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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름 그륀

~ 사랑하다 = 잘지내다 / 안셀름 그륀 신부님 ~

    사랑하다 = 잘 지내다

 

                                                안셀름 그륀

 

 

'사랑하다'(lieben)라는 독일어 단어는 '리옵'(liob)이라는

고대 표준 독일어의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리옵'이란 '잘 지내다', '즐겨하다', '좋아하다'라는 뜻이다.

이 말에는 그리스어 '에로스'가 강하게 각인시킨 그런 감정이 별로 들어 있지 않다.

 

'사랑하다'라는 말은 독일어에서 무엇보다도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좋다고 믿는 것'과 잘 지내는 것이다.

 

'사랑하다'와 '믿다' 그리고 '칭찬하다'는 말은 같은 어근에서 나왔다.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려면 나는 가장 먼저

그 사람 안에 있는 '좋은 것'(선, 善)을 믿어야 한다.

 

나는 그 사람 안에 있는 선을 인식하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에게 좋게 대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감정 이상이다.

사랑은 새로운 자세를 의미한다.

 

부부사랑이나 공동체에서도 이런 자세는 똑같이 적용된다.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 그 공동체가 자신에게 잘 맞는지,

자기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지

끊임없이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확인해야 한다면,

그 공동체는 엉망진창이 된다.

 

감정은 지속력이 없다.

물론 사람은 서로 좋아한다고 말하고 좋아하는 감정을 나눌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사랑은 나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내가 공동체에 충실하다는 것,

그래서 공동체는 나를 믿어도 된다는 것을

나는 공동체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나의 사랑은 갈등과 문제를 숨기지 않고 성의있게 해결하려는 노력을 통해 드러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지 않는 것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독일어의 '칭찬하다'라는 말도 사랑에 속한다.

그러니까 사랑은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좋게 말하는 데서 표현되고,

내 눈에 보이는 상대방의 좋은 면을 말하는 데서도 표현된다.

 

말은 영향력이 있다.

공동체가 진정으로 사랑에 의해 형성되려면,

좋게 말하는 것과 친절하게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오로 사도는 서로를 키워주는 바로 이 사랑에 대하여 끊임없이 말한다.

그는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쓴다.

 

"형제의 사랑으로 다정하게 지내고, 남을 존경하는 데에 서로 앞장서시오"(로마12,10).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이 사랑으로 이루어지게 하시오"(1코린16,14).

 

"하지만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왜냐하면 사랑은 모든 것을 묶어주고

 온전하게 해주는 끈이기 때문입니다"(골로3,14).

 


공동체는 이 하나 됨을 통해서 하느님의 완전성을 조금이나마 경험한다.

그때 공동체는 하느님의 일치에 참여한다.

이 모든 충고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것은,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사랑이 표현되는 구체적인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