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3월31일
성 아모스 예언자
St. Amos
Sant’ Amos Profeta
Regno di Giuda e Regno di Israele, VIII secolo a.C.
Amos = forte, robusto, dall’ebraico=sturdy, strongly dall’ ebraico
■ 아모스서(Prophetia Amos. Book of Amos)
(허영엽 신부 | 성서못자리)
1. 아모스 예언자는 누구인가?
아모스는 본래 사해 근처인 드고아에서 양을 치던 목자이며 농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모스는 야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아모스, 너는 이제부터 내 말을 사람들에게 전해라. 너는 내 말씀의 심부름꾼이 되어라.
저는 양을 치고 무화과나무를 가꾸어 먹고사는 무식한 농부입니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단 말입니까?
너는 나의 말을 시키는 대로 전하기만하면 된다. 네가 말하지만 결국엔 나의 말이다.(아모 1-3장 참조)
아모스도 다른 예언자처럼 먼저 야훼 하느님께서 선택하여 부르신 예언자였다.
남루하고 보잘것없는 신분으로 담담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던 아모스는 참된 예언자였다.
그는 특별히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예언자였다.
그는 계층의 고하를 막론하고 하느님의 진리에 의거하여 모든 잘못을 질타하며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다하였다.
아모스는 자신의 설교를 기록에 남긴 이스라엘 최초의 작가 예언자로서 간결하고 박력있는 그의 문장은 아름다운 히브리어시 형식으로 기록되어있다.
2. 아모스 예언자가 부르심을 받던 시대 상황
아모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기원전 760년경으로 우찌아는 유다를,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때였다.
당시는 비교적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과 번영을 누리던 시기였다.
이스라엘은 왕국 건설 후 백년도 채 안되어 급속한 사회적 변천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사회적으로는 유목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바뀌었고, 상인들까지 생겨나게 되어 경제적인 발전과 더불어 계급이 형성됨으로써 사회 문제가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또한 당시의 시대 배경은 위협적 강대국이던 에집트와 앗시리아가 정치적으로 쇠퇴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군사, 외교, 문화면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라의 지배층들은 향락과 사치에 빠져 가난한 백성들을 착취하고 압박했으며 사회 정의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
이스라엘은 신앙의 순수성을 잃고 경신례도 형식에 그칠 뿐이었고 축제 또한 방탕한 예식으로 탈바꿈하였다.
사회의 지도층이 썩고 부패하여 향락과 사치에 빠져있자 덩달아 종교도 겉치레의 형식에 치중하여 종교본연의 정신을 잃어버렸다.
3. 아모스 예언자의 활동
아모스가 처음으로 인근 주민들에게 내린 선언은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약한 자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불의를 규탄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다른 나라들에 대한 신랄한 비난으로 그의 예언을 시작함으로써 그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야훼의 말씀을 위한 길을 예비하였다.
아모스 예언자는 당시의 이스라엘의 위선과 고집에 대해 엄하게 꾸짖었다(아모 4,4-5참조).
허위와 기만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종교적인 의식은 뻔뻔스럽게 바치고 있는 당시의 종교생활을 꼬집었다.
아모스의 예언은 우선 당시의 지도층, 특히 위정자와 종교지도자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었다.
사제들은 아모스의 활동에 반감을 품고 모함과 공격을 감행했다.
사제들과 종교의 타락상을 신랄하게 비판한 아모스는 그들에게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아모스는 실제로 면전에서 심한 모욕과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떠한 공격과 모함에도 아모스는 당당했다.
하느님은 정의와 진실만을 원하시는 분임을 일깨웠고 빗나간 길에서 회개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숭배에 빠져 불의와 폭력, 사기와 만행을 일삼으며 사회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타락해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아모스는 지배 계층이 저지르는 부정과 불의를 고발하여 타락한 예배 행위를 바로 잡고 더럽혀진 성소들을 정화시키도록 독촉했다.
4. 아모스 예언서의 교훈
오늘날에도 개혁의 소리와 건전한 비판까지도 체제에 대한 도전과 반역의 행위로 몰아넣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릇 지도자는 귀에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역사적으로 보면 오히려 세속의 못된 풍랑이 교회를 뒤덮어 더 부패케하고 악을 조장하는 사례도 많았다.
