」를 저술하였다. 그는 한때 로마에서 유스티노의 제자였으나 172년경에 동방으로 돌아가 그노시스적 • 엔크라트파적인 이단을 주창하였다. 그밖에도 주교들인 안티오키아의 테오필로, 히에라폴리스의 아폴리나리스, 사르테스의 멜리톤, 펠라의 아리스톤(140년경), 그리고 수사학자인 밀티아데스, 풍자가인 혜르미아스와 호교가로도 간주되어야 할 콰드라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