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성체 찬양 (La Disputa : 1509 - 1510)
작 가 : 라파엘 산치오 (1483 - 1520)
크 기 : 프레스코 500 X 770cm
소재지 : 바티칸 궁전 서명의 방 (Stanza della Segnatura)
예술은 인생의 깊은 고뇌에서 여과되어 일반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높은 경지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기에,
많은 화가들은 참으로 기박한 인생을 살아야 했으며 이것을 밑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그러나 역사에서 예외적인 사례가 있으니 피터 폴 루벤스와 이 작품을 남긴 라파엘 산치오이다.
작가는 현직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예술가인 아버지로부터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예술과 학문을 후원하던 우르비노 공작의 도움으로 예술가로서의 기량을 키울 수 있었다.
고향에서 어느 정동 수준급 기량을 익히자, 그는 당시 르네상스의 도시로서 대단한 명성을 떨치던 피렌체로 이주해서
당시 대단한 역량을 확보하고 있던 마사쵸와 도나텔로의 작품들을 보면서 개울의 물고기가 큰 호수로 옮긴 것처럼
그의 작품에 새로움을 더하게 된다.
피렌체에서 어느 정도의 안정세를 얻었을 때 작가에게 새로운 행운이 찾아오게 된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 공사를 맡은 브라만테(D.Bramante)가
새로 건축되던 바티칸 궁전의 한 부분에 작품을 남길 수 있는 영예를 라파엘에게 맡기게 된다.
당시 교황이 있던 로마에 작품을 남긴다는 것은 최상의 영예와 신분상승의 기회이기에
그는 피렌체를 떠나 교황청에 와서 심혈을 다해 노력하면서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을 경탄시키는 작품들을 남겼다.
이 작품은 바티칸 궁전에 있는 서명의 방에 남긴 작품인데, 이 방은 과시성이 대단했던 교황 율리오 2세가
개인 서재와 작업실 용도로 사용키 위해 전임자들이 사용하던 방을 대폭 바꾸어 작가에게 맡기면서
문화와 예술에 대한 대단한 안목이 있으면서도 과시욕이 대단했던 교황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는
네 가지 주제의 거대한 작품을 의뢰했다.
당시는 희랍으로 대표되는 고대 문명과 지식이 널리 알려지면서 지성인들 심지어 교황청에서도 대단히 심취하던 처지였는데,
작가는 이 방의 다른 벽에 아테네 학당이란 제목으로 희랍 철학의 위대함을 알리고 성체찬양이라는 이 작품을 통해
희랍 철학의 바탕에서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것으로 신앙의 우위성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작가는 먼저 성삼의 주위를 성모님과 세례자 요한을 배치하고,
그 좌우에 신구약성서에서 등장하고 있는 여러 성인들을 기라성처럼 배치했다.
한 마디로 교회의 신앙을 옹호했던 성인들이다. 더불어 하느님의 모습은 삼위일체로 정확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 부분은 천상 교회이며 승리한 교회(Triumphant church)의 상징이고
전투 중인 지상 교회(Militant church)가 본받아야 할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정상에 창조자이신 성부께서 세상을 축복하시는 모습으로 계신다.
그 아래 구원자이신 성자 예수께서는 성모님과 세례자 요한의 경배 속에 십자가 고통의 흔적을 지닌 채
양손을 펼쳐 세상 만민을 안으시는 모습으로 계신다. 그리고 그 아래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계신다.
주님은 인간적으로 철저히 실패한 상징인 십자가의 상처를 몸에 지니고 계시나,
그 영광을 표현하기 위해 황금빛 광휘에 둘러싸여 계신다.
이는 하느님 중심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 신앙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이다.
그 좌우로 교회의 신앙을 증거 했던 여러 성인들이 기라성처럼 나열되어 있는데,
왼쪽부터 성 베드로, 아담, 사도 요한, 다윗, 성 라우렌시오 유다 마카베오, 성 스테파노,
주님의 사촌이었던 성 야고보, 아브라함, 성 바오로 사도로 교회 역사 안에서 신앙의 내용을 풍부히 증거하며
교회의 튼튼한 기초를 마련한 성인들이다.