아모스 예언서를 오늘날 교회의 형태와 비교할 때 반성해 보아야할 점이 없지 않다.
물질이 풍요할수록 정신은 악의 유혹에 쉽게 빠지기도 한다.
(소공동체 모임 길잡이 2004년2월호에서)
Christ the Judge-ANGELICO, Fra
1447.Fresco.Chapel of San Brizio, Duomo, Orvieto
■ 아모스 입문
1. 예언자와 그의 시대적 배경
구약성서에는 한 예언자의 언행만을 다루는 책들이 많다. 아모스는 이러한 예언자들 가운데에서 시대적으로 첫째이다.
아모스 이전에도, 특히 사무엘서와 열왕기가 전하는 것처럼, 다른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아모스는 예언자들의 새로운 계통을 연 사람이다.
곧 통상 ‘저술 예언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그들이 펼친 활동의 직접적 반향이 그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성서의 책 안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집이라 할 수 있는 이 책들은, 예수님의 활동과 설교를 전해 주는 복음서들처럼, 대개는 예언자 자신이 아니라 그 제자들의 작품이다.
그러나 아모스서 7장, 8장, 9장에 나오는 아모스의 다섯 환시 이야기처럼, 특별히 예언자가 자신에 관해서 단수 일인칭으로 말하는 부분들은 그가 직접 기록하였을 수도 있다.
‘
아모스’라는 이름은 히브리 말로 ‘들어올리다, 나르다’라는 동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아모스’는 ‘아모스야’라는 이름의 단축형일 가능성도 있다.
‘주님께서 날라 주셨다’라는 뜻을 지닌 ‘아모스야’는, 다른 많은 이름에서도 그러하듯이, 주님의 호의적인 개입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이름이다.
아모스는 자신을 “목양업자”로 소개한다(1,1; 7,14 참조). 그는 목축을 하기에 알맞은 언덕들로 이루어진 고장, 베들레헴 부근 드고아라는 시골에 살던 유다인이다.
그의 메시지를 밝혀 주는 목축과 관련된 많은 표상이 이러한 예언자의 출신을 확인해 준다.
아모스는 기원전 8세기의 2/4 분기에 활동한다.
이 시기는 1,1의 머리글이 말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왕국의 여로보암 2세와(기원전 787-747년) 유다 왕국의 우찌야의(기원전 781-740년) 유명한 치세가 돋보이는 때이다.
그리고 그는 호세아 예언자보다 약 10년 정도 앞서 활동한다.
선택된 민족의 열두 지파 가운데에서 열 지파로 구성된 북왕국은 국제 정치적인 면에서 무엇보다도 인접한 시리아 왕국의 쇠퇴 덕분에 태평 시기를 누린다.
북왕국의 강력한 경쟁국이었던 시리아가 동쪽에서 몰아치는 아시리아 제국의 팽창 정책의 희생물이 되었던 것이다.
여로보암 2세는 예전에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살던 요르단 건너편 지역을 탈환한다(2열왕 14,25).
이러한 승리로 사람들은 새로운 영화를 꿈꾸게 된다(아모 6,13-14 참조). 왕국의 안녕은 이제 완전히 보장된 것으로 여겨진다(6,1-3).
그러나 사실은 치명적인 위협의 기운이 이미 이스라엘 왕국 위에 감돌기 시작한다. 아시리아의 군대가 팔레스티나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외국과의 교역이 왕국에 번영을 가져온다. 그러나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불균형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특별히 수도 사마리아에는 사치가 만연하고, 이른바 졸부들의 속물 근성이 확산된다(3,12; 6,4-7).
계약의 백성을 서로 결속시켜 주던 이전의 연대 의식은 변질되어, 약자들에 대한 강자들의 착취가 자행된다.
게다가 그러한 착취는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부정한 판결의 비호까지 받는다(2,6-7; 4,1; 5,7).
종교적인 면에서는 온 백성이 자랑스러워하는 화려한 의식 속에 경신례가 거행된다.
그러나 아모스는 그러한 종교 의식에 특별히 준엄한 비판을 가한다(4,4-5; 5,4-5.21-27).
아모스의 사명은 특수한 ‘보편적’ 중요성을 지닌다.
유다 왕국의 백성인 아모스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위하여 설교하라는 명령을 받는 것이다(1,1과 7,15 참조).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 현대에 비유할 때에, 아모스는 한 종파에서 다른 종파로 파견된 설교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북부로 간다는 것은 일치의 표지이다.
