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dder of St John Klimax
16th c. Pantokrator Monastery Wood, egg tempera, 31 x 24 cm
축일:3월30일
성 요한 클리마코 아빠스
St. John Climacus
San Giovanni Climaco Abate
St. Joannes Climacus, Monachus
Born:505-579 in Syria
Died:605-649 on Mount Sinai of natural causes
아마도 시리아에서 태어난듯한 그는 16세 되던 해에 시나이산의 수도자들과 합류하여, 4년 후에 서원하였다.
그후 그는 은수자로 살았고, 35년 동안이나 톨레에서 자신의 고유한 은수생활을 계속하면서,
성서와 교부들을 연구하여 큰 업적을 남겼고, 뛰어난 영적 지도자가 되었으니,
특히 그는 마음이 헷갈린 영혼을 돌보는데 큰 능력을 발휘하여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자신의 의견과는 달리, 70세에 시나이산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되었으나,
40여 년이나 살아오던 은둔소에 살다가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천국의 사닥다리"(The Ladder of Divine Ascent)의 저자인데,
이 책에서는 수도자의 완덕 추구에 관한 30 단계를 묘사하였다.
이 책은 중세시대의 가장 대중적인 신심서적이다.
그는 시나이산에서 운명하였는데, 요한 스콜라스티쿠스(John Scholasticus)로도 알려져 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4세기에는 수도생활을 갈망하여 이집트 혹은 아라비아의 사막에 은수하는 신자가 많았다.
그래서 로마 황제 유스티아노는 모세가 하느님의 십계를 받은 바 있는 시나이 산 부근에 사는
이런 수사들을 위해서 그 산위에 한 수도원을 세웠다.
어느 날 일어난 일이었다.
아직 16세밖에 안 된 요한이라 하는 한 소년이 이 수도원 문을 두드리고 수사로 받아 줄 것을 간절히 원했다.
그리해서 그의 소원대로 된 소년은 수도자의 반열에 들게 되었으나 원체 아직 어린데다 체격도 허약했으므로
그의 지도를 담당한 말디리오 노(老)수사도 과연 그가 오랫동안 그런 엄격한 생활을 감당할 수가 있을까
몹시 염려했다.
그런데 요한 소년은 수도원에 들어온 날부터 다른 이들보다 더 열심을 분발해 말디리오의 지도를 따라
성심성의로 수덕에 힘쓰며, 청빈, 순명, 정결 등의 모든 덕에 있어서도 비난의 여지없이 훌륭하게 지켜나가
단시일에 그의 덕의 진보는 실로 놀랄만한 점이 있었다.
그러던 중 은사 말디리오가 선종을 한 후에는 요한은 더욱 완덕의 길을 닦고자 수도원을 나와
시나이 산의 기슭에 한 초막을 짓고 홀로 그곳에서 지냈다.
이리하여 그는 매주 토, 일 양일에 미사 성제에 참여하고 천사의 빵(성체)을 받고
성서나 교부들의 수덕에 관한 저서를 정독하고 고행, 묵상, 노동을 행하며 몸과 마음을 수양하도 덕을 닦았다.
이렇게되자 그가 아주 드문 성인이라는 소문은 어느덧 세상에 퍼져 그의 교훈을 받고자
각처에서 모여드는 자들이 수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격언과 같이 그의 명성이 일약 유명해져서 사방에 떨치자
이에 질투심을 품고 그를 비난, 시기하는 자가 나와서 "그는 성인이 아니다. 다만
말 많은 교만한 자에 불과하다." 하고 비난을 한 때도 있었다.
그래도 요한은 그런 말을 들어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쾌히 상대자를 용서했으며
도리어 죄의 보속을 위해 온전히 침묵을 지킬 결심을 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먼저 그를 비난하던 이도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충심으로 통회했다고 한다.
요한은 그 후도 더 한층 완덕의 길을 닦았지만 75세의 고령에 달했을 때
시나이 산 수도원의 수사들에게 추대되어 원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모세와 같이 하느님께 특별한 묵시를 받고 일반 수도자를 위해
’완덕의 계단(클리마코)’이란 영감(靈感)에 충만한 책을 저술했다.
그가 요한 클리마코라고 불리게 된 것은 이에 기인하는 것이다.
요한의 명성은 그 후도 점점 높아져 멀리 로마에까지 미쳤으며
교황 대 그레고리오께서도 그의 성덕을 칭찬하는 서한을 보내며 그의 기도를 청했다고 한다.
또한 그에 관해서는 어느 해 한발(旱魃)로 곡식이 모두 말라죽으려고 할 때
그의 열렬한 기도의 덕분으로 좋은 비가 와서 백성은 흉작, 기근의 곤궁에서 구제되어
요한을 제2의 엘리야로 존경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는 수도원장으로서 5년간 모든 책임을 알뜰히 완수하다가 선종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
적당한 후계자를 구해 그에게 원장직을 물려주고 전에 살던 초막으로 다시 돌아가서 1년간 마음껏 기도와
보속을 행하고 드디어 시메온과 같이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루가 2, 29-30)하고 기도하며 고요히 세상을 떠났다.
때는 605년 3월 30일이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시나이의 성 가타리나수도원:알렉산드리아의 성녀 가타리나 축일:11월25일
*성(대)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축일:9월3일
*성 엘리야 예언자 축일:7월20일
*성 모세 예언자 축일:9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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