그 아래에 지상 교회가 있다. 지상 교회는 천상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오늘도 성체성사를 통하여 현존하시며
지상 교회의 모든 지체들은 “하늘과 땅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 고백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필리 2:10–12) 라고
주님 앞에 찬양을 드리는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허나 당시 교회는 참으로 교회 고위층으로부터 하급 성직자에 퍼져 있는 부패로
많은 선의의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면서 교회가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두 명의 교황인 식스토 4세와 율리오 2세는 르네상스 문화를 이해한 사람으로서는 점수를 줄 수 있으나,
교회 지도자로서는 너무도 많은 실덕을 한 사람들이기에 곧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이런 처지에 신자들의 이탈을 막고 교회로 모으기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성체신앙이었으며,
이 교리는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실체변화(Transubstatiationa)로 선포되었는데,
이 교리는 1263년에 있었던 성체기적 사건에 탄력을 받아 신자들에게 대단한 신심의 대상이 되던 교리였다.
1263년 보헤미아의 어떤 사제가 신앙에 의심이 생겨 로마를 순례하는 도중 이태리 볼세나 라는 곳에서 미사를 드릴 때
이 사제가 축성한 빵이 예수님의 살로 변해 거기서 흐른 피가 성체포를 적시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우르바노 4세 교황은 자기 별장이 있던 오르비에토( Orvietto)에 대단히 아름다운 성당을 지어
이 성체포를 모시면서 교회 안에 성체축일을 경축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실체 변화 교리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이 변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도 사제의 축성을 통해
본질적 핵심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체적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이 장엄한 교리 앞에 지상 교회의 모든 대표자들이 현시된 성체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성인은 하나 같이 중세 교회에 큰 영향을 준 성인들이었다.
성 도미니코, 성 프란치스코,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 보나벤뚜라, 복자 둔스 스코투스, 성 니콜라 리라,
단테 알레기에리, 교황 율리오 2세, 식스토 4세와 함께 조금 예외적인 인물로서
교항 알렉산더 6세 교황의 부패에 항거하면서 교황을 반대하다가 파문과 함께 화형을 당한
도미니코 회 수도자 사보나롤라(Savonarola Ferrara)를 등장시키고 있다.
그는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한 사람인데, 그를 등장시킨 것은 교황 율리오 2세의 교묘한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다.
율리오 2세는 전임자이며 대단한 정치적 술수로 부패로 악명을 던진 알렉산더 6세 교황과 대립각을 세웠던 앙숙이었기에,
그가 교황이 되면서 전임자가 사보라롤라에게 내린 파문을 무효화 시키면서 여기에 등장시키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작가는 대단한 사교성과 함께 한번 은혜를 입은 사람이거나 선배에게는
너무도 정중하고 깍듯했기에, 누구와 원수 관계를 맺는 일이 없어 더 행복하게 작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작품의 등장 인물 중에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등장시키면서 좋은 평판을 받았다.
그러나 여기에선 개인적인 은혜에 대한 보답을 포함하고 있다.
대리석 난간에 기대어 책을 손에 잡고 있는 인물은 당시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을 담당하던 브라만테이며,
그는 작가에게 교황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배려한 장본인이다.
오른쪽에 경쾌한 표정으로 왼쪽에 있는 일군의 성인들에게 손길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작가의 동향인이었으며
도움을 많이 준 용병대장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라 로베레(Francesco Maria della Rovere)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그는 작가의 고향인 우르비노의 군주로서 작가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던 장본인이다.
작가는 보은의 표시로서 이 두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생존했던 시기에 교회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적절한 작품이었으며,
신앙적 동기 못지않게 흔들리는 교황권에 사람을 모으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있어 이 작품이 표현하는 성체 찬송의 내용, 즉 실체변화라는 교리는
작가의 당시만큼 설득력이 없는 것도 사실이며, 현대인들의 정감에 더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표현이 등장해야 할 것이다.
오늘 교회 전례에서도 성체 강복과 같은 아름다운 예식으로 성체흠숭을 하고 있으나,
성찬기도에서 가장 성서적인 표현으로 성체 교리를 더 성서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다행히 현대 미사 경본은 성찬의 순간 사제가 바치는 기도를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성찬기도 제 2양식)
이 작품은 대단한 야심가였던 율리오 2세 교황이 자신의 권한이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과시할 의도로 제작된 것이긴 했어도 중세 수준에서 성체 교리를 감동적으로 표현한 대단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 이종한(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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