곧 이스라엘이 아무리 정치적이나 종교적으로 분리되었다 하더라도,그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하시는 하느님께는 여전히 한 백성인 것이다.
아모스는 북왕국의 성소들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베델, 곧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릴 때에 예루살렘 성소와 경쟁하기 위해서 세워진 베델 성소에서 예언한 것으로 보인다.
4,4-5의 신탁이 특정 종교 의식들을 묘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아모스는 그것들이 거행되는 연중 대축제들 가운데 하나를 계기로 개입한다.
그의 신탁들은 사마리아에도 해당된다.
사실 어떤 신탁들은 바로 이 수도에서 선포되었을 수도 있다(예컨대 3,9-12나 6,1-7).
여하튼 나중에 등장하는 대예언자들과는 달리 아모스의 활동은 길어야 몇 달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아모스를 공공 질서의 교란자로 임금에게 고발하고 이어서 추방시킨 베델의 사제에 의해서 아모스의 활동이 중단된 것 같다(7,10-17).
이러한 예언 활동 금지에 대항하기 위하여, 아모스(또는 그의 제자단)가 자기의 환시들과 신탁들을 기록하고, 또 기록한 것을 백성 가운데 유포시켰을 수 있다.
아모스의 말씀은, 주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를 통하여 선포하신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청중들 사이에서 전승됨으로써,
아모스의 말씀은 그의 사후에도 계속 살아 있는 말씀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새로운 상황에서 예언자의 메시지를 현실화하기 위하여 몇몇 신탁이 첨가되었을 것이다.
유다를 거슬러 선포한 신탁(2,4-5), 그리고 저작 시대에 대해서 계속 논란이 이는 마지막 약속(9,11-15)도 바로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2. 아모스서의 언어와 메세지
아모스는 시골 출신이기는 하지만,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문맹도 아니고 교양 없는 사람도 아니며, 거기에다 촌스러운 사람도 아니다.
그는 조국과 주변 민족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사건들을 숙고한다.
그는 사마리아를 파괴시키게 될(기원전 721년 또는 기원전 722년) 북쪽의 세력 곧 아시리아의 존재를 예감한다.
그는 또 하늘과 땅에서 비롯되는 위협에도 민감하였다. 그러한 위협 속에서 주님의 활동을 보았던 것이다.
아모스를 언어의 표현 양식을 무시하는 설교가로 여긴다면, 그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는 지혜 문학의 섬세한 표현뿐 아니라(3,3-8; 5,19; 6,12) 전례의 폭넓고 장엄한 표현도 잘 사용하고(1,3─2,16; 4,6-13; 5,4-6.14-15),
서정적 어조의 열정을 드러내기도 하며(4,1-2; 9,1-4), 언어 유희와 풍자도 구사한다(3,12; 5,5; 6,13; 8,1).
그의 언어는 무엇보다도 간결함이 인상적이다.
자기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데에, 아모스는 번개처럼 빠르고 지진처럼(그의 활동은 지진에 대한 기억과 연결된다: 1,1)
환상을 깨뜨리는 몇 개의 낱말로 충분하다. 아모스의 이러한 문학적 재능은 큰 힘과 중요성을 지닌 주제에 담겨 있음으로써 더욱 잘 드러나게 된다.
이 주제는 바로 하느님의 호소와 성실성에도 계속해서 참회하지 않는 이스라엘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예언서의 마지막 세 장, 곧 7─9장의 주요 대상인 다섯 환시를 통하여 아모스에게 나타나신다.
전통을 중시하고 둘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아모스에게, 이 환시들은 설교하라는 하느님의 자극이 된다.
자기 백성을 위하여 중개에 나서서 두 번에 걸쳐 용서를 받아 낸 아모스는, 이제 더 이상 용서가 베풀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7,8),
그리고 야곱 집안이 멸망하는데, 그래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9,8) 하느님에게서 알게 된다.
이러한 계시가, 한편으로는 그를 신중하게 만들어 침묵하게도 하지만(5,13), 그에게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3,8).
아모스의 메시지는 하느님의 위대성, 모든 민족에게 퍼져 나가는 그분의 권능과 정의,
그러면서도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그분의 영원한 우선적 사랑을 그 주제로 한다.
