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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연중 제 3주간 금요일 / 기경호 신부님 ~



연중 3주 금, 마르 4,26-34(16.1.29)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마르 4,27)



Seed grows of itself





하느님 자녀들의 거룩한 여유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고치시고 가난한 이들과

죄인들의 벗이 되어주시며 자유와 해방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에 군중들은 놀라고 열광했지만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데 길들여져

나자렛 시골 출신이요 목수의 아들인 예수님,

그리고 그분과 함께 도래한 하느님 나라를 믿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4,26-29)와

겨자씨의 비유(4,30-32)를 통하여 미소한 것도 하느님 나라의 위력을 지니며,

그 나라는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임을 가르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시초에는 보이지 않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반드시 오며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에서 씨앗은 농부에 의해 뿌려지지만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합니다.”(4,28)


이 점이 바로 인간의 세상과 하느님 나라의 근원적인 차이입니다.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가시적인 성과나 변화에 끌려다니느라

 보이지 않는 기묘한 방법으로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저절로 확장되어가며 어김없이

 수확 때가 돌아오듯이 반드시 도래합니다

(4,29).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요?

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것들과 변화하는 현상들에 끌려 숨 가쁘게 살아갑니다.


그런 가운데 농부처럼 땀을 쏟고 고통을 감수한 다음, 어김없이 다가오는

 수확의 때를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기보다는 조급해 합니다.


계획은 인간이 하지만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심을 얼마나 자주 망각하는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낙담하거나 의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태도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그분께

자신을 맡기지 않는 교만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녀답게 받은 모든 것을 하느님 나라를 위해 되돌리되

 완성시켜주시는 분은 주님이심을 인정하며 기다리는

 ‘거룩한 여유’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언제든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치열하게 살면서 반드시 오게 될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기에 합당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눈에 보잘것없어 보이고

무가치해 보이는 아주 작은 씨앗을 통해서도 생명과

 희망의 선물을 주시고 창조를 이어가시기 때문입니다.

저절로 커가는 하느님 나라를 알아보는 ‘거룩한 여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여유는 그저 일이 없는 시간적 여백이나

신체적 자유를 말하는 것 이상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거짓 자아와 집착과 탐욕, 육의 욕망에서

온전히 벗어날 때 찾아드는 영(靈)의 상태를 말합니다.

오늘 하루도 눈에 보이는 현상과 육의 욕망을 좇는 

 조급한 발걸음을 멈추고 거룩한 여유를 되찾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그리는 여유로움으로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과 사람들을 통해서도 하느님 나라를 확장시키시며

행복을 가져다주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