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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성녀 축일 기념일등

+++ 성녀 발부르가 / 복자 세바스티아노 아파리치오 기념일 +++

축일: 2월25일 
성녀 발부르가
St. Walburga
Santa Valburga (Valpurga) Badessa di Heidenheim  
Born:c.710 at Devonshire, Wessex, England
Died:25 February 779 at Heidenheim, Swabia, Germany 

 

 

 


윔보른의 수녀인 성녀 발부르가는 크레디톤의 성 보나파시오와 더불어
독일 선교사로 활약했던 성 윌리발드와 위네발드의 동생이다.


761년, 위네발드가 서거할 때, 그녀는 하덴하임의 이중 수도원의 장상직을 맡아 일생동안 헌신하였다.
잉글랜드 출신인 이 원장은 게르만인의 풍습을 교묘히 활용할줄 알았던 지혜로운 여성이었다.
그녀의 경당은 "신비스러운 기름"이 흘러 나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보나파시오 주교 순교자 축일:6월5일

*성 위네발드 아빠스 축일:12월18일

 

 
축일 2월25일(2월27일)
복자 세바스티아노 아파리치오, 
 Observants 
Beato Sebastiano dell’Apparizione Francescano
Blessed Sebastian of Aparicio 
Also known as : Angel of Mexico, Sebastián de Aparicio Prado
Born : 20 January 1502 in La Gudiña, Orense, Spain
Died : 25 February 1600 of natural causes
lies in the Chapel of the Virgin of the Conquest, Church of Saint Francis of Assisi, Puebla, Mexico
body incorrupt
Venerated : 2 May 1768 by Pope Clement XIII (decree of heroic virtues)
Beatified : 17 May 1789 by Pope Pius VI 

  세바스티아노는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양치는 일을 해왔다. 15세 때에 그는 살라망까의 어느 과부집 종으로 들어갔는데, 그 부인의 유혹이 심하여 즉시 나왔다.  그루 그는 산 루카스에서 농부의 일을 거들었는데, 항상 기도와 묵상에 열중하며 8년 동안 일한 결과,  여동생의 결혼 지참금을 넉넉히 벌게 되자 고향으로 왔다가, 아메리카로 떠났다.

  그는 멕시코의 푸에블라에 정착하여 농사일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장사, 건축등으로 크게 성공한 부자로 변신하였다.  그는 돈을 자기만의 소유로 생각지 않고, 가난한 사람과 정당한 품삯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하였으므로, 그의 권위는 스페인 사람은 물론 인디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는 부유한 가운데서도 극도의 엄격과 절제를 실행했고, 매트 위에서 잠잤으며 최고 가난한 사람들과 꼭같은 음식으로 만족하였다.
 
  1552년, 그는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고 전원생활을 즐겼는데, 20년 동안이나 땅을 개간하고 소를 키웠다. 69세 때에 그는 어느 가난한 처녀와 결혼하였으나 부인이 곧 운명하였고, 또 재혼하였으나 그것도 즉시 끝이 나버렸다.

  70세 가량 되었을 때,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이 곧 있을 것으로 믿고, 모든 재산을 글라라회에 기증한 뒤, 재속 프란치스칸이 되었다. 그후 그는 멕시코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수련자로 지냈고,  푸에블라 수도원에서 평수사로 문전걸식을 하였다.  그가 동물을 극히 사랑하고 친하게 지낸 것은 유명하다. 그는 90세의 나이에 선종하였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세바스티아누스 아파리치오(Sebastianus Aparicio, 또는 세바스티아노)는 에스파냐의 갈리시아(Galicia)에서 가난한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양치는 일을 해왔다. 15세 때에 그는 살라망카(Salamanca)의 어느 과부 집의 종으로 들어갔는데, 그 부인의 유혹이 심하여 즉시 나왔다. 그 후 그는 산 루카스에서 농부의 일을 거들었는데, 항상 기도와 묵상에 열중하며 8년 동안 일한 결과 여동생의 결혼 지참금을 넉넉히 벌게 되자 고향으로 왔다가 아메리카로 떠났다.

   그는 멕시코의 푸에블라(Puebla)에 정착하여 농사일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장사, 건축 등으로 성공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돈을 자기만의 소유로 생각지 않고 가난한 사람과 정당한 품삯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그의 권위는 에스파냐 사람은 물론 인디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는 부유한 가운데서도 극도의 엄격과 절제를 실행했고, 매트 위에서 잠잤으며,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은 음식으로 만족하였다. 1552년 그는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고 전원생활을 즐겼는데, 20년 동안이나 땅을 개간하고 소를 키웠다. 60세 때에 그는 어느 가난한 처녀와 결혼하였으나 부인이 곧 운명하였고 다시 재혼하였으나 그 생활도 오래 가지 않았다.

   70세가량 되었을 때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이 곧 있을 것으로 믿고, 모든 재산을 클라라회에 기증한 뒤 작은 형제회 재속 3회원이 되었다. 그 후 그는 멕시코의 작은 형제회 수도원에서 수련자로 지냈고, 푸에블라 수도원에서 평수사로 문전걸식을 하며 지냈다. 그는 동물을 극히 사랑하고 친하게 지낸 것은 유명하다. 그는 90세의 나이에 선종하였다. 그는 1787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가톨릭홈에서)

*성녀 클라라 동정 축일:8월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