그는 율법이 요구하는 것들, 특별히 경신례를 규정짓는 율법의 조항들, 가난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의 권리를 밝히는 율법의 조항들을 상기시킨다.
아모스는 장엄하고 강렬한 어조로 부자들과 권력자들, 판관들과 사제들에게, 장차 복음서가 아래와 같이 표현하게 될 내용을 선포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아모스는 또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경신례가 어떠한 것인지도 상기시킨다. 이스라엘인들의 경신례는 저희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이러한 경신례가 겸손과 정의로써 표현되기를 하느님께서는 바라시는 것이다.
이 점에서도 아모스는 다시 신약성서와 이어진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다 받은 것인데 왜 받은 것이 아니고 자기의 것인 양 자랑합니까?”(1고린 4,7)
아모스의 하느님께서는 불굴의 사랑으로써 정열을 지니신 하느님이시다.
그분께서는 악한 세상의 힘이 사람들을 당신에게서 멀어지게 하도록 결정을 내리실 수 있는 분으로서, 사실 또 몇 번에 걸쳐 그렇게 하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죄악의 무게가, 또 하느님 없이 살거나 당신의 법 밖에서 사는 죄인들의 요구가 당신을 압도하지 못하게도 하시는 분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리고 영성적으로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이를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죄악과 교만이 죄인에게로 모든 벌을 끌어오리라고 선포하기도 하신다.
그러면서도 또한 죄와 오만이 가득 찬 곳에 용서와 은혜가 충만하게 만들기도 하신다.
인간의 기도가 하느님을 감동하게 하고 그분께서 당신의 결정을 번복하시게 할 정도로 큰 효력을 지닐 수 있음을, 아모스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예언자의 이러한 중개는,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을 위하여 하신 기도에서 완성된다(요한 17장).
그렇다고 아모스의 하느님께서 이중의 모습, 곧 벌하시는 하느님의 모습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신 분이시라는 말은 아니다.
아모스의 하느님은 벌을 내리시면서도 동시에 구원을 베풀기를 원하시는, 똑같은 하느님이시며 주님이시다.
그분의 벌 자체가 예외 없는 정의의 엄격하고 차가운 논리를 넘어선다.
그분의 벌은 상처 받거나 배신당한 사랑의 표현, 징벌 너머로 그 마지막 외침 속에 아직도 회개를 호소하는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아모스보다 몇 년 뒤에 이스라엘에서 예언 활동을 하는 호세아는, 하느님의 이 극적인 사랑을 새로운 언어로 표현해 내게 된다.
그래서 아모스서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내포한다.
먼저 위협으로 가득 찬 계시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너무 늦게 찾음으로써 결국에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죽어 갈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것이다(8,11).
다음으로, 희망을 향한 계시(5,15; 9,8), 다른 예언자들이 이어 받게 되는 계시이다.
곧 모든 것이 끝난 그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용서를 베푸실 수 있다는 것이다.
3. 아모스서의 구분
머리글(1,1)과 짧은 서론(1,2)에, 이스라엘 주변의 일곱 국가와 이스라엘 자체를 질타하는 일련의 신탁들로 이루어진 첫째 부분이 이어진다(1,3 - 2,16).
이 신탁들은 모두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신탁이 더욱 폭넓게 전개된다.
둘째 부분은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신탁들로 구성되어 있다(3─6장).
일반적으로 짧을뿐더러 일정한 순서 없이 모아진 이 말씀들에서는 특별히, 참회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관한 연설(4,6-13),
베델의 경신례를 지적하는 말씀(4,4-5; 5,4-5.21-27), 사회적 불의와(3,9-11; 4,1-3) 교만과 잘못된 안전 의식을 단죄하는 말씀(3,1-2.12; 5,18-20; 6,1-7.13-14),
임박한 심판의 묘사(3,13-15; 5,1-3.13.16; 6,8-11), 주님께 돌아가라는 호소(5,4-6.14-15) 등이 돋보인다.
셋째 부분(7 - 9장)에는 다섯 가지 환시에 관한 이야기들이 모아져 있다.
그 가운데에서 앞의 네 환시는 둘씩 짝을 이룬다. 곧 메뚜기 떼(7,1-3)와 불(7,4-6), 그리고 다림줄(7,7-8)과 여름 과일 바구니(8,1-2)이다.
