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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

~ 연중 제 3주간 수요일 - 말씀의 씨앗 / 조욱현 신부님 ~




연중 제3주 수요일

복음: 마르 4,1-20: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3절)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시어 우리에게 끊임없이 미래의 부활을 보여주신다.(1베드 1,3 참조) 씨가 땅에 떨어지면 땅속에서 썩지만, 주님의 위대한 섭리는 그 씨앗을 다시 태어나게 하고, 한 알의 씨앗에서 많은 것이 자라나 열매를 맺는다.

“씨를 뿌리러 나갔다.” 나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역사적인 섭리 안으로 나가신 것을 의미하며, 우리와 더욱 가까이 계시기 위하여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문이 가로막혀 우리가 들어갈 수가 없었으므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이다. 그분은 믿음의 말씀을 뿌리기 위해 나오셨다. 여기서 당신의 가르침은 “씨”요, 인간은 “밭”이며, 당신 자신은 “씨 뿌리는 사람”이라 말씀하신다.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3절) 씨 뿌리는 사람은 골고루 구별 없이 밭에 씨를 뿌리듯 주님께서도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든 이에게 말씀이라는 선물을 주신다.(로마 5,15 참조) 그런데 인간은 그 씨앗을 잃어버린다. 그것은 씨 뿌리는 사람의 탓이 아니라, 씨를 받아들이는 땅, 곧 듣기를 거부하는 사람의 탓이다. 인간이라고 하는 밭이 어떠냐에 그 결실이 달려있다.

자연으로 보면 돌밭이나 길이나 가시덤불은 바뀌기는 힘든 것이다. 그러나 영적 질서에서는 돌밭이 기름진 땅이 될 수도 있고, 길도 사람이 지나가지만 않으면 풍요로운 밭이 될 수 있으며, 가시덤불도 걷어 내면 씨앗이 자라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주님께서는 씨를 뿌리지 않으셨을 것이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씨 뿌리는 분 탓이 아니라, 변화되기를 거부하는 자들의 탓이다.

돌밭에 떨어진 씨앗은 싹은 돋았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뿌리가 없어 말라버렸다고 한다. 싹이 말라버린 것은 뜨거운 열 때문이 아니라,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6절) 이런 사람들은 길에 떨어진 씨처럼 마음이 거칠고 무심하고 부주의 하다. 돌밭에 떨어진 사람들은 나약함 때문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7절) 하느님의 말씀이 숨 막혀 버렸다면, 그것은 가시 때문이 아니라, 가시덤불을 그냥 내버려 두는 사람들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다면 가시덤불이 자라지 못하게 막고, 우리의 재물을 쓸모 있게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세상걱정”이라 했고, “재물의 유혹”이라 했다.(19절) 세상과 재물을 탓하지 말고 타락한 의지를 탓해야 한다.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8절) 땅도 좋고, 씨 뿌리는 분도 한 분이시고, 씨도 같은데, 어찌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의 열매를 맨은 것인가? 이것은 땅의 준비 상태에 달려 있다. 좋은 땅이라고 해도 땅의 준비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다. 잘못은 농부나 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씨를 받아들이는 땅에 달려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과연 어떤 마음의 밭을 가지고 말씀을 듣고 실천하고 있는가? 내 마음의 굳은 땅은 쟁기로 갈아엎고, 돌을 골라내고, 가시덤불을 걷어 내야 한다. 사랑의 뿌리가 내릴 수 없는 단단한 땅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나는 어떤 결실을 내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며 말씀의 씨앗을 잘 가꾸어 결실을 풍성하게 맺는 삶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은총의 삶을 주님께 청하며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