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부활 2주일 요한 20,19-31(16.4.3)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 고난과 절망 한가운데서 찾는 행복 ♣
안식일 다음날 저녁에 사도들과 모임에 참석한 회중들은 다락방에 모여 문을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20,19). 빈 무덤 사건으로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의 제자들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죽음에서 비롯된 비참한 상황과 허무함, 두려움, 공동체의 혼란을 겪으면서 미성숙함을 드러내고 움츠러든 것입니다. 굳게 닫힌 그들의 마음의 빗장을 풀 수 있도록 평화를 주시고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십니다 (20,19-20). 이어 숨을 불어넣으며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하시며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20,21-23).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못마땅해 하며 외칩니다 (20,25). 사실 예수님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할 때 용감하게 “자, 예루살렘에 가서 죽읍시다.”(11,15)하고 동료들을 격려까지 했던 그였습니다. 그의 부족한 불신앙을 탓하지 않으시고 상처 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만져 보라고 하십니다. 그는 이제 만질 필요도 없이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20,28)이라고 고백합니다. 믿기지 않는 일들을 보며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주저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때가 적지 않습니다. 불신 때문에 관계가 단절되고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절망적인 상황에서 토마 사도처럼 치열한 신앙의 도전과 고민을 하지는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나아간 참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싶은 간절함과 열망이 있었기에 그분을 전인격적으로 만나고자 했습니다. 나의 삶은 과연 토마처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전 존재를 건 신앙고백, 사랑의 고백이 되고 있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두려움과 이기심과 아집으로 갇혀 있는 ‘나’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려 끊임없이 다가오고 계십니다. 지금 이 땅은 자본과 권력으로 철저히 무장한 집단들과 이른바 금수저들의 가공할 힘 앞에 무력감을 느끼며 절망하고 좌절하는 암울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 앞에서도 주님은 죽음의 힘도 어쩌지 못하는 생명의 힘으로 살아계십니다. 힘없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다수의 민초들의 아픔과 고통어린 외침이 미소한 것 같아도 주님은 바로 거기서 우리가 이루지 못하는 생명과 희망을 불러일으키시는 분임을 믿어야 할 때입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보지 않고도 믿으며, 희망 속에 용서의 사명을 살아내는 행복한 우리였으면 합니다 . “보이는 것은 잠시 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2코린 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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