마지막으로 성전의 진동에 관한 다섯째 환시가 나온다(9,1-4).
이 환시들을 중심으로 아모스의 추방 이야기와 같은(7,10-17) 몇몇 신탁이 더해진다(7,9; 8,3-14; 9,7-10).
아모스 예언서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에 관한 신탁으로(9,5-11) 끝나는데, 이 신탁을 아모스가 직접 선포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가톨릭홈에서)
Prophets-ANGELICO, Fra
1447. Fresco. Chapel of San Brizio, Duomo, Orvieto
■ 예언자 預言者
라틴어 propheta 영어 prophet
`예언자’라는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 προφψτηζ인데,
이는 예언자의 기본성격을 암시 하는 말로 다른 이를 위하여(προ) 말하는(φημλ) 자라는 뜻이 된다.
`예언자’의 히브리어 n b ’가 이와 같은 뜻으로 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이는 이마도 `부르다’라는 어원(nab )의 수동형이었을 것이다.
즉, 이 히브리어는 능동형으로 `하느 님의 대변자’를 가리킬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느 경우에나 중심 개념은 신적(神的) 교제를 나타내는 것이 며, 만일 어원이 이 개념을 확실히 나타내지 못한다 해도
성서에 나타난 실제 역사를 통해 예언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다른 이들에게 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예언은 대개 하느님의 힘이나 성령의 힘에 의거하였기 때문에(민수 11:25-, 1사무 10:6·10,19:20· 23)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사람(1사무 2:27,1열왕 12:22,13:1-,17:24,20:28) 또는 성령의 사람(호세 9:7)이라고도 한다.
예언자들은 미래에 대한 예언만을 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일을 과거와 연관시켜 얘기하는 등 과거·현재·미래를 다 예언의 소재로 했고,
심판에 대한 예언과 구원에 대한 예언을 동시에 하기도 했으며, 이방인에게나 자기 민족에게나 차별없이 예언하였다.
예언의 내용은 신학적인 것만 다룬 것이 아니라 정치(호세), 사회적(아모, 미가) 문제들도 다루고 있는데, 정치적인 예언은 신학적으로도 풀 이될 수 있다.
예언자들이 부름을 받았던 구약성서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예언자들이 어떤 기준에 의해 설정되었는가에 대한 기본적 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사야 6장 1-13절, 예레미야 1장 4-16절, 에제키엘 1장 1절-3장 2절, 아모스 3장 7-8절, 7장 14-16절 등의 내용에서 다음과 같은 예언자의 역할들이 밝혀진다.
예언자는 야훼를 대리해서 말한다(이사 6:8-9, 예레 1:9).
예언자직은 예언자가 되기를 꺼려하거나 예언자적 자질이 없는 사람에게도 강제적으로 주어진다(아모 3:7-8, 예레 1:7-8)
하느님은 그의 말씀을 예언자에게 전한다(이사 6:9, 예레 1:7-9, 에제 2:8-3:3),
그리고 이러한 교제는 훗날 신비주의자들에게 알려진 것과 유사한 환영과 소리와 혼란된 상태 등을 포함한다.
성서의 예언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자이며 영감을 받은 대변자이다.
그러나 예언자들이 직접 예언서를 쓴 것은 아니다.
그들의 말은 구두 전승으로 보존되었고 영감을 받은 기술자들이 전승된 말씀들을 기록하고 정리한 것이다.
현재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성서는 다른 기술자들에 의해 편집되 고 배열되고 다소 추가되었으나 예언자들이 전한 말씀인 것이다.
역사에 대한 현대의 관심은 원래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가려내려는 노력에 집중되어 왔다.
이러한 노력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를 재건설한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일일 수 있으나 신학적인 해석의 견지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영감을 받은 예언서이다.
예언서에 현재 나타나는 구조를 편집의 역사(Redak-tionsgeschichte)와 함께 연구하는 것이 종종 성서 해석의 효과적인 접근 방법이 되고 있다.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다니엘 등 4명의 주요 예언자들과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디야, 요나, 미케아, 나훔, 하바꾹, 스바니야, 하깨, 즈가리야, 말라기 등 12명의 준 예언자들로 구분된다.
