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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2016년 1월 5일 공현후 화요일 / 기경호 신부님 ~





공현 후 화요일 마르 6,34-44(16.1.5)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르 6,34)



The feeding of the five thousand






가엾이 여기며 떠안는 사랑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외아들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제물로 보내주셨기에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요한 4,10).


사랑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과 제자들의 상반된 태도를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

(마르 6,34)


그분은 먼저 인간 자체에 관심을 두셨고

사람들의 처지에 마음 아파하십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다(6,35)고 하며

사람이 아니라 상황과 조건에 먼저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외부 환경이나 조건을 우선시한다면

 사랑이 아니라 사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으로 어떻게 군중들과 함께

할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 “그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6,36) 하고 말씀드립니다.


그들은 문제 해결에만 관심을 두었고,

문제 해결마저도 말뿐이었지 직접 나서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결코 누가 대신해주는 것이거나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고통을 견디어내는 것이지

 ‘그들의 일’로 만들어 제3자나 당사자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가진 것을 나누는 것뿐 아니라

그 사람의 어려움과 고통까지도 함께 떠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6,37) 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도 제자들은 자신들을 건네어 나누라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보리빵 다섯개와 소금에 절여 말린 물고기 두 마리로는

군중의 배를 채울 수 없다고 판단하고, 군중을 먹일 빵을 사는데

필요한 돈 이백 데나리온을 계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존재 자체를 전부 나누는 것이 사랑임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무엇보다도 생명의 빵으로 오신 예수님을 나눠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계산을 하였고

가능성을 저울질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눈앞의 문제해결과 성과에 관심을 쏟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속사랑이지 겉사랑이 아닙니다.

한편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예수님께서는 각 사람의 배고픔과 아픔에

일일이 관심을 가지시고 가엾이 여기셨지만,

제자들은 그저 대상화된 불특정 다수로서의 배고픈 집단을

겉핥기식으로만 보았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각 사람의 처지와 마음을 헤아리고

가엾이 여기며 함께하는 인격적인 사랑이 참 사랑임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가엾이 여기는 사랑이야말로 빈곤과 기아, 전쟁, 경제와 복지문제,

 사회적 차별 등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물 나눔과 일시적인 봉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밥으로 내어주신 예수님을 나누는 것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그러려면 하느님의 생명과 예수님의 연민의 마음을 지닌

사랑의 빵이 되도록 힘써야겠지요.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나를 사랑하는 그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