`주요’와 `준’이라는 용어는 예언자들이나 그들이 남긴 메시지의 상대적인 중요성과는 상관이 없으며
이들은 단지 구약성서의 예언서의 개별적인 범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구약성서에서 예언자적 명칭과 직책이 현대 성서의 16명의 교회법적인 예언자들 즉, 성서를 직접 기술한 예언자들에 국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엘리야와 엘리사(Elisae) 같은 이들도 나타나는데 이들의 말은 거의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이들도 다른 예언자들이나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말씀의 영감적인 전달자였다.
구약성서시대에는 예언을 하고 보수를 받았기 때문에(판관 13:17, 1 사무 9:7) 진리보다도 이를 위해 예언하는
거짓 예언자들도 있었는데(1열왈 13:7,14:3, 2열왕 5:22-27,8:8, 아모 7:12, 미가 3:5) 이들 중 에는 하느님의 부름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함부로 예언한 사람들(예레 14:15,23:32, 27:15,29:9, 에제 13:6),
자신의 생각을 예언처럼 선포한 사람들(이사 9:14, 예레 5:31,6:13,14:14,23:25,27:10·14, 에제 13:2-23),
충실치 못한 예언을 한 사람들(스바 3:4) 등이 있었다.
신약성서에는 초기 교회의 예언자들의 경험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이들도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나 마찬가지로 예언하고
훈계하는 직무를 수행하였으므로 신약성서의 예언자의 개념은 구약성서의 예언자의 개념을 계승하고 있다고 결론지어도 좋을 것이다.
(가톨릭대사전에서)
*성 모세 예언자 축일:9월4일
*성 이사야 예언자 축일:7월6일,
*성 엘리세오(엘리사)예언자 축일:6월14일
*성 예레미야 예언자 축일:5월1일
*성 아모스 예언자 축일:3월31일
*성 즈가리아 예언자 축일:9월6일
*성 다니엘 예언자 축일:7월21일
*성 엘리야 예언자 축일:7월20일
*성 에제키엘 예언자 축일:4월10일
축일:3월31일
성녀 발비나 동정 순교자
St. Balbina
Santa Balbina di Roma Martire
martyred c.130; relics in the catheral of Cologne, Germany
Balbina = balbuziente, dal latino=stutterer, from the Latin
로마 순교록에 성녀의 순교 사실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
"교황 알렉산델로부터 세례를 받고 순교한 복자 귀리노의 딸이며 동정녀인 성녀 발비나는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동정을 지킨 당신의 신부로 간택하셨다.
이 세상의 순례길을 마친 그녀는 아버지 무덤 근처인 비아 압피아에 묻혔다."
이 기록은 순교자를 기록해 온 아도라는 사람의 주장에 근거한 것이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녀 발비나는 2세기초 사람이다. 아버지는 귀리노라는 로마제국의 군인으로서 대령까지 승진했다.
아버지나 딸이나 모두 처음은 우상교의 신자였지만 나중에 가톨릭으로 개종해 두 분 모두 성인품에 오른 훌륭한 사람들이다.
발비나는 소녀 시대부터 외모가 아름다웠고 재능도 뛰어났으므로 아버지도 특별히 사랑했고 가정도 부유했으므로 많은 청년들에게서 혼담이 들어왔다.
그러나 세상일은 믿을 수가 없는 지 뜻밖에도 발비나는 목에 나쁜 부스럼이 생겨 용모가 추해져서 부끄러운 나머지 사람의 눈을 피하지 않으며 안되었다.
아버지는 이를 대단히 슬퍼하며 각지의 의사에게 보이기도 하고, 갖은 약을 다 쓰기도 하고, 신들에게 기원도 해보고 점도 쳐보는 등
백방으로 고치려고 해 보았으나 아무런 효험도 보지 못했다.
그때 마침 그리스도의 이름이 방방곡곡에 전파되고 기의 기적의 소문도 대단해 귀리노는 마침내
"만일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교회의 두목이 딸의 병을 고쳐 준다면 가족 모두 교회에 나가겠다."는 맹세를 하느님께 드렷다.
이 시기는 아드리아노 황제의 박해 시대였으므로 알렉산델 교황은 옥중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귀리노가 딸 발비나를 데리고 와서 면회하니
그는 그들의 진심을 알고 열심으로 하느님께 기도한 후 손을 묶은 쇠사슬을 발비나의 상처에 대자 곧 그녀의 병은 완치되어 발비나는 전과 같이 미모의 소녀가 될 수 있었다.
아버지와 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서 하느님께 감사를 올리는 동시 교황 앞에 무릎 꿇고 그의 쇠사슬에 친구했다.
그리고 그의 권고에 의해 전에 맹세대로 집안 모두 교리 공부를 시작하고 오래지 않아 훌륭히 세례를 받고 새 생활을 시작했다.
발비나가 완쾌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녀의 병을 싫어해 만나지도 않았던 청년들이 또다시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한 발비나는 현세의 사랑 같은데는 끌리는 마음 없이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평생 동정을 지킬 결심을 굳게 했다.
전승에 의하면 세례 후에 불을 켠 흰 초를 든 천사가 나타나 그리스도의 배필이 될 것을 권고했다는 말도 있지만
하여튼 세상의 허무함을 깨달은 그녀가 영원을 바라보며 거룩한 일생을 보내려고 결심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녀는 매일을 그리스도께 봉헌하며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 자선 사업에 헌신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았다.
귀리노 대령의 일가족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관가에 알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귀리노는 즉각 법정에 호출되어 판사 아우렐리아노의 준엄한 문초를 받았지만 그는 겁내는 기색도 없이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고 드디어 순교의 영관(榮冠)을 획득했다.
그 뒤 딸 발비나도 아버지의 뒤를 따라 천국에 가게 되니, 이로써 이 성스러운 부녀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서로 만나 즐기며 같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몸이 되었다.
그 후 성녀 발비나의 용감한 신앙의 덕을 사모한 나머지 로마 신자들은 아벤티노 언덕에 한 기념 성당을 세웠다. 발비나 성당이 바로 그것이다.
(대구대교구홈에서)
Daniel the Prophet & Ananias, Azarias, & Misail,
the Three Holy Youths
다니1,6-7
6 그들 가운데 유다인으로는 다니엘, 하나니야, 미사엘, 아자리야라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7 내시부 대신은 이 젊은이들에게 이름을 새로 지어주었다.
곧 다니엘은 벨트사살, 하나니야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자리야는 아벳느고라고 부르게 하였다.
다니3,14-20.91-92.95
14 느부갓네살이 물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너희는 내가 세운 금신상 앞에 절을 하지 않고 내가 위하는 신을 섬기지 않았다니, 그게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나팔, 피리, 거문고, 사현금, 칠현금, 퉁수 등 갖가지 악기 소리가 나는 대로 곧 엎드리어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절할 마음이 없느냐?
절하지 않으면 활활 타는 화덕 속에 던질 터인데, 그래도 좋으냐? 내 손에서 너희를 구해 줄 신이 과연 있겠느냐?"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왕에게 대답했다. "저희는 임금님께서 물으시는 말씀에 대답할 마음이 없습니다.
17 저희가 섬기는 하느님께서 저희를 구해 주실 힘이 있으시면 임금님께서 소신들을 활활 타는 화덕에 집어 넣으셔도 저희를 거기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18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저희는 임금님의 신을 섬기거나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신상 앞에 절할 수 없습니다."
19 느부갓네살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말을 듣고는 금방 안색이 달라지며 노기에 차서 화덕의 불을 여느 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지피도록 하고,
20 군인들 가운데서도 힘센 장정들을 뽑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 활활 타는 화덕에 집어 넣으라고 명하였다.
91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이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그는 벌떡 일어나 측근자에게 물었다.
"꽁꽁 묶어서 화덕에 집어넣은 것이 세 명 아니었더냐?" 그들이 대답했다. "임금님, 그렇습니다."
92 "그런데 네 사람이 아무 탈없이 화덕 속에서 거닐고 있으니, 어찌된 일이냐? 저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모습을 닮았구나." 하면서
95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섬기는 신이야말로 찬양받으실 분이구나." 하며 느부갓네살은 외쳤다. "저들의 하느님께서,
어명을 어기면서까지 목숨 걸고 당신만을 믿고 저희의 신 아닌 다른 신 앞에서는 절하지도, 섬기지도 않는 이 신하들을 천사를 보내시어 구해 내셨구나.
(2004년3월31일,사순제5주간 수요일 제1독서)
*성 다니엘 예언자 축일:7월21일
Daniele = Dio e il mio giudice, dall"ebraico=God is my judge, from the Heb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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